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17화 (317/352)

〈 317화 〉 314. 밀려 오는 죽음 4

* * *

투명화를 건 채 쏘아져 날아가며 하늘을 가르는 발카리아.

분노를 머금은 흑룡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감히 자신의 가디언을 셋이나 해친 용이 어떤 놈인지 찾기 위해 눈을 부라리며.

그리고 그녀는 웜 포트에 가까워지자, 그란 폴 쪽 길에 내려 얼른 폴리모프를 하고 마을로 접근했다.

아무리 화가 나도 고귀한 협정은 지켜져야 하는 것.

인간 속에 숨은 놈을 찾아야 했지만, 인간들 앞에서 본채를 드러낼 수 없으니. 인간형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었다.

윤기가 흐르는 긴 검은 머리. 뚜렷한 이목구비의 미인 그리고 옷차림은 완벽한 용병의 모습. 그 상태로 발카리아가 천천히 웜 포트에 접근했다.

발카리아는 400살이나 먹은 용이고 인간들에 대한 지식도 있었기에 자신을 용병이라고 소개해 마을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원래 이런 작은 마을은 외인에게 경계심이 심하니 용병 따위로 위장해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잘 먹히는 방법.

몇 번의 유희를 즐긴 적이 있는 발카리아는 자연스럽게 행동해 마을 안으로 출입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의 눈으로 자신의 사방을 살폈다. 대체 어느 놈이 폴리모프해 인간의 마을에 숨어있는지. 감히 가디언을 셋이나 잡아먹었는지.

그때였다.

그녀의 콧속으로 아주 고소한 냄새가 밀려 들어온 것은.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고소한 고기 굽는 냄새.

새고기는 가끔 구워 먹고 돼지고기가 생각나면 그란 폴에 종종 찾아가 식사하기에 인간들의 고기 요리는 익숙한 편이었는데, 이것은 한 번도 먹어본 적, 맡아본 적 없는 냄새였다.

­킁킁

‘이게 대체 무슨 고기 굽는 냄새지?’

너무나도 맛있어 보이는 냄새에 발카리아는 참을 수 없어 무엇에 홀린 듯 천천히 냄새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아까 돼지고기도 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기에 무심코 나온 행동이었다.

그렇게 냄새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걷고 있는데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누구시죠?”

뒤를 돌아보니, 가슴에 큰 알을 두 개나 품고 있는 웬 빨간 머리 인간 여자 하나가, 아리송한 얼굴로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약간의 경계하는 모습. 발카리아는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

혹시라도 의심받아 몰리게 된다면 본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된다면 협정 위반. 위반한다고 신들에게 큰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소한 일로 정체가 들통나면 다른 흑 용들에게 비웃음을 살 것은 명백한 일.

용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인 것이다.

“나, 나는 용병이에요.”

“아, 손님이시군요?”

“그, 그래요.”

“용병 손님은 오랜만이네요. 환영해요. 웜 포트에 오신걸.”

처음에는 긴장해 조금 대화가 서툴렀지만, 용의 뛰어난 지혜로 금세 정신을 차린 발카리아는 그녀의 인사에 얼른 대답했다. 그러자 빠르게 의심을 지우는 빨간 머리.

빨간 머리가 반갑게 인사를 해왔다.

“반가워요.”

“지금 오셨나요?”

“그래요. 좀 전에 도착했거든요.”

“그럼 아직 저녁 전이시죠? 따라오세요. 지금 마을 축제 중이거든요. 큰놈을 두 마리나 잡아서”

“어, 어딜?”

자신을 끌고 좋은 냄새가 나는 곳으로 향하는 빨간 머리, 가슴에 큰 알을 두 개나 품은 빨간 머리가 자신을 끌고 간 곳은, 인간 수컷들이 잔뜩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장소.

들려오는 하프 소리에 춤을 추는 사람들. 왁자지껄한 노래와 웃음.

시끄러운 곳에 도착하자 바글바글한 인간들이 먹고 있는 것은, 한 번도 본적도 먹은 적도 없는 맛있어 보이는 고기. 인간들의 손과 입에 잔뜩 묻은 기름기가 고기가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았다.

­꿀꺽

절로 침이 삼켜졌다. 그리고 얼마 안 돼 어느새 사라졌던 빨간 머리가, 고기가 잔뜩 담긴 접시를 가져와 자신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많이 드시고, 더 드세요.”

발카리아는 그 먹음직스러운 모습에 이곳에 왜 찾아왔는지도 잊고 빨간 머리가 건네는 고기 접시를 받아들었다.

보통 인간들은 외지인을 경계하는 것이 보통인데, 외지인에게 친절한 이상한 여자. 손을 내려다보자 삶은 고기와 구운 고기가 가득 담긴 접시와 그리고 맥주 한잔.

발카리아는 멍하니 접시를 바라보다, 얼떨결에 받아든 고기 한 점을 입으로 가져가 씹었다.

입 안에 넣자마자 퍼지는 진한 육즙의 향연. 사르르 녹아내리는 육질. 그녀가 가끔 먹는 돼지고기도 이렇게 맛있지는 않았었다.

