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 4. 필라테스&요가 강사 하연수(33세/이혼녀♡)
“후우.”
커튼을 걷자 쏟아져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
새벽에 짧은 성인방송을 마친 하연수는 소위 말하는 꿀잠을 잤다.
야방(야한방송)을 끝내면 가슴이 미칠 듯이 두근거리다가도 눕는 순간 침대의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스르륵 잠에 빠져든다. 꿈마저 구름 위를 둥실둥실 뜨는 기분 좋은 꿈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샤워실로 들어간다.
가면을 쓰고 하는 이중생활.
처음에는 얼굴을 핸드폰으로 가린 채, 거울에 몸매를 드러내는 사진을 찍으며 소소하게 시작했으나 어느덧 방송으로 발전했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작은 재미가 어느덧 인생의 낙이 됐다.
유명 학원 강사인 동시에, 인기 생방송을 진행.
유튜브는 골드버튼에 가까워지고 있고 케이블 방송 출현 다수.
필라테스 협회에서 홍보를 잘 해준다며 상도 몇 번 받았고, 구독자들이 많아서 언론에 입김이 쌔다.
이 모든 성과를 실체화를 한 것이 바로 이 몸.
샤워실 거울에 비치는 군살 하나 없는 매끄러운 몸매.
칼 대지 않은 풍만한 가슴은 꽤 볼품이 있다.
그러나 하연수의 진짜 무기는 하체다.
넓은 골반에 아래에 탄력 있는 허벅지는 남자들이 군침을 삼키기 바쁘다.
하연수 또한 그 시선이 나쁘지 않다.
한창 때는 강가의 날파리떼처럼 귀찮았지만 30대로 접어드니 성욕이 많아져 오히려 즐기게 됐다.
그 탓일까.
화려한 커리어에 명성과 인기, 부까지 다 쟁취한 하연수.
그 이상 올라설 발판이 없자 무료해졌고, 그나마 젊은 남자들의 늑대 같은 야한시선이 즐거웠던 하연수는 자연스레 야방에 빠져들었다.
새로운 터에서 우후죽순 새롭게 자라나는, 천박한 자신의 분신에 흥분했다.
기존의 요가 시범을 보일 때와는 다른, 훨씬 많은 노출로 흔들 때마다 끈적끈적한 어휘력으로 매도와 찬양해주는 시청자 덕에 저절로 아래가 젖었다.
커리어의 상징이자 자랑거리인 잘 빚어진 몸뚱어리를 발 벗고 나서서 빨아준다.
자존감이 하늘을 찌를 듯 고취되고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자극적인 야방은 그간 쌓아온 경력을 다 잃을 수 있는 리스크 있는 행위였다.
야방 누적시간이 100시간을 돌파하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성욕은 되도록 남자를 만나 해결하고, 야방 외에 새롭게 시작할 무언가를 찾아보려 애썼다.
남편과 이혼한 뒤로 집, 차, 고학력자에 고연봉 수익 등. 모든 걸 가진 잘난 남자들을 골라가며 만나봤으나 금세 흥미가 식었다.
자신에게 맞장구 쳐주기 바쁜 신사적인 남자들이 어쩐지 싫증났다.
사실 이혼의 내막은 하연수의 바람기였는데, 이혼 후부턴 오히려 줄었다.
새로운 취미도 찾아봤다.
꽃꽂이에 다도 같은 차분한 취미.
자격증까지 알아보며 학원까지 끊었으나 전부 첫날 나가고 접어버렸다.
그제서 하연수는 뒤늦게 깨닫는다.
더는 삶의 진취가 목표가 아니라는 걸.
그저 몸이 이끌리는 쾌락을 즐기고 싶었다.
인방 특유의 질척질척하고 더러운 맛처럼 가슴에 불이 붙는 자극.
예전처럼 단순한 잘생긴 남자들을 만나 우월감을 느끼며 성욕해결하는 코스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구미가 당기고 좀 더 끈적끈적한 감칠맛을 원한다.
나를 흥분시켜줄 자극을 원한다.
그것이 지금까진 야방밖에 없었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남자 수강생… 열심히 나오던데.’
샤워실에서 나와 수건으로 구석구석 물기를 닦으며 회상한다.
보통 방송 보고 흑심을 품고 왔다가 찾아왔다가 쫄쫄이+아줌마 콤보로 개쪽 당하고 하루 이틀에 나가떨어지는데, 그는 달랐다.
