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4화 〉 321. 용 아내와 호랑이 아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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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저보고 수인이 되라고요?”
리젤다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러셀을 찾아달라 했는데 엉뚱하게 수인이 되라니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리젤다의 반응을 보고 벨루니아가 리젤다의 어깨를 다독이며 설명했다.
“아 이런, 제가 오해할만한 말을 했군요. 어떻게 타고난 종족을 바꾸겠어요. 그것은 신도 불가능한 일이랍니다. 다만 제 능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수인이니, 약간 사기를 아니, 속이는 거랄까?”
뭔가 점점 이상해지는 말.
수인이 되라고 했다가 이제는 누군가를 속여야 한다니 점점 뭔가가 의심되는 상황. 리젤다는 급하게 되물었다. 뭔가 나쁜 짓을 하는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 속여요? 누, 누구를?”
“위대한 우주의 법칙을 약간 속이는 것에요. 리젤다를 수인으로 착각하게. 제 능력을 온전히 아니, 완벽 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게. 능력을 사용할 때, 안테나. 아, 이렇게 말하면 모르겠고, 아무튼 능력을 받아 쓸 수 있는 징표를 신체에 다는 거죠.”
그러나 의심했던 것도 잠깐. 신의 징표라니 리젤다는 뭔가 멋있다고 생각하며 여신에게 되물었다. 징표라는 건 성녀 같은 분들만 받는 것이니 말이다.
“그 징표가 뭐죠?”
“귀와 꼬리입니다.”
“네? 그럼 그게 수인 아닌가요?”
리젤다가 놀라 소리쳤다.
당연했다. 이 세계의 수인들은 인간의 형태에 귀와 꼬리만 있는 모습. 귀와 꼬리만 달리면 그게 수인이지 무엇이 수인이란 말인가?
결국 여신의 말장난 같은 말에 리젤다가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
자신을 방치하더니 이제는 이렇게 간절하고 급박한 상황에 찾아와 말장난이라니. 지금 러셀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리젤다의 마음속에 화가 치밀었다.
“그게 결국 수인 아닌가요?! 러셀이 지금도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자꾸 이런 말장난 같은 이야기만 듣고 있을 수가 없어요! 이러실 거면 그냥 빨리 계약을 해지해 주세요!”
리젤다의 외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신. 벨루니아는 급한 목소리로 다시금 리젤다가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가끔 지켜보았을 때 너무 얌전한 아이라서 고분고분 한 줄 알았는데, 신의 앞에서 이리 당당한 모습이라니.
“아, 아뇨 계속 달리는 게 아니에요. 제 능력을 쓸 때만 나타났다 사라질 거예요.”
“사라진다고요?”
“예, 능력을 쓸 때만 나타났다 사용하지 않을 때는 ‘샥’ 감쪽같이 말이죠.”
여신이 자기 귀 뒤로 접으며 꼬리를 엉덩이 뒤로 숨기며 말했다. 마치 시연이라도 하는 듯이.
‘능력을 쓸 때 근육이 부풀거나 하는 그런 느낌이려나?’
그런 느낌이면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잠깐, 가장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러셀의 아내들은 인간과 엘프로만 이루어진 상황. 마을에 수인도 많았지만, 러셀이 그들에게 친절하긴 해도 그다지 매력적으로 보는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젤다의 마음속에 러셀이 미워하면 어쩌지? 아니, 사랑받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무엇이든 각오할 준비가 되어있지만, 러셀에게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리젤다는 조심스레 여신에게 물었다.
“그, 그런데 러셀이 싫어하면 어쩌죠?”
그러자 벨루니아가 훗 하고 한번 웃더니, 걱정하지 말란 듯 리젤다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말했다.
“리젤다, 러셀이 살던 곳에는 그런 말이 있어요.”
“무, 무슨?”
“‘고양이 귀와 꼬리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털투성이라면 모르겠지만, 귀와 꼬리뿐인걸요? 더군다나 러셀이 살던 곳에서는 여자들이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 가짜로 만든 귀나 꼬리를 달곤 했답니다.”
“꼬, 꼬리를 달아요?”
리젤다가 꼬리를 대체 어떻게 단다는 것일까 생각하며 놀라 외치자, 여신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리젤다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 구멍에 쏙하고….”
“히익! 저, 정말요?”
리젤다의 말에 음흉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신. 그 모습에 리젤다의 두 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치켜 떠졌다.
“그럼요! 밤에 단둘이 있을 때, 귀와 꼬리를 꺼내고 ‘야옹’이라고 한번 해보세요. 러셀이 아마 많이 사랑해줄걸요?”
많은 사랑이라는 말에 지금까지 했던 의심은 눈 녹듯 사라지고, 리젤다는 급하게 소릴 칠 수밖에 없었다.
“그, 그럼 저 할래요!”
“당연하죠! 좋은 선택이에요!”
리젤다의 결심에, 곧바로 리젤다를 둘러싼 빛들이 점멸하듯 반짝이며 여러 가지 달콤한 제안을 토해내긴 했지만, 러셀의 더 많은 사랑이라는 달콤함보다 더 달콤할 수는 없는 법.
