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337. 불임의 원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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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실리엘의 정령력에 의한 공포가 기억 속에 각인된 학습된 공포라면 용이 뿌려대는 공포는 영혼 저 깊숙하게 각인된 본능적 공포.
중간 땅에 사는 모든 생물이 느끼는 본능적 공포가 두 다크 엘프 앞에 강림했다.
발카리아가 뿔을 뽑아 올리고 등에 날개를 드러내며 두 다크 엘프 들을 향해 공포를 조금 쏘아내며 가까워지자 둘은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히이이익!”
“로, 로리엘님! 로리엘님!”
발카리아가 다가와 울부짖는 두 다크 엘프의 머리에 손을 올리더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질문은 필요 없고, 미물들은 대답만 하는 거예요, 알겠지요?”
다시금 떨어져 나갈 것처럼 끄덕여지는 둘의 고개.
그리고 발카리아가 하늘을 향해 손짓하자, 곧 살아있는 블랙 와이번 한 마리가 밤하늘을 날아곧장 아래로 내려오더니 둘에게 콧김을 훅하고 뿜어내며 내려앉았다.
푸훅
침을 뚝뚝 흘리는 블랙 와이번에게 타이르듯 말하는 발카리아.
애완견이라도 되는 양 발카리아는 와이번의 턱을 부드럽게 긁어주더니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니, 아직 먹으면 안 돼요.”
발카리아의 말에 어쩔 줄 모르며 소리치는 다크 엘프들.
“흐에에에엑!”
“뭐, 뭘 하면 되나요!”
둘은 살기 위해서 발카리아의 발치에 엎드려 비명을 지르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 모습에 발카리아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나가 사제니까 자기 신쯤은 부를 수 있겠죠? 빨리 안 나타나면 우리 귀여운 아이의 뱃속으로 들어갈 것 같다고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인내심이 길지 않으니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발카리아의 말에 아우로라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저, 저는 성녀가 아니라서 죽음의 여신님을 직접 부를 수가 없어요!”
죽음의 성녀라면 모를까 일개 중급 사제인 아우로라가 부른다고 하여 나타날 여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죽이기 위해서 해보라는 건 아닌지 궁금할 지경의 말.
“일단 해보세요. 해보지도 않고 감히 제 말에 이유를 붙이는 건가요?”
발카리아가 톡 쏘아붙이고는 자기 와이번을 향해 말했다.
“금방 네 뱃속으로 들어갈 것 같구나. 조금만 기다리렴.”
섬뜩해지는 말에 놀라 소스라치며, 용의 막무가내 요구에 아우로라는 성물을 요구했다.
“서, 성물이 필요해요. 제, 제방에 있는데.”
중급 사제일 뿐인 아우로라는 성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성물이 있어야 부르는 시늉이라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여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앞에 툭 던져지는 아우로라의 성물.
“미리 준비해두었으니 어서 불러보세요.”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왜 이렇게 고달픈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두려움에 떨며 눈물 속에서 아우로라가 자기의 여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사제가 부른다고 여신이 올리는 만무한 일.
전장에서 죽으면 영광된 곳으로 갈 수 있겠지만, 이런 상태로 죽으면 비웃음만 살 것이 분명한 비참한 죽음 앞에 아우로라가 절망하듯 부르짖었다.
“여신님 제발. 저랑 언니랑 이러다 죽겠어요!”
그렇게 아우로라가 신성력을 끌어올려 기도하기 이어가자, 어디선가 자욱하게 이상한 안개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개가 점점 검은색으로 변하더니, 아우로라가 화살을 맞은 듯 부르르 떨고, 눈의 흰자위가 새카만 색으로 변해서는 갑자기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커튼처럼 주변에 내리깔리는 시커먼 장막과 칙칙한 죽음의 냄새가 사방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처음 뵙는군요. 러셀 저를 찾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다소 거친 방법이네요. 나도 거친 남자가 좋긴 한데…”
“발카리아 먹으라고 해.”
“네?!”
내 신호에 발카리아가 블랙 와이번에게 명령을 내리고 에우로라가 순식간에 블랙 와이번의 입으로 호로록하고 빨려 들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하고 순식간에 블랙 와이번의 입안으로 삼켜지는 에우로라.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나 여신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꿀꺽 꺼억
블랙 와이번은 트림까지 하며 아주 만족한 표정이 되었고, 그 모습에 아우로라의 몸에 빙의한 여신이 두 눈을 부릅뜨고 경악했다.
“무, 무슨 짓인가요? 이, 이야기하려고 부, 부른 게 아니었나요? 에, 에우로라를 왜 대체? 아, 역시 부족한 아이들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았나요? 그, 그래요. 저도 제 서, 성녀를 드리죠. 어떤가요? 러셀. 다크 엘프 성녀는 미색이 아주 뛰어나답니다.”
나는 인상을 쓰며 여신을 향해 통보다.