‘어, 어떻게 이런 맛이!’

황홀한 맛에 잠깐 정신을 잃었다 정신이 드니, 이미 접시 위에 사라진 모든 고기들.

발카리아는 접시를 들고 정신없이 허겁지겁 빨간 머리를 찾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어디 있지?’

그렇게 한참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어디선가 나타난 빨간 머리가 아까보다 훨씬 많은 고기를 접시에 담아 자신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

“여기요. 고기가 더 필요하셨죠?”

“그, 그래요. 고, 고마워요.”

‘제법 용을 대접할 줄 아는 인간이 아닌가?’

발카리아는 흐뭇한 마음으로 그렇게 한자리에서 빨간 머리가 가져다주는 고기를 몇 접시나 받아먹었다.

그렇게 고기 접시를 비워 나갈 때 드워프 몇 마리가 커다란 생고기 덩어리를 들고 한창 고기를 삶고있는 솥으로 향하며 외쳤다.

“러셀님, 두 번째 블랙 와이번 간도 이리 가져올까요?”

“응?!”

‘무, 무슨 고기?’

발카리아는 자신의 접시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서, 설마 아니겠지?’

그때 빨간 머리가 다시 다가와 물었다.

“손님 와이번 고기는 입에 맞으세요?”

“네?!”

자신이 놀라니 자기보다 더 놀라는 빨간 머리. 발카리아가 놀라 빨간 머리에게 물었다.

“이, 이것이 와, 와이번 고기라고요?!”

“예? 네, 넷 정확히는 블랙 와이번 고기죠.”

발카리아는 그 말에 충격에 빠졌다. 자신이 자기 가디언인 블랙 와이번을 먹다니!

떨려오는 손, 손에 쥔 고기가 덜덜 떨려왔다.

물론 가디언도 잡아먹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검은색, 모든 검은색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자기가 새끼 때부터 직접 키운 아이들, 10마리의 부모부터 시작해서 10개의 알을 받아 부화시켜 직접 사냥감을 잡아다 먹여가며 키운 것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더군다나 맛있다는 것은 더 충격이었다. 자기의 손으로 직접 키운 가디언들이 이렇게나 맛있었다는 게…

그리고 동족도 아니고 인간들이 자신의 가디언을 잡아 먹었다는 사실도 납득할 수 없었다.

블랙 와이번은 아주 높이 날기에 인간이 어떻게 공격할 수 없는 것이블랙 와이번 인데, 자신의 가디언을 잡았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발카리아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에 망연한 표정이 되어 빨간 머리에게 물었다.

‘설마 인간은 아니겠지?’

“이, 이걸 누, 누가 잡은 거죠?”

“아! 그게 궁금하셨구나? 당연히 저희 남편이 잡았죠.”

“남편이요?”

“아, 저기 오네요. 소개해 드릴게요. 러셀! 이리 좀 와보세요. 손님이 왔어요.”

“손님이? 진짜 오랜만인데?”

빨간 머리가 소리치자 천천히 다가오는 남자. 자신처럼 검은 머리를 가진 남자가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의 모습.

그 모습에 발카리아의 동공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지기 시작했다.

용들은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고 그 다양한 색은 그들의 능력과 연관이 있다. 그리고 그중에 검은 용들의 특별한 능력은 영혼을 보고 인도할 수 있다는 것.

죽음이라는 권능과 가장 깊은 연관이 있는 검은 용들은 영혼을 볼 수도 영혼을 인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검은 용이 생명체를 판단하는 기준은 영혼의 빛이 얼마나 강한지, 얼마나 아름다운 색을 가지는지.

그가 인간이든, 엘프이든, 그 무엇이든 검은 용들의 생명체의 가치 판단 기준은 오로지 영혼의 색과 빛.

그가 아무리 대단한 생명체라도 초라한 빛과 색을 가졌다면 검은 용들에게 그것은 쓰레기, 하지만 아무리 하찮은 생명이라도 영혼이 아름다운 빛과 색으로 물들어있다면, 흑룡들은 그것을 존중한다.

그렇기에 발카리아는 지금 용으로 태어나 400년 동안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충격에 빠져들고 있었다.

자신과 똑같은 검은 머리의 남자가 천천히 걸어올 때, 발카리아의 동공에 비친 것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찬란한 빛, 하늘에 떠오른 태양이 하나 떨어져 자신에게 걸어오는 것은 아닌지 착각이 될 정도.

색마저 오색찬란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눈부시게 쏘아지는 빛에 눈이 찌푸려질 정도. 그 빛 속에서 남자가 다가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러셀이라고 합니다.”

남자의 인사에 멍한 얼굴로 무심코 대답한 발카리아.

“바, 반갑습니다. 바, 발카리아 벨럭서스라고 하, 합니다.”

찬란한 빛을 내뿜으며 미소를 지은 채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남자를 향해 무심코 진명을 말해버린 발카리아였다.

“발카리아 벨럭서스 씨라고요? 이름이 좀 독특하시네요?”

남자가 발카리아의 이름을 말한 순간 그녀의 드레곤 하트가 맹렬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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