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킹해서 BJ들과 친해지기!-7화 (7/193)

< 7화 > 7. 뷰티 전문방송 BJ선화(27세/도도함)와 화해섹스하기

멍하니 천장을 본다.

침대에서 일어나 잠에서 깰 때마다 하연수의 몸이 떠오른다.

여태껏 여자와 떡칠 땐 대부분 기분이 좋았지만, 그런 여자는 없었다. 이 나이에 몽정까지 할 기세였다.

그러나 잊도록 노력한다.

지난 3개월간 앱을 얻은 이후, 종횡무진 BJ들을 협박하고 다닐 때 개인적으로 만든 룰이 두 가지 있다.

미션을 마친 후엔 관계를 갖은 BJ의 약점이 될 만한 자료는 싹 지우기.

관계를 맺었던 여자와는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기.

그 중 증거인멸은 해킹툴이 내리는 지시이기도 했지만 나 역시 그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뒤탈을 없애기 편했기 때문이다.

나도 태생이 사패나 선천적으로 미친놈은 아니라 나도 협박하고 여자와 관계를 맺는 관계가 내심 켕긴다.

솔직히 협박을 할 때 겉으로는 여유롭게 굴지만 속으론 새가슴처럼 졸일 때가 많다.

나쁜 짓을 미화하거나 세탁할 마음은 없으나 양아치짓을 할 때마다 내 가슴 속 마이크로미터 미세한 양심이 찔린다.

그렇기에 한 번 일이 끝나면 깔끔하게 백지화로 만들어야 잠이 잘 온다.

앞에 두 가지 원칙은 그렇기에 세운 원칙이었다.

하연수의 미션은 끝났으니 앞으론 필라테스 학원도 안 가야겠다.

더불어 꼬툭튀 더 보여줄 마음도 없으니까.

“잊어버리게 얼른 다음 년… 다음 미션이나 와라.”

잘 빠진 요가 강사는 그만 잊기로 하고, 상큼하게 기지개를 켠다.

이불을 걷어내 활기찬 아침을 맞이한다.

말이 씨가 된다고, 얼마 지나자마자 결실이 열린다.

방 책상 위에 휴대폰이 진동을 하며 알람을 알린다.

“좋았어, 이번에 만나볼 비제이는~ 누굴까~ 요!”

아저씨처럼 흥얼거리며 휴대폰을 터치해 그 내용을 확인한다.

곧이어 내 안면은 석가면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미션 시작!]

[뷰티전문방송 BJ선화와 화해섹스하기]

*보상금 150만원 및 새로운 해킹기술을 얻습니다.

[서브미션 시작!]

[뷰티전문방송 BJ선화와 화해했다는 증거로 알몸으로 다정하게 사진 찍기]

*보상금 70만원이 추가로 주어집니다.

BJ선화.

내 뇌리에 너무나도 깊게 자리 잡은 그 이름.

선화라는 두 글자만으로 질려서 관자돌이에 땀줄기가 하나 삐질 흘러내린다.

두려운 동시에 당혹스럽다.

이미 미션을 수행했던 BJ가 또 지명된다니, 여태껏 이런 적은 없었다.

‘중복지명은 불가능한 사항 아닌가? 물론 멋대로 만든 원칙이긴 한데….’

더구나 미션에 적힌 ‘화해섹스’라는 문구의 구체적 의미도 모르겠다.

멘붕이 온다.

여태껏 지켜오던 룰의 굴레가 쉽사리 깨지자 패닉에 빠졌다.

일단 당시 있던 일을 떠올리기 위해 공략 대상인 BJ선화와의 기억을 되짚는다.

휴대폰을 뒤져 BJ선화와 관련된 영상을 찾는다.

성관계 증거를 남긴 꼼수는 아니고, 해킹툴 메모리 슬롯에 여자와 떡칠 때마다 저절로 저장된다.

다만, 나만 볼 수 있는 영상이라 협박 또는 타인에게 과시 등으로 사용하진 못한다. (해킹툴의 설명에 의하면 그러하다)

메모리 슬롯에 BJ선화 이름을 걸린 영상은 두 가지,

하나는 나와 떡치는 장면이다.

여자의 몸에 어설프게 엉겨서 짝짝쿵하는 나와, 그런 나를 감시하는 사우론처럼 성행위 내내 죽일 듯이 노려보는 BJ선화.

그 누구도 즐기지 못하는 섹스에 차마 못 볼 꼴이라 꺼버린다.

다음은 15초 남짓한 짧은 영상.

옅은 백금발로 염색한 예쁘장한 여성이 스마트폰 카메라 시점으로 찍힌다.

