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8화 〉 345. 북부로 귀환 1
* * *
신전 쪽에 연락을 주자 추기경이 성기사들을 끌고 급하게 달려 나왔다.
그리고 추기경이 목책 위에서 밀려오는 무리를 향해 신성력의 빛을 뿜어내자, 멀리 성국에서 온 무리에서 책임자로 보이는 기사와 사제 몇 명이 말을 타고 이쪽으로 달려왔다.
번쩍번쩍한 황금의 갑옷을 입은 멋들어진 기사들과 순백색의 로브를 입은 사제들.
흰 백마에 탄 기사와 사제들이 목책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중 기사 단장으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추기경을 향해 예를 취해 보이며 외쳤다.
“성국에서 새 성녀를 호위하기 위해 파견된 기사단장 베른과 휘하 기사와 사제 250명 지금 도착했습니다!”
‘아니, 무슨 호위가 250명이나….’
인원도 인원이지만 더군다나 성국에서 파견한 인원은 기사의 비율이 무척이나 높았다.
일반 병사는 백여 명 남짓, 나머지는 전부 사제와 기사로 채워져 있었다.
성녀가 성국에서는 아주 상징적인 존재이니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지만 무척이나 과도한 인원.
추기경을 바라보며 난처함을 표했다.
“처, 처형 아무래도 안으로 다 들이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엘프 구역에는 여유가 있어 이백 명을 어떻게든 욱여넣을 수 있었지만, 신전은 삼사십 명 이상은 곤란했고 확장성도 떨어져 저렇게 많은 인원을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없었기에 추기경에게 그것을 상기시킨 것이다.
그러자 추기경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도 눈이 있으면 당연히 그 많은 인원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 테니, 내 의견이 타당하다는 것을 긍정한 것 같았다.
“예, 일단 목책 주변과 강가에 야영시키겠습니다.”
확실히 그쪽이라면 아직 여유가 있었고,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까 싶어 라페스빌의 병력이 훈련하는 곳에서 따로 떼어 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렇게 하라고 이야기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장기간 야영하게 될 텐데 얼마 지나지 않으면 우기이니, 그 전에 거주지를 마련해야 합니다. 비가 오면 땅이 물러져서 천막이 쓰러지거든요.”
얼마 안 있으면 우기가 찾아올 것이고 아마 저 병력은 시트라가 사망하거나 할 때까지 이곳에 주둔하게 될 확률이 높으니, 작년에 엘프들을 받을 때의 경험과 노하우가 담긴 조언을 하자 추기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성국에 연락해 건축자재와 기술자를 지원받든지 해야겠군요. 그리고 내부는 로리엘님이나 이실리엘님이 계시니 일단 저희 병력은 외부를 철저히 감시시키겠습니다. 그리고 일부 병력만 목책 안으로 들여 마을 내부를 순찰하는 걸로 하면 어떨까요?”
아마 그간 생각해둔 게 있으신지 추기경은 막힘없이 병력 운영에 대한 여러 가지 안을 내어놓았고, 대부분 의견이 나쁘지 않았기에 나는 그녀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뭐 발카리아가 마을에 있는 이상 이제 별일은 없을 테지만, 저분들은 그리해야 마음이 편할 테니 그들의 의견대로 하게 둔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하시지요.”
“예, 감사합니다. 러셀님.”
나와의 대화가 끝나자 추기경이 도착한 병력을 목책과 강 사이 공터로 이동시키기 시작했고 잠시 후, 성국에서 온 병력들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임시 주거용 막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
땡땡땡땡
마지막 태양만이 남아 완연한 저녁을 알리자 병사들을 훈련 시키는 연병장에 식사의 종소리가 울리고, 병사들이 환호하면 연병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오늘 병사들의 식사는 귀리와 밀을 섞은 죽에 고기과 말린 채소를 섞은 것, 병사들의 식사를 확인하고 여관으로 오니 모처럼 장모님과 애니가 스튜를 만들어서 식구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아내들 틈에 끼어 식사를 시작했다.
“음, 맛있구나.”
“애니 수고했어요. 오늘도 맛있어요.”
“감사해요. 이실리엘님.”
저녁을 만드는데 수고한 애니를 위해 다들 고맙다는 말을 전하며 식사를 이어가는데 어김없이 오늘도 노르웨 씨와 벨릭이 스튜에 불만은 토로했다.
“형님, 스튜 너무 질립니다.”
“그래, 맞습니다. 차라리 국밥이면 모를까.”
국밥 형님 노르웨 씨의 일편단심 국밥 사랑과 벨릭의 밥투정.
국밥이 힘든 음식이 아니니 노르웨씨 원해로 국밥을 계속 끓여주고 싶지만, 된장이 문제였다.
애초에 만들었던 된장은 시범적으로 항아리 3개 정도의 분량만을 담은 것.
