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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섹스 스토리 (11)화 (11/171)



밀라노 : 화이트 드림 (1)


인천공항의 출국장, 게이트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내 귀에 탑승을 재촉하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맘마, 비행기 타? 파파 보고 싶어. 엘레나, 졸려~"

옆에서 내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엘레나가 졸린 듯 눈을 비비며 물었다.

"응, 비행기 타고 아빠 보러 집에 가는거야."


내 이름은 담비, 딸인 엘레나와 오랫만에 친정나들이를 위해 한국에 왔다가, 다시 남편이 기다리고 있는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일 때문에 남편과 같이 오지 못해 조금 서운했지만, 친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한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올해 4살이 된 엘레나도 아빠가 보고 싶다고 보채던 참이었다. 나와 엘레나는 텅 빈 기내에 탑승했다.


'곧 승객들이 몰려와, 기내가 시끌벅적해지겠지.'


조금 있자, 대부분의 승객이 기내에 탑승한 듯 보였다. 하지만 나와 딸의 옆자리는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엘레나, 옆자리가 빌지도 모르겠네."
"맘마, 여기?"
"응,  자리가 비면, 엘레나 편하게 잘 수 있을거야."

어린 딸을 편히 재울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갑자기 털썩 여행가방이 빈자리 위에 던져졌다. 올려다보니 가죽재킷에 흰색 티셔츠를 입은 키가  잘 생긴 백인 남자가  있었다.


'이탈리아인 같은데.'


나는 이탈리아어로 그에게 말을 걸었다. 어린 엘레나 때문에 조금 소란스럽더라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미리 한마디  두는 게 매너였다. 그는 싱긋 밝게 웃으며, 자기는 아이를 좋아하기 때문에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했다

'아직 젊어 보여. 20대 후반이나 30대 정도일까.'


나는 힐끔 그를 살펴보았다. 무척 반듯하고 좋은 인상을 풍기는 얼굴이었다. 그는 나와 엘레나에게 가벼운 농담을 하며 가볍게 웃었다. 그 얼굴 표정이 무척 보드라웠다.

'좋은 사람이 옆 자리에 앉아서 다행이야. 12시간 넘게 같이 있어야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내심 안심하며, 그와 가벼운 이야기를 계속했다. 엘레나의 얼굴을 보고 인형처럼 예쁘다며 칭찬을 하자, 엘레나도 즐거운 듯 마음을 털어놓고 조잘조잘 지껄이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야..편하게 집까지 갈 수 있겠어.'


나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엘레나의 무릎 담요를 매만져 주었다. 비행기가 정각에 이륙한 뒤, 곧이어 기내 서비스를 묻는 CA가 다가왔다.
나와 백인 남자 사이에 앉아 있는 엘레나는 나와 그에게 어떤 음료를 마실지 묻고, CA에게 전해주었다.

"오렌지 주스, 미네랄 워터, 포도 주스에요."


백인 남자는 또박또박 CA에게 얘기하는 엘레나를 보며 싱긋 웃었다.


'웃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야. 정말 좋은 사람이란 느낌..'

남편이 이탈리아인이라 엘레나는 겉보기에는 백인 쪽에 가까웠다.


'CA들은 아마 우리 셋이 가족이라고 생각하겠지..'


내 머릿속에 문득 그런 생각이 스치자, 나는 살짝 부끄러워 뺨을 붉혔다. 1 시간쯤 지나자,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엘레나가 아직 잠이 들기도 전에 깜빡 졸고 말았다.

"마담…마담?"


기내 서비스 때문에 CA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나는 눈을 뜨자, 좀 곤란한 표정으로 CA와 말을 하고 있는 백인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난기류 때문인지 기체가 떨리면서,  몸이 크게 흔들렸다. 기내의 여기저기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올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으로 그의 얼굴이  얼굴 쪽으로 바짝 가까이 다가왔다. 거의 코와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는 몸을 지탱하느라 내게 손을 댔다. 내 허벅지에 그의 손이 닿았다.