『…야, 시발 지금 뭘 찍는 거야? 저리 안 치워?』

『기다려봐. 자, 잠깐만 인증만 하는 거야』

『미친 도촬범 새끼가 환장했나, 진짜 너 죽고 나 죽자로 경찰에 넘겨버린다 변태새꺄?』

『이건 단순하게 기념으로… 알았어, 그만 찍을 테니까 팔 좀…』

『뒤져! 남에 피 빨아먹는 벼룩새끼!』

『아아아아악!?!』

화면이 바닥으로 꺼지면서 암전된다.

영상은 그것으로 종료.

설명하자면… 잠자리를 끝내고 서브미션으로 인증샷을 남기려고 했으나, BJ선화가 반발해서 휴대폰을 든 팔을 꽉 물어버리는 장면이다.

쥐던 폰은 자연히 떨어졌고, 이때의 이빨자국은 전설로 남아서 야직 팔뚝에 흐릿하게 흠이 보이는 기분이다.

당연히 서브미션은 실패했다.

보다시피 성깔이 장난이 아니다.

어떤 남자와 모종의 광고 거래를 걸고 살갑게 접대한 영상을 미끼로 몰아붙였는데, 경험이 적은 탓에 약점을 쥔 내가 오히려 기세에 밀렸다.

처음 겪는 강심장이라 당황했었다.

실제 경찰출석까지 갈 걸 내가 간신히 설득해서(?) 성관계를 맺고 끝난 사이다.

이따군데 당연히 관계가 평탄할 리가 없다.

나와 잤던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BJ선화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화해섹스라는 어처구니없는 주문을 붙였나.

BJ선화는 뷰티 방송을 진행해 얼굴은 예쁘지만 가시가 박힌 장미다.

아니, 가시가 아니라 바늘이다.

아니, 바늘이 아니라 송곳이다.

다시 얼굴 맞대고 조우하기도 벅찬데, 다시 몸을 섞는 것도 모자라 잘 달래서 화해까지 해야 한다니, 호박고구마 연속 세 개 사이다 없이 먹는 기분이다.

폰을 쥐고 좁은 집안을 여기 왔다, 저기 갔다 한다.

미간을 꾹꾹 누르며 두뇌풀가동을 해도 BJ선화와 관계를 누그러뜨릴 방법이 안 떠오른다.

솔직히 만나기도 무섭다.

‘…일단 부딪혀볼까?’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생각으로 답이 안 나오면 만나서 어떻게든 비벼봐야 한다.

다음날.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지하철로 서울 외각으로 떨어진 장소에서 그나마 고급진 빌라에 도착한다.

주소는 해킹툴을 이용하면 쉽게 추적할 수 있고, 이미 한 번 와본 집이다.

딩동!

인터폰을 누르고 바짝바짝 타는 목을 적신다.

꽤 오랜 기다림 끝에 낮게 깔린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너 뭐야?』

음성만으로 털끝이 바짝 선다.

인터폰 렌즈로 얼굴을 확인했나보다.

“아, 안녕 그간 잘 지냈어?”

『잘 지내? 몸뚱어리 접혀서 공구리쳐진 다음 물고기 밥이 되고 싶냐?』

입이 험한 것이 한국 느와르를 좋아할 것 같다.

“아니 죽고 싶어서 찾아온 건 아니고… 잠깐 얘기 좀 나누면 안 될까?”

『얘기? 한 마디 할 때마다 케이크 칼로 니 모가지 썰 수 있게 해주면 할게.』

“그건 좀 별론데… 아 케이크? 근래 생일이었어? 와~ 축하해. 선물로 뭐 좀 사줄까?”

『니 좆이면 충분해』

“…내 좆?”

『그래, 지금 당장 갖고 싶으니까 잘라서 인터폰 카메라에 인증해줄래?』

한마디도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결국 인터폰 앞에 애걸복걸 매달리게 만든다.

“정말, 제발! 진짜! 잠깐만 시간 내주면 돼. 짧게 이야기만 하고 갈 테니까 조금만 어떻게… 안 될까?”

최대한 간절하게, 비굴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인터폰 카메라 앞에 이를 드러낸다.

『……(뚝)』

뚜… 뚜…

통신이 끊기는 인터폰.

이윽고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도어락 풀리는 소리와 함께 호쾌하게 문을 열어젖힌다.

화려한 백금발에 중간부턴 펌까지 넣은 풍성한 공주님 머리.

키는 평균 정도에 올라간 눈매가 도도하고 기가 쎈 인상을 준다.

집안에 있으면서도 몸에 착 달라붙는 아이보리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전체적으로 레벨이 높은 미인이나 이 미인은 내게 원한이 많으셔서 실시간 눈으로 쌍욕을 처박고 계시다.

“고마워… 그럼 안에 들어가서─”

꽝!

머쓱하게 등을 굽히며 들어가자 신은 슬리퍼로 문입구를 찬다.

