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5화 〉 312. 밀려오는 죽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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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대륙에 사는 생명체들이 용을 보기란 아주아주 드문 일이라지만, 실상 이 세계에는 많고 다양한 용들이 살고 있다. 황금으로 빛나는 골드 드래곤 부터 레드, 화이트, 블루, 그린, 블랙까지 아주 다양한 색 많은 수의 용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나 다양한 색 많은 수의 드래곤이 중간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인간들이 그들을 보기 힘든 이유.
그것은 협정 때문이었다.
용과 신들의 협정.
중간 땅의 종족들에게 본신을 함부로 드러내거나, 함부로 그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신과 용들의 협정.
그렇기에 용 대부분은 조용히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위대한 흑룡의 피를 이은 발카리아도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의 삶을 조용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소문을 듣기 전까지.
남부 늪지대에 용이 둥지를 들었다는 그 소문.
이른 새벽 발카리아는 투명화 마법을 걸고 공중을 날아 그란 폴에 도착했다. 그녀의 레어가 있는 남부 대 늪지 너머 한 섬에서부터, 그란 폴까지.
날아오는 동안 매번 보았던 작은 마을이 조금 커진 것이 보였지만, 그것은 별로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하찮은 미물들이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그렇게 공중을 날아 그란 폴에 도착해 공중에서 흑발, 흑안의 미녀로 폴리모프 한 발카리아는 투명화 마법을 건 채 골목에 숨어있다, 항상 들리던 술집이 문을 열자마자 안으로 들어가 음식을 주문했다.
“여기, 통돼지 한 마리.”
“아이고 손님 점심때까지는 기다리셔야 합니다.”
“뭣!?”
항상 늦은 시간에 들렸었기에 언제나 준비가 되는 음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자기 새벽에 구운 통돼지가 먹고 싶었던 발카리아가 너무 빠르게 찾아왔던 것. 통돼지를 굽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발카리아의 실수였다.
할 수 없이 발카리아는 실망한 모습으로 다른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물었다.
“그럼 뭐가 되지?”
“새구이는 빠르게 됩니다요.”
새라니! 새는 섬에도 많고 가끔 잡아 구워 먹기에 질릴 대로 질린 상태였는데 새라니!
새가 먹기 싫어 돼지를 먹고 싶었던 것인데!
어째야 하나 한창 고민하고 있는데,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으며 떠드는 소리가 발카리아의 귓가에 들려왔다.
“대 늪지에 용이 둥지를 틀어서 다른 용병들도 다 빠졌다는데, 우린 어쩌지?”
“상단 호송 같은 거나 따라다녀야 하나?”
“아직 용병, 모험가 길드는 늪지대 들어갈 사람을 모집하긴 하던데?”
“빨리 죽고 싶지는 않다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참아야지, 용병들의 최대 미덕은 가늘고 길게 가는 거니까.”
인간 용병으로 보이는 무리 들이 쑥덕거리는 소리에서 발카리아를 분노하게 할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뭐? 어떤 놈이 내 영역에 감히!’
용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 주는 편이고, 남부 대 늪지와 그 인근은 발카리에의 영역에 속해있기에, 다른 용이 들어와 둥지를 틀었다는 것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것과 같은 것.
더군다나 인간들에게 둥지를 들켜?
얼마나 멍청한 동족인지 얼굴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이 얼마나 멍청하면 자기 정체를 들킨단 말인가?
분명 자신과 같은 블랙 드래곤은 아니고 멍청한 골드나 레드 놈일 것이 분명했다.
발카리아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손님? 손님?”
술집 주인이 발카리아를 불렀지만, 영역을 침범당한 용의 분노에 그런 것은 들려오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하늘을 날아 도착한 자신의 레어.
“가디언들은 모두 레어 앞으로 모여라!”
발카리아는 마법으로 사념을 날려 보내 모든 가디언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자 잠시 후. 발카리아의 레어 앞에 검은색의 반들거리는 육체를 가지고 있는 블랙 와이번들이 하나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총 열 마리의 블랙 와이번이 도착해야 했는데 한 마리가 부족했다.
“뭐지? 한 마리는 어디 있는 거지? 뭐? 사라졌다고? 언제? 왜! 보고하지 않았지?”
남부 늪지대에 공중을 날고 있는 블랙 와이번을 잡을만한 다른 생물이나 인간들이 살고 있을 리는 만무한 일.
그놈이 분명했다.
남부 늪지에 둥지를 틀었다는 그놈!
‘감히 나의 허락도 받지 않고 나의 영역에 둥지를 튼 것도 괘씸한데, 내 가디언까지?’
“한 마리만 레어를 지키고 나머지는 두 마리씩 몰려다니며 다른 용의 흔적을 찾아라! 혹시라도 공격당하면 빠르게 도망쳐 와라 알겠나?!”
