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 310. 국밥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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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점심까지 침대 신세. 한숨 푹 자고 일어나서야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아이고야, 이러다가 골병들겠네.’
한창때인 이십 대인 젊은 여섯과 엘프인 이실리엘을 혼자서 상대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정령과 계약은 괜히 해서, 체력을 늘려 보려 해도 예전보다 몇 배나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라 시도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나의 착각은 내가 필요했던 것은 정령력이 아니라 정력이었는데 그 사실을 간과하고 만 것.
무슨 수를 내야 했다.
북부에서 가져온 인삼을 매일 달여 먹고, 장어를 열심히 먹어도. 아내가 일곱인 이상 복상사는 어쩌면 피할 수 없는 결말일지도 몰랐다.
애초에 엔진이 용량이 정해져 있는데 첨가제를 넣는다고 엔진의 성능이 향상 할 리 없는 것이다.
‘미친척하고 신전에 가서 생떼라도 써봐?’
아무리 신들이 예뻐해도 큰일 날라. 생각만으로 참기로 했다.
아래층에 도착하자 여관 홀에서는 아내들이 열심히 무와 양파. 마늘, 생각을 다듬고 있었다. 내가 지쳐 쓰러지기 전 부탁한 것을 하는 모양이었다.
배추는 아예 없으니 백김치는 불가능. 우리가 오늘 만들 요리는 백 깍두기.
백 깍두기는 내가 만든 요리가 아니다. 전생 있던 요리. 매운 고춧가루 없이 만드는 깍두기인 것이다.
내가 재료를 손질하는 아내들에게 다가가자 나를 보고 요리할 때의 대장인 애니가 대표로 물었다.
“러셀, 이, 일어났네? 주, 준비는 다 했는데. 어, 어떻게 할까?”
아까 장모님 댁 빈방에서의 일이 떠올랐는지 심하게 말을 더듬는 애니였다. 저러다 다른 아내들에게까지 걸리겠다 싶어 나는 얼른 그녀에게 일단 무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라고 부탁했다.
“일단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봐. 이정도로.”
나는 무를 하나 잘라 시범을 보이고 아내들에게 손을 조심하라고 당부한 후, 반 잘린 오크통을 하나 가지고 왔다.
오크통은 깍두기를 담아 절이기 위한 것.
“다 자른 깍두기는 여기다 넣으라고.”
““알겠어요. 러셀.””
아내들에게 무를 잘라 통에 넣으라고 부탁하고, 소금과 꿀 그리고 물을 조금 가지고 왔다. 원래 백 깍두기를 절일 때는 소금과 설탕을 물에 녹여 그 물로 절이는 것. 여긴 설탕이 없으니 꿀을 사용해야 했다.
물에 소금과 꿀을 적당히 섞어 절임 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내들이 자른 깍두기가 통에 담기자 중간중간 절임 물을 넣어 깍두기를 버무렸다.
깍두기가 전부 버무려지는 걸 확인하고 밖으로 향하며 애니에게 말했다.
“무를 눌렀을 때 말랑말랑하면 깨끗한 물에 씻어서 물기를 빼줘 애니, 나는 실리아에게 뭐 좀 부탁하고 올게.”
“알겠어요. 주인님.”
이제야 아까의 여운에서 벗어난 애니가 평범하게 대답을 해왔다. 그렇게 애니와 아내들을 두고 밖으로 나와 실리아를 불렀다.
“실리아! 실리아!”
내 부름에 마른하늘이 우르릉거리더니 금세 하늘을 날아 실리아가 나타났다. 뭘 하다 왔는지 모르겠지만 항상 신이 난 얼굴.
“러셀, 왜 불러?”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어떤 부탁?”
실리아가 투명한 얼굴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부탁일까 한껏 기대하는 듯한 모습. 산책 마려운 강아지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그녀가 흥미를 느낄만한 심부름을 부탁했다.
“바다에 날아가서 내가 말하는 것 좀 잡아다 줄래?”
뭔가를 잡아야 한다는 말에 눈을 반짝이는 실리아. 폭풍의 정령은 사냥본능이 넘치는 정령이었다.
“그래 뭐. 뭘 잡으면 되는데? 엄청나게 큰 거겠지? 이만큼?”
실리아가 팔을 벌려 날면서 오우거 만한 생물을 묘사하자 하는 고개를 저으며 땅바닥에 천천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채 모양의 꼬리, 굽은 등, 긴 더듬이 두 개, 그리고 두 개의 뿔. 내 그림을 확인하고 실리아가 물었다.
“오와! 러셀, 이건 무슨 생물이야?”
신기해하며 묻는 실리아. 그녀는 처음 보는 생물의 모습에 기대감 가득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이건 새우라고 하는 거야. 크기가 아주 다양한데, 손가락만 한 것부터 주먹만 한 것까지. 이 주머니에 하나 가득 잡아 와 줬으면 좋겠는데, 잡아다 줄 수 있겠어?”
내가 크기를 묘사하자 실망하는 얼굴로 말하는 실리아.
“에게? 러셀, 그냥 이만한 거 잡아 오면 안 돼?”
