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2화 〉 309. 국밥충 3
* * *
“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뭐다?”
나른한 얼굴로 추종자들을 향해 물었다. 그들의 충성심을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러자 나의 추종자들이 그릇에 얼굴을 처박고 신나게 국밥을 입안으로 밀어 넣다가 깜짝 놀라 대답했다.
자기 충성심을 증명하기로 하려는 듯 앞을 다투어 말이다.
“그건 당연히 국밥이지!”
“국밥입니다. 형님!”
그들이 이미 국밥교의 훌륭한 성도였다.
나는 그들의 믿음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추종자들에게 은혜를 베풀기로 했다. 은혜로운 한 국자, 한 국자.
“더 필요한 사람?”
“저, 저요. 형님!”
“나, 나도 더 주게!”
땀을 뻘뻘 흘리며 국밥을 퍼먹는 추종자들.
국밥 그것은 이세계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양산했다. 뜨거운 국물, 고기 맛의 진한 육수, 된장의 구수함. 거기에 어우러진 각종 채소.
완벽한 벨런스의 음식이 바로 국밥.
아침 식사로 준비해준 국밥은 칭찬 일색, 호평 일색이었다. 여관 홀에서 단체로 자기 손바닥으로 자기에게 바람을 부치며, 줄줄 땀을 흘리면서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는 모습은, 전생의 유명 국밥집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다들 신나서 국밥을 들이켜던 그때였다.
“근데 많이 먹으니까 조금 느끼한 것 같기도?”
후후 우걱우걱 파닥파닥…. 뚝
입으로 불고, 국밥을 씹고, 손으로 부치는 바람이 일시에 멈춰버렸다. 그리고 일제히 느끼하다고 말한 이를 쳐다봤다.
믿음이 약 한자의 목소리. 그리고 그 믿음이 약한 이단의 이름은 ‘안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며 안톤을 바라보는 놀라움과 비난의 눈빛들. 안톤이 그 눈빛을 마주 대하고 몸을 흠칫 떨었다.
“왜? 왜 도대체 왜 그러는데?”
두려움과 공포에 물드는 안톤의 얼굴. 그리고 분노하는 추종자들 나는 재빨리 추종자들은 제지했다. 유혈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아아,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음식이 다 입에 맞는 것은 아니니까요.”
당연히 느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국밥에 대한 그의 신앙 부족으로 일어난 결과이니 죄가 아니었다. 아침에 급하게 끓인 것이라 맛도 조금 다를 수 있고 말이다.
더군다나 국밥이 완벽한 음식이긴 해도 지금 우리의 국밥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기도 하고 말이다.
국밥에 빠진 중요한 존재. 국밥의 영혼의 파트너 국밥의 이실리엘과 러셀 같은 존재.
깍두기.
그것이 없으니 느끼하다는 안톤의 의견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안톤 좋은 지적이다. 지금은 우리 국밥에 한가지 빠진 것이 있어서 그렇거든? 그러면 너에게 내일 아침 완벽한 국밥을 먹게 해주마!”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안톤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내, 내일 또 먹는다고요? 큽!”
그리고 벨릭에게 입을 틀어막히고는 혼쭐이 났다. 러셀은 열렬한 국밥의 추종자. 전투식량보다 맛있다면 벌써 세 그릇째 먹고 있는 상태니 안톤을 용서할 수 없는 것.
“그란 폴 가서 열흘만 영혼의 스튜 좀 먹고 올까? 안톤? 형님이 맛있는 음식 해주시니, 아주 그냥 배가 불렀지?”
“야! 아니, 말도 못 하냐?”
“뭐 임마? 감히 러셀 형님의 음식에 투정을 부려?”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을 이어갈 때 애니가 다가와 물었다.
“주인님, 빠진 게 대체 뭔데?”
“일단 부엌으로 따라와 봐.”
나는 애니를 끌고 부엌으로 향했다. 어떻게든 내일 아침까지 깍두기를 만들어야 했으니 말이다. 안톤에게 완벽한 국밥을 먹이기 위해서는 깍두기가 필수였다.
‘깍두기를 대체 어떻게 만든다?’
“주인님, 뭐가 필요한데? 빠진 걸 만들려면?”
애니가 생각에 빠진 내 앞에 얼굴을 들이밀고 물어왔다. 나는 그 귀여운 모습에 그녀를 끌어안으며 머릿속에 있는 것을 말했다.
“매운 것이 필요한데….”
“매운 거? 양파, 마늘 같은?”
“아니, 그것보다 매운 것이 필요해. 그런데 여긴 찾아봐도 없더라고.”
“뭐? 그거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맞아?”
양파나 마늘, 생강 빼고는 고추 같은 작물이 없으니 여긴 매운맛에도 약한 편인데, 내가 생양파를 먹는 걸 보고 따라 먹었다가 기겁했던 애니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고추는 직접 먹기보다는 김치에 넣어 색과 매운맛을 내기 위한 것. 고작 양파 따위에 패배한 허접한 혀를 가진 애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향신료 느낌으로 필요한 거라서.”
“굳이 그거 꼭 넣어야 해? 안 넣으면 안 돼? 매운 건 싫은데?”
