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내가 악녀? (8)
내가 악녀? (8)
좀 많이 큰 멜빌의 성기이 존재감을 과시하며 안으로 기어들어 온다.
"아아, 아아!"
살틈 안쪽의 점막 내벽을 가득 채우며, 도려내 듯 문지르며 뜨거운 자지가 나를 쾌락으로 이끈다.
"정말....근사해. 넘실거리면서 힘껏 조이고 있어..아!"
"안에 내 줘! 멜빌!"
"하아...으...송이, 오늘 너..정말 음란해. 너무 조이면..."
'멜빌, 어때? 이제 알았지? 나, 비치란 말야.'
"하아...하아...아..."
'멜빌, 내 안이 그렇게 기분 좋아?"
첫날은 뭐가뭔지 몰라, 어이 없이 당하기만 했단 말야.
'나름 비친데, 수줍음 많고 조신하다는 명예로운(?) 칭찬-오명?-까지 받고.'
더 깊숙이 찔러 넣으며, 멜빌이 달콤한 신음을 지른다.
"아, 아아~가, 갈게요! 멜빌!!"
나는 치밀어 오르는 쾌락의 파도에 삼켜져 절정을 느꼈다.
"으, 아, 으응~ 벨빌. 아아아아"
"알, 알지? 꽉꽉 조이고 있어...정말 기분 좋아..."
"아아아~ 멜빌, 어서, 안에 내..."
"시, 싫다. 조금 더...나 아직 안 가...그러니까...."
늘 수세에 몰리던, 수줍고 귀여운 아내의 갑작스러운 비치 스킬에 둘째 남편이 쩔쩔매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네. 귀여워.'
더 기세를 올리면서 안으로 들어온다.
"하아...아! 아아아아~"
절정한 뒤라, 경련하고 있는 안 쪽을 쉬지 않고 세차게 자극하며, 자궁 입구까지 부딪쳐 온다.
"아, 아아아! 으응~또...또 가잖아!!"
"아....송이, 이렇게 거칠게 찌르면 기분 좋지!"
멜빌이 허리를 빙빙 돌리면서, 클리토리스를 손 끝으로 문지른다.
"아아! 안 돼....거기 만지면...멜빌!!"
"응큼하게 부풀었다.. 송이의 살구슬, 아니 살송이?"
'살송이 아냐! 살구슬!!'
"더 음란해지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귀여운 신부님!"
클리를 손 끝으로 동글동글 부드럽게 굴린다.
"아! 아아아! 으, 으응! 아아아! 갈...갈게요..."
"너무 꽉 조이면...나도, 이제 갈게! 송이!!"
허리를 꽉 잡고, 움직임에 맞추어 더욱 깊숙이 찌른 뒤, 또! 질내사정을 한 뒤, 시들었다.
'아기만들기 지상주의인 이 나라에 콘돔은 없겠지?'
나는 침대 위에 축 늘어진 채로 누웠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기분 좋은 피곤함이 몰려온다.
허벅지를 타고내리는 걸쭉한 체액을 닦으려고 하는데,
"아직 안 끝났는데."
"으! 으응....."
멜빌이 딥 키스를 시작한다.
'부드럽고 달콤해...'
입술을 떼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다.
"하아...그만, 더는 안 돼...멜빌...내게서 떨어져 줄래?"
떨어지기는 커녕 더 꼭 끌어안는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이 쑤신다.
"떨어지지 않을거야. 떨어지면 도망칠 것 같아 두려워."
'절륜에 집착까지...그래도 제법 로맨틱한 말인걸.'
솔직한 둘째 남편의 말에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정말 멜빌이 내 남편이 된 실감이 나는걸.'
나는 멜빌의 목에 팔을 두르고, 끌어안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저기, 멜빌. 날 한 번 더 안아도 좋아."
"정말?"
"응. 대신 이번엔 더 야한 것도 듬뿍 해 줘."
* * *
똑.똑... 똑.똑...
노크소리에 눈이 떠졌다. 침대에도 방안에도 멜빌의 모습은 없었다.
"누구세요?"
"저에요."
'노크 소리가 문 아래에서 들려. 기분 탓?'
"누구?"
"……여왕님, 저에요."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여왕님?'
천천히 걸어가 문을 열자,
"여왕님의 개에요. 멍!멍!"
