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300화 (300/352)

〈 300화 〉 297. 충성 경쟁 2

* * *

나는 오늘 드워프라는 종족이 아주 특이한 문화를 가진 종족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은 오늘 내가 접했던 그들의 특이한 인사 장면 덕뿐이다.

내가 접한 그들의 인사는 아주 특별하고 독특했다.

새벽에 병사들이 찾아와 노르딕 씨의 친가에서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주고, 병사를 통해 그들의 출입을 허락한 나는, 바로 노르딕 씨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하기 위해 엘프 구역으로 향했다.

해가 막 떠오르는 새벽이라 그런지, 강에서 시작된 뿌연 안개들이 마을을 덮고 있었고. 안개와 새벽이슬에 젖은 풀들이 조금 미끄러웠지만, 노르딕 씨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곧장 달린 것이다.

잠옷 차림에 로브만 걸친 채 말이다.

짙게 낀 물안개를 해치고 엘프 구역으로 진입. 엘프 구역 한가운데 있는 노르딕 씨의 집 현관에 들어서자 나를 반기는 것은, 낮아진 울타리와 대문의 낮은 대들보.

어느새 집 대부분을 자기들 크기에 맞춰 개조한 드워프들 덕분에 나는 물안개 속에서 대문 대들보에 머리를 부딪칠 뻔했다.

안개 속에 갑자기 나타난 낮아진 대들보에 림보 하듯 허리를 꺾어 머리를 보호했지만,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일곱의 아내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니라 허리를 보호했어야 하는 상황인데. 무심코 허리를 꺾어 머리를 보호하다 허리를 삐끗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아야야야….”

나는 한쪽 허리를 움켜쥐고 노르딕 씨의 현관을 두드렸다.

­쾅쾅쾅

그리고 노르딕 씨를 불렀다.

“노르딕 씨! 노르딕 씨!”

현관을 몇 번 두드리자 삐그덕 하고 열리는 현관. 그 안에서 노르딕 씨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요즘 대장간 건설로 아주 바쁜 노르딕 씨는 무척이나 피곤한 얼굴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씨익 웃었다. 지금은 아무리 피곤한 얼굴이더라도 내가 소식을 전달하는 순간 그는 마치 무덤에서 살아나는 것처럼 살아날 테니 말이다.

십여 년 만에 가족을 만난다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지만, 전생에 가장 인기 있던 프로 중 하나인 이산가족 찾기를 지켜봤던 나로서는 오늘 여관 식구들이 눈물을 좀 뺄 거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가족의 상봉이라는 것이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 편의 드라마나 마찬가지이기 때문.

나는 노르딕 씨의 한쪽 어깨를 두드리며 그에게 기쁜 소식을 전달했다.

“노르딕 씨 가족들이 그란 폴과 웜 포트 사이의 검문소까지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성국에 부탁했던 노르딕 씨의 가족을 찾는 것이 성공한 것 같습니다.”

“예? 무슨 가족이? 설마?”

처음에는 가족이 왔다는 말에 무슨 말인지 이해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노르딕 씨. 노르딕 씨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저희 친가에서 사람들이 왔단 말입니까?”

“예! 드디어 가족들을 만나보실 수 있을 거 같네요. 축하드립니다.”

노르딕 씨는 믿기지 않는지 털썩 주저앉더니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들이….”

문틀을 한 손으로 쥐고 손을 또는 노르딕 씨의 모습.

털썩 주저앉은 노르딕 씨의 모습에 전생에 시청했던 이산가족 상봉이 생각나 눈시울이 왈칵 붉어졌다.

“오늘은 가족들 만나 뵈어야 하니까. 아침에 여관 목욕탕에서 목욕도 하시고, 좋은 옷 입고 기다리세요. 알겠죠? 엘프들이 만들어준 천으로, 얼마 전에 새 옷 만들었다고 하셨잖아요. 알겠죠? 노르딕 씨. 애들도 꼭 씻기시고요. 준비 꼭 하셔야 합니다. 노르딕 씨는 저희의 전속 드워프니, 저희의 얼굴이나 마찬가지니까요. 아셨죠?”

우리 드워프들을 가족들과 거지꼴로 만나게 할 수는 없기에 내가 여러 가지를 당부하자 노르딕 씨가 바닥에 주저앉아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한 단어에 반응했다.

준비라는 단어에 말이다.

“주, 준비!”

아마도 가족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이제야 가슴에서 머리에 닿았는지. 준비라는 말과 함께 깜짝 놀라 일어서는 노르딕 씨.

그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밖으로 나왔다 하면서 고장 난 태엽 인형처럼 안팎을 오가는 행동을 반복했다.

나는 그의 고장 난 모습에 급하게 노르딕 씨를 붙잡고 흔들었다.

“노르딕 씨? 진정하세요! 진정!”

내가 노르딕 씨를 붙잡고 탈탈 흔들자 들려오는 노르딕 씨의 놀란 목소리.

“러, 러셀님. 그, 그렇지. 준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소식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쾅

노르딕 씨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인사하는 것도 잊고 문을 닫고 사라졌다. 가족을 만난다니 준비할 게 많은 모양이었다.

‘저렇게 좋을까?’

흐뭇한 마음으로 노르딕 씨를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다가.