자꾸 무슨 오우거 만한 생물을 이야기하는 실리아. 나는 그녀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돼! 가서 다른 애들 괴롭히지 말고 그것만 잡아 와 알겠지?”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실리아는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짓더니, 얼마 안 돼 뭔가를 떠올리고 금세 기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감정 변화가 빨라서 응대하기 힘들 정도.
“알겠어! 그런데 나디아랑 같이 다녀와도 되지?”
“그래, 둘이 같이 다녀와. 너무 늦으면 안 된다?”
“알았어. 러셀! 걱정마!”
실리아에게 늦지 말 것을 당부하자 그녀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지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실리아가 큰 사고는 치지 않아도 작은 사고는 종종 치는 편이기 때문이다.
딱정벌레를 잡는다고 지붕에 작은 벼락을 떨구거나, 물고기를 잡는다고 커다란 벼락을 떨구거나, 새를 잡는다고 벼락을 떨구는 등.
‘그러고 보니 사고가 전부 벼락이네?’
그런 이유로 마을에서는 평소에는 벼락을 못 쓰게 하지만, 지금은 새우를 잡으러 가는 길. 원래 물고기는 배터리로 지져야 잘 잡히는 것이기에 제한을 걸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한 모습의 실리아는 지하에서 쏙 올라온 나디아와 합류하더니 둘이 한 쌍의 새처럼 공중을 날아 바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한참 후에 저 멀리 바다 쪽에서 천둥과 번개가 치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우르릉 콰쾅!
‘아니, 얘는 새우 몇 마리 잡는데 뭘 하는 거야 대체? 빈대 잡으려 초가삼간 다 태운다더니 뭔 새우 몇 마리 잡는데, 바다에 얼마나 큰 벼락을 떨구는 거야?’
이해 못할 정령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리던 천둥과 번개가 사라지고 실리아와 나디아는 그리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고야 마을에 나타났다.
일찍 오라고 당부했는데, 어디선가 땡땡이를 치고 온 것이 확실했다. 얘들이 마음먹고 날아오면 바다에서 여기까지 순식간일 텐데, 이렇게 오래 걸릴 리가 없는 것이다.
“야 너희들 어디 가서 놀다 왔지?!”
“아! 아니야! 새우만 잡아서 바로 온 거야!”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한 두 녀석을 추궁하자. 실리아가 절대 아니라는 목소리로 양손을 내저으며 항변했다.
나는 실리아와 나디아를 가운데 두고 녀석들을 한 바퀴 돌면서 두 녀석을 살펴봤다. 엄마가 개구쟁이 녀석들 어디서 놀다 왔는지 살펴보는 기분으로.
그러자 분명 정령은 땀을 흘리지 않을 것인데 실리아와 나디아의 관자놀이 부근에서 땀이 흐르는 착각이 든 것은 내 느낌일 뿐일까?
그 모습에 나는 실리아에게 명령했다.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 말해. 어서.”
내가 진명 계약으로 추궁하자 곧 진실을 실토하고 마는 실리아.
“바, 바다에 큰 물고기가 있어서 머리에 벼락을 몇 번….”
“며, 몇 번?”
‘뭐 이상한 거 건드린 건 아니겠지?’
용 같은 것이라도 건드린 것은 아닌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거 살아있어?”
“응 그냥 바닷속으로 도망쳤어.”
도망쳤다는 말에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일단 살아있고 실리아에게 쫓겨갈 정도면 열받아서 마을로 쳐들어올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실리아에게 명령했다.
“너 앞으로 아무 동물이나, 식물이나 아무튼 무고한, 너에게 덤비지 않는 생명체에게 천둥 번개 함부로 떨구는 거 금지야! 알겠어?”
“아, 알았어….”
내가 단호하게 소리치자 시무룩 해지는 실리아. 시무룩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 생명체에게나 벼락을 떨구는 건 정령에게는 장난일지는 몰라도 그 생명체는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시무룩해진 실리아가 나디아의 위로를 받으며 하늘을 날아 사라지고, 남겨진 나는 녀석들이 넘긴 리넨 자루를 열어보았다.
‘새우는 제대로 잡아 왔나?’
새우를 잡으려는 이유는 전부 깍두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백 깍두기를 위해서는 새우젓을 넣어야 했지만 당장 새우젓이 없으니, 김장을 할 때처럼 생새우를 갈아 넣어 맛을 들이려 한 것인데.
자루를 열자 나타난 것은 새우가 아닌 랍스터.
‘내가 그림을 못 그렸나?’
처음에는 내가 그림을 못 그렸나 생각해봤다. 그러나 바닥에 남겨진 그림과 비교해보아도 전혀 다른 두 생물.
이상했다. 분명 새우를 잡아 오라 시켰는데 주머니 하나 가득 랍스터가 가득한 상황. 살이 꽉 차 속이 단단한 랍스터들이 주머니 안에서 아직도 살아 파닥거리고 있었다.
‘아!’ 나는 왜 주머니 하나 가득 랍스터가 판을 치는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아까 출발할 때부터 크기에 연연하더니, 이 녀석 분명 작은 새우를 잡아 오라니까 비슷한 것 중에 제일 큰 것을 잡아 온 것이 확실했다.
‘그래, 뭐 이것도 갑각류니까. 일단은 만들어봐야겠다.’
때려잡고 죽이는 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는 실리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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