토이푸들이 반갑다고 꼬리를 치면서 뒷발로 깡총깡총 뛰고 있었다.
"너 뭐니?"
* * *
"그만 깡총거려! 정신 사나워."
"멍멍! 네 여왕님."
재빨리 복도를 두리번거린다.
'다행히 아무도 없네.'
눈짓으로 신호를 보내자, 토이푸들이 쪼르륵 방 안으로 들어온다.
나는 재빨리 문을 닫았다.
* * *
그만 꼬리쳐! 정신 사나워."
"멍멍! 네 여왕님."
흑진주처럼 검고 동그란 눈을 한 밤송이빛의 작은 강아지가 날 올려다보고 있다.
"이리 와."
침대에 걸터앉아 부르자, 내 발치로 토이푸들이 기어온다.
"가, 간지러워."
주저 없이 발가락을 작은 혀로 할짝할짝 핥는다.
"하지마, 간지럽단 말야."
모르고 툭 강아지를 차자,
"멍멍! 여왕님 더 혼내주세요! 멍멍! 전 버릇 없는 개에요."
"그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
"멍멍...멍멍...밟아 주세요. 여왕님!"
'너 뭐니?'
* * *
"왜 토이푸들의 탈을 뒤집어 썼는지는 몰라도, 사신 오빠 맞네."
"네. 여왕님이 킬힐로 밟고 하이힐로 엉덩이를 걷어차 주신 그 개에요."
후우~
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나 또 개죽음 당한거야? 이번엔 복상사라도 당한 거니?"
"....."
'이게 어느 틈에 또...'
고개를 숙이자, 토이푸들이 내 엄지 발가락을 입에 넣고, 가볍게 깨물고 있다.
"멍. 여왕님...멍멍..."
"툭!"
이번엔 일부러 툭 찼다.
"끼잉...여왕님 더...."
"닥쳐! 발가락 그만 핥고 어떻게 된 건지 빨리 말이나 해."
"........"
"그런 불쌍한 표정 짓지마. 내가 동물학대라도 한 것 같잖아."
* * *
"뭐? 쫓겨나?"
"네, 여왕님. 그치만 여왕님 곁에 있을 수 있어서 행복..."
찌릿 노려보자, 입을 다문다.
"왜 쫓겨난 거야?"
"전 쫓겨나도 싸요. 끼잉..."
"자학 넋두리 그만 하고. 왜 다시 내게 온지나 말해."
토이푸들이 꼬랑지를 말고, 고개를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낑낑댄다.
"....원래 지옥에 갈 송이님을 멋대로 환생시켜서...마왕님에게 쫓겨났어요."
강아지를 안아 올려, 침대에 내려놓았다.
"쫓겨났으면 지옥에나 가지, 왜 내게 온거야?"
"여왕님!"
"왜?"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느 것부터 듣고 싶으세요?"
'맛있는 건 나중에 먹는거야.'
"나쁜 것부터, 짖어 봐."
"멍멍! 네 여왕님."
* * *
"여왕님의 아빠가 일주일 뒤에 자살할 거에요! 멍.멍..."
털썩!
그대로 침대 뒤로 넘어진다.
으르응~ 쾅! 우르릉~ 쾅!
열어놓은 창문 사이로 천둥번개가 치면서, 난데 없이 소나기가 퍼붓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빗줄기가 들이닥친다.
발을 질질 끌며 창가로 걸어가, 창문을 닫았다. 어두워진 방안, 넋이 나간 내 옆에서 토이푸들이 깡총깡총 촐랑대며 침대 위를 뛰어다닌다.
"왜! 왜 아빠가 자살을 하는데?"
토이푸들의 목을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며 외친다.
"키잉~ 깨갱~ 여왕님, 더...더...세게 목을 조여주세요. 목뼈가 부러져도 좋아요. 여왕님의 손에 질색해 죽고 싶어~ 낑...깨갱!"
* * *
어두운 방 안에 빗소리만이 가득하다. 가끔 목을 졸린 토이푸들이 낑낑거리는 소리와 함께.
"뭐? 원래 죽다살아날 운명인 날 네가 멋대로 환생시킨거라구?"
"네에...죄송해요. 끼잉~ 여왕님."
