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화 〉 307. 국밥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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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 왜 이러면서 싸우는 걸까?’
이 친구들은 아무리 싸워도 둘 중 누구도 승리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왜냐하면 이 미친 도박의 승자는 결국은 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래 도박이라는 게 결국 카지노가 승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
이분들이 아무리 자기 종족을 이곳에 끌고 온다 해도 거주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마을의 촌장인 나.
내가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둘이 하는 것은, 개 쓸모없는 감정 소모. 둘이 건배를 나누며 김칫국물을 시원하게 들이켜는 상황.
이럴 때 필요한 것은 현자의 지혜.
“자자, 몇천 명씩 데려온다는 소릴 해도, 마을이 당장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싸우지들 말고 천천히 대화해봅시다.”
둘을 일단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 하자 둘이 질색하는 얼굴로 외쳤다.
“흥! 뒤에서 더러운 궁리나 하는 엘프들과 한 테이블에 앉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저도 면전에서 상대를 모욕하는 무례한 드워프들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네요!”
서로 동시에 ‘흥’하고 콧방귀를 뀌는 둘.
‘어쭈? 말을 안 들어?’
“자, 테이블에 앉지 않는 분은, 별로 마을에 살고 싶지 않다는 것으로 간주하고, 쫓아내겠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아 싫으면 말고?’
노르웨 씨가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냐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계약도 한 입장에서 쫓아낸다니 어처구니가 없을 만도 했지만.
하지만 나를 좀 더 오래 겪은 타냐린과 엘프들은 한쪽 테이블에 날름 앉더니 나에게 얄미운 목소리로 외쳤다.
“러셀 족장님 드워프들은 마을을 나가고 싶다네요?!”
타냐린을 보고 손을 부들부들 떨던 노르웨 씨는 역겹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대편에 앉았다.
확실히 에밀과 같이 구출되었던 엘프들은 순딩순딩이가 맞는데 타냐린과 그 친구들은 뭐랄까? 날것의 야생 엘프의 느낌이 물씬 나는 친구들이었다.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같은 생동감 넘치는 감정을 뿜어내는 친구들. 뭔가 이실리엘들과도 결이 좀 달랐다.
누가 보면 ‘이 새끼들 진짜 엘프 맞아?’라며 물어볼 수도 있는 모습. 내 감상만 그런 건 아닌지 노르웨 씨도 나와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러셀님, 내 드워프 평생에 저런 엘프들은 처음 봤소이다! 무슨 엘프가?”
그 말에 타냐린과 그 친구들이 노르웨 씨를 보고 혀를 ‘베’하고 내밀었다. 나는 그 모습에 타냐린들에게 엄하게 경고했다.
동방 예의지국 출신이 연장자에게 이런 버릇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디 나이많은 분에게 혀를 내민단 말인가?
“타냐린 나이 많은 분한테 실례야 앞으로는 우리 마을에서는 나이 많은 분에게 실례되는 행동 하는 걸 금하겠어!”
내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하자, 타냐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말요?”
“당연하지. 내가 살던 곳에서는 나이 많은 분들은 지혜롭다고 생각해서 존중해드렸거든. 그러니까 앞으로 조심….”
“다른 말씀 하시기 없기에요?”
“응?”
타냐린의 영문 모를 소리. 그런데 타냐린이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노르웨 씨에게 물었다.
“드워프 몇 살이지?”
“나 팔십구다 왜!”
“풋! 뭐야? 아직 애들이잖아? 난 구십삼이니까 러셀님 말대로 존중하도록 해.”
타냐린에 말에 나를 보고 배신감에 치를 떠는 노르웨 씨.
‘아 참!’
실수였다. 내가 나이와 외모에서만큼은 사기 종족을 데리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던 것. 나는 급하게 추가 사항을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이 많은 사람도 나이 적은 사람을 존중했으니까. 서로 존중해.”
의기양양했던 타냐린의 얼굴도 금세 썩은 표정이 되었다.
아무튼 내 실수로 둘 다 조용해진 상황. 일단 둘이 진정된 것 같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둘 다 서로 다른 종족이 많아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거지?”
“물론입니다. 러셀님. 여긴 이실리엘님과 러셀님의 마을. 그러니 당연히 엘프들의 마을이어야 합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타냐린, 우리의 신성한 보금자리를 더럽히지 말라 그런 뜻인 듯했다.
그리고 타냐린의 말이 끝나자 노르웨 씨가 그녀의 말을 반박했다.
“러셀님은 인간이라고 여기가 무슨 엘프 마을이야? 그 높은 귀쟁, 아니 높은 엘프도 레셀님의 많은 아내 중 한 명일 뿐이지. 그러니 어느 종족이 많이 사는지는 러셀님 마음이라고. 그리고 우리는 이미 러셀님과 계약해 이백 명의 드워프를 이주시키기로 했다고.”
꽤 논리적인 노르웨 씨의 말,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나 둘의 의견이 어떻든 내 마음은 이미 처음부터 정해진 상태. 아무리 내 아내가 높은 엘프인 이실리엘이더라도 엘프만 편애할 수는 없는 일.
