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화 > 36. 남친분, 먼저 실례합니다~
“…….”
“…….”
카페 2인 테이블에서 말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두 남녀.
벌써 10분째 자기 볼일만 본다.
그중 이정수는 오기로 폰질을 하는 ‘척’한다.
혼자 신난 광대처럼 떠들어 봐도 반응이 없어 비싼 ‘척’을 한다.
그러나 윤미나는 진심으로 관심이 없었다.
앞에 남친이 오늘 본 영화에 떠들든, 다음 코스에 대해 브리핑을 하든 면전에 무신경하게 폰질을 했다.
그저 자기 SNS를 확인하고, 누군가의 카톡 회신만을 기다리고 있다.
까드득….
초조해져서 습관적으로 엄지손톱을 앞니로 질겅질겅 씹는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해 한숨을 쉬고 일어선다.
“화장실 갔다 올게.”
“또 가?”
“왜? 또 가면 안 돼?”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최근에 잦아진 여자친구의 짜증.
천재지변마냥 예측할 수가 없다.
월경도 아니고, 날짜로 치면 약 한 달이 덜 된 것 같은데… 되짚어봐도 무얼 잘못했는지 도통 모르겠다.
“에휴… 내 신세야.”
이정수가 땅이 꺼져라 한탄을 하는 사이, 윤미나는 카페의 화장실로 사라졌다.
고요한 여자화장실 안.
누가 있나 싶어 칸마다 문을 열어 확인을 마친다.
“후우.”
철컥!
혹시나 중간에 들어올지 모르니 화장실 문까지 철저히 잠근다.
방금 청소를 마쳤는지 깔끔한 화장실 거울에 서서 화장을 체크한다.
비뚤어진 곳은 없는지, 조명을 어디가 잘 받는지. SNS스타 답게 본능적으로 최고의 위치를 선점한다.
‘빨리 끝내자….’
조심스럽게… 입었던 니트를 끌어올려 검정색 브라를 보인다.
특별히 큰 맘 주고 산 검정 란제리의 고급형 브래지어.
단풍잎 모양으로 야하게 가슴을 가려주고 있다.
또한 코르셋 느낌으로 앞라인을 꽉 조여서 가슴을 더 크게 강조시킨다.
그렇게 니트를 턱 밑까지 끌어올리고 입으로 문다.
손으로 가슴이 예쁘게 잘 나오도록 모아준다.
이어서 치마로 손을 옮겨간다.
짧은 아이보리색 꽉 끼는 미니 스커트 앞을 들어 안이 반투명하게 비칠 듯 말 듯한, 야한 란제리를 보인다.
공공장소에서 몹쓸 행동이지만 그의 답변을 위해선 꼭 필요하다.
찰칵! 찰칵!
남는 손으로 폰을 거울에 비춰서 사진을 찍는다.
야릇한 포즈를 취해 예쁘게 나온 각도로 몇 장 건진 뒤, 후다닥 치마를 내린다.
똑똑! 똑똑똑!
때마침 들리는 신경질 섞인 노크소리.
“나, 나가요!”
화장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서둘러 몸단장을 하고 문을 연다.
핸드백을 잡고 급하게 들어오는 중년 여성은 미간을 찌푸린다.
“저기요, 무슨 화장실에 전세 냈어요!?”
“아… 볼일이 있어서.”
“아니 여기 혼자 쓰냐구요!”
대놓고 이상한 년 취급한다.
노려봤지만 노땅 상대해줄 기분이 아니라 그냥 비켜간다.
“어머, 어머어머! …참나!”
뒤에서 쏘아붙였지만, 화장실이 급했는지 더 시비는 안 걸고 서로 갈 길 간다.
“후우….”
화장실 입구에서 건진 사진을 둘러보다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선택한다.
그걸 그대로 그와의 카톡에 올린다.
폰 액정을 가슴께 속에 꾹 누른 다음, 조마조마 떨면서 바라보지만 역시나.
읽음 표시는 지워지지 않는다.
일이 있는지 오늘따라 반응이 늦다.
어쩌면 질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발을 동동 굴리게 된다.
