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03화 (303/352)

〈 303화 〉 300. 충성 경쟁 5

* * *

그의 말에 화들짝 놀라 노르웨 씨를 만류했다.

“어, 어르신 제가 모든 내용을 아는 것은 아니지만, 제가 살짝 들은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어르신께서 화를 내실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테죠! 제정신이라면 집안에 귀한 물건을 훔쳐다 팔아먹는 행동 따위를 하지 않을 테니 말이죠.”

내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거란 말에 그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풀밭에 쓰러져 혀를 빼고 있는 노르딕 씨의 몸이 한번 크게 움찔했다.

아마 자기 딴에는 실신한 척을 하는 모양.

그러나 실제로 노르딕 씨는 실신한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듯했다. 그가 흉내 내고 있는 모습은 실신한 모습이 아니라 혀를 빼물고 죽은 모습이니 말이다.

애처로운 노르딕 씨의 노력.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노르웨 씨에게 말했다. 어쨌든 내 드워프를 살리긴 해야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보고 있으니….”

“아이들?”

내 아이들이란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노르웨 씨는, 그제야 여관 앞에 옹기종기 모여 놀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자기 손주와 며느리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된 노르웨 씨. 주름에 덥혀 있던 그의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저, 저분들은…?”

“며느리분과 손주분들입니다.”

“저, 저놈이 겨, 결혼을 했단 말이요!?”

망연한 표정의 노르웨 씨. 그가 자기의 손주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샤샤샥

그리고 뭔가 샥샥 거리면서 풀밭을 기는 소리가 들리기에 바닥을 바라보니, 어느새 죽은척하던 노르딕 씨가 짐승처럼 기어 자기의 아버지 옆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무릎으로 기며 손을 싹싹 비비는 간신배 같은 모습으로 말하는 노르딕 씨.

“아버지, 제 처인 그리나 브론즈폴과 아버지의 귀여운 손자, 손녀­”

그러나 노르딕 씨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빠악

“끄엑!”

비명을 지르며 노르웨 씨의 뒷발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지는 노르딕 씨.

보통 아내와 애를 들이밀면 막장 드라마에서도 어지간하면 못이기는 척 넘어가는 클리셰인데, 노르딕 씨의 죄가 얼마나 깊은지 되돌아온 것은 뒷발길질.

‘대체 뭘 훔쳐다 팔았길래…’

노르딕 씨는 노르웨 씨에게 숫제 매국노로 취급당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들인데 나라 팔아먹은 취급.

우리가 분명 기대한 것은, 감동적인 재회가 있는 감동의 드라마였는데, 지금 상영되는 것은 권선징악의 사극.

뒷발길질에 노르딕 씨가 나가떨어지고, 자기의 며느리와 아이들에게 다가간 노르웨 씨가 자글자글한 주름의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브론즈폴 가문이라고?”

“예, 아버님. 처음 뵙겠습니다. 그리나라고 합니다. 얘들아, 할아버지께 인사드려야지?”

그리나 씨가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라고 등을 떠밀자 아이들이 흠칫 떨더니 노르웨 씨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차례대로 인사를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하, 할아버지 스, 스나졸린 스톤스틸이라고 합니다.”

“오! 그래! 내가 할애비란다! 네가 첫째로구나.”

“안녕하세요. 하, 할아버지.”

“오 그래! 네가 둘째?”

“아, 안녕하세요. 아빠 죽이면 아, 안 돼요!”

“와핫핫핫! 이 녀석이 막내로군!”

막내 드워프 꼬맹이가 노르딕 씨가 걱정되는지, 자기 할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생존을 당부하자 노르웨 씨가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에게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아빠는 예전에 나쁜 짓을 해서 할아버지한테 조금 혼이 나는 거란다. 저기 보거라 아빠가 벌써 정신을 차리고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지 않으냐.”

그의 말에 다들 노르딕 씨를 바라보자, 그는 정말로 자기 코를 부여잡고 풀밭에 엎드려 이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한심한 내 드워프.

