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36화 (336/352)

〈 336화 〉 333. 불임의 원인 2

* * *

“그러니까 말이지 이게 좀 이상한데, 보통 인간 부부는 300일 정도 사랑을 나누면 높은 확률로 여자가 임신해야 정상이거든?”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는 발카리아.

역시 지혜로운 용은 여러 가지 면에서 해박했다.

“아, 그래요. 그래요. 아프지 않고 다른 문제가 없다면, 300일 정도 교미하면 인간 암컷들은 보통 새끼를 치죠. 그 정도 기간이면”

“어, 그, 그래… 교, 교미, 새끼….”

뭔가 짐승 대하듯 말하는 발카리아의 단어 선택에 조금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실리엘과 리젤다 발레리 같은 경우에는 나랑 결혼한 지 300일이 넘었는데도 임신하지 않는 거야. 한 명뿐이라면 모르겠는데 셋이나 동시에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고, 또 발카리아는 용인데도 단숨에 내 아기를 가졌잖아? 그러니 뭔가 좀 이상해서.”

내가 뭔가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끝내자 발카리아가 자기 턱을 잡더니 고민하는 표정으로 동의했다.

“그러네요. 엘프 하나, 인간 둘이라서 종족도 전혀 다르고, 더군다나 높은 엘프는 질병 같은 것도 잘 걸리지 않거든요. 이쪽 세계에 반만 걸친 존재라 임신이 조금 힘들긴 하지만 안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그 인간 둘 중에 리젤다라면 그 고양이 수인 년 아니, 고양이 분 마, 맞죠?”

쇠줄에 묶여있던 앙금이 조금 남아있는 듯했지만, 발카리아는 리젤다가 누군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응, 수인들의 신에게 능력을 받아서, 인간인데 능력을 쓸 때만 고양이가 된다고 했지만.”

기억을 잃었을 때 리젤다가 밤에 변신한 모습을 보여주며, 여신을 협박해 능력을 뜯어내고 내가 아주 좋아할 거라는 말에 의심치 않고 계약 연장했다고 했던 고양이 폼.

리젤다의 고양이 모습이 떠올라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고, 내 이야기를 들은 발카리아가 자기 턱을 잡고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수인들의 신이라면 번식에 대한 권능도 있어서, 새끼를 많이 쳐야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새끼를 못 가진다는 건 확실히 아주 많이 이상하네요. 셋 다 문제가 있지 않으면 러셀한테 문제가 있는 것인데, 하지만 저는 임신을 했으니 혼란스럽다 이거군요? 그렇죠?”

역시나 용답게 쫙 풀어 정리까지 담백한 발카리아의 말.

“뭐, 나한테 의심스러운 거라면 한가지 뿐인데.”

“뭔가요 그게?”

“그게 말이지……”

일단 아내들에게 이야기하기에 앞서 발카리아에게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내가 이세계에서 온 영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 그렇게 된 거야.”

내 말이 끝나자 발카리아가 부릅뜬 눈으로 외쳤다.

“이, 인간들의 시작! 고, 고대인!”

“응?”

“여, 역시 조금 의심하긴 했지만, 러셀이 고대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니. 아아… 고대인의 암컷이 되다니, 저 너무 행복해요. 러셀. 그래요. 제가 인간의 아이를 가진 것도 그러면 당연히 이해되는 부분이에요. 내 안에 고대인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니. 이 아이는 용으로 태어난다면 분명 대단한 용이 될 거예요!”

발카리아는 자기 배를 만지며 한껏 고무된 표정을 짓더니, 내 품 안으로 안겨들어 나를 끌어안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고대인이 뭐야?”

내 물음에 발카리아가 손바닥을 치더니 품속에서 빠져나와 대답했다.

“아참, 러셀에게 설명해주어야지! 고대인은 이 땅에 처음 나타난 인간들을 말하는 거예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설로만 남아있는데, 내가 그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고대인의 암컷이 되었다니, 다른 흑룡들이 알면 무척이나 부러워할 거예요!”

설명하다 말고 다시금 안겨드는 발카리아.

그녀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내 얼굴을 마구 입을 맞추며 나를 자기 품으로 끌어안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는 손과 발로 나에게 마치 코알라처럼 달라붙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말이다.

“발카리아 아, 알겠는데 우리 이야기 중이었잖아 이건 이따 밤에 하고 말이지…”

“아참, 너무 기뻐서.”

말로 발카리아를 간신히 달래자, 발카리아가 품 안에 든 나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더니 말을 이었다.

“러셀이 고대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러셀의 문제는 아니에요. 이건 아마 걔들 짓인 게 분명해요.”

“걔들?”

“저 위에서 항상 도도한 척하는 그것들 ‘신’ 말이죠.”

“신들이?”

어렵게 새끼 치려고 나를 데려왔다고 했는데, 반대로 못 치게 한다는 것은 모순이기에 발카리아의 결론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발카리아가 이어서 설명을 추가했다.

