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8. 뷰티 전문방송 BJ선화(27세/도도함)와 화해섹스하기
알림음이 들리자 내팽개쳤던 휴대폰을 다시 주울 수밖에 없었다.
멍하니 읽어나가다가 불쾌하게 눈썹을 찡그린다.
이제 와서 도움을 주겠다고?
이 주가 넘게 성과는 없었으나, 폐인처럼 방송을 보고, BJ선화를 찾아가 장미 꽃다발 받치고, 카톡 이모티콘으로 선물 보내며 별 염병을 다 떨어왔다.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는데 이제 와서 도움이라니, 도와줄 거면 미리 좀 주던가. 병 주고 약주나.
그러나 불평하더라도 믿을 루트는 이것 밖에 없었다.
[미션 수행에 차질이 있으십니까?]
메시지에 Yes라 답한다.
[힘겨워 하는 당신을 위해 특별한 서비스!]
[금 1000만원을 내시면 공략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특별한 해킹툴 기능이 해금됩니다]
[결제하시겠습니까?]
*결제하시면 취소는 불가합니다.
[Yes / No]
특별한 기능?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1… 1000만원!?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일개 사회초년생에겐 너무나도 큰 액수가 적혀있다.
…….
뚫어져라 보는 1000만원이라는 글자.
여태껏 해킹툴을 이용해 많은 재미를 봤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고마운 건 고마운 거고, 대뜸 이런 큰 금액을 요구하니 미심쩍다.
미션을 난이도를 훌쩍 올리더니, 돈까지 요구한다니.
본색을 드러낸 건가? 아니면 새로운 장이 펼쳐지는 건가?
미약한 의심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앞뒤가 맞지 않다.
미션 성공할 때마다 해킹툴에서 자체적으로 돈을 지급해줬고, 그건 상당했다.
바로 펑펑 쓰지 않고 들어온 계좌에 차곡차곡 모아뒀기에 여태껏 모인 돈은 2000만원 좀 덜 되는 금액.
편의점 알바로 번 돈까지 더하면 통장에는 대략 3000만원이 못 되는 비자금이 모여있다.
더 안 하면 내가 이득 보고 끝나는 거다.
이거… 혹시 스킬트리 같은 건가?
평소 하는 게임에 대입해보니 지금 상황에 그럴싸하다.
사기스킬을 배우기 위해 코스트를 투자해야하듯 돈을 넣으면 새로운 스킬을 얻는 구도가 아닐까.
‘그렇다고 해도 1000만원… 대체 얼마나 특별하길래?’
해킹툴은 무척 유용한 어플이나 처음 받았던 충격과는 달리 대단한 기능개선은 되지 않았다.
[해킹한 대상 주소 알아내기], [훔쳐보는 캠코더 조종] 같은 각종 편의성 기능 개선 정도다.
사과폰을 사면 간간히 제공하는 해주면 좋고 아니면 마는 업데이트 수준.
그럼 이건 새로운 스킬을 얻는 투자라 생각하면 또 그럴 듯하다.
그러나 1000만원이란 큰 금액을 흔쾌히 넘기기는 어려워서 또 하루가 지나간다.
단 하루, 집안에서 BJ선화를 감시하며 갈등하니 빠른 결론이 나온다.
질러보자.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BJ선화와 친해질 방법은 안 나오고, 사기 당한 것 같으면 남은 돈 킵해서 그래도 이득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이 어플과 함께하는 즐거움을 잃고 싶지 않다.
[결제하시겠습니까?]
화면에 올라간 엄지손가락을 덜덜 떨다가 Yes 버튼을 꾸욱 누른다.
스으으읏, 멋진 연출로 화면이 거멓게 변하더니 곧이어 알이 깨듯이 쩍쩍 갈라지며 빛이 새어들어온다.
모바일 게임 가차 연출처럼 추가된 기능이 밝혀진다.
[암컷 타락 Lv.1]
-성행위 도중 여성의 뇌를 해킹해 섹스 쾌감을 증폭시킵니다. 다른 남성들에게선 절대 느껴보지 못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본 기능은 사용할수록 업그레이드 됩니다.
*다른 기능들을 추가로 업데이트 하려면 더욱 많은 경험치를 쌓으시기 바랍니다.
“……실화냐.”
기어코 잼민이 리액션이 나오고야 만다.
하다하다 사람 뇌마저 해킹한단다.
더구나 스킬 이름부터 꺼토미 망가스럽다. 암컷 타락이라…
만약 설명 내용대로의 기능이면 투자한 값어치 그 이상이 될 수 있겠으나 아직은 Lv.1.
얼마나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근데… 당장 BJ선화랑 화해를 해야 하는데, 이건 지금 못 쓰잖아? 대뜸 덮쳐서 타락시키기라도 하라는 거야?
그 년 드센 기를 생각하면 집에 잠입하다가 내가 역관광 당할 수 있다.
이번에야말로 하키채에 똥꾸멍 관통당해서 태극기처럼 창문에 내걸릴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설명처럼 작동한다면 화해라는 어려운 장애물은 클리어될 수 있다.
