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19화 (319/352)

〈 319화 〉 316. 밀려오는 죽음 6

* * *

시트라가 분노에 찬 신성력을 거칠게 뽑아낸 후, 남아있던 마력의 잔향이 신성력에 밀려 모두 씻겨나가듯 사라졌다.

그러자 드래곤인 발카리아가 걸어두었던 수면 마법의 효과가 깨끗이 사라지고, 시간이 멈춰버린 모습이었던 여관 안의 사람들이 하나둘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 속에 시트라는 일단 사리나와 볼을 어루만지며 러셀의 방으로 뛰었다. 상처를 입은 채 쓰러져 있다는 리젤다를 살펴보기 위해서.

그렇게 시트라가 허겁지겁 러셀의 방으로 달려가 방 안으로 들어서자, 침대 위에 파랗게 질려 쓰러져있는 리젤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를 어떻게 다쳤는지는 모르지만, 꽤 심각해 보이는 모습. 목덜미에 괴상한 손자국이 섬뜩한 모양을 자아내고 있었다.

시트라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체 어느 놈이 감히! 리젤다님!”

시트라의 분노의 감정에 따라 사방으로 폭사 되는 신성력. 시트라가 눈이 불타버릴 것 같은 신성력을 뽑아내며 리젤다에게 다가가 급하게 치료를 시작했다.

평소라면 신성력을 적당히 움직여 적절하게 배분해 사용하겠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한 상황, 배분 따위는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그냥 있는 대로 신성력을 끌어올려 쏟아부을 뿐.

“어머니! 제게 힘과 영광을!”

그리고 거기에 그냥 쏟아붓는 것도 부족해 직접 여신의 힘을 내려받아 폭사하듯 신성력을 더했다.

시트라의 목소리에 호응하듯 거대한 신성력이 하늘에서 여관을 직격 하듯 쏟아져 내려오고, 빛에 휩싸인 리젤다의 몸이 천천히 상처를 입기 전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는 리젤다. 리젤다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고통에 찬 신음을 거칠게 토해냈다.

“크흑!”

몸은 모두 치료했지만, 정신에 남은 충격이 고통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었다.

시트라는 리젤다를 안아 들며 리젤다에게 그녀의 상태를 알렸다.

“리젤다님? 괜찮으신가요? 상처는 모두 치료되었습니다. 진정하세요. 정신에 남은 충격 때문에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러, 러셀은요?”

정신을 잃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러셀을 떠올리며 리젤다가 러셀의 상태를 물었다.

“예? 러셀님의 행방을 모르시나요?”

리젤다의 물음에 도리어 되묻는 시트라.

“러, 러셀이 없나요?! 끅….”

자신이 기절하기 전까지는 러셀은 분명히 침대에 누워 잠들어있었기에, 러셀이 사라졌다는 말에 리젤다가 놀라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리젤다는 목에 강한 통증을 호소하며 다시 침대로 쓰러졌다.

“끄윽…”

그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리젤다가 마지막 기억을 다시 떠올리며 대답했다.

“하아… 소, 손에 뱀처럼 비늘이 돋아난 여, 여자가 저를 공격하고 아마도 러셀을 잡아간 것 같습니다.”

“뭐, 뭐라고요?!”

다시 기억을 떠올린 것만으로 고통스러운지 고통에 찬 표정으로 물드는 리젤다의 얼굴과 리젤다에게 들은 소식에 시트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다시금 분노에 찬 신성력이 그녀의 몸에서 흘러나오려 할 때.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옆방에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벅뚜벅

옆방은 여관의 첫째 아내 이실리엘의 방. 발걸음 소리가 이어지더니, 러셀을 찾는 이실리엘의 목소리가 곧 방문 앞에서 들려왔다.

“러셀?”

고개를 빼 열린 러셀의 방안을 들여다보다 셋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는 이실리엘, 이실리엘은 급하게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죄, 죄송합니다. 이실리엘님 러, 러셀이 누군가에게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리젤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대답했다.

“네?!”

잠시 이해 안 되는 리젤다의 말에 망연한 표정을 지은 것도 잠시. 이 집의 큰 마님 이실리엘은 첫째 마님답게 시트라보다 더욱 분노하며 분노에 찬 정령력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뿌드드드드득

방안에 정력령과 신성력의 이중주가 거칠게 휘몰아쳐 열린 방문과 창을 통해 여관 안팎으로 쏟아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서 놀란 러셀의 아내들이 러셀의 방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제일 처음 도착한 것은 플로라.

리젤다가 침대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고 있고 이실리엘과 시트라가 자신들의 능력을 마구 뿜어대고 있기에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왔던 플로라는 러셀이 잡혀갔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단숨에 이성을 잃어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어머! 리젤다님 어떻게 된 거죠? 우, 우리자기는?”

“흑…. 플로라 죄송해요. 러셀이 이상한 여자에게 잡혀가고 말았어요.”