야한 사진을 좋아하는 특성을 이용해 새로운 속옷을 자랑하는 척 유혹하는 패턴.
최근에 많이 써먹어서 노골적이었다.
결국 수확 없이 빈손으로 카페 자리로 돌아간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정수가 입을 뗀다.
“야야, 이제 슬슬 카페는 나가자.”
“……어어, 그래.”
건성으로 대답하는 동안에도 폰에 꽂혀있는 윤미나의 시선.
의견에 동의했으면서 듣는 둥, 마는 둥.
엉덩이에 접착제라도 발렸는지 일어서지 않는다.
이정우 입장에선 심술이 날 수밖에 없다.
무슨 5년 사귄 볼 장 다 본 커플도 아니고 맥이 빠져있다.
더구나 집사처럼 기분 맞춰주는 건 온전히 본인 역할이다.
이젠 사귀는 게 맞긴 한지 의심이 간다.
‘참자, 참아야 한다….’
그래도 최대한 여친 심기 거슬리지 않고 최대한 긍정적으로 분위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한다.
예쁘고 가느다란 목 부근을 가리킨다.
“최근에 그 목걸이 많이 하네?”
“……목걸이?”
“그거 까맣게 두른 거.”
목을 더듬더니 찌푸려지는 윤미나의 미간.
“하, 진짜 무식하다.
이거 초커거든? 목에 걸치면 다 목걸이냐?”
“야야, 내가 여자 악세서리 명칭까지 어떻게 알아….”
“후우…. 그래, 매일 어쩌다 달라진 점 발견하고, 똑같은 데이트코스만 가는 니가 뭘 알겠냐.”
또 한 번 남친 면박주는 윤미나.
‘시발. 내가 샌드백인가.’
이정수는 속으로 울컥한다.
사실 데이트코스가 반복되는 건 이정수의 노력보단 윤미나의 탓이 컸다.
SNS에 남친이 있다는 소문이 날까 유명하거나 남들이 다 가는 장소를 피해야 했다.
이것저것 고려하다보면 중심부보단 외곽을 택할 수밖에 없고, 그곳의 볼거리는 한정되어 있다.
매우 부조리했으나, 이정수는 인내의 씨앗을 삼키고, 또 삼킨다.
“어, 어쨌거나 잘 어울리네.
그런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어? 나도 하나 선물해줄까?”
“…….”
물음에 윤미나는 초크를 만지작거린다.
검정 레이스에 물방울 유리모형을 달아 포인트를 준 초크.
더듬을 때마다 야한 기분이 든다.
순간 감상에 빠졌다가 손바닥을 흔든다.
“필요 없어… 그냥 이 모델이 좋을 뿐이야.”
능숙한 거짓말로 둘러댄다.
둘러댈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다.
***
쩔꺽쩔꺽쩔꺽쩔꺽♥
흔들리는 침대에서 흘러나오는 야한 소리.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가 있다.
여자는 두 말 할 것 없이 윤미나.
짐승 같은 자세로 파트너를 받아드리고 있다.
엎드려서 남성에게 다리를 벌려주는 몹시 변태적인 자세.
수치스러우나 그가… 채선우가 다가와 목덜미를 물어줄 때는 너무나 짜릿하고 흥분된다.
물어주고, 핥아서 자극 시킨다.
“후우… 미나 기분 좋지?”
“이거 좋을 수밖에 없잖아… 섹스 너무 잘햇♥”
남친 이정수와 비교가 안 될 만큼 너무나 테크니컬하고 절륜하다.
물건은 실하다 못해 대포 수준으로 크다.
몸을 섞으면서 윤미나의 오감을 쥐락펴락한다.
상대가 채선우라면 따로 숙소 잡고 며칠 동안 하고 싶을 만큼 최고다.
“그나저나 선물해준 물건은 마음에 들어?”
“……이거?”
미나의 목에 둘러진 검은색 레이스.
흔들리는 물방울 유리공예는 뒤에서 살을 붙일 때마다 흔들린다.
섹파 기념이라고, 어울린다고 채선우가 특별히 채워준 선물이다.
“너무 야한 느낌인데….”
솔직히 여자를 위한 선물보단 남성의 심기를 자극 시키는 아이템이다.
