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2화 〉 339. 안정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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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와이번의 만행에 발카리아는 잠시 분노하고 난처해하고 말았지만, 정작 가장 크게 분노한 것은 드워프들이었다.
내가 했던 한마디가 불러온 참사.
“머리가 있으면 소머리 국밥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때마침 일하다 참으로 시원한 맥주를 마시러 왔던 드워프들이 그 소리를 듣고 말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그 소리와 함께 발카리아의 가죽 한 장이 더 필요하지 않으냐는 소리는, 드워프들의 분노에 불을 지르고 말았다.
“저놈이 감히 우리 국밥을!”
“러셀님, 가죽 필요합니다. 가죽!”
결국 분노한 드워프들 더하기 와이번 가죽이라는 탐욕이 합쳐진 드워프 폭도들은 블랙 와이번의 도축을 강하게 주장했지만, 처음 생긴 애완동물인데 그러면 쓰나.
입안으로 녹아 없어졌다는 말이 얼마나 귀엽나.
드워프들에게는 꼭 소머리 국밥을 만들어준다고 약속해 소요 사태를 진정시키고, 자기가 산채로 생가죽이 벗겨질지도 몰랐던 와이번에게는, 소 내장을 전부 허락하는 것으로 다음부터 한입을 하지 않으면 따로 고기를 챙겨준다는 교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잠시 소동이 끝나고 나디아를 통해 급랭한 소고기를 얇게 자르고, 마늘과 자른 양파, 버섯을 넣고 간장과 꿀을 넣어 전부 버무렸다.
반으로 자른 큰 오크통 안에서 버무려지는 불고기 양념.
여러 가지 다양한 재료들이 있으면 더욱 맛을 낼 수 있겠지만, 간장과 양파, 마늘 꿀 정도면 아쉬운 대로 불고기의 맛을 낼 수 있는 법.
버무린 고기는 저녁때까지 양념이 듬뿍 배어들게 기다려 주다가 병사들의 훈련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바로 식사를 준비했다.
뜨거운 솥에 대량을 밥을 안치고. 충분히 양념이 베어든 불고기를 물과 함께 볶아주면 불고기 완성!
그리고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뜨거운 밥 위에 불고기를 퍼 가득 올려주면, 이것이 불고기덮밥!
“자 한번 맛들 봐봐.”
“어디요.”
“러셀, 나, 나도 먹게 해주세요.”
모처럼 내가 한 요리를 맛본 아내들이 감탄했다.
“흐응, 맛있다.”
“하아, 러셀님 너무 맛있어요.”
“달콤한 고기라니! 러셀의 암컷이 되길 잘했다는… 헉!”
좀 더 나를 사랑하는 고귀하고 숭고한 목적이 있다던 발카리아는 불고기를 맛보고 급히 입을 다물어야 했다.
그리고 아내들의 시식을 가장한 식사가 끝나고 일과를 마친 손님들의 식사가 시작되었다.
“허어…. 고기 달구나…”
“허으… 몇 번이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밥 위에 얹은 불고기를 한입 베어문 노르웨 씨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하고, 노르딕 씨도 그 의견에 동조했다.
그리고 옆에서 신나게 불고기 올린 밥을 먹던 벨릭이 물어왔다.
“혀, 형님 저 이거 국물 좀 더 주십쇼.”
불고기 국물에 밥 비벼 먹는 것은 국룰, 벨릭 놈 불고기를 먹을 줄 아는 놈이었다.
“그래, 그릇 이리 줘봐.”
“저, 저도!”
“러셀, 나도!”
벨릭의 시작으로 여기저기서 불고기 국물 리필을 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불고기란 음식이 그렇다.
밥에 올리면 불고기덮밥으로 빵 사이에 끼우면 불고기 샌드위치로 물을 넣어 끓이면 뚝배기 불고기로 무한한 확장성을 가진 음식이라는 것.
저녁에 워낙 인기가 좋아 불고기가 많이 팔렸어도, 소 한 마리에 양파와 버섯을 섞어서 만들면 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기에 자연스레 내일 아침은 불고기 샌드위치 그리고 저녁은 뚝배기 불고기로 정해졌다.
***
러셀이 잠들자 여관의 밤이 시작되었다.
일곱의 달이 모두 하늘에서 반짝이는 한밤중 평소 같으면 조용해야 할 여관이지만 오늘은 여관의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스르륵
러셀의 품에서 잠을 자던 이실리엘이 러셀이 잠들자마자 눈을 반짝 뜨더니, 러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한쪽 벽에 걸려있는 로브를 입고 조심스레 러셀의 방 밖으로 향했다.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열고 나오자 앞에 기다리고 있던 리젤다가 이실리엘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실리엘님. 가시죠.”
“그래요. 가죠 리젤다.”
앞서가는 이실리엘과 그를 보좌하는 리젤다.