“다크 엘프들이 주변에 있으니까, 자꾸 희망을 품으시는 것 같아서 희망 같은 건 없다는 걸 알게 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모신 겁니다. 다크 엘프 둘이 근처에 맴도니, 시간이 지나면 제 아내라도 될 것 같아서 자꾸 그러시는 것 같은데, 둘 다 이 자리에서 먹어 치우고 보호구역 안에는 다크 엘프는 이제 못 들어오게 하려고요. 그 말씀을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말에 당황하는 죽음의 여신.
“러, 러셀 대, 대화를 좀 해보자고요. 지, 진정하고 이, 이렇게 화를 낼 줄은 몰랐는데….”
“발카리아 먹으라고 해.”
내 지시에 발카리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러셀! 중간땅을 그리 아끼는 것처럼 하면서 뒤로 이런 짓이라니, 아무튼 여신들은 하나같이 문제라니까. 잘 가세요. 우리 아이 뱃속 구경 잘하시고요.”
발카리아가 혀를 날름 내밀며 여신에게 작별을 고하고.
블랙 와이번이 다시 입을 벌려 아우로라를 먹으려하자 여신이 소리를 빽 지르며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아, 알았어요! 푸, 풀어줄게요!”
“언제 풀어주실 거죠?”
“지금 다, 당장 풀어줄게요. 대, 대신 조, 조건이 있어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는지 조건을 말하는 여신의 행동에 고개를 돌려 발카리아를 보며 말했다.
“발카리아 손님 가신단다. 그냥 먹여.”
“네~”
다시 와이번이 꿈틀대자 여신이 애절하게 울부짖었다.
“자, 잠깐만요 이야기 좀 들어줘요. 러셀. 알았으니까 잠시만요!”
아까와는 좀 다른 태도에 무슨말을 하려는지 기다리자 여신이 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 다른 여신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자식들을 무척 아끼는 편이에요. 엘프 따위에게 겁먹는 이런 아이들이더라도 말이죠. 우연히 러셀과 인연을 맺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는데, 러셀 뒤에 있는 그 엘프의 노예가 되어 버린 딸들을 보는 제 심정이 어떤 줄 아세요?”
여신의 말에 아내들이 깜짝 놀라 외치며 로리엘을 바라봤다.
“노, 노예요?”
“로리엘님, 정말 노예로 삼은 거였어요?”
“아까 그냥 살려고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사리나야 죄인이지만 다크 엘프들은 자유인이잖아요? 어째서?“
이실리엘이 놀라 로리엘에게 물었다.
노예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가 엘프나 다크 엘프들이니 아마도 로리엘이 그런 제도를 흉내 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로리엘 대체 왜 둘을 노예로 삼은 거죠? 노예는 나쁜 거예요.”
이실리엘의 책망에 로리엘은 내 등 뒤에서 움츠러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두, 둘이 러셀을 재우고 몰래 방으로 침입하려 해서…”
로리엘의 말이 끝나자 다른 아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죄인이 맞는군요.”
“그래요. 죄인 맞네요. 노예가 타당해요.”
“노예가 될만한 짓을 저지른 게 맞는군요. 로리엘님 잘하셨어요.”
그러자 여신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제, 제발 이 아이만이라도 첩이라도 좋으니 옆에 두어주세요. 이 아이는 다크 엘프들 사이에서는 못 살아요. 아시잖아요. 러셀. 제발, 앞으로는 이런 일 절대 없도록 할게요. 그, 그래요. 수명 수명도 제가 러셀의 인간 아내들도 다 연장해 드리겠어요. 노화! 그래요 늙은 것 그것도 제 하위 신들이 관장하는 것, 제가 다 알아서 해드릴게요.”
‘어디 그런 걸로 회유하려고! 지금 아내가 몇몇인데? 오래 살기 전에 말라 죽게 생겼는데, 눈치도 없이!’
나는 화를 버럭 내며 여신을 향해 외쳤다.
“제가 그런 조건 따위에! 넘어… 흡!”
그러자 갑자기 아내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입을 막더니 여신을 향해 말했다.
마지못해 허락한다는 듯한 목소리로.
“크흠. 여신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희가 들어드리는 게 또 맞겠죠?”
“그럼요. 여신님께서 저리 간곡히 말씀하시는데, 모른 척하는 건 또 말도 안 되죠.”
“발카리아 뱉으라고 하세요.”
리젤다가 발카리아에게 신호하자 발카리아가 블랙 와이번에게 무엇인가를 속삭이고, 와이번이 몇 번 배를 꿀렁거리는 것 같더니 곧 삼켰던 에우로라를 토해냈다.
케헥
“푸하! 허억 허억! 사, 살려주세요. 살…?”
냄새나는 액체에서 꾸물거리며 소리치는 에우로라.
여신이 에우로라를 보고 망연한 표정을 짓자.
리젤다가 대표로 앞으로 나서서 죽음의 여신에게 악수를 청했다.
“앞으로 잘 부탁해요. 여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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