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33화 (333/352)

〈 333화 〉 330. 기억을 되찾기까지 4

* * *

아침 일찍 아내들이 가져온 음식을 먹고 답답함에 방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자, 방문이 열리더니 쇠사슬로 묶인 발카리아가 앞으로 툭 밀리듯 방으로 넘어질 듯 밀려 들어왔다.

마치 애벌레처럼 전신을 묶이고 목에 강아지 같은 목줄을 한 발카리아.

그녀는 그동안 잘 씻지도 못했는지 조금 꾀죄죄한 모습이었다.

“러, 러셀!”

오십일만에야 보는 발카리아.

그녀가 애타는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어? 바, 발카리아?”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외침에 깜짝 놀라 대답하자 발카리아가 내 품으로 뛰어들었고, 발카리아가 내 품으로 뛰어들자 들려오는 쇠사슬 소리.

­촤아악!

­쿠당탕

그리고 그 소리와 함께 발카리아의 몸이 뒤로 당겨지며 바닥을 굴렀다.

“크윽”

“누가 러셀에게 다가가도 좋다고 했죠?”

매서운 눈동자로 쇠사슬을 낚아채며 발카리아를 향해 화를 내는 둘째 아내 리젤다.

마치 강아지처럼 목의 사슬이 당겨진 발카리아는 내 품으로 뛰어들려다 바닥을 구른 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슬퍼했다.

“러셀….”

“괘, 괜찮아 발카리아?”

내가 발카리아의 모습에 그녀를 걱정하며 그녀를 향해 다가가자 리젤다의 뒤로 이실리엘과 시트라, 수리아, 애니, 발레리, 플로라까지 따라 들어와 방안이 꽉 차버렸다.

그리고 맨 뒤 방 밖에서 기웃거리며 얼굴을 보이는 로리엘.

조금 과격한 리젤다의 행동에 발카리아를 살피며 리젤다를 향해 말했다.

“리젤다, 그, 무, 묶은 건 풀어주는 게 좋지 않을까?”

“도망가면요?”

리젤다의 매서운 목소리.

리젤다의 물음에 발카리아를 보고 되물었다.

“발카리아 도망가지 않을 거지 그렇지?”

발카리아를 향해 다정하게 묻자 그녀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무, 물론이에요 러셀 저, 절대로 도망가지 않아요. 펴, 평생 러셀 옆에서….”

­촤악!

“케흑!”

다시 한번 당겨지는 쇠사슬.

발카리아의 목이 조여져 말이 끊겼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고, 그것이 리젤다를 화나게 한 것 같았다.

내가 부탁한다는 표정으로 리젤다를 올려다보자, 리젤다가 발카리아를 노려보다 금세 눈매를 풀고는 대답했다.

“좀 더 혼나야 하는데, 어차피 러셀의 기억도 되돌려야 하고, 러셀이 그러자고 하니, 그럼 풀어주겠어요.”

­촤르르르륵

곧 발카리아의 몸을 묶고 있던 쇠사슬과 목줄이 풀리고, 눈치를 보던 발카리아가 다시 내 품으로 뛰어들었다.

시큼하게 올라오는 냄새.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살짝 살펴볼 수 있는 모습이랄까?

발카리아가 내 품에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러, 러셀 흑….”

“그, 그래. 고생이 많았나 보네.”

나는 발카리아를 다독거리며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이실리엘, 미안한데 그 발카리아도 반성하고 있다니까 그만 용서해 주는 게 어떨까? 기억 잃은 내가 바람을 피운 것같은 상황에서 이런 말 하긴 미안한데, 기억을 잃었다 해도 일단 나도 좋아서 그런 것도 있고 내 책임도 어느 정도 있는 것도 같고…”

내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아내들을 향해 의향을 묻자 이실리엘이 한숨을 쉬더니 대답했다.

“후… 러셀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발카리아는 잘못이 크니 정실은 절대 안 됩니다. 발카리아는 첫 번째 첩으로 만족하세요. 알겠나요?”

“아, 알았다! 고맙다 놓은 엘프여!”

“알았다? 이실리엘임에게 알았다? 첩실 교육은 단단히 해야겠어요! 여러분.”

리셀다가 매서운 눈으로 아내들에게 소리치자 발카리아가 금세 기가 죽어서는 다시 대답했다.

“아, 알겠습니다. 흑…”

발카리아가 아내들에게 끌려 나가 목욕하고 새 옷을 입고 한참 후에야 방으로 되돌아왔다.

옷이 없어서 그런지 그녀가 가운만 입고 방으로 들어서자 물기 어린 그녀의 윤기 나는 머리카락과 몸매를 보니 꿀꺽하고 침이 삼켜졌다.

­꿀꺽

그러자 나를 보고 찌릿하고 눈치를 보는 리젤다.

“아, 하하…”

리젤다의 시선에 어색하게 웃자, 발카리아가 다가와 침대에 앉더니 내 몸을 이끌어서는 자기의 부드러운 허벅지 위에 내 몸을 뉘었다.

자연스럽게 끌려가듯 뉘어지는 내 머리.

리젤다의 화난 음성이 들려왔다.

“꼭 이렇게 해야 하나요?!”

그러자 이실리엘이 리젤다를 다독이며 말했다.

