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39화 (339/352)

〈 339화 〉 336. 불임의 원인 5

* * *

인간들의 시간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아침이 밝자마자 천계의 일부 여신들은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아침이 밝자마자 친 러셀파의 여신들을 향해 원성에 찬 호소가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실리엘이 세계수로 만든 활을 부여잡고 호소하고.

“어머니 세계수님 저는 왜 아이를 가질 수가 없는 거죠? 저는 시간이 많다지만 러셀은 인간인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바람의 정령들이 알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나디아가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서 정령계로 알리러 간다는 것을 간신히 붙잡아 두었는데…”

러셀의 활을 빌려 들고 로리엘이 탄원했다.

“아기…. 아. 기. 아! 기!”

그리고 다시금 신전을 방문한 리젤다에게 수인들의 종족신 셋은 정신이 쏙 빠지게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셋이요? 여섯이요? 내 참. 아니, 그럼 저번에도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잖아요? 분명히 재계약 때 이런 일이 없도록 하자고 누누이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 그냥 귀랑 꼬리 떼어주세요. 러셀도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고…”

“무, 무슨 소리니 리젤다! 우, 우리가 방법을 찾아볼게 도, 돌아가 있으렴.”

“정말 수인들의 신 맞아요? 사기나 거짓말을 관장하시는 것도 아니면서 왜 저한테 자꾸 거짓말만 하시는 거죠?”

그리고 수리아도 찾아와 신전 바닥에서 엉엉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 아기도 못 나으면 대체 저는 뭘 해야 하죠? 그냥 계약 해지해 주세요.”

“수, 수리아 이, 일단 걷는 거, 걷는 것부터, 제가 풀어 드릴게요. 수리아 산책 좋아하죠? 모처럼 러셀과 산책이라도 하면서 기분 좀 풀고 계세요. 제,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알겠죠?”

친 러셀파 여신들은 점심때가 돼서는 모두 너덜너덜해진 채로 자기들만의 모임 장소에 모여들었다.

“다들 얼굴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다들 꽤 시달린 모양이군요?”

세계수가 여신들을 바라보며 지친 표정으로 물었다.

이실리엘의 호소는 어느 정도 버틸 수 있었는데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아기만 외치는 로리엘의 탄원은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귓가에 로리엘의 ‘아기’라는 소리가 들려올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지친 세계수의 물음에 정신이 나가버릴 것 같은 얼굴로 상인과 일꾼 그리고 재화를 관장하는 하급 여신이 손을 달달 떨며 말했다.

“바, 발레리가 자기는 이제 상인도 아닌데 왜 자기가 제게 속한 것이냐고, 계약도 안 했는데 마음대로 그러는 게 어디 있냐며 따지고 들었어요. 저, 어쩌죠… 세계수님 방법을 제발.”

하급 여신의 말에 그녀를 바라보는 다른 여신들도 다들 측은한 눈빛이 되었다.

유능한 상인이라더니 계약 부분에 대해서는 정말 똘똘하게 따지는 것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친 여신들 틈에서 불타는듯한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일어선 여신이 세계수를 향해 제안했다.

“이러지 말고 우리도 공세적으로 나가는 건 어떨까요?”

불을 관장하는 여신답게 화끈한 발로나의 제안.

그 제안에 자애와 순결의 여신이 대답했다.

“하지만 신들끼리의 직접적인 분쟁은 금지되어 있잖아요?”

“그러니 직접적 말고 간접적으로 하면 됩니다. 저들이 한 것처럼.”

발로나는 친 러셀파이긴 하지만 자기가 관장하는 종족인 드워프 여자를 러셀의 아내로 만든 것이 아니기에, 이번 임신 문제에 조금 소극적인 편이었는데, 자애와 순결의 여신을 통해 러셀이 화가 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자마자 오늘 제일 먼저 달려와 기다리고 있던 상태였다.

그녀의 제안에 세계수가 물었다.

“간접적이라면 어떻게?”

“……이런 식은 어떨까요?”

발로나의 이야기를 듣고 나자 다른 여신들이 화색을 띠며 서로들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오오, 그런 방법이! 그러면 이런 방법은 어떨까요? ……이렇게요!”

“어머 훌륭하군요!”

“아, 그럼 저희도 방법을 찾아봐야겠군요.”

그리고 그날 오후, 성국의 출산과 부활을 담당하는 여신을 모시는 사제들이 기거하는 거주 구역의 불이 모조리 꺼지는 걸 시작으로, 텃밭에 농작물이 말라버리고, 물건을 사러 갔던 사제들은 상인들에게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물건을 구매하거나 구매를 포기해야 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

아침부터 여신들에게 미친 듯이 민원을 넣은 결과, 수리아는 자기의 저주받을 능력의 패널티에서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고, 나에게 우호적인 여신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간 대치만 하느라고 우리 모르게 일 년 가까이 그냥 뭉그적거리고 있는 꼴이 얄미워 여신들의 정신을 쏙 빼놓으려는 목적은 일단 달성한 상태.