노르웨 씨가 원하는 대로 국밥을 만들어냈다가 며칠 되지 않아 된장이 다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음식은 둘째치고, 생각해보니 된장을 좀 더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도 잘하는 음식 한 가지만을 파는 식당이 흔한 편이었기에 국밥 식당을 차리면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맛대가리 없는 스튜만이 판치는 세상에 국밥 전문 식당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졌다.
고민은 짧았기에 바로 발레리에게 부탁을 했다.
“발레리 릴리아나 누님에게 이야기해서 토기 항아리 좀 더 구해봐.”
“얼마나요?”
“한 백 개쯤?”
“백 개나요?”
“응, 된장을 좀 더 많이 담으려고.”
내 말에 이실리엘이 자신이 맡아야 할 항아리가 늘어난다는 말에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관리할 항아리가 늘어나는 거군요? 책임이 막중합니다.”
“그래, 높은 엘프 이실리엘 판매하는 종가집 된장이랄까?”
웃으며 이실리엘을 향해 말하자 이실리엘이 종가집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러셀, 근데 종가집이 뭔가요?”
“종가집은 가문의 수장이라는 말이야. 이실리엘은 우리 가문의 수장 아내니까. 그런 뜻이라고 보면 돼, 전생에는 종가집이라는 단어가 그런 의미로 쓰였거든.”
왠지 300년 전통의 된장 이실리엘 종가집 하면 전생에서도 아주 잘 먹힐 것같은 느낌의 착착 달라붙는 단어였다.
종갓집 같은 단어를 상품의 이름에 사용한다는 것은, 긴 시간 전통을 지켜, 한 가지 방법으로 제품을 만든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인데, 대를 거쳐서 기술을 전수해 준 것도 아니고 한 사람 아니, 한 엘프가 300년 동안 같은 제품을 만들어 판다는 것은 장인을 넘어선 그 무엇인가. 잘 팔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아, 발레리 그리고 통도 한 백 포대 정도 사자.”
“네, 알겠어요. 러셀. 돈은 그냥 저희 방에 있는 걸 사용할게요.”
얼마 전 발카리아가 레어에서 가져온 금화나 보물들이 3층의 가족 전용 거주시설 여기저기 널려있는데 아마 그것을 말하는 듯했다.
따로 금고나 창고를 만들어야 했는데 지금 드워프들은 너무 바빠 금은보화들이 방 여기저기에 방치되고 있는 것이었다.
다행이라면 3층에는 아무도 올라가지 못하거니와 노예 중에서도 올빼미나 사리나 그리고 여급 중에서도 토끼 자매 정도만이 출입하기에 손을 타지 못한다는 정도.
뭐 손을 타더라도 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의 러셇의 여관 3층에서 감히 도둑질할 놈은 없을 것이었다.
***
며칠 후 마을로 마차에 실린 대량의 항아리들이 도착하기 시작했고, 항아리를 씻고 메주를 만드는 일은 엘프들과 여급 그리고 아내들이 맡았다.
엘프들이 만드는 전통 된장 이라는 타이틀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또 다른 나의 수익사업이 한가지 늘어날 때 북쪽에서 한 가지 소식이 에반을 통해 들려왔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아내들과 항아리를 씻고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있을 때 에반이 허겁지겁 달려와 말했다.
“혀, 형님!”
좀처럼 긴장하거나 하는 법이 없는 에반인데 얼굴에 당황함이 가득한 얼굴.
왜 그런 얼굴이 되었는지 연유를 물었다.
“왜 처남? 무슨 일 있어?”
“그, 그놈이 드디어 직접 병사들을 끌고 성곽 수비에 나섰답니다.”
“그놈?”
갑자기 그놈이라는 말에 누구인지를 알아챌 수 없었지만, 곧바로 에반이 누구를 지칭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놈이라면 에삭스의 그놈?”
“예, 맞습니다. 형님.”
“호오….”
귀족들의 반발에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지 놈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성벽에 올랐다는 소식이 에반이 가진 수정구를 통해 우리 쪽에 알려진 것이다.
에반의 소식에 수리아를 바라보자, 같이 항아리를 닦던 수리아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놈이 뒤진다는 것은 수리아가 왕위를 잇기 위해 북부로 가야 한다는 것.
결국 나와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이었기에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와 예전에 나누었던 계획들은 나의 아내가 되기 전 세웠던 것이고, 이제 나의 아내가 되었으니 모든 상황이 달라졌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아내가 많아도 어느 미친놈이 아내를 사람들이 수없이 죽어 나가는 전선으로 보내고 싶겠나.
그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말이었다.
나는 수리아를 다독이며 속삭였다.
“수리아 걱정하지 말아. 절대 당신을 보내지 않아.”
수리아를 품에 끌어안으며 그녀를 안심시키자, 품속에서 수리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 하지만 왕국의 백성들이.”
그녀는 진정한 군주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