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11화 (311/352)

〈 311화 〉 308. 국밥충 2

* * *

전생에는 국밥을 좋아하는 남자를 국밥충이라 매도하였지만. 나는 국밥을 좋아했던 전생의 수많은 남자에게 선언하고 싶다.

이곳에 국밥의 천국을 만들겠노라고!

이 세계에서는 국밥이 최고급 요리. 최고의 요리 대접받게 만들겠다고 말이다!

이실리엘을 따라 토기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양쪽으로 쫙 늘어서 있는 아내들.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플로라를 향해 리젤다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플로라 늦었어요.”

“죄송해요. 리젤다.”

플로라가 황급히 사과하고 한쪽 빈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요즘 병사들 훈련을 시켜서 그런지 몰라도 뭔가 군대 같아 보이는 모습.

‘직업병인가?’

나는 리젤다의 날카로운 모습에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 하하, 리젤다 우리끼리니까 조금 부드럽게. 알았지?”

내 말에 그제야 자기가 어떤 식으로 말했는지를 깨닫고 황급히 사과하는 리젤다.

“어머! 미안해요. 플로라, 자꾸 버릇되어서. 제가 요즘 멍청이들 때문에, 좀 날카로워졌나 봐요. 정말 그런 멍청이들은 처음 본다니까요? 벨릭이 천재로 보일 지경이에요.”

“아, 아니에요, 리젤다.”

리젤다에게 벨릭이 천재라는 평가를 듣다니.

‘역시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라니까?’

상대평가에 대한 우수성을 리젤다를 통해 다시금 깨닫고 항아리를 둘러싸고 모였다. 이미 나무로 만든 주걱과 그릇이 준비되어있는 모습.

나는 주걱을 이실리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실리엘 직접 떠보겠어? 이실리엘이 지금까지 관리했으니까 이실리엘이 첫 된장을 뜨는 게 맞는 것 같아.”

“저, 정말요? 제, 제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는 이실리엘.

뭐가 그렇게 감동인지. 된장 공장 취직시켜주면 감격해 눈물을 펑펑 쏟을 우리 엘프였다.

그렇게 내가 건네는 주걱으로 된장의 첫 삽 아니, 첫 주걱을 뜨는 이실리엘. 이실리엘이 떨리는 손으로 된장의 첫 주걱을 떠 그릇에 옮겨 담았다. 아주 엄숙하고 경건한 모습.

아까부터 뭐랄까? 무언가 의식 같은 상황이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된장의 무녀가 된장을 뜨는 모습이랄까?’

그런데 이실리엘의 그런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다른 아내들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부러움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부러움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첫 주걱을 뜨고 아내들을 바라보는 이실리엘. 이실리엘이 입을 열어 다른 아내들에게 말했다.

“제가 소중한 첫 주걱을 떴으니, 나머지는 돌아가면서 하도록 해요.”

“어머!”

“역시 이실리엘님 이세요.”

‘오, 저 인자한 모습.’

역시 이실리엘은 첫째 아내에 어울리는 인자하고 품격있는 아내였다.

그렇게 이실리엘을 시작으로 리젤다부터 애니까지 된장 뜨기 의식이(?) 끝나고 부엌으로 향했다.

국밥을 끓이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소고기 양지.

“리젤다, 지하 창고에서 늪지 물소 뱃살을 부탁해.”

“알겠어요. 러셀”

양지는 뱃살 부분에 있으니 뱃살을 부탁한 것. 차돌박이와 치마살도 비슷한 부위에 있지만 다 맛이 좋으니 상관없었다.

리젤다가 지하 창고로 향하고 나는 아내들에게 각자 맡을 재료를 알려주었다.

“이실리엘은 콩나물을 부탁하고, 발레리는 양파, 시트라는 무를 부탁할게.”

“네, 얼마나 큰 거요?”

“응? 무는 그냥 아무거나 뽑아와도 돼”

“알겠어요.”

아내들이 다들 재료를 가지러 사라지고, 리젤다가 지하 창고에서 소고기 뱃살을 가지고 올라왔다. 리젤다 몸통만 한 덩어리를 낑낑거리고 가져오는 모습에 애니와 플로라가 깜짝 놀라 그녀를 도와 고기를 가져다 도마 위에 올렸다.

“어, 이거 너무 얼었는데?”

냉동 창고로 만들었더니 너무 꽝꽝 얼어버린 고기. 이럴 때는 전문가가 있다.

“수리아 이것 좀 도와주겠어?”

수리아는 평소에 걸어 다니기 힘드니, 아침에는 테이블에서 만드는 것을 구경하거나, 다 같이 테이블에서 채소 다듬는 것을 돕는 정도인데.

알고 보니 엄청난 힘의 소유자인 수리아는 이런 언 고기를 써는데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것.

부엌에서 테이블을 향해 소리치자 수리아가 대답했다.

“이리 가져오세요. 제가 할게요.”

다시 무거운 고기를 낑낑거리고 밖으로 들고 나가 테이블에 올린 후 큰 칼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 수리아에게 쥐여주었다.

그러자 수리아가 칼을 몇 번 움직이더니 고기를 썰기 전에 물었다.

“러셀님, 두께는 어떻게요?”

“한 요정도?”

내가 엄지와 검지로 두께를 보여주자, 곧바로 수리아의 손이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전생에 정육점에나 볼 수 있었던, 언 고기를 써는 기계를 보는 듯한 모습.

꽝꽝 언 고기가 스륵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쓸려나가기 시작했다.