그리고 그 뒤를 러셀의 다른 아내들이 따르고 있었다.
러셀의 아내들로 이루어진 무리가 여관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어둠 속에서 스르륵 빠져나온 플로라가 그 행렬에 합류하고, 일행이 여관 밖에 다다르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다크 엘프 둘과 로리엘이 그 무리에 마지막으로 합류했다.
그렇게 러셀 아내들로 이루어진 열 명의 여자들이 향한 곳은 엘프 구역에 있는 빈집.
러셀의 아내들이 빈집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서 발카리아가 러셀의 다른 아내들은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준비는 다 끝났습니다.”
러셀의 모든 아내가 집안으로 남김없이 들어가자 곧 문이 닫히고, 발카리아의 마법이 발동되어 모든 소리와 빛이 차단되어 집이 마치 빈집처럼 변하고 말았다.
이렇게 한밤중 다들 모인 것은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
러셀이 이제 어떤 사람이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된 러셀의 아내들이었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은 발카리아 혼자뿐이었기에 이실리엘을 설득해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자,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리젤다가 일어서 다른 아내들을 향해 말하자 다들 진지한 표정으로 이실리엘에게 집중했고,
이실리엘이 입을 열어 발카리아를 향해 말했다.
“발카리아 설명해주겠어요?”
“네, 이실리엘님.”
발카리아가 일어서 러셀의 다른 아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일단 왜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설명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적극적 대처에 관해 설명한 것은 이실리엘 하나뿐이고, 이 자리는 나머지 아내들에게도 사태를 설명하고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니까 말이다.
“러셀이 어떤 존재인지는 이미 들으셨을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그간 일어났던 사태와 아기 문제는 모두 해결된 상황,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닐 것이 분명합니다. 여신들은 아주 탐욕스러운 존재기 때문이죠.”
발카리아가 여신들이 탐욕스러운 존재라고 말하자 시트라가 인상을 쓰고 리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시트라님의 말씀대로, 자신들과 계약한 여자들을 러셀의 아내로 선택받게 한 여신들은 모르겠지만, 그러지 못한 여신들은 기회를 엿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발카리아의 설명에 러셀의 아내들도 그 말이 맞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상황이 이래서 공동의 남편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녀들도 독점욕은 있었고, 더 이상 러셀의 아내가 늘어나는 것은 원치 않았기 때문.
그러니 자꾸만 이상하게 여자들이 늘어나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여신들의 농간에서 좀 더 러셀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이유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면 아직 자기 추종자를 러셀의 아내로 넣지 못한 여신들을 믿는 여자들만 견제하면 되는 걸까요?”
발카리아의 말에 플로라가 질문을 해왔다.
이미 자기를 믿는 추종자들을 러셀의 아내로 만든 여신들은 만족한 상황일 것이고, 그렇다면 아직 그렇지 못한 여신들에게 속한 여자인지만 확인하고, 그런 여자들만 견제하면 비교적 대체가 쉬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플로라의 질문에 발카리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이실리엘과 로리엘 그리고 두 다크 엘프를 가리키며 말이다.
“지금은 러셀과 저희가 여신들의 실수를 두고 조금 이득을 본 상황이지만, 여신들도 결국 여자, 질투심이 다시 고개를 들면 공평함을 요구할 테고, 그러면 지금 우리 편이라고 믿고 있는 여신들도 절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무슨 말이죠. 그것이?”
이실리엘이 발카리아의 발언을 자세히 설명하라고 하자 발카리아가 천천히 자기가 한 말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자, 잘 들으세요. 세계수에게 속한 러셀의 아내 둘, 그리고 죽음의 여신에게 속한 러셀의 첩 둘. 하나씩밖에 러셀의 아내를 만들지 못한 다른 여신들이 과연 하나로 만족할까요?”
“그, 그런?!”
“서, 설마?”
“그럼, 여기서 더 얼마나?”
11명의 아내가 18명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러셀의 아내들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파벌 안에서도 저희끼리 균형을 맞추겠다며, 인원을 맞춘다는 소리를 해대면 금방 여자들이 밀려들 것이 뻔하죠.”
발카리아의 말에 장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에 발카리아가 설명을 더 보탰다.
“더군다나 리젤다님 같은 경우에는 담당 신이 셋인데 각자 지분을 요구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 그럴 수가…”
새로운 사실을 상기시키자 리젤다가 자기 입을 가리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발카리아 무슨 뾰족한 방법이 있나요? 러셀을 그렇다고 발카리아의 레어 같은데 가둬둘 수만도 없잖아요?”
이실리엘이 침울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러자 발키리아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가둬두는 것도 능사가 아닙니다. 여신들이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든 제 레어에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다른 여자들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올 테니까요. 그러니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 하는 것이죠.”
발카리아의 말에 러셀 아내들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