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5화 〉 342. 안정화 5
* * *
“자 앞에 의자에 앉으세요.”
발카리아의 마법이 끝나자 첫 번째로 끌려온 평원 엘프는 멍한 얼굴로 발카리아가 지시하는 대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이지를 상실한 것같은 멍한 표정으로 앞만 바라보며 자리에 앉아서 대기했다.
그런 평원 엘프를 향해 발카리아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자, 이름이 뭐죠? 엘프.”
다정하게 물어오는 발카리아의 목소리에 긴 머리카락을 밧줄처럼 꼬아 앞으로 내린 연두색 머리의 엘프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헤로아, 헤로아입니다.”
“좋아요. 헤로아, 헤로아는 혹시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나요?”
발카리아의 말에 헤로아라는 엘프가 뭔가 잠시 망설이는 듯 입을 우물거리더니 발카리아의 질문에 천천히 대답했다.
“네, 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방안에 모인 러셀 아내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다들 침을 꿀꺽 삼키면서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엘프들이 좋아만 한 남자라고는 러셀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모두 시선을 집중하고 엘프의 대답을 기다릴 때.
다시금 그녀를 향해 발카리아의 질문이 쏘아지듯 날아들었다.
“누군가요? 그게.”
꿀꺽
발카리아의 질문에 누군가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가구가 없어 공간이 많은 집 안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자 헤로아라는 평원 엘프의 눈썹이 움찔거리며 곧 한 엘프의 이름을 토해냈다.
“이, 이실리엘님입니다.”
엘프의 말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러셀의 아내들.
그 모습에 발카리아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짓더니 다시 헤로아라는 엘프에게 질문했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냐고 물었어야 했는데, 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냐고 질문하니, 당연히 제일 좋아하는 높은 엘프인 이실리엘이 이름이 나온 것이 당연했던 것이었다.
“아니요. 좋아하는 남자가 있냐고요.”
발카리아의 재차 진행된 질문에 대답하는 헤로아.
그녀는 이실리엘의 이름을 말할 때처럼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러, 러셀족장님 무척 좋아합니다.”
그녀의 대답에 러셀의 아내들은 경악하는 표정이 되어버렸다.
망설이지 않고 무척이나 좋아한다고 표현하는 그녀의 대답에 ‘역시였던가?’ 하는 표정이 된 러셀의 아내들.
플로라가 이마를 잡고 시트라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를 때 발카리아가 다급하게 되물었다.
“조, 족장님을 사랑하는 건가요? 그의 암컷 아니, 여자가 되고 싶은 건가요?”
다급한 발카리아의 목소리 너머 헤로아라는 엘프가 인상을 쓰는 표정을 보이더니, 고통스러운 표정 속에 대답했다.
뭔가 아주 꺼내기 싫었던 말을 억지로 꺼내는 것 같은 표정으로.
“아, 아뇨 위대한 높은 엘프님의 반려를 어찌 감히. 그리고 저희는 더럽혀진 몸 절대 아닙니다.”
헤로아의 대답에 갑자기 숙연해진 분위기.
내용을 모르는 발카리아가 숙연해진 분위기에 아내들을 향해 물었다.
“이 엘프가 하는 말이 무엇이죠?”
이곳에 있는 러셀의 아내 중, 로리엘이나 시트라가 사건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지만, 로리엘은 별로 말주변이 없었고, 별로 설명할 생각도 없는 듯 보였기에.
사건의 내막을 제일 자세히 아는 시트라가 분노한 표정으로 다시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발카리아에게 설명했다.
그 사건을 직접 조사했던 시트라이니 누구보다 더욱더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직접 나선 것이었다.
“그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된 것입니다.”
긴 시트라의 설명이 끝나자 발카리아가 별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용인 그녀가 공감하기에는 조금 먼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리고는 뭔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시트라를 향해 물었다.
“그러면 조사에 협조해줬으니 약간 선물을 줄까요?”
“선물이요?”
“네, 지금 대화하면서 기억을 살펴보니. 그때의 기억이 큰 충격으로 남은 것 같은데. 그걸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거든요.”
발카리아의 말에 휘둥그레진 눈으로 시트라가 외쳤다.
“그, 그것이 가능합니까?!”
시트라가 신성력으로 정신을 치유하는 기술 중 하나인 정신 정화를 엘프들에게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 사건에 대한 충격이 워낙 커서 정신을 정화하면 정화된 정신에 다시금 충격적인 기억이 밀려들어 치유 전보다 더 피폐해질 것이 확실해서인데, 그 충격이 낮아지면 엘프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예, 저는 영혼을 다루는 위대한 흑룡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발카리아가 콧대를 세우며 대답했지만, 다들 이번만큼은 발카리아를 칭찬했다.