"perdono!(페르도노)"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내뱉고, 황급히 내게서 멀어졌다. 남편과 떨어져서 한달 가까이 남자를 만난 적이 없었던 나는, 남자를 가까이서 느끼자, 우연이긴 했지만, 남자의 손이 닿은 것만으로 간만에 짜릿한 전기가 흐르는 듯한 자극을 받았다. 달콤한 그의 향수가 코 속을 찌르자, 내 안의 여자가 그 향기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문제가 아니었는지 기내는 다행히 곧 평온한 상태가 되었다.

남자의 이름은 파비오, 내 생각대로 그는 이탈리아인으로 사업차 처음 한국에 왔다가 다시 이탈리아의 밀라노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인연이 있었는지, 파비오와 내가 사는 마을은 무척 가까웠다.

"작은 마을이니까,  번 서로 거리에서 만났을 지도 모르겠네요."
"네에.."


 비행시간 내내 파비오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나는 점차 이 상냥하고 잘 생긴 파비오라는 남자에게 친밀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비행이 끝나갈 부렵, 파비오는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만든 명함을 내게 건네주었다. 명함이 없는 나는 메모지에 펜으로 연락처를 적어 그에게 건넸다. 왠지 그와는 좋은 친구가 될  같았다.

비행기가 밀라노의 말펜사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가 다 되어서였다. 공항에 마중나온 남편의 미소를 보자, 긴 비행기 여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나는 차 안에서 그대로 딸과 함께 잠이 들어 버렸다.

* * *

집에 도착한 뒤에는, 짐 정리와 여자 없이 한달 동안 방치된 집을 치우고 정리하고 청소하느라 머리가 복잡해 파비오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엘레나도 다시 유치원에 나가기 시작하고, 집안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 겨우 한숨을 돌린  평온한 생활로 돌아간지 1주 정도 되었을 즈음이었다. 오후에 스마트 폰을 확인하자 메시지가  통  있었다.


"처음 보는 전화번호네."


스팸 메일이 아닐까 하고 확인해 보자, 파비오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짧지만 예의를 차려서 정중하게 쓴 메시지였다.

[조만간, 차라도  잔 같이 하면 어떨까요?]


"차..차라면, 낮에 잠깐 만나도, 상관 없겠지."


남편에게는 기내에서 만난 우아하고 잘 생긴 파비오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별 뜻은 없었다. 하지만 비행기가 흔들리면서 서로 몸이 밀착된 일도 있고 해서, 왠지 그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낮에 젊은 남자와 만난다는 생각에 약간의 죄책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남편과 만난 후, 10년 가까이 다른 남자와 단둘이서 이야기를 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내, 그리고 어머니란 존재에 익숙해진 나에겐 약간의 자극이 필요할지도 몰라..'

* * *


처녀 시절의 나는 나름대로 꽤 자유분방한 생활을 보냈다.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에게 배신당한 뒤에는 괴로운 마음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많은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 원나잇 러브로 끝난 사람도 있고, 꽤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잠자리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성실한 남편을 만나고부터 정숙한 아내와 좋은 엄마로서의 역할에 만족하는 동안, 여자로서의 나는 조금씩 존재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파비오를 만나고 난 뒤부터,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여자로서의 욕망이 깨어나고 있었다.

이틀 뒤, 오후 3시에 지하철 근처의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일부러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만나기로 한 건, 친구들이나 아는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약속 시간 5분 전에 카페에 들어서자, 파비오가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말끔하게 다림질된 하얀 셔츠에 처음 비행기 안에서 만났을 때도 입고 있던 레저 재킷과 데님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시선을 떨구고 그의 구두를 살펴보았다. 그의 말끔한 구두가 내 눈에 들어왔다.


'경제적으로 꽤 여유가 있는 것 같아.'


카페에 자리를 잡고 마주 마주 앉은 두 사람은, 두서 없이 가벼운 대화와 농담을 하며, 서로의 속 마음을 살피고 있었다.