키는 평균보다 크고, 운동을 꾸준히 하는지 근육도 그럭저럭 붙었으나 전체적으로 인상이 깊지 않은 풋내기.
그러나 다리를 들 때 스판 소재에 튀어나오는 물건은 평범을 훨씬 상회한다.
솔직히 여태껏 만나본 남자 중에 그만큼 큰 물건은 처음이다.
빗대자면 쇠몽둥이였다.
‘크다고 해서 다 좋지만은 않지.’
오히려 크기에 자신해서 잠자리를 망치는 남자가 많다.
엉망으로 해놓고 기분 좋았냐고 되묻는 진부한 멍청한 수컷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니 한 번 쯤은 만나줄까?’
첫날부터 당돌하게 번호 따가려고 객기가 나름 마음에 들고, 혈기왕성한 젊은 수컷이니 마땅히 나를 원한다.
거기에 노골적으로 나를 노리는 추잡한 시선, 나쁘지 않다.
이대로 열심히 따라오면 한 번쯤 놀아주자고 생각하며 못다한 콧노래를 마저 부른다.
***
─수고하셨습니다!
아침수업이 마치자 수강생과 강사가 일제히 인사한다.
꼬툭튀 때문에 기분 더러운 땀을 흘리고, 휴대폰을 보면서 수건으로 땀에 젖은 머리를 닦는다.
물마시면서 수분보충을 하는 도중, 뒤에서 인기척이 다가온다.
톡톡 어깨를 두드리기에 돌아보니 강사 하연수였다.
“선우 씨 수고하셨어요.”
“아, 네. …무슨 일 있나요?”
꼬툭튀 필라테스로 벌써 닷새를 채웠다,
그러나 첫날에 치근덕댄 이후로 하연수가 먼저 말을 건 경우는 없었다.
하연수가 작은 얼굴에 하얀 치아를 뽐내며 웃는다.
“열심히 하시니 솔직히 좀 고마워서요.”
“고마워요?”
“보통 하루 이틀 나오다가 그만두거든요. 필라테스는 여러모로 남자들이 하기에는 껄끄러워서 그만두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열정적으로 하시는 남성은 선우 씨가 처음이에요.”
나도 겨우 5일 됐는데?
허나 이해가 간다.
이 남자 한 명 없는 여자만 가득한 공간, 천국이 아니라 지옥이다.
나야 목적이 있다고 치고, 이 핑크빛 악취를 견딜 수 있는 용사는 별로 없을 거다.
게다가 고추 길이도 강제로 공개된다.
대부분은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도망칠 거다.
“확실히 선우 씨는 다른 것 같아요 .다들… 굴욕적이라고 생각해서 견디지 못하거든요. 단상에 선 저를 잘 쳐다보지도 못하고, 언니들도 짓궂으셔서 적응하기가 힘들어요. 정말 잘 버티셨어요.”
“그만큼 뻔뻔해지는 거겠죠. 고맙습니다.”
순수하게 칭찬을 받아드리자 힐끗 눈동자가 아래를 다녀온다.
겸연쩍게 볼을 살살 긁는다.
“저… 여태껏 민망하셨죠? 남자들이 워낙 없다보니 임시로 빌려드리는 옷이 퀄리티가 좋지 않네요. 서, 선우 씨 열정을 봐서 특별히 새 옷으로 주문해드릴게요?”
힘든 거 알면 진작 바꿔주라고.
아니면 일종의 신고식이었나?
“…아뇨. 옷은 괜찮아요.”
“필요 없나요?”
“네. 그보다 제가 인터넷에서 따라하기 어려운 자세를 발견했는데 이거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실래요?”
“아! 어떤 거요?”
열정 넘치는 남자 수강생이 정말 마음에 들었는지 땀에 젖은 내게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나는 휴대폰에 어떤 영상을 하나 띄워서 김선영 코앞에 들이댔다.
“이런 동작인데, 어때요?”
“이, 이건……”
하연수가 경악한다.
화면에 띄워진 영상은 가슴을 훤히 내놓고 제로투 댄스를 하는 여자.
가면을 썼으나 골반과 허벅지를 보면 200% 하연수 본인이다.
반복재생되는 허리 흔드는 장면.
바짝 굳은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린다.
