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35화 (335/352)

〈 335화 〉 332. 불임의 원인 1

* * *

발카리아가 아프다는 이야기에 우리 집안의 주치의 시트라가 발카리아가 있다는 1층으로 향하고, 잠시 멈췄던 심문이 다시 진행되었다.

그러나 로리엘이 나를 좋아한 것이,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누그러진 아내들.

아마도 자기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일 년 가까이 마음고생을 한 로리엘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 안타까움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러셀, 로리엘이 그럼 그렇게나 러셀에게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 몇 번이나 표현했는데, 여태까지 몰랐다는 말인가요?”

“보통 친구의 일이라거나 하면서 질문하면 자기의 일이고, 그것까지 알고 있었다고 했으면서, 우리 마을에 로리엘님이 좋아할 만한 남자가 러셀 말고 어디 있다고 대체 그걸 다른 남자라고 오해한 거죠?”

“세상에 일 년이나 로리엘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고 힘들었을까? 러셀이 눈치 못 채는 게 얼마나 힘들었으면, 로리엘님이 아내라고 거짓말까지 하셨겠어요.”

의도하긴 했지만, 비난의 화살은 나에게로 맹렬하게 퍼부어졌다.

‘그래 모두 나에게 쏘아다오.’

나는 오늘 이 집안의 화살받이.

쏘아지는 화살이 내게로 꽂힐 때마다 내 가슴은 너덜너덜 해져갔으나 로리엘의 표정은 조금씩 기쁨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한 눈빛도 달콤함의 농도가 치솟고 있었다.

이젠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농축된 사탕 같은 것이 우수수 쏟아질 것 같은 그런 눈빛.

한 엘프에게 열렬한 사랑의 눈빛을 받으며 그리고 또 다른 아내들에게 눈총을 받으며 나의 공개 처형식이 천천히 진행되어갔다.

한참의 공개 능욕이 끝나고 이실리엘이 아내들을 둘러보더니 입을 열어 질문했다.

“로리엘을 받아들이는 데 혹시 반대하시는 분 있나요?”

“로리엘님이 항상 저희의 안전을 위해 밤에도 순찰을 도맡아 하시고, 암살자 사건 때도 외부를 철저히 지키셔서 저희가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죠. 사소한 실수 정도는 눈감아 드리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발카리아에게는 맹렬한 분노를 내비쳤지만, 로리엘에게는 아주 관대한 리젤다의 발언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로리엘은 같이 생활한 지 제일 오래된 친구이기도 하고, 무뚝뚝하고 뭔가 말을 걸어도 단답형으로만 말하고 대화 자체도 짧은 편이지만,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마을과 여관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제일 이바지한 바가 큰 인물이니 말이다.

그런 이유로 공개 처형 전 특별 사면을 받은 로리엘.

그러나 역시 이 특별 사면에서도 나는 제외였다.

“하지만 러셀은 아무리 기억을 잃었다 해도 아내들이 잠든 사이에 몰래 밖으로 향했다니, 뭔가 벌을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아내들은 반응하지 않았지만, 내가 잠든 자기들의 곁을 떠났다는 사실에 분노했던 리젤다와 발레리, 애니는 리젤다의 나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는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한 달 내내 쥐어짜이는 형벌 같은 걸 당하려나 생각하며 걱정했지만, 그러나 그때 내방 입구로 사색이 된 시트라가 놀라 까무러칠 것같은 얼굴로 뛰어 들어와 우리를 향해 소리를 쳤다.

“이, 이, 이실리엘님, 바, 바 발카리아 씨가!”

집중되는 시선.

좀처럼 사소한 일에 반응하지 않는 시트라가 저렇게 놀란 표정을 지으니, 방 안의 아내들이 화들짝 놀라 시트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리고 아마도 쇠줄에 매어둔 장본인인 리젤다와 수리아가 그 모습에 침을 꿀꺽 삼키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또한 애니도.

‘아니, 애니야. 발카리아가 그래도 용인데 너는 왜?’

애니는 대체 뭔 짓을 했을까 궁금했지만, 긴장한 아내들과 내 궁금함 따위는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말이 폭탄처럼 방안에 떨궈졌다.

“발카리아 씨가 매우 많이 아픈가요?”

이실리엘의 질문에 떨어진 탄도탄 급 폭탄의 정체는….

“이, 이이이이이이이이, 임신했습니다!”

시트라에 한마디에 내 방 안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너무 무거워 짓눌릴 것 같은 그런 무거운 공기.

중력이 갑자기 가중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화, 확실한가요?”

좀처럼 당황하지 않는 이실리엘 조차 당황해 말을 더듬는 모습으로 시트라에게 되물었다.

“예, 화, 확실합니다.”

시트라의 확신 어린 말에 더욱더 가중되는 중력.

“이건 뭔가 좀 이상하군요…”

이실리엘의 입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

불임.

불임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1년간 해도 임신이 되지 않을 때를 지칭하는 말.