한쪽 다리로 브릿지를 만들어 바리게이트를 친다.

“어딜 기어들어가? 여기서 말해 도촬범새끼야.”

사람에게 호감도가 보이고, 호감도 상한선이 100이라 치면 BJ선화의 호감도는 -100에 도달해 있다.

당장 가로막힌 출입구처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인다.

“…잘 기억하고 있네?”

“당연하지 새끼야. 설마 잊었다고 생각했냐?”

“그렇진 않지… 응. 미안하게는 생각해….”

“미안해? 이제 와서 사죄하러 왔냐? 발가벗고 동내 똥개처럼 하 바퀴 뛰어다니면 특별히 용서해줄게.”

“……그 난이도는 힘들 것 같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혀 깨물고 자살해.”

“패스.”

“빌라 옥상에서 투신해봐.”

“……패스.”

자초한 일이긴 하나, 한 번 미움 받은 사람의 마음을 돌이키긴 어려운 것 같다.

돌이키기엔 BJ선화의 프라이드는 너무나 강했다.

이미지로 따지자면 공주님… 여왕님이다. 아마 나와의 잠자리는 인생의 오점, 일생일대의 치욕이라 생각하겠지.

시발,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그렇게 어거지로 안 했지.

“시간을 돌리긴 힘들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잘 지내면 안 될까?”

“나랑 친해지고 싶어? 니 좆만 자르면 돼.”

“그 날 이후로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어(뻥) 너한테 평생 사죄하면 살 테니까, 한 번만 기회를 주라!”

“아니면 할복쇼할래? 식칼 가져올까?”

고압적인 태도로 계속해서 자살을 권한다.

모든 대화의 선택지가 죽음으로 끝나니 무한루프다.

BJ선화도 빙빙 도는 대화가 질렸는지 팔짱을 끼고 핵심을 줄줄이 읊는다.

“정말 미안하면 협박을 하고, 이렇게까지 시간 안 끌었겠지. 미안하다는 놈이 빈손으로 덜렁. 나를 만나야할 모종의 다른 이유가 생긴 거지? 대뜸 찾아온 그 이유가 뭔데?”

조목조목 짚으며 추리해나간다.

눈치가 홈즈보다 빠르다.

정공법으로 함락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이렇게 된 이상 와일드카드다.

“…사실은 말야.”

“뭐.”

꼴깍 목구멍을 적시고,

“……그때 봤던 너의 환상적인 몸을 못 잊겠어! 딱 한 번만 더 해주면 안 될까? 당시엔 영 어리숙했지만 이젠 정말 잘 해줄게! 제대로 홍콩 보내줄 테니까 한 번만 하자!”

허리까지 숙여가며 간곡히 부탁했다.

여자한테 간절하게 부탁하면 섹스해준다는 야한 만화였나? 아무튼 그런 느낌으로 부탁한다.

따지자면 여태껏 나의 늘어버린 스킬이라곤 잠자리 테크닉이고, 선화 앞에 내세울 카드도 이것 외에는 없었다.

황당한 소리지만 진짜 마땅한 무기가 이것 외에는 없다.

답은 어떻게 나왔을까,

복권을 긁는 심정으로 서서히 고개를 올린다.

일단 무(無)였다.

BJ선화는 무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너, 여기서 딱 기다려.”

곧이어 집안으로 들어가더니, 하키채를 가지고 나왔다.

무시무시한 비주얼에 당황해서 뒤로 물러선다.

“딱 대.”

“야, 야! 집에 무슨 하키채가 있어!?”

“너한테 당한 이후로 방범용으로 하나 샀어. 딱 적재적소에 쓰이네.”

따로 범인 잡는 연습까지 했는지 능숙하게 붕붕 휘두른다.

옛 중국 고나우가 떠오르는 그 솜씨에 나는 꽁지 빠지게 줄행랑을 친다.

관계를 어떻게든 완화시키기는커녕, 최악으로 빠뜨려버렸다.

이후로 집에서 열심히 BJ선화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공략할 방법을 찾았으나, 길은 보이지 않았다.

별 의미 없이 일주일, 이 주가 넘어선다.

처음으로 미션을 포기하고 넘기길 원했지만 그런 기능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화해를 해라.

그리고 잠자리를 가져라.

둘 중 하나만 해도 너무나 벅찬 일인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수행하려면 내생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협박하라고 부추겨놓곤 이제와서 화해가 뭐냐고!’

짜증스럽게 핸드폰을 던지면서 침대 위에 엎어진다.

여기서 허무하게 막혀버리는 건가,

3개월간 즐겼던 천국이 이렇게 끝나나, 싶을 때.

[미션 수행에 차질이 있으십니까?]

*지금 미션을 차마 수행하지 못할 것 같은 경우, 특별히 도움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Yes /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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