“이, 이게 뭔데요? 느닷없이 이런 걸 보여주시면 곤란하죠, 선우 씨.”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며 들이미는 폰을 돌리는 하연수.
척 봐도 알기 쉬운 싸구려 블러핑이다.
모르쇠 작전인지 잡아떼기 시작하다.
“그래요? 제가 보기에는 누굴 좀 닮은 것 같은데.”
“……전 모르는 사람이네요. 보기 불쾌하니까 어서 휴대폰 넣어주세요.”
“잠시만요. 제가 예지 능력이 좀 있거든요.”
“네?”
전혀 생뚱맞은 말을 하자 미간을 찌푸린다.
“이대로 제가 집을 가서 컴퓨터를 키면 얼마 뒤에 어떤 남자 커뮤니티에 이 영상과 누구 사진을 비교한 짤이 돌아다닐 것 같단 말이죠? 그럼 얼마만에 진실이 밝혀질까요? 요즘 네티즌 탐정들이 무서워서 오래 갈지 모르겠네요.”
예시를 하나 든다.
그 짧은 예시가 상상만 해도 피가 마르는지 가위 눌린 듯 굳어버리는 하연수.
CPU가 핑핑 도느라 머리 위에 새하얀 김이 올라오는 것 같다.
뭐든 기습이 최고다.
오래 생각할 수 없는 공간에서 상대의 의표를 찔러 가장 무서워할 상황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면 쉽게 우세를 점할 수 있다.
마무리로 입꼬리를 당겨 비열한 웃음을 한 번 날린다.
귓가에 대고 속닥인다.
“샤워실에서 씻고 나올 테니까, 밑에서 보자고.”
여기까지 듣자 드디어 내가 어떤 놈인지 감을 잡은 모양이다.
대놓고 협박을 당하자 작은 주먹을 꼬옥 쥔다.
일순간 뇌에 공황이 온 것 같으나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겨낸다.
“아, 아직 다음 수업이 남았어…요.”
이 상황에 스케줄을 걱정한다. 참 대단한 여자다.
“대타 강사가 있잖아. 다른 사람 세워두고 따라와.”
“그치만…”
“본인이 처한 상황을 모르겠어?”
“…….”
“고분고분하게 따라주면 내 입은 무거워진다고.”
마지못해 작은 머리가 까딱거린다.
먼저 걸음을 옮기자 하연수는 생각을 정리하듯,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있었다.
가볍게 씻고 학원 입구에 기대서 하연수를 기다린다.
어느덧 20분이 넘어서자 혹시 경찰을 부르진 않았을까, 의혹이 들었으나 그 선택지는 너무 멍청하다.
이건 하연수가 스스로 부른 화다.
도촬협박도 아니고, 본인이 몰래 운영하는 성인방송에서 대놓고 뽑아온 자료.
나는 그저 하연수의 폭탄 같은 비밀을 알아냈을 뿐이다.
만약 미친 척 경찰이란 카드를 쓴다고 하더라도, 하연수 본인이 알몸 제로투를 추는 여성과 자신의 연관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코미디도 그런 코미디가 없을 거다.
그래도 세상일은 모르니 경찰이 오면 할 말을 정리하고 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돌아보자 하연수다.
옆에 세 줄로 선이 그어진 브랜드 체육복을 입었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썼다.
소두에 어깨까지 내오는 단발이 야구모자와 썩 어울린다.
유명인이라 감추는 건가.
몰래 성관계를 맺는 스타 아이돌들처럼 감췄다. 따라올 준비 완료다.
이제야 본인의 처지를 완전히 이해했나보다.
“자, 가자.”
“잠깐만… 어딜 가겠다는 거야?”
“어디긴. 텔이지.”
“역시 그런 목적으로…?”
“걱정 마. 오늘 하루 잘 따라주면 이후로 귀찮게 안 할 테니까.”
“기, 기다려!”
붙잡은 가느다란 팔이 팽팽하게 당겨진다.
이제 와서 성가시게 저항할 셈인가 싶었는데,
“내… 내 집으로 가자. 모텔 들어가다가 걸리면 곤란해.”
의외의 제안이었다.
영상 배경으론 좋은 집에 살고 있던 것 같은데, 돈도 안 내고 오히려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니, 사양할 필요가 없다.
혀로 안쪽 입술을 살짝 핥는다.
“그러지 뭐.”
희망대로 기꺼이 집에서 따먹어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