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1화 〉 298. 충성 경쟁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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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이이이잉
노르딕 씨 가족이 도착하면 안으로 들여보내라고 말해두었는데, 목책 입구에서 신호 화살이 여관 지붕으로 날아들었다.
‘무슨 일이지?’
이상함을 느끼며 목책 문에 도착해 망루로 기어오르자 저 멀리 보이는 마차의 행렬.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대 맞네?’
“러셀 족장님, 노르딕 씨 가족분이 맞겠지?”
부족장 에밀이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그러나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는 상황. 마차를 보자 왜 기사들이 병사들을 다급히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병사들이 사전에 와주지 않았다면 의심할 수도 있는 상황. 가족을 만나러 왔다는 드워프들은 마치 전쟁에 참여한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 말이다.
아까 가족을 만난다는데 가죽 갑옷을 껴입은 노르딕 씨가 다시금 생각났다. 저런 이유라면 갑옷을 입는 것이 설명이 되니 말이다.
“음….”
절로 고민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저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무장마차? 험비를 닮았으니 험차?
기존 마차보다 폭이 넓은 사륜마차는 검게 칠해진 모습이었다.
팔 두 마차이면 두 마리씩 네 줄의 말이 끌어야 했지만, 저것은 네 마리씩 두 줄의 말이 끄는 정말 폭넓은 마차.
마차만 따로 보면 마치 다른 세계에서 가져온 것 같은 물건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마차 지붕에는 중형 발리스타들이 하나씩 장착된 모습인데 그 발리스타의 모습도 정상은 아니었다. 두 발의 발사체를 동시에 날릴 수 있는 멋들어진 모습.
그리고 점점 마차가 다가오자 검게 칠해진 마차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검은 철판과 가죽으로 덧대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저것은 일반적인 마차가 아니라. 마치 탱크.
공돌이 드워프들의 이동식 요새 같은 느낌이었다. 저런 걸 끌고 오니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서 전령을 보낼 수밖에.
일반 말보다 몸집이 절반은 더 큰 대형 짐말들이 끄는 마차 행렬은 천천히 마을 입구로 다가왔다.
그리고 목책 입구에 바짝 다가와 마차의 지붕에 있는 구멍에서 드워프 한 명이 쏙 하고 기어 나오더니 망루를 향해 외쳤다.
“안녕하시오! 여기가 웜 포트가 맞소?”
검은 수염 검은 머리. 노르딕 씨가 생각나는 특징을 가진 드워프였다.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예, 웜 포트가 맞습니다.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내 웜 포트가 맞는다는 말에 그는 얼굴에 바보 같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오오! 맞구려! 우리는 절대 이상한 사람, 아니 드워프가 아니오. 그 집 나간 우리 망나니. 아니 동생을 찾아왔소이다. 아 참 내 동생의 이름은 노르딕 스톤스틸 이라고 하는데, 이 마을에 살고 있다 들었는데 혹시 그를 아시오?”
아마 말하는 드워프는 노르딕 씨의 형인 모양이었다.
“아, 예… 환…”
노르딕 씨의 형을 향해 웜 포트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고 말해주려 하는데, 노르딕 씨의 형이 기어 나왔던 마차 구멍에서 또 다른 드워프 하나가 기어 나왔다.
그리고 나와 대화를 나눴던 드워프의 머리를 빡 소리가 나게 쥐어박으며 말했다.
“무슨 말이 이렇게 긴 게냐! 응?”
검은 머리에 검은 수염이지만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드워프. 팔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하고 얼굴은 붉은 누가 봐도 대장간에서 족히 수십 년은 일한 것으로 보이는 장인급 드워프였다.
그는 목책을 두리번거리더니 말했다.
“뭬야? 노르딕 이놈 새끼. 귀쟁이 마을에 사는 것인가?!”
놀라 외치는 늙은 드워프. 그의 말에 나도 깜짝 놀라 양옆을 바라보자 어느새 소리 화살에 모여든 평원 엘프들이 마차 쪽을 경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목책에 늘어선 십여 명의 엘프들. 저런 모습을 봤으니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긴 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향해 말했다.
“하하, 엘프들이 많긴 하지만 엘프 마을은 아닙니다. 어서 오십쇼. 웜 포트에, 노르딕 씨는 여관 앞에 계십니다.”
내 환영 인사에 늙은 드워프가 주름진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안에 여관이 있소? 당연히 맥주도 팔겠지?”
노르딕 씨의 아버지로 보이는데 아들은 관심도 없는 듯 그는 맥주만을 찾았다. 그의 물음에 나는 그에게 어떤 드워프라도 환장할만한 멘트를 던졌다.
“혹시 차가운 맥주 드셔보신 적 있습니까?”
“차가운 맥주?”