“저야 용이라 이 땅에 가장 강한 존재이고, 이 중간 땅에서만큼은 신보다 강한 존재. 그러니 저는 어느 신에게도 속한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 러셀의 아이를 배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신들 아래 속해있는 인간이나 엘프 수인들은 신들이 정한 법칙이나 금제를 따라가는 존재들이니 신들이 번식을 못하게 하면 방법이 없을 거예요.”

“아니, 세계수가 나를 이 땅에 다른 종족들의 영혼을 풍성하게 하려고 데려왔다고 했는데?”

내가 발카리아의 말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하자 발카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러셀, 엄청 순진하군요? 그것들 말은 전부 믿으면 안 돼요. 그것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요. 암컷들끼리만 있어서 그런지 매일 저희끼리 싸우기도 하고. 혹시 모르죠. 서로 견제하여서 임신을 못 하게 했을 수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싸워? 견제? 암컷들?’

발카리아의 말이 머릿속에 꽂히듯 박혀 들고,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다.

세계수와 시트라를 통해 들은 자애와 순결 여신에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 중,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신들 사이의 분란.

세계수가 말했던.

‘다른 능력을 원했을 때는 격이 맞지 않았습니다. 러셀 같이 보다 높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존재가 전사들의 신이나 궁수의 신, 암살자의 신 따위의 하위 신들에게 능력을 받다니요. 최소 종족신이나 그 이상은 되어야 합니다. 지역이나 작은 개념을 다스리는 신들이 러셀을 차지한다니, 그건 저희 높은 신들이 결코 용납…’

그리고 시트라가 말했던.

‘아마 그곳도 이곳만큼 복잡한 곳인가 봐요. 어머니가 다른 여신들 때문에 무척 힘들어하시는 것 같았거든요.’

“이거 설마?!”

머릿속에서 뭔가 뻥 하고 터져나가고 활화산처럼 분노가 솟아올랐다.

15년 동안 개같이 굴림 당한 것도, 저희끼리 처 싸운 영향 때문인 건 아닐까?

의심이 의심을 낳고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심과 불신, 분노가 한 그릇 비빔밥처럼 비벼지기 시작했다.

“발카리아 잠깐만 나 시트라 좀 만나고 올게. 금방 올게, 알았지?”

“시트라라면 그 성녀 말이군요? 아 그래요! 그녀를 통해서 확인해보면 되겠군요. 알겠어요. 어서 다녀오세요.”

발카리아를 두고 재빨리 시트라의 방으로 향했다.

시트라는 수리아와 방을 같이 쓰고 있기에,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수리아와 시트라 둘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문으로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고 둘이 깜짝 놀라 내 이름을 불렀다.

“러셀님? 발카리아는 어쩌고?”

“러셀님 저희 방에는 무슨 일로?”

그녀들의 물음에 대답하기보다는 우선 시트라에게 물었다.

“시트라 신들이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면 못 보게 하는 수는 없나?”

“예? 갑자기 무슨? 불가능해요. 어머니 빼고 다른 분을 못 보게 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어머니의 권능으로 감싸면, 다른 분들이 못 보시는 대신 어머니는 좀 더 유심히 보시겠지만.”

“그래? 그건 된단 말이지? 그럼 지금 그렇게 해줄 수 있어?”

“알겠어요.”

시트라가 곧 자기 권능을 끌어올려 방안을 빛의 장막 같은 것으로 휘감자 반원 모양의 돔 안에 나와 수리아 시트라가 들어간 모양이 되었다.

그리고 그 돔 안에서 둘을 향해 대화를 시작했다.

“잘 들어 둘 다, 아무래도 임신을 못하는 건 위쪽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위, 위쪽이요?”

“위라면?”

내 말에 천장을 바라보는 리젤다와 수리아 그리고 잠시 후 시트라가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설마?”

“그래, 그러니까 시트라는 신전으로 가서 장모님이랑 대화를 해봐. 무슨 일인지 안 알려주려고 하면, 내가 화가 나서 우리 집안의 신으로 발로나님을 모실 거라고 그래.”

“바, 발로나님을요?”

“응,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야기해주겠지.”

여신들이 서로 견제가 심한 모양이니 협박 방법을 시트라에게 전수해 주었다.

‘그나마 제일 연락하기 쉽고 우호적인 자애의 여신이니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겠지?’

그리고 혹시 시트라가 실패하면 누구를 보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옆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수리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수리아가 자기 발을 미끄러운 바닥에 슥슥 미끄러트리며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그런 수리아를 바라보자 떠오르는 번뜩이는 생각.

“수리아 혹시 우는 척 잘해?”

“예? 우는척이요?”

“응, 슬프지는 않은데, 억지로 눈물 좀 빼면서… 슬픈 척?”

“어, 아버지나 오빠들 살아계실 때 해본 적은 있지만… 하…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수리아.

나는 수리아를 향해서 제안했다.

“수리아도 그럼 시트라랑 신전에 같이 가서, 계약한 신이랑 대화를 한번 나눠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제가요? 저는 성녀가 아닌데 될까요?”

“리젤다도 했다는데 안될 건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방법은 가르쳐 줄게.”

‘뭐 하는 김에 밀린 민원도 좀 해결하자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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