발카리아의 명령을 받은 블랙 와이번들이 긴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대 늪지 쪽으로 둘씩 짝지어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느 괘씸한 놈인지 잡히기만 해봐라!”
이번 주부터는 기초 훈련이 끝나고 병사들을 조별로 나눠 사냥을 하기로 했다. 병사들을 인도하는 교관은 나, 이실리엘, 로리엘과 수호자 둘.
나머지는 리젤다가 기초 훈련을 시키기로 했다.
각자 적당히 거리를 두고 병사를 10명씩 끌고 다니면서, 평원에서 동물에게 접근하는 법과 어떻게 활을 쏴야 하는지를 실전을 통해 가르치는 것.
[자, 앞에 풀숲에 잠든 늑대를 쏜다.]
뭔가를 배불리 먹고 풀숲에 잠이든 세 마리 늑대. 병사들과 천천히 접근해 유효 사거리를 확보하고 내 신호를 받아 병사들이 조심스레 늑대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씨잉 씨이잉.
“꺼엉!”
다섯의 병사가 활을 쏘았는데 맞춘 건 한 놈뿐. 그나마 맞춘 것도 다리 부근이라 늑대 세 마리는 부리나케 도망쳐버리고 말았다.
“멍청한 놈들! 쏘기 전에 신중 하라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교관님.”
“오늘 계속 이런 식이면, 훈련소로 복귀할 때 기어서 복귀할 줄 알아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기초 궁술을 훈련했는데, 침착하지 못하고 사냥감 앞에서 떨거나 실수를 하면 어쩌자는 건지. 더군다나 움직이는 표적도 아니고 잠이든 상태였는데 말이다.
병사들의 어리숙함에 열불이나 다시 한번 긴장감을 심어주고, 사방을 둘러보며 다른 사냥감을 찾았다.
뭐 다른 사냥감이라고 해봐야 제일 기초적인 평원 늑대를 찾는 것이지만 말이다.
보통 늑대들은 야행성이기에 새벽에 뭔가를 사냥해 먹고, 이 시간이면 굴 밖이나 풀숲에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잠을 자는 경우가 많으니, 초심자인 병사들이 잡기에도 아주 좋은 것.
그렇게 사방을 확인하며 다음 사냥감을 찾고 있을 때 한 병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 교관님 저기 여신, 아니 이실리엘 교관님이 오시는데요?”
병사의 말에 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니, 머릿결을 휘날리며 달려오는 이실리엘의 모습. 그리고 그 뒤로 이실리엘이 맡은 병사들이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이실리엘이 갑자기 달려와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또 다른 병사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어? 저기 로리엘 교관님도 오시는데요?”
“어 다른 교관님들이 다 모이시는데요?”
갑자기 훈련 중에 나를 향해 몰려드는 엘프들.
잠시 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도착한 이실리엘이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러셀, 블랙 와이번이 또 나타났어요!”
“뭐!?”
‘드워프 미끼, 블랙 와이번이 또 나타났다고?’
한 마리 잡아가면 또 얼마나 많은 드워프들이 낚이려나? 흐뭇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이실리엘에게 다급히 물었다.
“어디? 어딘데?”
“저기요!”
내가 두리번거리며 와이번을 찾는 시늉을 하자, 손가락으로 머리 위를 가리켜는 이실리엘.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올라가며 시선을 올리자, 그녀의 손끝 저 너머 하늘 위에 새카만 새 두 마리가 하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블랙 와이번이라고?”
“네!”
이실리엘의 말에 자기 눈 위를 손으로 가리고 병사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와이번을 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인간인 우리가 볼수있는 것은 고작해야 작은 검은 새로 보이는 모습.
얼마나 높이 떠 있는지 깨알만 하게 보이는 상황이었다.
“저건 너무 높아서 못 잡는 거 아니야?”
너무 깨알만 하게 보여서 도저히 잡을 수 없을 것 같아 물어보자, 이실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있고 다른 수호자들도 있으니 쉽게 잡을 수 있어요.”
“쉬, 쉽게?”
“당연하죠! 러셀도 쉽게 잡으실 수 있을걸요?”
“내가?”
저번에 잡은 놈도 엄청나게 컸고 비늘도 장난이 아니었기에, 쉽게 잡을 수가 있을 거라는 이 실리엘의 말이 이해 안 되는 상황.
이실리엘을 멀뚱거리며 바라보자 이실리엘이 웃으며 말했다.
“러셀은 정령이 있잖아요!”
“아참! 내 정령 파브르 실리아가 있었지?”
“네, 파브르요?”
“아, 그런 게 있어. 파브, 아니, 실리아!”
실리아를 부르자 저 멀리에서 무엇인가가 웜 포트 쪽에서 번갯불을 튀기며 평원을 질주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러셀!”
부수고, 망치고, 죽이고, 없애는데 일등인 내 정령이 활짝 웃으며 나에게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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