­빠악

­털썩

강력한 이마의 통증과 함께 갑자기 하늘과 땅이 반대로 뒤집혔다. 빙글.

“끄아아악!”

결국 낮아진 대들보에 머리를 박고 그대로 뒤로 넘어진 것. 머리와 허리에 찾아오는 강렬한 통증.

나는 이마와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다가 간신히 일어나 여관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대문은 고치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 마을에 키 작은 건 노르딕 씨 가족뿐이니 말이다.

“끙끙….”

안개를 헤치고 허리와 머리를 부여잡고 여관으로 들어서자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모여있던 아내들이 내 몰골을 보고 물었다.

“러셀? 대체?”

“무, 무슨 일인 거죠? 이마는 왜?”

“러셀, 이마 왜 그래?”

아마 아침에 이슬 맞은 흙바닥에 굴렀으니 엉망진창인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아내들의 물음에 이마를 만져보자 혹이 주먹만 해 진 상황.

만화에 나오는 케릭터처럼 감자를 반 갈라 이마에 붙인 것 같은 상태가 되어있었다.

나는 허리에 한쪽 손을 대고 간신히 의자에 앉아 말했다.

“아, 노르딕 씨 가족들이 찾아오고 있다기에, 노르딕 씨 집에 소식을 전하러 갔다가, 대문에 머리를 부딪쳐 넘어졌지 뭐야. 아이고 허리야… 허리가 아무래도…”

“예? 어디요?!”

“러셀, 허리라고!?”

“자기, 허리를 다쳤다고요?!”

“어디요!?”

아내들이 내가 허리를 다쳤다는 말에 두 눈을 부릅뜨고 되물었다. 노르딕 씨 가족이 찾아온다는 것은, 아내들에게 중요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시트라가 달려들어 신성 치료를 시작했다. 이마의 혹에도 뿜어지는 신성력. 불안한 표정으로 치료를 지켜보던 아내들이 시트라를 향해 외쳤다.

“시트라 허리부터입니다!”

“시트라님 허리부터 돌봐야 하지 않을까요?”

“아 참. 눈에 보이는 것 먼저 치료하다 보니…”

시트라가 아내들에게 어색하게 웃으며 사과하고, 급하게 허리부터 치료하자 통증이 금세 사라졌다. 일국의 국왕도 받지 못하는 성녀의 치료를 개인이 독점하는 상황.

호화로운 대접에 눈을 감고 뿌듯함을 느끼는데 뭔가 휑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눈을 떠 주변을 보니 모두 사라진 아내들.

‘뭐야? 다 어디 갔어?’

혼자 남겨진 나는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혹도 반쯤 남겨진 상태였다.

­­­­­­­­­­­­­­­

저녁때가 다가오자 나는 노르딕 씨의 가족을 여관 앞으로 불러 모았다. 지금쯤이면 노르딕 씨의 가족들이 도착할 때가 되었기 때문.

새벽에 출발한 병사들이 점심때쯤 도착해서 그들의 안으로 들여보냈으면, 지금쯤이 노르딕 씨의 친가 식구들이 도착할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는 사리나에게 노르딕 씨의 집에 가보고 준비가 끝났으면 그들을 불러오라고 부탁했다. 내가 직접 갈 수도 있었지만, 아침에 그 꼴을 당하니 다시 가고 싶지 않았던 것.

그렇게 내 부탁으로 엘프 마을로 달려간 사리나는 잠시 후 드워프 꼬맹이 하나를 안은 채 엘프 마을 입구에서 나타났다.

사리나의 옆에 보이는 다른 꼬맹이와 스나졸린, 그리나 씨. 노르딕 씨는 사리나의 몸에 가린 건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언뜻언뜻 사리나 뒤에 보이는 모습이 전원 모두 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사리나를 선두로 드워프들이 하나둘 도착하고, 나는 노르딕 씨의 모습에 그에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준비가 다 끝난 모습이라고요?”

“예, 러셀님!”

내 물음에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하는 노르딕 씨.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하라는 내 말을 노르딕 씨는 뭔가 잘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노르딕 씨의 모습을 가족을 맞으러 나가는 모습이 아니라. 전쟁에 참여하는 모습이니 말이다.

지금 노르딕 씨의 모습은 한 마리의 짐승 같은 외관. 엘프들이 잡아 온 늑대 가죽으로, 털을 살린 경화 가죽 갑옷을 만들어 입고 있는 상태.

‘드워프 전통인가?’

얼마나 단단해 보이는지 철갑옷 못지않은 모습으로 투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감싼 노르딕 씨.

그런데 전통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좀 이상했다. 아이들과 스나졸린양은 엘프들이 만들어준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있었고, 노르딕 씨의 부인인 그리나 씨도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죽 갑옷을 껴입은 것은 노르딕 씨가 유일했던 것.

나는 그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저, 제가 뭘 잘 몰라서 그러는데 드워프들은 가족을 만날 때 가죽 갑옷을 입나요?”

내 질문에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노르딕 씨. 내가 턱으로 노르딕 씨를 가리키자 그가 자기의 몰골을 깨닫고 급하게 당황하며 말했다.

“모, 모든 드워프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은 필수죠! 암요!”

노르딕 씨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