“예?!”

­꽈드드드득

폭사 되기 시작하는 기운이 하나 더 늘어난 상황. 칠흑같이 어두운 기운이 플로라에게서 천천히 흘러나와 시트라의 신성력과 이실리엘의 정령력에 더해졌다.

여관 전체가 바르르 떨며 비명을 토해내고, 그리고 이 기괴한 현상에 이층에 있던 장기 숙박 손님들이 화들짝 놀라 여관 밖으로 뛰어나가기 시작했다.

“무, 무슨일이지?”

“다 바, 밖으로!”

플로라는 신분과 능력을 숨기는 것 따위는 이제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그런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플로라의 몸에서 흉흉한 기운이 거칠게 피어오르자 사리나가 기겁하며 방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여관의 이상은 마을에도 빠르게 전해졌다. 거칠게 뿜어지는 시트라의 신성력을 느낀 사제와 성기사들이 신전에서 놀라 달려오기 시작하고, 평원 엘프 마을에서도 비이상적인 정령력을 감지하고는 모두 무장을 한 채 여관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이, 이실리엘님 대체 무, 무슨 일인가요?”

어느새 도망쳤던 사리나가 수리아를 부축해 러셀의 방으로 데려오고, 이실리엘의 분노를 감지한 로리엘과 수호자들이 놀란 눈을 한 채 러셀의 방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폭사 되며 방안을 꽉 채운 세 가지 이질적인 기운에 경악하며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이실리엘님. 이게 무슨?”

로리엘의 물음에 분노한 표정의 이실리엘이 흉흉한 안광을 뿜으며 대답했다.

“무엇인가가 저희의 러셀을 훔쳐 갔다고 하는군요. 도둑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예? 러, 레셀이요?”

이실리엘이 곧바로 자신의 정령을 불렀다.

“나디아!”

이실리엘이 부르자마자 곧 바닥에서 솟아오른 나디아. 나디아는 아마 창고를 지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나디아가 이실리엘의 부름에 나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슨 일이지 이실리엘?”

“러셀을 누군가에게 도둑맞았으니. 실리아를 찾아서 데리고 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이실리엘의 말투. 너무나 분노해 이제 분노하는 감정까지 잊은 높은 엘프가 차가운 목소리로 자기의 정령에게 명령했다.

언제나 친근하고 정령을 아끼는 이실리엘에게 나온 싸늘한 명령에 북풍의 정령 나디아는 처음으로 싸늘함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북풍한설도 자신에게는 따듯한 바람일 뿐인데, 말이다.

나디아가 이실리엘의 명령에 재빠르게 하늘을 날아 사라졌다. 자기 장난꾸러기 친구를 찾기 위해서.

이실리엘이 나디아에게 부탁해 실리아를 찾은 것은 러셀의 위치를 알기 위해서였다. 진명계약 정령은 자기의 주인과 영혼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당연히 주인의 위치를 알 수 있었고 그러니 러셀을 찾으려면 실리아에게 묻는 것이 제일 좋았기 때문.

이실리엘이 분노가 뚝뚝 떨어지는 눈망울로 러셀의 아내들 중 무력이 뛰어난 셋, 그리고 로리엘과 다른 수호자 둘에게 명령했다.

“다들 무장을 하고 모이세요. 누가 러셀을 훔쳐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당연히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물론입니다. 이실리엘님.”

“당연한 말씀입니다.”

수리아, 플로라, 시트라, 로리엘과 두 수호자가 무장을 위해 방 밖으로 달려 나가고 이실리엘도 무장을 위해 자기 방으로 향하려는데, 침대 쪽에서 사리나의 돌봄을 받던 리젤다가 이실리엘에게 자책감 가득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이실리엘님 저, 저도.”

러셀을 잃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는데 불구하고 자책감 가득한 목소리와 표정의 리젤다. 이실리엘은 곧장 침대로 다가가 리젤다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리젤다의 잘못이 아니에요. 그리고 리젤다는 지금 다쳤으니 푹 쉬고 있어요. 제가 꼭 러셀을 데려 올테니까요. 아셨죠?”

“하, 하지만 저도 도움이…”

“샌드맨!”

이실리엘이 샌드맨을 불러 리젤다를 깊은 잠에 빠트리고는 리젤다를 돌보던 사리나에게 부탁했다.

“리젤다를 부탁해요. 사리나.”

“예, 이실리엘님 제 목숨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사리나의 대답을 듣고 러셀의 방에서 나가려던 이실리엘은 문지방을 넘지 못하고 다시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러셀의 침대 아래서 상자를 하나 끌어냈다.

상자를 열자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실리엘이 러셀에게 청혼을 위해 선물했던 세계수의 활.

이실리엘이 그 활을 리젤다의 가슴 위로 살짝 올리고는 그대로 방 밖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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