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7화 〉 334. 불임의 원인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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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 한적한 마을 길을 걸어 시트라가 신전 근처에 도착하자, 마침 잠이 오지 않아 신전 입구 근처를 산책하던 추기경과 만날 수 있었다.
“시트라? 이 밤중에 무슨 일 인가요? 혹시 러셀님에게 또 무슨 일이라도?”
로브를 뒤집어쓰고 다가오는 사람이 시트라인 것을 확인하고는 추기경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뇨 추기경님, 어머니를 뵙고자 왔습니다.”
“예? 어머니를 이 밤중에?”
밤중에 갑자기 찾아와 여신인 어머니를 찾는다는 시트라의 말에 추기경이 되물었다.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러셀님이 꼭 물어보라고 하신 것이 있거든요.”
“러셀님이요?”
“이렇게 밤중에 찾아올 정도면 무척이나 급한 일 같군요. 어서 가보죠.”
그렇게 추기경의 의문과 안내 속에 신전 안으로 들어선 시트라는, 곧바로 신전 중앙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어머니를 부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그러자 얼마 안 돼 한밤중 어둠을 뚫고 한 줄기 빛이 신전으로 쏟아지고, 잠시 후 시트라가 그 빛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공간에서 눈을 뜬 시트라.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공간은 뭔가 조금 바뀐 분위기였다.
예전에는 그냥 순백의 공간일 뿐이었지만, 지금은 그 순백의 공간에 옆으로 누울 수 있는 황금의 옥좌가 하나 자리하고 있었고, 그 의자에 자애와 순결의 여신이 자기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머니?”
“시트라 어서 와요. 아, 아침에나 올 줄 알았더니. 빠, 빨리도 왔군요.”
뭔가 상당히 초조하고 당황한 듯 보이는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찾은 이유는….”
시트라가 어머니를 향해 자신이 어머니를 찾은 이유를 이야기하려 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다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먼저 말씀을 시작하셨다.
“러셀이랑 하는 이야기는 이미 다 들었습니다. 가문의 신으로 발로나를 택한다는 말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마 러셀이 화도 나고 제가 이유를 이야기해주지 않을까 봐 그런 것 같으니까요.”
여신의 말에 시트라가 자기의 여신을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바라봤다.
아마 아까 여신의 능력으로 막을 펼칠 때, 자신을 통해 러셀과의 대화를 듣고 있으셨던 모양이었다.
그런 시트라의 표정을 보며 여신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기, 그렇죠.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제가 둘의 아기를 얼마나 바랄 것 같습니까? 아마 둘보다 제가 더 바랄걸요? 그런데 이걸 러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여신의 목소리에 시트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러셀이 생각하는 게 정말 맞나요?”
시트라의 물음에 여신이 옥좌에서 내려와 시트라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조심스레 대답했다.
“일단, 마, 맞아요.”
여신의 대답에 자기의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경악하는 시트라.
“어, 어떻게! 그럴 수가. 저는 그럼 아니, 저희는 그럼 평생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건가요?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죠? 시, 신님들이 어째서 그렇게 가혹한! 인간의 삶은 아주 짧은데!”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소리치는 시트라.
그녀의 마음속에 넘쳐나는 좌절, 절망, 실망 등이 여신에게 전해지자 여신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처녀였던 자애의 여신은 아이를 낳은 경험이나 계획이 없는지라 러셀의 반응만을 걱정했지만, 실제로 현재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사자인 러셀의 아내들과 자기의 성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를 생각 못했던 것.
러셀이 반응이 그저 분노 정도라면, 평범한 여자가 자신이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접했을 때 그것이 얼마나 충격으로 다가올지를 이해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트라의 반응에 당황한 여신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시트라를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지, 진정하세요. 시트라. 제가 다 서, 설명할게요.”
“무, 무슨 설명이요?! 대체 여자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한 거죠?!”
시트라의 분노와 절망감이 진득하게 흘러나와 여신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 조심스럽고 얌전한 딸의 믿을 수 없는 반응에 여신이 시트라를 붙잡고 그녀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제가 그런 게 아니에요. 이야기를 좀 들어봐요. 시트라.”
“어머니가 그런 게 아니라도, 다른 신분들이 그렇게 하실 때 어머니께서 막으셨어야죠! 어머니는 신이잖아요!”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문제가 있답니다. 잠시만 진정해보세요. 그래요. 일단 앉죠. 자, 앉아서 제 이야기를 들어봐요. 제가 모두 설명해 드릴게요.”
여신이 빌다시피 하며 시트라를 진정시켜 강제로 옥좌에 앉혔다.
“자, 거기 앉아서 일단 들어봐요. 알았죠?”