'이 남자..나를 여자로 의식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 친구가 되고 싶은 걸까?"
'이 여자..역시 나를 남자로 의식하고 있어.  눈빛과 몸짓..무의식중에 날 유혹하고 있어.'


두 사람은 손의 움직임과 몸짓 하나 하나를 은밀히 살피면서, 서로 탐색전을 벌이고 있었다.

'아직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 채, 은밀하게 탐색할 때의 이 느낌..섹스를 할 때보다, 더 자극적이야.'

파비오의 눈빛이 점차 처음 기내에서 만났을 때의 상냥함과는 다른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테이블 아래서 내 무릎에 파비오의 무릎이 스쳤다.


"아, 미안해요.."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 건 의도적으로  거야..'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파비오의 무릎은 여전히 떨어지지 않은 채 내 무릎에 딱 붙어 있었다. 내 무릎에 닿아 있는 그의 무릎이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내 눈을 바라보면서, 계속 화제를 이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파비오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하얗고 고른 치열 사이로 언뜻 빨간 혀가 들여다보았다. 문득 내 머릿속에 딸과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담비 씨, 저 슬슬 가 봐야  것 같아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파비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역시 문득 제정신으로 돌아와, 황급히 그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 파비오가 카운터에서 내 몫까지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또 연락해도 괜찮겠습니까?"

첫인상 그대로의 부드러운 눈빛으로 돌아온 파비오가 작별 인사를 건네며 입을 열었다.


"네에.."

'또 만나고 싶어.'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걸음 더 그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파비오와 헤어진 뒤, 나는 스마트 폰을 몸에서 떼지 않고 늘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그의 연락과 메시지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닷새가 지나도 파비오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없었다.

'날 놀린 걸까?..내가 먼저 연락을 해 볼까..'

나는 반쯤 체념하고 다시 정숙한 아내이자 좋은 엄마로 가족과 함께 조용히 주말을 보냈다. 하지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후 마침내 파비오에게서 기다리던 연락이 왔다.


"내일 식사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식사가면.."
"아, 물론 담비 씨에게는 딸이 있으니까, 점심에."
"..."
"주소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네에..좋아요."


나는 저도 모르게 파비오의 제안을 승락하고 말았다. 그가 보내준 주소는 집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뭘 입고 갈까..'


나는 그와의 만남을 생각하느라, 집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평상시와 다름 없이 나는 남편을 배웅하고 엘레나를 유치원에 보냈다. 그리고 돌아와서, 나는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듬고 특별한 날에만 입는 정장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몇번씩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 보며, 꼼꼼하게 몸매무새를 살펴보았다.

'혹시 모르니까..'

나는 가장 마음에 드는 속옷을 정장 밑에 입고 있었다.


파비오가 알려준 주소까지는 버스를 타고 갔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약속 장소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정말 여기가 맞는걸까?'

주위에는 레스토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여긴 주택가잖아.. 혹시..'


나는 불안과 기대가 뒤섞인 마음으로, 그가 가르쳐준 번지를 찾기 위해 주택가를 걷기 시작했다.

* * *

퇴창에 꽃을 장식한 집이 많은 전형적인 이탈리아의 작은 주택가였다.

"파비오 씨의 집이..."

진동으로 해 놓은, 손에 쥔 스마트 폰이 떨렸다. 화면에는 파비오의 전화번호와 함께 문자가 하나 와 있었다. 위로 향한 큼직한 화살표였다.

"화살표?"
"위를 보세요, 담비 씨."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창문에서 파비오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깜짝 놀랐죠?"
"아, 네에..."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돌아가도 괜찮아요. 제 초대에 응할 마음이 있다면, 정문의 패스워드를 가르쳐 드릴게요."
"..."


나는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패스워드..가르쳐 주세요.."


파비오가 밑에 있는 내게 외쳤다.


"benvenuto (벤베누토)"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 패스워드가 담긴 메시지가 곧 전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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