­스륵 스륵

역시 기술과 힘 중 어느 것이 최고냐는 논쟁은 항상 압도적인 힘 앞에서는 무의미한 것. 소고기 뱃살은 금세 얇게 잘려 가지런한 모습이 되었다.

이렇게 소고기 뱃살을 많이 자른 이유. 그것은 국물을 빨리 내기 위해서. 원래는 긴 시간 양지를 푹 삶아야 했지만 급하게 만드는 상황.

고기가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만 최대한 얇게 잘라서 많은 양을 삶는 것.

진한 국물을 결정하는 것은 적당한 양의 고기를 긴 시간 삶거나, 많은 고기를 그보다 짧은 시간 삶거나 두 가지.

시간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 고기의 양을 늘린 것이다.

큰 솥에 물을 넣고 잠시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갔던 자른 고기를 솥 안에 모두 넣었다. 그리고 애니에게 부탁했다.

“애니. 솥에 된장 한 주걱 넣고, 위에 거품 떠 오르면 걷어내 줘 알았지? 부탁할게?”

“네, 러셀.”

애니에게 육수를 끓이는 솥을 맡기고 나는 다른 솥에 밥을 안쳤다. 다른 음식은 모르지만 위대한 국밥에 빵이란 결코 안 될 말.

아무리 이세계라도 정도가 있는 것이다. 국밥에 빵을 먹다니 그것은 결코 용서될 수 없는 행위.

종교로 치면 그것이 이단이요. 악마숭배.

나는 끔찍한 조합을 떠올리고는 흠칫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밥 준비가 끝나자 아내들이 재료들이 하나씩 찾아왔다.

“러셀, 무요.”

“여기 양파.”

“콩나물은 이만큼이면 될까요?”

착착 도착하는 준비물들. 한쪽에서는 보글보글 육수가 끓어오르며 좋은 향기가 풍겨 오르고 애니가 떠오르는 거품과 기름기를 걷어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원래 첫 육수는 아무리 피를 잘 빼고 어느 정도 붉기 마련. 원래는 살짝 삶아 첫물은 버려야 했지만, 오늘은 일단 빠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니 첫물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기에 애니가 거품을 걷어내고 있는 솥에 무와 양파를 먼저 넣었다. 그리고 이쪽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통마늘도 두세 알.

전생이라면 두세 알이 아니라 이삼십 알을 넣어야 했지만, 여기 사람들은 다른 건 잘 참으면서 이상하게 마늘 냄새에 민감했다.

그러니 마늘 성애자의 피가 흐르는 내가 넣을 수 있는 마늘은 두세 알이 고작.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참아야 했다. 마늘 냄새가 너무 나면 아내들도 먹지 못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채소를 넣고 바로 된장을 뜬 그릇을 가지고 왔다. 된장을 넣어 풍미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여기서 백 프로 된장으로만 간을 하면 된장국이 되지만, 적당히 된장으로 풍미를 올리고 소금으로 간을 하면 소고기국밥.

적당히 된장을 풀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조금 짭짤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콩나물을 넣어야 했기 때문. 마지막에 수분 많은 콩나물을 넣으면 조금 싱거워 질 테니 미리 조금 간단하게 하는 것. 물론 간을 한 번 더 볼 수 있지만.

나는 프로니까.

그렇게 모든 과정이 끝이 나고 이제 끓이기만 되는 상태. 고춧가루가 살짝 아쉽지만, 더 찾아봐야지 그건.

“자, 이것이 내가 항상 말했던 국밥. 여기에 밥을 말아 먹는 거야.”

“아, 이게 러셀이 말했던 가성비 끝판 임금님, 국밥이군요?”

발레리가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가성비 끝판왕’이라고 설명했는데, 아마 뒤가 왕이라니까 임금님도 같은 의미라 바꿔쓴 모양.

아내들 덕분에 항상 웃을 수 있는 나는 행복한 남자였다.

그렇게 국밥이 조금 더 끓어오르고, 마지막으로 맛을 본 후, 밥을 확인했다. 뜸이 맛있게 들어 고슬고슬한 밥알이 살아있는 맛있는 밥.

“애니 큰 그릇을 꺼내주겠어?”

원래는 뚝배기가 국룰이지만 여기 뚝배기가 없으니 일단 큰 나무 대접을 꺼내기로 했다. 애니가 건네주는 대접을 받아 먼저 안에 쌀을 넣고 뜨거운 국밥 국물을 안에 퍼담는다. 그리고 퍼담은 국물을 다시 끓고 있는 냄비에 부어준다.

두 번씩 반복.

내 이상한 행동에 아내들이 물어왔다.

“러셀, 그건 왜 그러는 거예요?”

“아, 이건 토렴이라고 하는데.”

“토류옴?”

“토륨?”

있지 않은 단어에 발음을 힘들어하는 아내들. 나는 토렴에 관해서 설명했다.

“원래 국밥 맛은 토렴이 좌우한다고 하거든, 밥을 국밥 국물에 씻어서 밥알을 씻어주는 거야. 그러면 국물은 밥을 씻은 물이 들어가서 더 구수해지고, 손님에게 나가는 쌀은 씻겨서 더 깔끔하게 되지.”

그렇게 토렴까지 끝낸 첫 국밥이 밖으로 나가고 아내들이 몰려들어 한입씩 시식을 시작했다.

“하아…. 너무 뜨거워요.”

“후아… 무척 뭔가 진한 맛이에요.”

“고기랑 채소 그리고 밥까지, 무척 든든할 것 같아요.”

이세계 첫 국밥은 호평 일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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