예쁘긴 하지만, 그냥 차고 다니면 몸 파는 룸 여자 같기도 하다.
“그래? 내 눈엔 예쁘던데.”
“……그, 그래?”
“길 지나다가 미나가 떠올라서 특별히 산 거라고. 조금 섭섭하네.”
“마,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진 않았어!”
반박하자 뒤에서 꼭 끌어 안아주는 채선우.
“그럼 마음에 들어?”
“예쁘다고 했으니까… 마음에 들어♥”
“후, 귀여운 목소리 꼴리네.”
찹찹찹찹찹찹찹!
“하앙♥ 거칠엇…! 이거 죠아…♥”
그대로 벌써 5번째 콘돔을 사용한다.
그 뒤로는 정상위 포지션으로 돌아와 천천히 몸을 섞는다.
윤미나가 선호하는 알콩달콩 서로를 애무해주는 섹스.
그러던 중, 전화벨이 울린다.
<남친 이정수>
사랑을 나누던 둘은 귀찮은 날벌레 취급하며 무시했으나, 여친이 걱정되는지 이정수가 3번, 4번이나 연달아 걸어 댄다.
“하아, 진짜!”
윤미나가 신경질적으로 받으려는 찰나, 채선우가 손목을 낚아챈다.
“받지 마.”
“…으응?”
“모처럼 분위기 잡치잖아. 그냥 무시해.”
“그래도 너무 오래 안 받으면 의심하니까….”
“어차피 정수한테 휘둘리는 편도 아니잖아. 그냥 내버려 둬.”
“……아니, 나중에 변명하려면 귀찮아져.
차라리 지금 대충 때우고 마는 게─”
쑤복♥
“히잇!?”
갑자스레 몸을 붙이고 남근을 뿌리째 넣는 채선우.
꾸욱꾸욱 안쪽을 짓눌러서 자궁을 압박한다.
거대한 요술 방망이로 밑에 깔린 여체를 꼼짝 못하게 만든다.
“어허, 내 말을 들어야지.”
“하앙…♥ 그, 그렇지만……”
“지금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야?”
“…….”
“웃샤! 누구야?!”
“채, 채선우! 너! 너얏♥”
씨익 미소 짓는 채선우.
“솔직해져서 좋지만, 나는 이게 더 마음에 드는데.”
귓가에 다가와 속삭인다.
“주인님.”
“……주인님?”
잘했다는 듯, 볼에 뽀뽀를 더한다.
“벌써 일곱 번이나 미나랑 잤잖아.
미나의 오르가즘을 다 만족시켜줬으니까 이 몸의 주인은 나 아니야?”
상품 취급하듯, 윤미나의 배를 톡톡 치는 채선우.
“…….”
무슨 의미인지, 속으로 곱씹어보니 그런 거였다.
채선우가 잠자리에서 불리고 싶은 호칭이었다.
좀 더 과격한 표현으로 다가가 윤미나와의 관계를 좁히고 싶은 속내다.
하지만 주인님이라는 호칭은 그야말로 위아래가 존재하는 주종관계.
그간 함께 섹스가 하고 싶어서 채선우에게 본인의 야한 사진까지 보냈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다.
그래도 아직 잘 나가는 현역 대학교 여신이고 SNS스타인데 주인님이라니, 너무나 격이 떨어진다.
스스로 굽혀서 저자세로 채선우에게 들어가는 것 같다.
갈등하는 사이, 채선우가 원숭이처럼 허리를 흔들며 귓바퀴를 문다.
“불러주면 더 힘내서 흔들어 줄 것 같은데….”
방금까지 강하게 나왔으면서 슬며시 부탁조로 바꾼다.
동시에 목덜미를 핥는, 윤미나가 선호하는 끈적끈적한 애무를 더한다.
밑에 성기도 질 위쪽의 기분 좋은 곳을 찌르고 있었다.
“…하앙♥”
숨결이 섞인 신음.
움찔! 움찔!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아래가 젖는다.
들켜버린 성감대를 만져줄 때마다 전기처럼 짜릿한 감촉을 부정할 수 없다.
“…….”