그리고 옥좌에 앉아 시근거리는 시트라를 향해 여신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머리를 짚으며 자기의 속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요….”
러셀이 최초 이 세계에 도착한 후, 여신들의 분쟁으로 러셀이 피해를 보기 시작하자 여신들은 모여 협정을 맺었다.
직접적으로 나서지 말고 러셀이 움직이고 인연을 맺는 대로 만족하기로.
그러나 문제는 러셀이 30세가 될 때까지 어떤 여자와도 인연을 맺지 않은 것.
나이는 먹어가 육체는 늙어가는데, 러셀의 이번 생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버릴 수 없었던 여신들은, 러셀의 눈이 높은가 싶어 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러셀에게 붙여주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선발된 것이 이실리엘. 그녀는 세계수의 힘과 약간의 우연으로 러셀의 반려가 되는 데 성공했지만, 문제는 둘의 언어 문제로 헤어지고 만 것.
그때 등장한 것이 리젤다와 두 다크 엘프였다.
러셀의 마음을 얻은 리젤다와 몸을 먼저 얻은 다크 엘프들.
여기서 큰 문제가 발생했다.
러셀의 환생 한번을 그냥 날려버리는 게 아까워 누구라도 그의 짝이 되면 다 같이 축복하기로 했던 여신들이었고, 리젤다는 러셀의 반려가 될 것이 확정적이기에 그녀에게 축복하는 데는 다들 동의했지만, 문제는 다크 엘프.
다크 엘프들처럼 러셀의 짝이 되지 않고 러셀에게 단물만 취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였다.
당황한 여신들은 처음에는 대화로 이 문제를 풀어보기로 했다.
“다크 엘프들에게도 축복을 주어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의 협정은 분명 러셀의 반려라고 명시되어 있어요.”
“반려라는 것은 아주 포괄적인 의미로 육체의 교류를 가지는 남녀를 포함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결혼도 하지 않고 러셀의 처음을 가져갔다는 사실에 자애와 순결의 여신이 분노해 회의장이 떠나가라 외쳤다.
“신성한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단물만 취했다는 것은 창녀나 다름없는 일입니다!”
그녀의 눈에는 결혼해서 순결을 잃는 것도 좋게 보이지 않고, 짐승도 관계하면 짝을 맺는데, 쾌락만을 위해 소중한 러셀을 순결을 잃게 한 다크 엘프들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놀란 다크 엘프의 여신인 죽음의 여신이 분노해 외쳤다.
“뭐라고요? 제 딸들이 창녀!? 다시 말해보세요.”
하지만 분노한 죽음의 여신의 외침에 대답한 것은 세계수.
그녀가 나서서 죽음의 여신을 향해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감히 자기 딸인 이실리엘의 반려 러셀의 처음을 가져간 도둑년들의 어머니인 죽음의 여신이 얄미웠기 때문이었다.
“다크 엘프들은 원래 문란하지 않던가요? 당신처럼?”
“뭐요 말 다했나요! 지금.”
회의장에 신성력이 끓어 넘치고 여신들이 분노해 서로에게 소리치며, 첫 회의는 그렇게 결렬되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러셀을 그냥 두기로 했던 협정이 변경되어 러셀에게 이실리엘을 붙여주고 자연적으로 그의 여자가 된 리젤다 같은 더 늘어나는 러셀의 반려를 축복하기로 했던 협정이, 여신들도 모르는 사이 불화로 금이 가고 말았던 것.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을 인지한 간 큰 하급 여신 하나가 계산 빠르게 움직였다.
상인과 일꾼 그리고 재화를 관장하는 하급 여신이 자기 권능 아래 있는 붉은 머리의 가슴만 큰 인간 여자를 러셀의 아내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
일꾼의 상징인 개미를 사막에 폭주시켜 상인의 딸이었던 여자를 러셀이 있는 곳까지 밀어 넣은 그녀의 치밀함은 다른 여신들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행동은 곧 무한 경쟁의 시대를 열어버리고 말았던 것.
요신들의 폭주하기 시작하자 금이 간 조약의 틈은 단숨에 박살이 나버리고, 러셀의 아내 자리에 자기들의 영향력 아래 있는 인간이나 다른 종족들을 밀어 넣기 위한 무한 경쟁이 도래한 것이었다.
“그럼 저희가 러셀을 좋아한 게 다 조작된 거라고요?”
“아뇨, 아뇨! 무슨 큰일 날 소리를! 저희는 그저 서로를 만나게 하는 정도, 서로를 선택한 것은 각자의 선택입니다.”
여신의 말에 시트라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시금 여신의 말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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