나는 마을의 촌장이자 현자.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혜로운 판결을 둘에게 내렸다. 한번 치고 싶었던 대사를 마음속으로 되뇌며 말이다.
‘편을 들긴 무슨 편을 들어? 어이, 너희 서로 죽여라!’
“잘 들어 둘 다. 나는 마을 안에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원치 않아. 그러니 어느 한 종족의 인원이 늘어나면, 다른 종족은 그 늘어난 인원만큼 새로 사람을 들여올 수 있게 해주지. 무슨 말인지 알았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드워프와 엘프들.
“앞으로 지금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마을에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태어나는 아이들에게는, 명부를 작성하고 신분을 증명하는 패를 나눠줄 거야. 그러니 상대방 종족의 숫자는 어느 누가 원하더라도 알려 줄 테니, 서로 매달 확인해보고 알아서 하도록 해.”
가혹한 투기장에 던져진 둘은 서로를 향해 적의를 활활 불태웠다. 그리고 손을 꽉 움켜쥐고 지지 않겠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참고로 다른 의견은 받지 않겠어. 타냐린들은 고향에 다녀오려면 다녀오도록 해. 이상 해산!”
이제 앞으로 저 친구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알아서 숫자가 증가할 것이다. 아니면 견제하느라 증가하지 않을 수도 있고.
뭐 그건 이제 본인들이 할 일. 확실한 건 양쪽 200마리씩은 확보되었다는 것.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서로를 향해 입을 삐쭉거리는 엘프와 드워프들을 놔두고, 병사들의 함성이 울려오고 있는 연병장으로 향했다.
***
돌아온 병사들의 휴일. 플로라와 조금 늦잠을 자고 있는데, 이실리엘이 아침 일찍부터 나의 잠을 깨웠다.
문이 벌컥 열리고 내방 안까지 뛰어 들어온 이실리엘.
다른 아내가 있을 때는 첫째 아내더라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오늘은 이상한 일이었다. 함부로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 없는 이실리엘인데 말이다.
“러셀! 일어나세요. 플로라도 어서 일어나세요!”
다급한 목소리로 외치는 이실리엘과 갑작스런 이실리엘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플로라.
“무, 무슨 일인가요. 이실리엘님?”
플로라는 깜짝 놀라 이불속에 몸을 웅크리고 갑자기 내방으로 난입한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오늘이 그날입니다!”
이실리엘이 두 손을 기도하는 것처럼 하고 있었다. 뭔가 한껏 기대한 모습.
나는 잠결에 오늘이 무슨 날인지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실리엘이 저렇게 흥분한 이유를 떠올릴 수 있었다. 그녀가 저렇게 흥분한 이유 그것은 오늘이 예전에 담았던 된장을 맛을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아, 오늘이 그날인가?”
병사들의 훈련이 시작되기 전, 한참 공사가 시끄러울 때 바쁜 와중에도 아내들과 장 가르기를 했었다.
장 가르기란 된장을 소금물에 한 달 넘게 띄워두었던 메주를 으깨서, 된장을 만들고 물을 걸러 간장을 만드는 과정.
간장은 약간의 버섯과 말린 생선을 넣고 다리는 바로 먹을 수 있고, 되직하게 만든 된장은 토기 속에서 다시 한 달 이상 더 숙성시키면 맛이 들어 먹을 수 있는데, 오늘이 최소한의 조건이 풀리는 날.
50일이 지난 것이다. 남부는 따듯하니 아마 맛이 더 잘 들었을 것이 분명했다.
“어서 된장을 확인하러 가야 해요! 러셀.”
이실리엘이 저리 한껏 기대하는 것은, 내가 된장이나 간장은 집안에 가장 높은 여자가 관리하고,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라는 말에. 된장과 간장이 약간 아내들 사이에서 권력의 상징처럼 되었기 때문이다.
‘된장, 간장을 관리하는 자. 그는 아내들 사이에서 실권자.’
이실리엘은 자기가 관리하던 창고 열쇠도 리젤다에게 넘기고 장 항아리를 자신이 직접 돌보는 중이었다.
마른 천으로 매일 토기가 반질반질할 때까지 닦고, 낮에는 뚜껑을 열어 얇은 리넨 천을 씌워 바람을 쐬어주고, 밤에는 뚜껑을 덮고 아주 지극 정성으로 돌보는 모습.
약간 가문의 큰 어른이 가문의 가장 중요한 것을 돌보는 느낌이랄까?
매일매일 날짜를 확인하며 신줏단지처럼 돌보는 토기 속에 들어있는 된장들이, 오늘에야 맛이 들어 맛을 볼 수 있는 날이니, 어찌 기대하는 모습이 아닐 수가 있으랴. 그녀는 무척 흥분된 모양이었다.
“그래, 가보자 모처럼 오늘은 아침을 내가 만들어야겠네.”
나는 훈련과 다른 일로 바빠 잠시 애니와 장모님께 맡겨두었던 아침을 직접 만들기로 결정했다.
오늘 할 요리가 뭐냐고?
‘이세계 국밥충 이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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