전생에 학부모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부분이었다.

‘내 새끼가 모자란 것만큼 속상한 게 없다더니.’

지금 마을에 있는 드워프 중에 가장 한심하고 모자라 보이는 것이 내 드워프라니. 속이 터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분명 노르딕 씨는 노르웨 씨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듬직한 장인의 모습이었는데. 지금 모습은 개구쟁이, 망나니, 동내 바보를 보는 느낌.

주인은 나는 이렇게나 똘똘한데. 원래 키우는 주인을 닮는다면 나를 닮아 똑 부러지고 똑똑해야 했거늘.

주인은 현자인데 어째서 나를 닮지 않고…. 저건 뭔가 어디 하나 부족한 모습이 아닌가.

나는 노르딕 씨의 부족한(?) 모습에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드워프들의 종족 신 발로나님.

‘드워프들의 종족 신, 발로나님 그렇게 안 봤는데….’

원래 선물이라는 것이 제일 좋은 것을 주는 것인데, 설마 선물로 남는 거, 버리는 거, 하자 있는 걸, 주신 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

생각해보니 똘똘한 놈 하나를 챙겨줄 수가 없으니, 뭔가 문제 있는 걸 묶어서 떠리 친 느낌. 장사 끝물에 남은 거 싹싹 긁어서 주는 그것 말이다.

‘내가 퇴주잔도 아니고….’

발로나님에게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

부자의 상봉은 눈물 대신 피와 땀이 튀는 상봉이었지만, 노르딕 씨의 아이들 덕분에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서로 간의 소개와 즐거운 연회. 진정된 노르웨 씨와 노르딕 씨의 형제들까지 모여들어 즐거운 맥주와 고기 파티가 열렸다.

“그런데 어르신 저 마차는 뭡니까?”

“아! 저것 말인가?”

맥주를 대접하며 노르웨 씨에게 묻자 그는 대충의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드워프들의 이동 요새 같은 마차를 타고 온 것은 노르딕 씨의 아버지와 그의 형제 일부. 20년 가까이 사라졌던 막내가 인간 영주의 노예로 붙잡혀 있다가 탈출했다는 말에, 가문의 무력을 동원한 것이라고 했다.

노르딕 씨와 만남이 끝나면 아들을 잡아두었던 영주 놈 영지로 직접 쳐들어가려고 했다고.

‘드워프들이 다혈질인 건 알았지만 40명으로 꼬라박는다고?’

노르웨 씨를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그가 내 표정의 의미를 눈치챈 듯 설명했다.

“아, 중간에 용병도 좀 사서 가야지. 설마 우리끼리 갈 거라고 생각했는가?

그리고는 맥주잔을 들이키며 너털웃음을 흘렸다.

엘프들이 종족 자체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드워프들은 종족보다 가족이라는 것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으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그런데 아까 노르딕 씨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가족을 그렇게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은 것 같기도 했다.

아! 끔찍하게 생각하는 것은, 맞는 것 같았다. 끔찍 이라는 단어도 쓰기 나름이니까 말이다.

그의 웃음이 끝나고 나는 노르웨 씨가 시원섭섭할 이야기를 들려줘야 했다. 끌고 온 마차가 의미가 없게 되어 버린 상황이니 말이다.

“그런데 그 영지에 가봐야 영주는 없을 겁니다.”

“잉? 어째서 말인가? 늙어 죽었나? 그럼 그 아들놈이라도?”

“아뇨. 그놈은 성국에 지하감옥으로 끌려갔거든요,”

“서, 성국 지하감옥?!”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온다는 흉악범, 이단, 마족의 끄나풀들이나 간다는 그 음침한 곳에 끌려갔다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노르웨 씨.

“제, 아내가 성국의 이단 심문관 출신이라서 부탁을 좀 했거든요.”

“아니, 자네가 우리의 복수까지 대신해줬다고?!”

그가 믿기 힘들다는 표정과 대체 내가 왜 그런 일까지 해줬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복합적인 표정을 지을 때.