“리젤다 이제는 발카리아도 한식구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해주세요.”

역시나 내 첫째 아내 이실리엘은 엘프라 그런지 마음이 너그러운 모양이었다.

마음속으로 이실리엘의 관대함에 감사할 때 귓가에 발카리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러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면 기억이 되돌아와 있을 거예요. 깨어났을 때 잠깐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데, 마음을 가라앉히면 되니까 혼란스러우면 깨어나 제 눈을 바라보세요. 알겠죠?”

“응, 알겠어.”

발카리아에게 알았다고 대답하자마자 갑자기 티비 전원이 꺼지듯 정신을 잃고 말았다.

***

러셀이 발카리아의 허벅지 위에 머리를 누이고 정신을 잃자 곧바로 발카리아의 주변에 여러 가지 빛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 발카리아의 입에서 흘러나오고, 그 빛들이 러셀의 머릿속과 주변을 맴돌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러셀과 발카리아의 모습을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러셀의 아내들.

한참을 다 같이 서서 바라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듯 보이자, 러셀의 아내들은 다들 러셀의 방 여기저기에 앉아 러셀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된 발카리아의 마법은 점심이 지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잘되고 있는 걸까요?]

리젤다가 참지 못하고 시트라에게 묻자 시트라가 조심스레 속삭였다.

[네, 달리 다른 짓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러셀의 영혼이 무척이나 안정되어 보여요.]

혹시 몰라 신성력을 이용 러셀을 예의 주시하던 시트라가 그렇게 말하니 다들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있는데 발카리아와 러셀의 주변을 감싸던 빛들이 조금씩 사라지는가 싶더니 곧 발카리아가 러셀의 아내들을 향해 말했다.

“자, 잘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러셀은 언제 깨어나는거죠?”

“기억은 되돌아왔나요?”

러셀과 발카리아를 둘러싼 시선 속에서 발카리아가 러셀의 귓가에 천천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러셀, 이제 깨어날 때예요. 러셀?”

발카리아의 나직한 부름에 러셀의 눈꺼풀이 조금씩 떨리는가 싶더니, 곧 그 떨림이 큰 움직임으로 바뀌고 러셀의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셀의 눈이 반짝하고 떠지자 러셀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휘젓다가, 벌떡 일어나며 발카리아와 머리를 부딪혔다.

­빡

“아윽!”

발카리아의 무슨 일 있었냐는 표정과 러셀이 아픈 머리를 쥐고 고개를 돌리며, 자기 아내들을 하나씩 확인할 때, 아내들의 틈 사이 저 멀리 문밖에 초조한 모습으로 손톱을 물어뜯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명의 엘프가 러셀의 시야에 화살처럼 꽂혀 들었다.

로리엘!

그리고 로리엘이 눈을 마주치며 러셀을 향해 어색하게 웃어준 순간.

그간 로리엘과의 은밀한 추억들이 번개가 치듯 러셀의 머리를 헤집었다.

­툭 투둑

갑자기 들려오는 기묘한 소리에 러셀 아내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러셀의 몸과 이마에서 흘러내리기 시작하는 대량의 땀.

그리고 동시에 러셀의 손과 발이 달달달 떨려오기 시작했다.

“러, 러셀|?”

“뭐, 뭐가 잘못된거 아니에요? 러셀?”

“시, 시트라 러셀이 이상해요. 치 치료를!”

“발카리아 무언가 실수한 건 아닌가요?”

“아, 아닙니다. 이실리엘님 절대 아닙니다.”

“러, 러셀? 러셀?”

“러, 러셀이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러셀!”

갑작스러운 변고에 발카리아가 의심받아 다시 쇠사슬에 묶이고 시트라의 신성력이 뿜어졌지만, 시트라의 신성력에 딱히 잡히는 것은 없었다.

“딱히 어딜 다친 것 같지는 않고 그냥 놀란 느낌이랄까? 정신 정화도 해보았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깨어날 것 같으니 기다려보죠. 그, 발카리아 씨도 그냥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시트라의 보증이 있고서야 발카리아는 다시 자유를 되찾을 수 있었다.

***

발카리아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기억을 잃은 기간에 쌓은 기억과 이전의 기억들이 합쳐지며 약간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이어졌다.

마치 머릿속에 안개를 풀어놓은 것 같은 답답함, 그러나 그 답답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치 두 물길이 합쳐져 큰 강을 이루듯 거세게 밀려 나온 기억들이 하나하나 통합되며 머릿속에서 정리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발카리아와의 일이 머릿속에 통합되고 모든 것이 정리돼 머리가 맑아지나 싶었는데, 정신 저 깊은 곳에서 달콤하게 자리 잡아 천천히 수면으로 부상하듯 올라오는 한 가지 기억.

‘로리엘!’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나려다 발카리아의 이마와 머리를 부딪치고, 사방 아내들의 얼굴을 확인할 때 저 멀리 아내들 틈 너머 방문밖에 초조한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로리엘의 모습.

‘마, 맙소사! 내가 무, 무슨 짓을!’

갑자기 전신에서 땀이 비 오듯 뿜어져 나오고 전신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리고 거대한 팩트에 정신이 집어삼켜졌다.

로리엘과 사랑을 나눌 때 이상하게 달콤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었다.

다시 한번 정신이 점멸하듯 꺼져버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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