토이푸들이 고개를 숙이고, 작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
"원래는 여왕님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도중에, 때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한국 최고의 외과의가 그곳을 지나가다 송이님을 구하게 되는 개연성 제로의 개막장 스토리였거든요."
"목에 칼을 찔렸는데, 그게 가능해?"
손가락을 토이푸들에게 내밀자, 당장 달려들어 혀로 핥는다.
"여왕님..."
볼을 꼬집은 뒤, 코에 손가락을 튕겼다.
"끼잉~ 낑~ 낑~"
"그게, 삼류스럽게도 신의 솜씨를 지닌 외과의사가 때마침 국내 최고 재벌의 주치의라서...게다가 억지스럽게도, 아니 우연히도 그날이 회장님 댁에 가는 날이라 왕진가방을 손에 들고 있었거든요."
"좀 많이 무리스럽고 싼티나지 않니?"
"그리고 결정적으로, 여왕님의 얼굴이 그 중년 외과의사의 딱 이상형이라, 그 자리에서 송이님의 목을 꿰매서, 죽기직전의 송이님을 벤츠에 테워, 미친 듯이 달려 응급실로 데려갔다. 뭐 그런 거에요. 맞아요. 왜 삼류 소설의 뻔한 얘기 있잖아요."
'어이 없다. 그 빈곤한 상상력 누구 머리에서 나온거니?'
[내 머리에서 나왔다...미안...송이야.]
'응? 이 재수 없는 목소리는 누구? 환청인가?
* * *
유리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멍하니 쳐다보며, 참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빠를 살리려면 어떡해 해야 돼?"
"지금부터 일주일 안에 남편을 다섯 명 거느려서, 유리나비를 무지개나비(rainbow butterfly)로 바꿔야 해요."
"무지개 나비?"
토이푸들이 침대에서 내려와, 쪼르륵 창가로 다가간다.
"이 유리나비는 앞으로 여왕님 곁에 계속 있을거에요."
"?"
"혹시, 유리나비가 안 보이세요?"
"어머!"
'유리에 붙어 있었네. 투명해서 전혀 몰랐어.'
창가로 다가가자, 유리나비가 투명한 날개를 우아하게 움직이며 내쪽으로 날아온다.
"그 나비의 날개를 무지개빛으로 물들여, 무지개나비로 만들어야 돌아갈 수 있어요."
이곳에 온지 이틀째, 난 또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살포시 유리나비가 코 끝에 내려 앉았다.
* * *
"크르릉~ 쾅쾅! 크르릉~ 쾅!"
귀를 찢는 요란한 천둥과 함께 유리창에 번개가 번쩍 점멸한다.
"꺄아아아!"
깜짝 놀라, 손에 잡히는 대로 앞 쪽 벽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어머, 강아지!"
"깨갱!"
벽에 부딪쳐 바닥에 뻗은 토이푸들.
개거품을 문 채, 다리를 부들부들 떨고 있다.
"키..킹...킹....."
"어머, 미안해."
케엥! 하고 한 마디 짖더니,
토이푸들이 꼴깍 정신을 잃었다.
* * *
"개구리 왕자님이니? 벽에 던지니까 왕자로 변하게."
"여왕님...저..."
내 앞에 알몸으로 서 있는 사신 오빠.
"왜?"
"한번 더 던져주세요!"
나는 베개를 툭 던졌다.
"그걸로 응큼한 자지나 가려. 오빠."
'그림 리퍼 자리에서 쫓겨났어도, 마법은 쓸 수 있는 모양이네.'
망설이더니,
"가리기 전에 여왕님의 예쁜 발로 한번 밟아주시면..."
"짜증나!"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인 꽃병을 쥐고 노려본다.
도기 꽃병에 좀 겁먹을까 했는데,
"던져주세요!! 전 그걸로 맞아도 싸요! 여왕님!"
'정말 어이 없어.'
"너 뭐니?"
맥이 빠져, 살포시 꽃병에서 손을 떼었다.
***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아빠가 자살을 하신다고!?"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여왕님이 죽는 게 일주일 뒤거든요."
"내가 죽으면, 그 충격으로 아빠가 돌아가신단 말이지?"
"네. 여왕님."
사신 오빠가 자지를 흔들면서 내 앞으로 걸어와, 내 옆에 걸터앉는다.