여관 입구에 세 여자가 들어섰다.

병사들을 훈련 시키러 출근했던 아내들이 돌아온 것이다. 나는 오늘 노르웨 씨를 맞으려고 발레리, 애니, 플로라와 여관에 남았지만 이실리엘과 리젤다, 시트라는 출근을 했던 상황.

여관에 벌어진 잔치에 아내들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고, 대표로 이실리엘이 물었다.

“러셀, 노르딕 씨의 아버지가 이분이신가요?”

나는 노르웨 씨에게 이실리엘과 아내들을 인사시켰다.

“아, 이실리엘, 리젤다, 시트라. 인사해 여기가 노르딕 씨의 아버지 노르웨 씨.”

“안녕하세요? 이실리엘 롱 윈드라고 합니다. 러셀의 첫째 아내죠.”

“안녕하세요. 리젤다입니다.”

“시트라에요. 반갑습니다.”

아내 셋이 인사했지만, 노르웨 씨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단 한 명인 듯했다. 그가 실례라는 것도 잊고 외친 것은 엘프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들의 별명.

“노, 높은 귀?!”

노르웨 씨가 이실리엘의 금발을 보더니, 오늘 이곳에 와서 가장 크게 놀란 얼굴로 소리친 것이다. 아까 자기의 며느리와 손주들을 만났을때도 이렇진 않았는데…

“아니, 엘프들의 족장이라더니! 노, 높은 귀의 반려였단 말인가?!”

“하하, 예 뭐, 그렇습니다.”

“자네 정말 대단한 사람이군? 대체 콧대가 북부 대산맥보다 높다는 높은 귀를 어떻게?”

콧대가 북부 대산맥보다 높다는 노르웨 씨의 말에 이실리엘이 자기 코를 한번 쓱 하고 더듬었다.

귀여운 이실리엘의 행동에 미소를 지으며 리젤다에게 오늘 병사들의 훈련은 어땠는지 확인할 때.

이실리엘이 여관 내부를 한번 쓱 훑어보더니, 엘프들의 관찰력에 들어온 것인지 노르딕 씨의 상태에 관해 물었다.

“러셀, 근데 노르딕 씨는 왜 저렇게 어디서 두들겨 맞은 모습이 된 거죠?”

퇴근하고 들어오자 우리 집 애완 드워프가 만신창이가 된 모습에 안주인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사유를 물어온 것. 나는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 그게…. 예전에 집안 가보를 팔아 술을 사 먹고 가출했다는데, 그것 때문에 노르웨 씨한테 좀 맞았어. 안 죽은 게 다행이지….”

내 말에 급하게 당황하는 이실리엘. 엘프들은 이웃의 뭔가를 훔친다는 개념이 희박하니 그녀는 급하게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아, 그, 그렇군요. 그래도 저희의 전속 장인인데, 좀 덜 맞게 보살펴 주시지 그랬어요.”

“하하, 가족 일이라서 그게….”

내가 이실리엘에게 노르딕 씨가 맞을 때 말리지 못한 이유를 말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맥주 분수가 터져 나왔다.

­풉!

그리고 여관 내부가 싸늘하게 조용해졌다. 우리들의 대화에 모든 드워프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

“근데 지금 내가 이상한 걸 들은 것 같은데?”

옆을 보자 맥주를 뿜어낸 노르딕 씨가 수염에서 맥주를 뚝뚝 흘리며 나에게 물었다.

“예?”

“저놈이 높은 귀의 전속 장인이라는, 뭔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은 기분인데 말이야.”

이야기 잘 들었구만? 나는 그의 질문에 확답해주었다.

“아, 예 맞습니다. 노르딕 씨는 이실리엘과 저희 집안의 전속 장인으로 계약했죠.”

­풉! 푸웁!

­푸우웁!

모든 드워프의 입에서 맥주가 뿜어져 나오며 여관 내부에 자욱하게 맥주 향이 퍼지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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