윤미나는 아래에서 위로, 멍하니 채선우를 바라본다.
대답은 잠깐 보류하고, 그의 목을 감는다.
“할짝할짝… 츄봅츄봅… 쪽! 쫍… 후우… 하아앙…♥”
먼저 키스부터 한다.
깊은 딥키스를 하고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확실하게 정한다.
저열하지만 분명 생에 최고의 관능적 감각.
남친이 결코 줄 수 없는 희로애락.
딱히 내뺄 이유가 없다. 마음 깊은 곳의 자신도 그걸 원하고 있었다.
느슨해진 입술로 지금 느끼는 감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낸다.
“……주인님♥”
채선우는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씨익 당긴다.
윤미나의 핸드폰에 부재중 통화가 8번이나 누적될 동안 능숙하게 허리를 흔들어 만족시켜줬다.
***
떠올리기만 해도 아랫배가 뜨거워진다.
점점 과격해지는 채선우의 요구.
그러나 싫진 않다.
조마조마하게 가슴이 떨려도 그곳엔 스릴이 존재한다.
어쩌면 이미 중독돼서 더 과격하게 갈구하는지도 모른다.
“저기 슬슬 괜찮지 않아?”
“…….”
“저기?”
“으, 응!? 뭐뭐뭐가?”
잠깐 공상에 빠진 사이, 이정수가 무언가를 물어왔다.
“다름이 아니라 그거 있잖아, 그거.”
“그거?”
“있잖아 페북에 그거 좀 이제 바꾸자고……”
그제서 무얼 말하는지 깨닫는다.
허둥거리던 표정을 감추고, 정색해버린다.
”야, 귀찮으니까 그만 말하라고 했잖아.
팔로우 떠나가서 광고 수익 줄면 너가 용돈이라도 줄 거야?”
“아니 그래도… 지금 관계는 제약이 많잖아.
하나부터 열 끝까지 너한테 다 맞춰주는데 이 정도는 요구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다 알고 사귄 거잖아. 자꾸 이럴래?”
“…….”
이쯤에서 한계였다.
쾅!
여태껏 여친의 불평을 다 들어주던 이정수가 탁상을 주먹으로 친다.
돌발행동에 카페에 있던 전원이 주목한다.
“…….”
그러나 눈썹 까닥하지 않는 윤미나.
채선우와의 관계 이후 남친을 대하는 태도가 몹시 냉정해졌다.
당장 헤어져도 아무런 미련 없다는 듯이 초저온으로 노려본다.
포커페이스로 나오자 오히려 당황한 이정수.
갈 길 잃은 주먹을 어쩔 줄 몰라하다 주머니에 넣는다.
“에이씨!”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겉옷을 챙기고 나간다.
“후, 병신새끼.”
윤미나는 나가는 뒷모습도 안 보고 우아하게 커피빨대로 아메리카노를 쪼로록 빨았다.
힐끗 대는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이나 다시 만지작거리는데 찰나,
“앗!”
카톡에 사라진 읽음 표시.
어느새 답변까지 달렸다.
[△△거리 □□모텔 801호]
짧은 문장이다.
그럼에도 기쁨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선다.
딸랑!
문을 박차고, 하이힐 신은 발로 숨 헐떡거리며 거리로 나간다.
남친과 싸웠으면서 최고조로 달한 기분.
오히려 싸워서 헤어질 명분이 만들어졌다.
족쇄에서 풀려나 훨훨 날아간다.
“아으… 정말!”
길거리에 오가는 버스를 탔으나 느리고 답답해서 도중에 내린다.
근처에 택시를 세워서 한 걸음에 달려간다.
그렇게 도착한 어느 모텔.
엘레베이터를 타고, 801호에 벨을 누르자마자 그가 나온다.
“야, 먼저 유혹 해놓고 늦었잖아.”
“아……”
발가벗고 서있는 채선우.
얼굴은 평범하나 운동한 적당한 근육에 키가 좀 큰 편이라 몸이 멋지다.
윤미나는 문고리를 잡고 늠름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읊조렸다.
“죄송해요, 주인님♥”
고대하던 만남에 무의식적으로.
모텔의 문은 서서히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