"여왕님이 돌아가시지 않으면, 저도 죽어요. 소멸한 뒤, 다시는 그 어떤 존재도 될 수가 없어요."
"그건 네 사정이고."
"아아~ 여왕님! 전 여왕님의 착한 개잖아요."
"몰라!"'
사신이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발등에 쪽 입을 맞춘다.
"그럼, 돌아가시지 않고, 여기에 계실거에요?"
"그냥은 싫어."
"여왕님 그 말씀은?"
"죽지 않아도 될 운명인데, 억울하게 죽었으니까..."
"네...다 멍청하고 생각 짧고, 쓸보 없고, 형편 없는 제 잘못이..."
"말만 하지말고, 보상을 해 줘!"
"아악! 여왕님!"
사신의 자지를 꽉 움켜쥔다.
"여, 여왕님...더 세게..."
"강아지, 엎드려!"
바닥에 등을 대고 엎드린 사신의 불알을 톡톡 찬다.
"나만 손해 본 거잖아? 억울한 건 딱 질색이야."
"여왕님, 뭘 원하세요?"
고추를 살짝 발바닥으로 밟는다.
'어떻게 할까? 부자로 만들어 달라고 할까? 아니, 그것보다는...'
* * *
"더 예뻐지고 싶없어."
"여왕님은 지금도 너무 예쁘시...으..."
발가락 다섯 개를 입 안에 깊숙이 밀어 넣는다
"케엑...케...케...."
"딴 소리 필요 없다. 해줄거지?"
"으...으으..."
사신의 입에서 발을 빼내자,
"하아! 하. 하...여왕님...조금 더 빨게 해주세요."
"실컷 빨아. 대신 해줄거지? 난 더 예뻐질거야. 몸에 칼 대는 게 싫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손보고 싶은 데가 여러군데 있단 말야."
사신이 발등을 혀로 날름날름 맛있게 핥는다.
"여왕님...최고에요."
"보상해 줄거야?"
"남편 한 명을 얻을 때마다 몸의 한 부분을 더 예쁘게 해드릴게요."
"일어서서, 강아지처럼 엎드려."
"네, 여왕님."
엉덩이를 힘껏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후려친다.
"아아! 여왕님! 더, 더 세게 때려주세요!"
"또 한 가지 조건이 있없어."
"말씀하세요!...엉덩이 때리시면서..."
"찰싹! 찰싹!"
"여기서 손에 넣은 보석이나 악세사리는 그대로 가지고 갈거야."
"그렇게 할게요."
"찰싹! 찰싹!"
"아아~여왕님 더 세게!"
"남편들 중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든 남편도 한국에 갈 때, 함께 데리고 갈거야!"
"네! 여왕님 마음대로 하세요! 더 세게...때려주세요!"
"찰싹!찰싹!"
"좋아!"
자리에서 일어나 사신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찼다.
"됐어! 다시 토이푸들로 돌아가!"
"네...여왕님! 가끔 엉덩이 때려주셔야 돼요?"
* * *
내 발치에서 귀여운 토이푸들이 응큼하게 발가락을 핥고 있다.
"확인해 볼게."
"멍멍."
"첫째,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주일 안에, 다섯 명의 남편을 내 걸로 해서, 유리나비를 무지개나비로 만든없어."
"네."
'최소 남편을 다섯 명은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네.'
"둘째, 남편이 한 명 늘 때마다, 내가 원하는 신체부위가 더 예뻐진없어."
"......"
'발가락 핥느라고 정신이 없네. 뭐 상관 없어.'
"셋째, 여기서 손에 넣은 것 중 내가 원하는 건 가지고 갈 수 있없어."
"몸에 지닐 수 있는 것만요. 부피가 너무 큰 건 안 돼요."
'좋아. 어차피 보석이나 값나가는 것만 가지고 갈거니까.'
"마지막, 남편들 중 내가 좋아하는 한 명은 데리고 갈 수 있다. 불만 없지?"
"네. 여왕님. 그렇게 할게요."
'내 남편이 되고 싶은 남자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문제될 거 없다. 게다가 한 재산 두둑하게 챙길 수도 있다. 후훗. 게다가 완벽한 남편까지...'
툭 토이푸들을 찬다.
"깨엥~"
"죽어서 오히려 일이 술술 잘 풀리네. 이제 목표가 생겼으니, 마음껏 비치 때 실력을 발휘해 볼까."
