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20화 (320/352)

〈 320화 〉 317. 밀려오는 죽음 7

* * *

대늪지 너머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바다 위, 많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의 아무도 살지 않는 한 무인도.

외각은 모두 깎아지는 절별이기에 날아다니는 새 이외에는 들어올 수 없는 천혜의 요새인 이 무인도가 흑룡 발카리아의 안락한 레어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무인도 중앙의 한 동굴이 말이다.

그런데 보통은 아주 조용해야 할 발카리아의 레어 이지만, 오늘따라 레어의 주인은 아주 흥분된 상태였다.

“아아, 이런 빛이라니! 너무도 아름답구나. 어찌 인간이 이런 빛과 아름다움을. 영원히 내 것으로 하고 싶다.”

발카리아의 레어 안에서 흥분한 발카리아의 목소리가 밖으로 조용히 흘러나왔다.

그녀를 흥분과 환희에 찬 소리를 지르게 하는 대상은, 그녀의 레어 중앙 보물로 이루어진 산 중앙의 움푹 파인 구덩이에 누워있는 한 남자.

부드러운 비단들에 감싸여 알몸으로 누워있는 한 남자, 러셀이었다.

발카리아는 알몸으로 조심스레 남자를 품에 안았다.

‘아아 내가 빛이 되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

남자의 몸에서 뿜어지는 빛과 황홀감에 감싸여 발카리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따듯함. 차가운 동굴 벽이나, 보석이나, 금덩이가 아니라 따듯한 피가 흐르는 육체의 따듯함을 접한 발카리아는 그 몸이 녹아드는 것같은 느낌에 전율했다.

‘인간이 이렇게 따듯한 것이었나?’

기본적으로 용들은 인간을 아주 하찮은 생물로 여긴다. 그렇기에 유희를 즐길 때도 인간은 미물들이니 사소한 신체접촉조차 꺼려졌었다.

아니, 소름이 돋았었다.

그렇기에 유희 중에도 은근슬쩍 몸에 손을 대려는 놈들은 마치 시체를 위를 기어 다니는 구더기같이 느껴져 가차 없이 혼내주곤 했었는데, 이 남자는 완전히 달랐다.

‘이것이 같은 인간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이런 밝고 맑고 깨끗한 영혼을 가진 남자가 그 추악하고 냄새나는 영혼을 가진 다른 인간들과 같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발카리아의 몸이 남자의 체온에 젖어 들 듯 물들었다. 포근하고 따듯하며 안락하고, 안고 있으니 이대로 영원히 안고 잠들고 싶은 마음뿐.

용은 마나를 흡수해 육체를 키우기 위해 가끔 깊은 잠을 자야 하는데, 발카리아는 이 남자를 그때 안고 자면 얼마나 안락할까 생각하며 홀로 기뻐하다, 인간의 몸이 그리 강하지 않음을 깨닫고는 금세 시무룩 해졌다.

‘아니, 아니지. 그러다가 남자가 다치기라도 하면? 절대 안 되지. 그래도 이 상태로라도 괜찮아.’

인간의 육체는 허약해 본체로 돌아가 남자를 끌어안을 수는 없지만, 폴리모프 상태로 남자를 품에 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한 발카리아였다.

발카리아가 조금이라도 더 남자를 느끼기 위해 남자를 더욱 끌어안았다. 남자의 볼에 얼굴을 문지르고 남자의 넓은 가슴팍에 몸을 비비며.

‘아아 좋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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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카리아가 러셀을 품에 안고 행복에 겨워 망중한을 보내고 있을 무렵 웜 포트 근처에서 나디아가 결국 실리아를 발견했다.

대늪지 인근 강가 풀숲에서 잠자리를 잡고 있던 실리아.

“하나, 둘, 셋 벌써 세 마리나 잡았네?”

모처럼 강가에 검은 잠자리가 세 마리나 있어 모두 잽싸게 잡아들인 실리아는 아주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손에 잡힌 잠자리를 구경했다.

하늘을 멋지게 나는 곤충.

그렇게 검은 잠자리 세 마리를 한참 가지고 놀고 있을 때. 머리 위에서 실리아를 부르는 나디아의 목소리.

“나디아! 이실리엘이 화가났다. 빨리 가야한다.”

“뭐?! 로, 롱 윈드가 화가나? 왜?”

“러셀이 무엇인가에 잡혀갔다.”

“뭐? 또?”

실리아의 '또'라는 물음에 나디아가 의구심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또 라면 언제 또 잡혀간 일이 있었나?”

“나랑 처음 만날 때도 다리 많은 바다 괴물한테 잡혀가서 내가 구해줬는데? 내가 그때 둘의 번식 활동을 도왔지.”

그때를 떠올리며 뿌듯한 미소를 짓는 실리아. 나디아도 그 번식 활동을 구경했었기에 그때를 떠올리고 실리아의 업적을 칭찬했다.

“아아, 그것은 나도 기억한다. 그때 너를 달리 보게 되었지. 하급 정령들만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말이지. 롱 윈드를 번식시키는 데 도움을 주다니. 대단한 업적이었지. ”

“크흠.”

실리아가 나디아의 지적에 큼큼거리며 기침했다. 하급 정령을 괴롭히는 것은 실리아의 어두운 역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어색한 분위기가 된 둘.

“그런데 나디아 왜 왔다고 했지?”

