< 55화 > 55. 가난한 편의점 알바생 신사랑(20세/처녀임)
사랑이는 상대가 다짜고짜 진상 짓을 벌리자, 당황했다.
그러나 빠르게 멘탈을 찾는다.
던진 만원을 두 손 공손하게 쥐고 우물쭈물 손님을 상대했다.
“아…… 담배 말이죠? 어떤 종류를 찾으시나요?”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라고 말씀하시면…?”
“그거, 그거 달라고. 두개골 텅텅 빈 멍청한 년아.”
“죄송하지만 정확한 명칭을 알려주신다면─”
“아 진짜 답답하네 빡대가리년이. 그러니까 그거!”
“이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보다못해 끼어든다.
손님… 손놈은 신사랑의 앞에 서있었으나 몸을 기울여 건넨다.
아무 담배나 쥐고 내밀었다.
손놈은 내가 끼어든 게 못마땅한지 고깝게 흘긴다.
“너도 빡대가리냐? 내가 던힐을 왜 피워?”
“그럼 이건가요?”
“마쎄도 아니야 등신아! 야, 니가 가져와봐 그거!”
“그러니까 그게 대체…?”
진상녀는 수상쩍을 정도로 신입 사랑이에게 집착한다.
“야야, 머리통이 없냐?”
“…….”
“뭐해. 손님이 부르는데 왜 대답이 없어? 시발, 그러니까 여기서 편의점 알바나 하고 있지 멍청한 년.”
어처구니없는 인신공격으로 주눅 든 사랑이를 몰아붙인다.
진짜 이상할 정도로 사랑이에게만 집착한다.
손놈의 진상이 더 지속되기 전에 결국 특단의 조취를 취한다.
“손님.”
“아 넌 빠지라고!”
“손이 무척 아름다우시네요.”
내가 뜬금없이 문어체 문구를 던지자 진상녀가 나를 쳐다본다.
“…갑자기 뭔 지랄이야?”
“정말 손가락이 고우셔서요. 관리를 많이 받으시나봐요?”
“……받고는 있지. 그게 왜.”
“그렇군요. 그렇다면 그 고운 손가락으로 원하시는 물건을 가리켜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그 말을 들은 손놈은 가만히 서있었다.
내가 온화한 태도로 나올지 몰랐는지, 이 이상의 진상은 되고 싶지 않은지, 서서히 손을 들어 아이처럼 원하는 담배를 가리킨다.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말보로였다.
곧장 하나를 내주자 “두 개.”라고 짧게 읊조리고 두 개를 챙겨간다.
“칫!”
생각대로 안 됐는지 혀를 차고 자동문과 함께 빠져나가는 진상녀.
거친 발 구름을 하며 끝까지 손놈짓을 하면서 사라졌다.
그렇게 손놈은 물리쳤지만 사랑이는 썩 표정이 좋지 않다.
노골적으로 노려져서 진상녀의 샌드백이 됐다.
아무래도 그 화류계 미친년은 젊은 여자한테 스트레스를 풀고 싶었나보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도적으로 나를 피해 젊은 여성인 사랑이를 노렸다.
“참나, 시작부터 똥 밟았네.”
“…….”
“마음에 담아두지 마. 저런 진상들은 꼭 있거든. 그냥 지 기분 푸려고 지랄하는 거라 무시하면 돼.”
“네에….”
딱 봐도 시무룩해져 버린 사랑이.
마음 같아선 시작부터 확 내쫓아버리고 싶었지만 옆에서 겁이 질렸으니 부드럽게 해결하고 싶었다.
또한 아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의 땜빵이라, 자그맣게라도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사랑이에게 머리를 환기할 시간이 주어지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려갔다.
“저기… 오빠라고 불러도 되나요?”
“어… 어어, 편하게 불러.”
“그럼 선우 오빠라 할게요…. 선우 오빠, 오빠는 저런 사람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으, 으응?”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했다.
철학시간인가,
당혹스러웠으나 일단 꿀꿀해진 사랑이의 기분을 풀어줘야 했기에 대답한다.
“그냥 뭐 저런 년도 사는구나 싶지. 진상짓 당하면 화도 나고.”
“……그래요?”
내 대답을 듣고 기운 빠지는 한숨을 하더니,
“저도 화가 나요. 그런데 동시에… 질투가 나요.”
“질투한다고? …저런 진상을?”
“성격이 아니라, 저 사람이 하고 있는 일 때문에요.”
“일이라니, 아까 그 사람은 분명……”
“네, 아마 어두운 곳에서 종사하고 있겠죠.”
일부러 돌려 말했으나 사랑이도 다 알고 있었다.
알고서 한 말이다.
뭐지? 사탕 주면 따라가게 생겻으면서 몸을 팔고 싶다 이건가.
잠깐 대화는 소강상태가 됐다.
내가 머리를 굴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자, 사랑이가 뒤늦게 내 곤란한 표정을 캐치한다.
자칫 곡해할 수 있는 자기 의견을 구체적으로 해명한다.