* * *
문을 열자, 여러 명의 성장을 한 꽃미남들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멜빌, 왜 날 왕궁으로 데려온거야?"
"쉬잇! 목소리를 낮춰!"
"왜?"
"곧 알게 돼. 나도 어명을 받은거야."
"어명?"
멜빌이 앞으로 걸어가 공손히 허리를 숙인다.
멜빌에게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잘생긴 스무살 전후의 완벽남들이다.
"…저하, 송이님을 모셔왔습니다."
'저하? 왕족? 아니 저하면 왕세자님?!'
"첫째 남편인 드니님은 근위대의 훈련을 감독하는 일 때문에,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럼, 드니가 올 때까지 좀 기다리지. "
'남편! 왜 날 왕궁에 데려온 거냐구?"
* * *
'드니...'
왕궁의 알현실에서 대기하고 있자, 드니가 안 쪽 문에서 걸어나왔다.
힐끗 곁눈질로 처다봤지만, 드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가만히 서 있었다.
곧 멜빌이 안으로 들어와 드니의 옆에 섰다. 멜빌도 내 얼굴을 힐끔 쳐다본 뒤,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알현실에 왕세자가 나타나는 걸 기다리는 걸까?"
'멜빌 바보! 이런 모습으로 왕궁에 데려오면 어떡해?'
잠옷으로 입고 있던 원피스에 속옷은 브라도 없이 팬티만 걸친 채 끌려왔다.
게다가 부직포 슬리퍼를 신은 채 알현실에 오다니...
'이런 꼴로 왕세자를 만나도 괜찮을까?'
* * *
'누가 왕세자일까?'
두 명 다 블론드(blond)에 금빛 머리카락으로, 멜빌과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귀여운 고딩 느낌의 멜빌과는 달리 두명은 대학생 같은 인상이다.
두 명의 왕자님들 뒤에는 근위 기사로 보이는 두 명이 서 있다.
제복에 달린 금술과 황금단추가 반짝반짝 빛나고, 허리에는 기병도인 긴 사브르를 패용한 모습이다.
왕자님의 옆에 서 있는 내 잘난 첫째 남편 드니는 다른 왕자들과 비교해도 손색 없는 외모로 미소를 짓고 있다.
'다들 잘났지만, 드니가 제일 잘생긴 것 같아. 후훗. 지나친 남편 사랑일까?'
'왜 날 이 거창한 알현실로 부른 걸까? 두 명의 약혼자와 서약식을 한 것 때문에 부른 거겠지.'
'왕족이 정체도 알 수 없는 나와 약혼한 게 왕궁에서 무슨 문제라도 된 걸까?'
나는 장엄한 알현실과 그 안에 떠돌고 있는 진지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조금 주눅이 들었다.
'멜빌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말한 걸로 봐선, 엘라시아 왕국은 꽤 엄격한 신분제 사회가 아닐까?'
나는 멜빌의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거라면, 조금 미안한데. 하지만 약혼을 파기하려면...'
[결혼과 가정의 신인 에스티아(Estia)의 이름으로 맺어진 계약입니다. 이 약혼을 파기하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대가가 필요합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는데. 멜빌과 드니가 어떻게 할까?'
말 없이 지켜보고 있자, 드니가 나를 힐끔거리고, 멜빌을 불렀다.
"오전엔 송이 옆에서 잘 지켰어?"
"물론입니다. 듬뿍 사랑해 줬어요."
"곧 저하가 오실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멜빌."
"네. 드니님."
시종이 알현실로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곧 디아노 저하께서 오실겁니다. 경건하게 저하를 맞을 준비를 하십시오."
'어쩌지. 게다가 이런 옷차림으로'
"아무리 저하라고 해도 내 아내를 빼앗기지는 않을거야."
'뭐?'
드니가 휙 돌더니, 나를 쳐다본 뒤 다가온다.
바로 앞까지 오자, 자신의 제복 상의를 벗어 나에게 덮어 준다.
"멜빌 저 바보가 즉각 데려오라는 말에, 옷도 갈아입히지 않고 이곳으로 데려온거지?"
"응. 옷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고 저택에도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어서. 그냥 입고 있던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왔없어."
"아~ 정말, 멜빌 저 바보 녀석..."
곧 누군가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