실리아의 물음에 그제야 다시 이실리엘을 떠올린 둘.

“이실리엘이 너를 찾아 빨리 오라 했으니 빨리 가야 한다!”

“아, 알았어! 빠, 빨리 가자!”

실리아와 나디아가 강 위를 물새처럼 빠르게 날아 웜 포트에 도착하자, 여관 앞은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무장한 엘프와 드워프, 마을 사람들은 흥분한 상태로 이실리엘을 바라보고 있었고 러셀의 아내들이 완전히 무장한 상태로 여관 입구에서 온 사방으로 기운을 폭사시키고 있었다.

“이, 이실리엘?”

실리아가 이실리엘을 조용히 부르자. 그제야 싸늘한 표정이었던 이실리엘이 실리아를 발견하고 러셀의 위치를 물었다.

“실리아 러셀, 러셀이 어디 있는지 알겠어?”

“자, 잠깐만 확인해볼게?”

정령이 진명으로 계약하면 계약자와 정령 둘은 영혼으로 묶이기에 상대가 어디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실리아가 정신을 집중해 러셀의 위치를 찾았다.

“어디 보자….”

영혼의 연결을 찾아 정신을 집중하는 실리아.

그런데 한참을 끙끙거리며 러셀의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 러셀의 위치. 분명 러셀이 죽었으면 자신도 격이 떨어지며 정령계로 역소환 되었을 것이니 러셀이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는데, 위치가 무엇에 가려진 듯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이상한데? 느, 느껴지지 않아?! 러셀이 무엇에 가려진 듯.”

“뭐?!”

­털썩

실리아의 말에 몇몇 엘프들이 놀라 자리에 주저앉고 부족장 에밀이 그 자리에서 쓰러져버렸다. 러셀이 죽었다고 오해라도 한 모양.

“에, 에밀!”

“에밀을 여관으로 데려가 눕히세요.”

이실리엘의 명에 엘프들이 에밀을 여관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이실리엘은 러셀이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말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고 실리아와 나디아에게 다시 명령했다.

“부를 수 있는 모든 정령을 불러서 확인해줘. 러셀의 방 창문이 열려있었던 걸로 봐서는 그리 나간 것 같으니”

“알겠어!”

이실리엘과 나디아, 실리아, 로리엘과 다른 수호자 둘까지 모두 주변에 모든 정령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 둘 반투명한 정령들이 공중에 나타나고, 마을 수도에서 물줄기가 솟아올라 물의 정령이되어 이실리엘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땅도 불쑥거리며 솟아올라 흙의 정령이 되고, 러셀의 주방 티끌만 남은 아궁이에서 불길이 다시 거세가 타오르며 불의 정령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렇게 웜 포트에 때아닌 수많은 정령이 모여들어 공중과 땅을 수놓기 시작했다.

“누구 러셀의 방에서 뭔가 나오는 걸 본 정령 없어?”

“저기 저 창문에서 사람이 나오는 거, 본 정령 정말 없어?”

“아니면 근처에서 이상한 걸 본 정령 없어?”

실리아와 나디아가 정령들의 주변을 돌며 혹시라도 뭔가 본 정령이 없는지를 탐문 했다. 그렇게 정령들을 탐문 하던 둘에게 러셀의 정보를 준 것은 산들바람의 정령.

“응? 갑자기 돌풍이 불어서 땅으로 처박혔었다고? 뭐가 있는데 안보였어? 바람이 이는데 정령은 아니었다고? 어디로 갔는데? 바다로? 확실한 거지?”

산들바람의 이야기를 들은 실리아가 이실리엘에게 자신이 들은 것을 설명했다.

“이실리엘 산들바람이 뭔가를 보긴 본 거 같은데 뭔지 모르겠대. 보이질 않아서.”

“보이질 않았다고요?”

이실리엘이 무엇인가 있는데 보이질 않았다는 산들바람의 말에 대체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는데, 부엉이 레오나가 조심스레 손을 들고 이실리엘의 눈치를 보며 이실리엘을 불렀다.

“저, 이, 이실리엘님?”

“뭐죠? 레오나?”

레오나가 이실리엘을 부르는 모습에 레오나의 만행을 아는 모든 사람은 자기 이마를 치며 한탄했다.

지금은 평소처럼 바보 같은 짓을 했다가는 아무리 착한 이실리엘이라도 참지 않을 것인데, 아무리 봐도 레오나가 뭔가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모인 이유를 묻거나, 뭐 그런. 그런데….

“어, 보이지 않았다면 투명화 마법이 아닐까요? 그 마법사인 제가 생각해보기에는 아무래도….”

“투, 투명화 마법이요?”

“예, 고등급 마법이긴 한데 그거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네요, 어제 왔던 그 여자, 다른 무장은 없었고. 마법사라면 마법을 사용했을지도 모르니까요. 젊은 여자가 투명화와 비행 마법을 동시에 썼다는 게 놀랍긴 하지만 불가능한 것도 아닐 것 같아서요.”

레오나의 말이 끝나자, 레오나가 어떤 줄 아는 모든 사람이 러셀이 사라졌다는 사실보다 더 놀란 얼굴로 레오나를 바라봤다.

“레오나, 러셀이 사라진 게 그렇게 충격인가요? 에밀 옆에 좀 눕겠어요?”

플로라가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레오나에게 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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