성녀도 화신도 강한 힘도 뜨거운 밤이라는 유혹 앞에서는 부질없었다.
리젤다를 강한 빛이 더욱더 강하게 집어삼켰다.
러셀을 휘어 감고 있던 오색 찬란한 빛무리들이 점차 줄어들고, 빛 속에서 천천히 러셀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영혼의 빛을 보는 영안을 잠시 멈추고, 발카리아는 마법으로 러셀의 몸을 깨끗하게 한 후 곧바로 수면 마법을 천천히 러셀에게서 거둬갔다.
파르르 떨리는 남자의 눈썹.
그가 천천히 눈을 떠 발카리아를 바라봤다. 남자의 눈동자에 가득 담긴 자기 얼굴을 바라본 발카리아는 전율하며 남자를 맞았다.
‘자 어서 엄마한테 오렴.’
발카리아는 흐뭇한 마음으로 러셀을 향해 팔을 벌렸다.
그런데 팔을 벌려 남자를 안으려 하자 들려오는 기겁하는 남자의 목소리.
“#$#@%! %@#$%@#!!!”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언어로 외치는 남자. 남자는 뒤로 물러나려다 주변에 널린 보물들을 보고 경악하고는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 $@#$@?”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기억이 전부 지워졌으면 멍한 상태이거나 아기 같은 반응이 나와 울거나 해야 하는데 저건 명백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기억이 남아있는 모습.
발카리아는 먼저 남자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 통역 마법을 자신과 남자에게 걸었다.
손끝에서 빛무리가 피어오르고 남자와 발카리아를 집어삼켰지만.
“$@#$@# $@#$?”
남자의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뭐지? 왜 걸리지 않지?’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발카리아는 어쩔 수 없이 용언으로 명령했다.
[남자의 언어를 이해하게 하라.]
그제야 주변의 마나들이 남자에게 몰려들어 용언 마법으로 남자의 말을 발카리아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다.
“누, 누구시죠? 여, 여긴 어디죠? 분명히 할머니를 구하다가…?”
용언이 능력을 발휘하자 그제야 남자의 언어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처음 듣는 언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분명 영혼에 담겨있던 기억을 전부 한쪽에 모아 숨겼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일단 혼란에 빠진 남자와 대화를 나눠보고 그가 어떤 기억을 가졌는지 살펴보기로 한 발카리아는 남자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 말을 할 줄 아시는구나. 안녕하세요. 여긴 어디고 당신은 누구죠? 저는 분명 할머니를 구하다가 차에 치여서…?”
남자가 뭔가를 설명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더니, 자기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려치고는 신이 나서 소리를 질러댔다.
“설마 처음 보는 장소, 아름다운 여신, 내가 치인 게 그럼 환생 트럭? 아니, 그건 애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 아니었냐고! 와 그럼 이다음은 뭔가 치트 능력 받는 건가?”
남자는 신이 나서 뭔가 이상한 만을 잔뜩 늘어놓더니 발카리아에게 물었다.
“저 능력은 뭘 주시는 건가요? 강력한 마법? 아니면 검술? 힐러도 좋겠다. 아니지 모름지기 대한민국 국민이면 활이지 활. 백발백중의 능력 그런 것도 있나요?”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말을 늘어놓는 남자.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남자는 지적 능력과 대화 능력의 대부분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었던 것, 성장기를 잘 지나고 지적 능력이 완숙될 때까지의 기억이 남아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며칠 전 자신과 인사를 나눴는데, 자신을 기억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그 이후의 기억은 사라진 상태.
발카리아는 조심스레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 저는 여신이 아닌데요?”
“예? 그, 그럼?”
남자가 자신을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그제야 둘 다 벗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몸을 웅크리며 물었다.
“누, 누구시죠. 그럼? 저희 왜 버, 벗고 있는 거죠?”
“혹시 어디까지 기억이 나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출근길에 할머니를 구하려다 트럭에 치인 것까지 기억나요.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죽음의 기억이 있다고? 그렇다면 환생? 환생 전의 기억만 가지고 있다고?’
발카리아는 영혼의 빛을 볼 수 있기에 남자가 환생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환생을 거쳐 마모된 영혼이 낼 수 없는 빛이기 때문.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결국 이번 생의 기억은 모두 사라졌다는 말이 되니까. 고생해 키울 필요가 없는 것.
혹시 몰라 남자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혹시 아내에 대한 기억은 없으신가요?”
“예? 아내요? 제가 무슨 아내가….”
남자가 뭔가를 생각하더니 발카리아를 향해 외쳤다.
“설마? 저희 부부인가요?! 벗고 있는 것도 그렇고. 아까 절 안으려고 했던 것도 그렇고. 환생하고 무슨 사고로 현생의 기억을 잃으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린다? 있을 만한 클리셰네요. 확실히.”
남자의 말을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발카리아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하는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지혜로운 용이니까.
“네 맞아요! 여보! 걱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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