그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차가운 맥주는 한 번도 마셔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을 테니 말이다. 냉장 시설이 없는 이곳에서 차가운 맥주는 북부에서 겨울에나 먹는 것이고, 동부에서 왔다면, 미지근한 말 오줌 같은 맥주만이 허락되었을 테니 말이다.
나는 늙은 드워프를 향해 맥주잔을 들이키는 모습을 연기했다.
“크. 뜨겁게 달궈진 쇠를 땀을 뻘뻘 흘리고 두드리며 일하다, 일 끝나고 살얼음이 동동 뜬 맥주를 한잔. 캬… 시원하다!”
꿀꺽
내 말에 마차 위에 올라앉은 두 드워프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저희끼리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노르딕은 나중에 보고 일단 맥주부터 한잔해야겠죠?”
퍽
“멍청한 놈!”
아무리 맥주가 좋기로서니, 십여 년 만에 만난 동생이 코앞인데 맥주 타령하니 아버지에게 맞을 만했다.
아무리 맥주가 좋아도 저건 선을 넘은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다음에 이어진 말이 가관이었다.
“네놈은 말이 너무 길어. 자꾸 당연한 소리를 하는 게 문제인 게야!”
자기 아들을 따끔하게 혼낸 늙은 드워프가 나를 향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서 문을 열어주시오!”
노르딕 씨는 맥주보다 못한 아들인 것 같았다.
목책 문이 열리고 드워프들의 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섰다. 목책 문이 넓은 편인데도 불구하고 드워프들의 마차는 간신히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마차의 폭이 넓다 보니 일어난 상황. 말을 간신히 움직여 문틀에 스치듯 마차들이 목책 안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모든 마차가 마을 안으로 들어서고 나는 드워프들의 마차에 올라타 그들을 여관으로 안내했다.
“저쪽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기 보이는 건물이 여관입니다.”
내가 방향을 지시하자 노르딕 씨의 형이 말을 여관 쪽으로 몰고, 노르딕 씨의 아버지로 보이는 드워프가 군침을 삼키며 물었다.
꿀꺽
“살얼음이 뜬 맥주라니 맛은 어떻소?”
“어르신 제가 아는 나라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무슨?”
“백 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낫다. 그리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먹는 것이 낫다.”
꿀꺽
두 마차 안에는 드워프가 몇 명 더 있었는데, 내 말에 드워프들의 침 삼키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츄르릅 츕
잠시 후 개처럼 침을 흘리는 드워프들을 실은 마차가 여관 앞에 도착하고, 드워프들이 마차에서 내리자 여관 입구에서 노르딕 씨의 가족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늑대 머리 투구까지 쓴 노르딕 씨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가슴 뭉클한 상봉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여관 식구들과 아내들이 전부 밖으로 몰려나왔다.
맥주보다 못한 아들을 만나는 자리.
마차에서 내려 마차를 단속하는 드워프들을 보더니 못참고 물기어린 목소리로 외치는 노르딕 씨.
“아, 아버지! 혀, 형! 형님들!”
“오! 아들아!”
노르딕 씨의 외침에 노르딕 씨의 아버지가 제일 먼저 반응했다. 그는 노르딕 씨를 발견하자마자, 노르딕 씨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맥주 타령은 아마 드워프식 개그였던 모양이었다. 아들을 만난다는 설렘에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농담 말이다.
“아들아!”
“아버지!”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부르며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의 짧은 다리가 야속하게만 느껴지는 모습. 조금이라도 길었다면 더 빨리 만날 수 있을 텐데 하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감동의 재회 장면이었다.
‘둘이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부둥켜안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눈시울을 붉히며 눈물을 훔치겠지?’
전생의 이산가족 상봉을 떠올리며 가슴 뭉클한 장면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노르딕 씨를 향해 달리던 그의 아버지가 노르딕 씨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날아올랐다!
‘날아?’
그리고.
퍼억
노르딕 씨의 가슴을 향해 드롭킥을 처박았다.
눈물을 머금고 팔을 벌린 채 달려가다, 부지불식간에 드롭킥을 처맞은 노르딕 씨.
노르딕 씨는 드롭킥의 충격에 데굴데굴 뒤로 굴러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던 자리로 굴러왔다. 그리고 분노한 노르딕 씨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새끼! 감히 할아버지의 걸작을 훔쳐다 팔아 술을 마셔?! 내 십몇 년 전에 못 부러트린 네놈의 다리를!”
노르딕 씨의 아버지에 입에서 흘러나오는 노르딕 씨의 흑역사에 딸인 스나졸린과 아내인 그리나씨가 경악했다.
‘저 인간. 아니, 저 드워프 갑옷을 입은 이유가 다 있었구먼?’
노르딕 씨가 나에게 전속 드워프가 되는 것을 결정했을 때. 집안에서 말 안 듣는 아들이었다고 했는데, 말 안 들었던 아들이 아니라 그냥 망나니 아들이었던 모양이었다.
나 같아도 아들보다 맥주를 먼저 찾았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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