어떻게든 BJ선화와 잠자리까지 가질 수 있다면 미션이 클리어될 수 있다.
새롭게 추가된 기능과 내 늘어난 테크닉까지 동원하면 어떻게든.
당장은 무슨 방법을 써서든 BJ선화와 접촉해야 한다.
기왕 지갑을 푼 이상, 돈을 쏟아서라도.
***
“자, 오늘 소개해 드릴 제품은 바로 새로 나온 립크림!”
─[땅땅피자]: 와~ 기다렸습니다^^*
─[10대피부아서스]: 아 또 광고임?
─[민투쪼코]: 언니 원피스 샀음? 오늘도 스타일 대박ㅠㅠㅠㅠㅠㅠ
─[마음만은20대소미]: 요즘 무슨 광고만 해요? ㄴㅈㄴㅈ
새로운 제품을 가지고 나오자 4000명 남짓한 인원수를 수용한 채팅창이 또 한바탕 난리가 난다.
BJ선화, 본명 이선화는 이 분위기에 당황하지 않고 우민들에게 산뜻한 미소로 경고한다.
“네, 또 들어온 제품 광고구요. 그만큼 제 방송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겠죠? 이제부터 무작정 씨부려서 제품 까는 채팅은… 알지?”
눈가를 가늘게 뜨면서 캠코더를 노려본다.
─[여왕님하앜하앜]: 여왕님 ㄷㄷㄷㄷㄷ
─[한량1981]: 업계포상 ㄷㄷㄷ
─[선화하고싶은대로다해]: 맞지. 주인님이 광고하신다는데 눈치 챙겨야지
─[초코만두]: 언니 걸 크러시 ㄷㄷㄷㄷ 바로 하나 주문할게요 ㄷㄷㄷ
─[마음만은20대소미]: ㅅㅂ광고만 받는 노잼방송 그만하라고. 오냐오냐해주니 시청자가 호구로 보이냐 이년아?
[알림]: [마음만은20대소미]이 퇴장당하셨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채팅은 매니저들이 과감하게 자른다.
인터넷방송이란 참 알다가도 모른다.
불과 1년 전에 지금 시청자 반의 반도 안 됐던 방송이, 시청자들을 욕하고 매도하는 영상이 핫클립으로 퍼져나가 이선화는 지금까지 쭉쭉 발전을 이뤄나갔다.
돈줄이 되는 시청자에게 대놓고 욕하다니, 원래라면 망하는 패턴이나 시대는 변한다.
인방, 특히 여캠 쪽은 시청자에게 내숭 떠는 방송이 우후죽순 증가했으나, 최근에는 진실성이다 뭐다해서 도리어 성깔 까고 역정을 내주는 방송이 더 잘 나간다.
애매한 내숭보다 진실성이, 어설프게 감추는 뒷광고보다 대놓고 유머러스하게 풀어가는 앞광고가 더 잘 나간다.
3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인터넷방송 업계는 3년도 많고, 일 년이면 충분하다.
‘뭐, 전부 뛰어난 내 외모 덕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선화의 이런 막 나가는 성격 덕분에 캐릭터도 잡혔다.
다들 그녀를 여왕님이라 칭송한다.
그리고 이선화는 이 타이틀이 마음에 꼭 들었다.
매일 집적거리는 남자시청자나 쓸데없이 자신을 질투하는 여성시청자들을 상대하다보면 지치고, 악플에 감정 소비하는 것도 속에 천불이 난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이미지를 이용하면 가차 없이 숙청할 수 있다.
강퇴하고 벤 먹이고 맞욕을 해도 여왕님 이미지 덕에 당연하고 웃기는 상황이 연출된다.
더는 감정 억제를 포기한 이선화에겐 치트키 같은 이미지다.
이선화는 광고계약 맺었던 회사의 립크림 뚜껑을 퐁! 딴다.
사전에 제품을 써봐서 대충 어떤지 안다. 흔한 제품 껍질과 향만 바꾼 양산형이다.
본인 지갑으로 돈 주고는 절대 안 살 싸구려 물건이다.
메이크업을 위해 백금발 머리를 뒤로 묶고 듀얼 모니터에 나온 캠을 이용해 입에 바른다.
─[여캠탐방장인]: 와, 성격은 몰라도 외모는 레전설 맞네;
─[민투쪼코]: 염색 머리부터 옷까지 완전 대박 ㅠㅠㅠㅠㅠㅠ
─[얼빠정성우]: ㅅㅂ얼굴만 봐도 서네;
[알림]: [얼빠정성우]님이 30분간 채팅금지가 적용됩니다.
‘병신들, 당연히 예쁘지’
그녀에게 예쁘다는 찬사는 당연하지만 칭찬이니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긴 하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빠짐없이 여신으로 추양 받았던 태생적으로 잘난 외모는 이선화의 자부심이다.
“자, 그럼 어떤 부분이 다른가 비교해볼까요?”
오늘도 기분 좋게 제품홍보를 시작한다.