“대, 대단해요 발카리아.”
“맞아요! 정말 대단해요!”
이제야 흑룡의 위대함을 조금이나마 러셀의 다른 아내들이 알게 되었다며 발카리아가 속으로 기뻐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일단 헤로아를 먼저 치료해보고 다른 이들을 치료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발카리아의 손에서 빛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치료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늘에 떠 있던 일곱 달이 천천히 모두 사라지고 첫 태양이 머리를 치켜둘 때까지 말이다.
그렇게 헤로아를 치료하고 숙소로 되돌려 보내자 어느새 해가 뜨고 있었고, 다들 허겁지겁 여관으로 돌아가니 다른 아내들이 하나둘 일어나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
아침부터 뭔가 이상했다.
아침 식사 준비로 분주해야 할 시간인데 몇 명의 아내가 보이지 않았던 것.
“이실리엘, 플로라랑 시트라랑 아우로라, 에우로라가 안 보이는데? 어디들 갔나? 늦잠인가?”
내 질문에 당황한 얼굴이 된 이실리엘이 말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오, 오늘은 시, 시킬 일이 있어서요.”
“그래? 그럼 우리끼리 준비해야겠네.”
남은 아내들과 어제 남은 불고기를 이용 뚝불을 만들어 손님들에게 서비스하고.
다 같이 앉아 아침을 먹는데 식사를 방해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왔다.
삐유유유유유
삐유유유유유
날카로운 소리의 주인공은 소리 화살.
급하게 먹던 밥을 내려놓고 목책 문 쪽으로 달려갔다.
두 발의 소리 화살 소리는 나를 목책 문 입구로 호출하는 것이니 뭔가 밖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달려가 목책 문에 다다라 경계 탑으로 오르자, 멀리서 한 무리의 무엇인가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고.
아직 교대하지 않은 것인지, 다른 엘프들과 목책 위에 있던 에밀이 나를 보고 소리쳤다.
“족장님 엘프들이 오고 있는데요?”
대충 봐도 백 명도 넘어 보이는 엘프들이 우글거리며 몰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엘프들의 무리를 정확히 확인한 에밀이 나를 향해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족장님, 타냐린, 타냐린! 입니다.”
충성경쟁을 위해 떠났던 타냐린이 엘프들을 모아 돌아오고 있는듯했다.
에밀과 밀려오는 엘프들을 바라보고 있자 점점 다가오는 엘프들 그 모습을 본 에밀이 다시금 나를 향해 외쳤다.
“족장님 대부분 평원 엘프들입니다.”
설렘 가득한 에밀의 시선과 벅찬 목소리.
아마 같은 평원 엘프들이 오니 기분이 좋은 듯했다.
에밀의 대부분 평원 엘프라는 말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타냐린들이 고향으로 간다고 말한 지 두 달 정도 된 시간이었고, 그리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테니 아마 가장 가까운 평원 엘프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인원을 모아온 듯했다.
드워프들보다 더 빨리 엘프들을 모아오기 위해서 최대한 가까운 지역에서 땅겨온 느낌이랄까?
삐이이이
멀리서 엘프의 풀피리 소리가 들려오자 에밀도 환영한다는 듯 풀피리를 불어 화답했다.
삐이이익
그러자 목책 입구에서 난 소란에 드워프들도 밖의 소란이 궁금했는지, 몇몇 드워프가 목책 위로 올라와 밖의 상황을 보고는 기겁했다.
“뭐, 뭐야 이건 귀, 귀쟁이들이!”
그리고 기겁한 표정으로 노르웨 씨와 노르딕 씨가 일하고 있는 대장간 건설 현장으로 달려갔다.
드워프들의 반응에 기대감 반, 걱정 반으로 밀려오는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이거 설마 2차 충성경쟁 시작되나?’
그런 소란 속에 잠시 후, 엘프 무리 들을 확인할 수 있는 거리까지 엘프들이 접근하자 갑자기 병사들이 훈련하는 방향 쪽에서 소란스러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와와! 에, 엘프 여신님들이야!”
“꺄오오오옷! 여신님들이다!”
군인들은 원래 여자만 보면 신이 나는 존재들, 웃으며 환호하는 병사들을 바라볼 때 뭔가 이상한 위화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위화감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여자?”
깜짝 놀라 목책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좀 더 가까이 타냐린의 무리를 바라보자, 백 명의 넘는 엘프들이 모두 여자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왜 여자만 있는 거지?”
“그, 그러네요. 이상하네요?”
어느새 내 옆에 자리를 잡은 리젤다가 멍한 얼굴로 엘프들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