“무, 물론 그런 수치스러운 일이 부러운 게 아니라…! ……돈 때문이에요.”
“돈?”
“네. 자세히는 모르지만 들어본 적이 있어요. 저런 직종은 돈을 엄청 빨리 번다고.”
“…인터넷에선 그렇게 떠들더라.”
“네, 그래서 너무 화가 나요…. 나는 알바자리마저 어렵게 구해서 왔는데, 저런 사람들은 범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떵떵 소리치고 다니다니…!”
정말 분한지 작은 주먹을 불끈 쥔다.
“혹시, 대학교 등록금 때문이야?”
“……네.”
떠올리기만 해도 무거운 짐인지 깊게 한숨을 쉰다.
“장학금 정책이 변경돼서 연속으로 장학금 타는 게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게 아니라도 생활고가 좀 있어서 구한 알바는 계속해야 하고….”
“그, 그렇구나….”
“학교 붙고, 장학금 받으면 만사형통일 줄 알았는데… 정말 힘드네요….”
축 처지는 어깨.
안 그래도 작은 편인데 더 여리게 만든다.
옆에서 보는 나마저 가슴이 미어진다.
복잡한 사연이 많은 것 같다.
얼마나 한이 많으면 처음 보는 내게 전부 털어놓겠는가.
“아…… 선우 오빠, 죄송해요. 오늘 처음 봤는데 무거운 얘기를 했네요.”
“아니야, 편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머리 아파 보이는데 휴게실에서 좀 쉴래?”
“아니에요. 아직 일도 다 못 배웠는데 쉴 순 없죠….”
노력하는, 때묻지 않은 착실함.
그렇기에 더욱 응원해주고 싶게 만든다.
내가 나쁜 일을 저지른 것도 아니건만, 가슴이 찔려온다.
띠링♪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그러나 이 음성은 그거였다.
최근에 부쩍 적어진 미션 알림음.
이 타이밍에 뭔가 싶어서 주머니를 꺼내서 확인해보자, 나는 두 눈을 의심했다.
두 번 세 번 읽어봐도 이건 과하다.
‘하… 한량신님 아무래도 이 타이밍에 이건 좀…!?’
오늘 처음 보는 애다.
그런데 입 밖에 꺼내기조차 힘든 제안을 요구한다.
아무리 예전에 무지성 협박질을 하고 다녔건만, 이건… 이건 좀 그렇다.
악의는 담겨있지 않지만 뚫린 입이라고 막 지껄였다간 뺨을 맞거나 신고당해도 쌀 짓이다.
“오빠, 무슨 일 있어요?”
“으, 으응?!”
“표정이 안 좋아져서, 정말 괜찮아요…?”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이건 아니다.
그대로 넘겨버리도록 한다.
……으으.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고뇌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간 미션이 줬던 이익들을 따져봤을 때, 어쩌면 새로운 시련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초면에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미친 짓거리는 확실하나, 관점에 따라선 분명 상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용해 먹는 기분이 들지만, 선택은 사랑이의 몫이다.
‘말 해보는 것까지. 미션이 들어왔으니 딱 거기까지만 해보자….’
말하기에 앞서, 허파에 바람을 가득 채워 넣는다.
“저…… 사랑아?”
“네, 오빠.”
“지금부터 하는 말은 헛소리라고 흘려들어도 좋으니까, 진지하게 듣지 마. 끝나고 뺨을 후려쳐도 좋으니까 이야기 조금만 들어줘….”
진지하면서, 동시에 최대한 애절하게 경고한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그러니까……”
성대를 한 자 한 자 짜내듯이 어렵게 의견을 전한다.
사랑이는 내 말을 듣고 깜짝 놀랐으나, 끝까지 경청해서 들어줬다.
[미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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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랑
풋풋한 20세 소녀.
벌써 대학교 2학기에 기말 시험을 앞두고 있으나, 그녀에게는 아직 새내기의 앳된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수수한 차림에 화장은 거의 로션만 바르다시피 한다.
치마는 옷장에 계절별로 딱 두 개만 존재하며, 대부분은 내구성이 좋은 청바지를 입는다.
신사랑이 꾸밀 줄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다.
단지 통장에 돈이 없기 때문이다.
편부모 가정에서 힘들게 자라난 그녀는, 어려서부터 절약이 습관화 되었다.
여름철에 더우면 에어컨이 생생한 도서관을 찾아가고,
겨울에 추워지면 난방을 찾는 게 아니라, 히트텍을 입는다.
20년 간 저주처럼 이어져온 가난의 굴레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언젠가 이게 끝날 것이라는 희망조차 들지 않는다.
그래도 집안에선 불평하나 하지 않았다.
자신보단 자신을 위해 수발을 들어 애써주는 엄마가 더 걱정이었다.
대학교 가서부턴 용돈 필요 없고, 알아서 다 하겠다고 호언장담한 건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지친다.
전에 알바가 성추행으로 끝나고, 인상 좋은 사장님이 계신 곳에 새로운 알바자리를 구했다.