애니가 예전 양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하지만 김치에 매운 고춧가루가 없으면 그것은 김치가 아닌….
‘잠깐?’
맙소사! 나는 바보 멍청이였다. 애니를 말을 통해 벼락같이 찾아온 깨달음.
털썩
“러셀! 왜 그래? 왜? 주저앉아? 어디 아파?”
내가 부엌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애니가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쪼그려 앉아 내 이마를 짚으며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는 애니.
나는 애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대로 애니를 꼭 끌어안았다.
“애니. 사랑해!”
“뭐?! 갑자기? 부엌에서?”
이해 안 된다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애니의 가슴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두근두근.
애니의 가슴 고동과 함께 나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추가 없어서 김치를 못 담근다며 항상 핑계만 대고 방법을 찾지 못한 바보 같은 나.
좀 더 찾으려 노력해야 했는데, ‘고추가 없으니 김치는 안돼.’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리석은 행동.
‘이런 내가 어찌 현자란 말인가!’
나는 한탄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애니를 통해서 깨달은 지혜, 그것은 고추가 없으면 넣지 않으면 된다는 것. 애초에 고추가 없으면 고추 없는 김치를 담그면 되는 것이었는데. 계속 고추만 바보같이 찾았다니.
고추가 안 들어가는 김치. 백김치를 담으면 될 일이었다.
나는 품에 꼭 끌어안은 애니의 매운맛에 허약한 허접한 혀를, 내 혀로 흠씬 혼내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하
“무, 무슨 일인데? 왜 이, 이래 가, 갑자기?”
당황하는 애니의 목소리, 나는 애니에게 물었다.
“애니, 장모님 댁 빈방 있지?”
애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의 손을 잡아끌고 자기 본가로 달렸다.
***
한참 아침 식사가 진행되던 중간 사라졌던 우리는 아침 식사가 끝나고 나서야 다시 부엌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플로라, 리젤다, 시트라가 여관으로 들어서는 우리를 보고는 다가와 물었다.
“러셀, 애니. 어디 다녀왔어요?”
“자기, 어디 갔다 왔어? 뭐야 둘 다 얼굴이 왜 이렇게 붉어? 열나나?”
“열이요? 어디?”
플로라, 리젤다, 시트라가 허겁지겁 다가와 나와 애니의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 더욱 새빨개지는 애니.
나는 들킬 것 같은 모습에 급히 그녀들에게 말했다.
“아, 그냥 애니랑 새 요리 마, 만들려고 밭에 좀 잠깐 다녀왔어.”
“마, 맞아요. 바, 밭 우리가 그 뽑아오려고 했던 게. 무”
“양파.”
“그래 양파”
“무”
자꾸만 반대로 말하는 우리. 그때 눈치 전문가 플로라가 묘한 웃음을 흘리더니 나한테 찾 달라붙으며 귓가에 속삭였다.
“킁킁, 흐응? 이거 무슨 냄새일까?”
나는 그녀의 입을 황급히 손으로 막고 그녀의 귓가에 말했다.
“무, 무슨 냄새가 난다 그래?! 자, 잠깐만 밖에서 이야기 좀 해 플로라.”
잠시 후 나는 플로라를 데리고 아까 애니와 들어갔던 방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플로라의 입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조금 시간이 흐른 후. 팔짱을 낀 플로라를 데리고 약간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여관으로 들어섰다. 내 옆에서 팔짱을 꼭 끼고, 자기 입술을 핥아 올리는 플로라의 만족한 표정.
부엌 안쪽을 바라보자. 애니는 우리를 보고 모른 척을 했고. 시트라는 발레리와 설거지 중이었다.
나는 이제 정상화된 생활에 다소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설거지를 도와주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서려 했는데, 갑자기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섬뜩한 손길. 서릿발같이 차가운 느낌이었다.
삐거덕거리는 목을 돌려 천천히 뒤를 바라보자 내 앞에 나타난 얼굴은 싸늘한 표정의 리젤다.
리젤다가 입을 삐뚜름하게 하더니 나에게 말했다.
“러셀, 저와도 잠시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않을까요?”
“다, 당연히 그, 그래야겠지?”
나는 떨리는 다리를 끌고 리젤다에게 붙잡혀 다시 얌전히 장모님 댁의 빈방으로 향해야 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터덜터덜 걷자 리젤다의 날카로운 질타가 들려왔다.
“러셀, 저랑 이야기하기 싫은 건가요? 설마?”
“아, 아냐! 저, 절대 아냐!”
나는 살살 떨리는 다리로 신나는 스텝을 밟으며 장모님 댁 빈방으로 향해야 했다.
이를 악물었다. 버텨야 하는 것이다.
‘가장이여 인생의 무게를 버텨라!’
결국 나는 아침 설거지와 뒷정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장모님 댁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짧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이 빨려버렸다.
귀밑머리의 땀을 쓸어내리며 내 팔짱을 낀 만족스러운 리젤다의 모습.
그녀와 여관 안으로 들어서자 시트라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러, 러셀 코, 코피!”
주르륵
내 양쪽 코에서 뜨겁고 붉은 눈물 두 방울이 주르륵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