별도의 피임이 없을 때 3개월 안에 50%, 6개월 안에 70%만이 정도 임신이 되는 것이 보통인 일이라는 것이 전생의 상식.

그러니 다른 아내들은 모르겠지만 결혼한 지 제일 오래된 이실리엘이나 리젤다, 발레리가 임신하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아무래도 아내가 많다 보니 집중이 되지 않아 기간이 좀 더 걸릴 수 있으나. 그런데도 다른 아내들 모두 임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아내들이 많으니 모두가 불임이어서 마법같이 임신이 안 될 리도 없으니 그러면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하는데, 내가 이계에서 온 영혼을 가지고 있어도 몸은 이쪽 세계의 몸이고, 예전에 만났던 세계수도 아니라고는 했지만,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마치 내가 번식을 목적으로 끌려온 듯했기에 내 몸에 문제가 있을 리도 만무했다.

내가 불임이면 신들의 노력은 허사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더군다나 발카리아가 임신했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

그런데도 인간이나 엘프인 다른 아내들이 1년 500일인 이곳에서 지구로 따지면 300일이 넘게 1년간이나 피임이 없었는데, 아무도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이실리엘의 말대로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단 이 충격적인 소식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내들과 다 같이 1층으로 향하자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던 발카리아가 나를 보며 반색했다.

“러, 러셀!”

하지만 공개 처형 중간에 다 같이 내려온 상황, 더군다나 발카리아는 아직도 아내들에게 눈총을 받는 상태.

내가 다른 아내들의 눈치를 보자 이실리엘이 나를 향해 말했다.

“러셀, 그래도 우리 가족 중, 첫아기니까 러셀이 축하해주고 오늘은 발카리아를 잘 돌봐 주세요. 알겠죠?”

‘역시 이것이 첫째 마님의 위엄인가?’

“그, 그래 알았어.”

모처럼 이실리엘의 허락으로 발카리아를 데리고 내방으로 향했다. 발카리아를 보는 아내들의 눈빛은 뭐랄까 부러움과 질투와 수많은 감정이 교차한 듯한 그런 눈빛.

어딜 다친 것은 아니지만 발카리아를 조심스레 부축해 침대에 앉히자 발카리아가 나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시, 신기해요. 러셀. 인간과의 사이에서 알이 생기다니. 아마도 러셀이 영혼이 격이 높고 아름답기 때문이겠죠? 용을 임신시킬 수 있는 영혼이라니. 내 안에 러셀의 일부가 들어와 있다니.”

발카리아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감격으로 가득 찬 목소리.

“아, 알?”

하지만 알이라는 말에 뭔가 뇌가 갑자기 멍해져 버리고 말았다.

“아, 알이라고?”

“그래요, 알. 저는 드래곤이니 알을 낳는 것이 당연한 것이에요.”

뭔가 당연한 듯이 말하는 발카리아.

하긴 여기는 교잡이나 혼혈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렇다면 발카리아가 아기를 낳으면 무조건 용이거나 인간이라는 말인데.

“그, 그럼 태어나는 게 용인가?”

“그건 알을 낳고 알이 깨어나 봐야 알 것 같아요.”

“품어주기도 해야 하나?”

“아뇨, 마나를 듬뿍 먹이며 소중하게 키워야 하는 거예요.”

‘아니, 무슨 박혁거세도 아니고.’

자기 배를 미소를 지으며 문지르는 발카리아.

그 모습을 보며 골똘히 생각했다.

‘발카리아는 대체 어떻게 임신했을까?’

우리는 완전히 종족도 다르고 심지어 용과 인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인데, 내가 아무리 원종의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뭔가 이상했다.

아내들이 임신한 것도 이상하지만 발카리아가 임신한 것은 더 이상한 일.

용과 인간이라는 뛰어넘을 수 없는 경계가 우리 둘 사이에 있었으니 말이다.

“발카리아, 나는 발카리아가 임신한 게 너무 이상한 데 이게 가능한 거야? 아니, 물론 발카리아가 임신해서 좋긴 한데, 아기는 귀엽고 예쁘니까. 그런데 발카리아는 그 위대한 용이고 나는 사람이니까 말이지.”

내 말에 발카리아가 뭔가 분노한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요! 저는 위대한 용! 이곳 인간들은 러셀 빼고 전부 무례해요. 역시 저를 위대한 용이라 생각해주는 건 러셀뿐이군요.”

“그, 그래.”

유부남을 보쌈하다가 아내들에게 제압당한 위대한 용인 발카리아에게 혹시라도 아는 것이 있나 싶어 물어보기로 했다.

원래 판타지에서 가장 지혜롭게 표현되는 것이 용이니 어떤 정보라도 가지고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발카리아 그, 세계에서 가장 지혜로운 것이 용이니 발카리아가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을까 싶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지….”

내 물음에 발카리아가 한껏 고양된 표정을 지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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