그 와중에 높은 학점은 절대 포기할 수 없기에 밤새 공부도 꼼꼼히 했다.
고등학교 때가 지옥이라 생각했는데, 캠퍼스 라이프는 하루하루가 뼈가 녹아버릴 듯 고단하다.
그랬기에 요즘은 부쩍 남을 질투가 나기 시작했다.
그것도 몸이나 파는 여자에게 말이다.
순간 나도 눈 딱 감고, 한두 달만 일해볼까 나쁜 생각까지 했지만, 그것은 엄마에 대한 배신이었다.
평생 어렵게 일하면서 자신을 길러준, 엄마에 대한 배신이다.
그래도 돈이 너무나 간절한 건 사실.
절대 받기 싫었던 학자금 대출을 받고 어떻게든 이 지옥을 견뎌야 하나 싶을 때,
처음 보는 알바생 오빠에게 엄청난 제안을 받게 된다.
“…… 대충 이런 의미인데, 이해했어?”
“…네.”
“좋아, 징그러운 놈이 성추행 한다고 뺨 한 대 칠래?”
“아, 아뇨! …저, 생각 좀 해볼게요.”
“어, 어어어. 많이 생각해봐. 역시 아니다 싶으면 미친놈이 헛소리 했다고 하면 돼. 하하하…. 아, 연락처는 혹시나 싶으니 남겨둘게. 정말, 정말정말 찝찝하면 안 해도 되니까 숙고하고서 카톡으로 의사만 한 줄 남기면 돼.”
그렇게 선우 오빠의 연락처를 받았다.
제안은 간단명료했다.
나의 성을 공개적으로 한 번 팔라는 것이었다.
따져보면 이건 몸 파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었다.
오히려 더 심할 수가 있고, 엄마를 배신하는 행위임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한 번이면 된다고 하고, 그 이후는 일절 뭐가 없다고 하니 고민이 됐다.
거기다 이 오빠는 왠지 신뢰가 간다.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되도록 거절했으면 하는 마음에 땀 뻘뻘 흘리면서 설명하는 모습이 오히려 신뢰가 간다.
내가 나쁜 길로 안 빠지길 원하면서도, 내 사연을 듣고 도움을 주려는 의도가 보였다.
나는 알바를 마치고 카페에 들러 과제를 좀 해둔 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돌아갔다.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기에 안방을 슬쩍 둘러보니 엄마가 정장도 제대로 안 벗고, 침대에 기절하듯 엎어져있었다.
몸을 돌려보니 오늘도 피곤했는지 눈 밑이 거뭇거뭇하다.
“쉬엄쉬엄 일하라고 해도 정말….”
언제나 애쓰는 엄마를 보니 많은 생각이 든다.
5분간 엄마 얼굴을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빠진다.
끝끝내 오늘 처음 본 이에게 카톡을 한 줄 보냈다.
***
“히이이잇♥ 머리 이상햇!!! 이대로 녹아내려버려♥”
“시발, 더러운 갈보년 같으니!”
“그만해줘어어어엇♥ 내가 미안해! 미안해미안해미안해♥”
나는 여자를 걸레취급하며 범했다.
스트레스 풀듯이 뒤치기로, 소파에 여자의 몸을 걸쳐서 미친 듯이 박아댔다.
다시 사용해본 [암컷타락Lv.4]는 역시 강력했다.
할 만큼 하고 나자, 늘어진 여성의 머리를 미역줄기처럼 쭉 당기면서 경고해둔다.
“자신만만 했으면서 시간 반도 못 채우네. 야, 다음에도 진상짓 하면 아예 백치로 만들어버린다.”
“흐헷… 흐에에에에헷…♥”
게거품을 문 여자.
낮에 화류계 여성이다.
[와치독스] 앱으로 추적해 찾아갔다.
그리고 말로 조금 구슬린 뒤, 그녀의 너저분한 집에 찾아가서 범해버렸다.
새로 산 어플 실험 겸, 낮에 진상짓 되갚아 줄 겸, 사랑이의 복수였다,
확실한 성능을 확인한 뒤, 옷을 챙겨서 입는다.
어두운 집안이 온통 술병에 안주로 먹은 과자 투성이다.
어째 곰팡이 냄새가 나고, 바퀴벌레라도 밟을까봐 발끝을 들고 옷을 주섬주섬 챙긴다.
‘그나저나 진짜 어떻게 하려나?’
낮에는 일부러 거절하게끔 유도하며 말했는데, 사랑이가 신경 쓰여 죽겠다.
방송으로 처녀를 팔다니, 진짜 첫경험이라면 미친 짓이 아닌가.
까톡!
공상하던 중 청바지 입은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왠지 사랑이의 카톡일 거라는 예감.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어 숨을 죽이고 메신저를 확인한다.
그리고 한탄한다.
“하아아… 결국 이렇게 되나….”
혹시나는 역시나 였다.
폰에는 짧게 한 줄이 적혀있었다.
신사랑 「오빠 제안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내일 아침에 카페에서 만나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