덱스판테놀 성분이 보습력을 좋게 만든다, 에스트로겐이 들어가있다, 뭐다뭐다.
제대로 알지도 모르는 단어를 섞어가며 홍보해주고 수다방송으로 접어들었을 무렵, 별풍이 터진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100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예. [한번만만나줘]님, 별풍 감사해요. 못 만나줘요.”
─[한량1981]: 여왕님 시크한거 보소 ㅋㅋㅋㅋㅋㅋㅋㅋ
─[하루하루하루살이]: 암, 이래야 이선화지.
별풍 100개면 만원.
심심하면 쏟아지는 금액이다.
리액션도 크게 안 해줘도 된다.
이선화가 별풍 관리하는 비법이다.
그러나,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119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1000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777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1004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5000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알림]: [한번만만나줘]님이 준열성팬이 되셨습니다.
성의 없이 대해주자 계속해서 쏟아지는 별풍선.
─[홀리쉐에에엣]: 이야, 갑자기 큰손형님 오셨네ㄷㄷ
채팅 한 번도 없이 별풍만 마구 쏴재낀다.
입 한 번 안 털고 마구 쌓이는 돈.
공짜 돈이 쏟아지니 당연히 좋아해야하지만 이선화에겐 이 시청자의 닉네임이 몹시 거슬린다.
‘시발새끼가 발정났나 왜 자꾸 만나달래.’
방송에서 돈 쏘는 남자들과 만나주는 걸레 같은 짓은 안 한다.
실제로 만난 적도 없고, 내 방 시청자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딱 잘라서 그렇게 말했는데도 [한번만만나줘]는 계속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을 쏜다.
‘……잠깐, 혹시 그 새낀가?’
그리고 보니 미심쩍다.
요즘 심심하면 들락날락하는 도촬범 채선우.
광고주 접대 영상으로 나를 협박해서 한 번 떡쳤던 새끼다.
사실 당시 이선화는 광고주와 잠자리는 갖지 않았고, 술자리를 함께 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년남자에게 굽신거리며 고분고분 술 따르는 장면이 영상에 포함돼 여왕님 이미지 타격이 갈까, 결국 한 번 대주고 말았다.
이선화의 인방인생에 남긴 유일한 오점이다.
‘전에는 느닷없이 꽃다발을 받치더니 왜 방송까지 와서 난리야 강간범새끼.’
확 강퇴해버릴까? 했으나, 닉네임으로 치근덕댈 뿐이다.
아무리 이선화라해도 돈을 주는 시청자를 막무가내로 쫓아낼 순 없다.
게다가 수상쩍은 짓을 했다간 오히려 이 혼란을 긍정하는 꼴이 된다. 스캔들에 휘말리거나 의혹이 쌓일지 모른다.
[한번만만나줘]님이 별풍선 9999개를 후원해주셨습니다.
─[홀리쉐에에엣]: 이야 쉴 틈 없이 돈 쏘내ㄷㄷ
─[10대피부아서스]: 말도 없는데, 혹시 아는 사람임?
─[초코만두]: 진짜 아는 사람인가요 언니?
─[여캠탐방장인]: 남자 만날 시간 없다더니 남친이라도 몰래 사귀나보네
[알림]: [여캠탐방장인]님이 1분간 채팅이 금지됩니다.
그러나 냅둬도 문제.
채팅창도 점차 동요하는 눈치다.
인방의 호스트로서 어쩔 수 없이 이 사태를 수습해야하는 이선화는 몰래 책상 밑으로 휴대폰 문자를 남긴다.
『내일 오ㅈㅓㄴ 10시에 집 아페 카페로 와라 개ㅅㄲ야』
급하게 작성한 메시지를 채선우에게 보낸다.
전번은 최근에 채선우가 장문의 사죄하는 문자를 보내서 알고 있다.
문자를 보내자마자 별풍이 멈춘다.
뿐만 아니라 [한번만만나줘]는 바로 방에서 나가버린다. 역시 채선우가 맞았다.
‘진짜 별에 별 짓을 다 하네.’
미친 도촬범 새끼가 더 나대기 전에 담판을 낼 때가 온 것 같다.
“자~ 다들 그만. 이상한 분이 왔다가셨네. 잠깐 소란이 있었네요.”
─[농약사과]: ㄹㅇㅋㅋ
어쨌거나 순순히 나간 덕분에 방송 분위기를 대충 수습하고, 해프닝으로 잊혀지도록 좀만 더 입을 털다가 방종을 한다.
허나 이선화는 남은 방송 내내 속으로 채선우의 의중파악을 하고 있다.
따져보면 이런 귀찮은 방식이 아니라 전에 협박한 영상으로 밀어붙여도 될 텐데, 그런 카드는 꺼내지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잠자리 끝난 뒤에 내 눈 앞에서 삭제시키긴 했지만, 진짜 뻥 안 치고 복사본조차 안 남겼나보다.
느닷없이 또 한 번 잠자리를 요구하는 개소리를 하더니, 또 치사하거나 졸렬하진 않다.
참 파악하기 힘든 개새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