하지만 제일 큰 문제는 이 일의 열쇠를 쥐고 있는 출산과 부활을 관장하는 여신이나 그 여신을 움직이고 있는 죽음의 여신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방법은 있었다, 아주 확실한 방법이 다만 아내들에게 미안해서 그렇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궁리하고 있을 때.

“러셀, 근데 협박은 잘한 것 같은데 회유는 어떻게 하죠?”

수리아가 너무나 오랜만에 두 발로 걷는 즐거움을 느끼며 내 옆에 딱 달라붙어 물었다.

“방법이 있긴 있는데,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미안한데….”

“네? 러셀이 미안하다고요?”

“무슨 방법인데요? 러셀.”

수리아와 시트라가 양쪽에서 매달리며 물어왔다.

이걸 내 입으로 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며 입을 열었다.

“원래 적을 공략하려면 대가리를 쳐야 하는 거거든. 죽음의 여신을 직접 공략하는 거지.”

“여신님을 요 저희가요? 어떻게요?”

여신을 친다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시트라.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둘을 향해 천천히 계획을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말이지…”

***

그날 밤 잠이 든 아우로라와 에우로라는 서늘한 느낌에 잠을 깨야 했다.

눈을 뜨자 온몸이 묶인 상태에서 목덜미에 느껴지는 서늘한 감촉.

“으… 응…”

아우로라가 정신을 차리고 옆을 보자 러셀의 아내 중 하나인 플로라가 자기의 목에 원형의 단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어?”

갑자기 일어난 일에 멍한 목소리를 내고만 아우로라, 곧 에우로라도 깨어나서 상황을 직시하고 주변을 향해 말했다.

“왜, 왜들 그러십니까? 뭔가 오,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로, 로리엘님을 불러주세요.”

에우로라의 외침에 어둠 한쪽에서 로리엘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로리엘님? 저, 저희를 왜?”

싸늘한 얼굴로 걸어 나오는 로리엘의 얼굴에 에우로라가 물었다.

“로리엘님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저희는 로리엘님의 노예인데 어째서?”

그러자 로리엘이 예의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들켰다.”

“예?! 무, 무엇을 들키…?!”

“서, 설마?!”

아우로라와 에우로라가 놀란 얼굴로 로리엘을 바라보자 로리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어둠 한편에서 싸늘한 표정의 이실리엘이 정령력을 끌어 올리며 두 다크 엘프를 향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히이익!”

“어, 언니!”

워낙 강대한 정령력을 가진 이실리엘이나 로리엘과 붙어있어 기절까지 갈 정도의 상태였던 둘은 이제 정신을 유지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지만, 공포를 느끼는 것이 완벽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 파들파들 떨어대며 이실리엘을 향해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사, 살려주세요. 저희는 이실리엘님, 러셀님 로리엘님의 미천한 노예. 제, 제발 사, 살려.”

“두, 두 번뿐이었습니다. 제발. 제, 제발. 한번은 로리엘님 때문에 성공하지도 못했어요!”

둘의 두 번이라는 말에 이실리엘이 눈을 날카롭게 치켜뜨고, 로리엘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말에 로리엘이 뭔가 부끄러운지 러셀의 뒤로 숨어들었다.

“그, 그렇군요. 제 반려를 감히 두 번이나…”

이실리엘의 분노에 찬 정령력이 둘을 중심으로 폭풍같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둘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를 느끼며 지렁이처럼 바닥에서 꿈틀대야 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을 떨어대며 사죄하는 두 다크 엘프의 귓가에 이실리엘의 달콤한 음성이 흘러들었다.

“살고 싶은 가요?”

이실리엘의 질문에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는 둘.

온몸을 뱀같이 핥아대는 이실리엘의 정령력에 영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둘은, 무엇이라도 좋으니 이 상황에서 일단 빠져나가는 것을 원했기에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둘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잘 할 수 있겠지요? 저희가 지금 둘 때문에 무척 곤란한 상황이라서 말이죠.”

“저, 저희 때문에요?”

“어, 어째서 저희 때문에?”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최근에는 로리엘의 말만 열심히 들었는데, 자신들 때문에 러셀의 아내들이 곤란해졌다는 말에 두 다크 엘프가 영문을 모르고 되물었으나, 이실리엘은 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걸어 나왔던 장소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어 나온 것은 얼마 전 러셀의 첩이 된 여자.

아니, 용 발카리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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