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93화 (293/352)

〈 293화 〉 290. 그란 폴 3

* * *

그래 생각해보니 이쪽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영애도 혼기가 꽉 차 보이는 나이.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이 그렇다. 뭐든지 태어나 나이를 먹고 번식을 할 수 있는 몸이 되면 자연스레 이성을 찾게 되는 것.

그것은 거대한 우주의 법칙.

그 아래 속한 인간들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활짝 핀 꽃에 벌과 나비가 모여들고 봄철 개구리들이 산란을 위해 웅덩이로 모여드는 것처럼 말이다.

뭐 영애가 얌전하게 생겨 말투나 애타는 목소리가 약간 예상외이긴 했지만,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원래 얌전한 친구들이 이성 만날 기회도 적고 마음을 표현하기도 힘들어서, 누군가를 좋아하면 저렇게 애가 타 숨기기 힘들어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는 것은 흔한 모습.

계속 엿들어 영애의 명예를 더럽힐 수는 없기에 나는 천천히 둘 쪽으로 걸으며 인기척을 내주었다.

“큼큼….”

“어?!”

내 인기척에 화들짝 놀라 내 쪽을 보고는 둘.

“헉!”

“어머!”

그리고 인기척을 낸 사람이 나라는 것을 확인하더니 둘은 연속으로 경기를 일으키는 것 같은 모습이 되었다. 영애는 입을 가리고 경악하고 누님은 얼굴에 떠오른 것은 뭔가 좆됐다는 표정.

내가 가까워질 때마다 실시간으로 괴상하게 변하는 둘의 얼굴. 도둑질하다 들킨 것처럼 둘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그렇게 내가 점차 가까워지자 입술까지 떨며 조심스레 물어오는 릴리아나 누님.

“러, 러셀, 설마 들었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훗…”

나는 대답 대신 피식 웃으며 영애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붉게 타오르는 얼굴과 절망에 빠져드는 눈빛이 되는 영애. 그녀는 한마디를 내뱉었다.

“마…”

“마?”

“망했어!”

이어서 릴리아나 누님의 어깨로 깊숙이 침몰하는 영애.

누님에게 몸을 돌려 기댄 그녀의 졸라맨 허리가 아주 가냘프게 꺾여 톡 건드리면 부러질 것같이 보이고, 어깨를 드러낸 드레스 위로 드러난 그녀의 목덜미가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좀전의 적극적이고 왈가닥 같은 목소리가 어울리지 않는 가냘픈 몸짓.

‘뭐 부끄럽긴 하겠지.’

이쪽 세계 기준으로는 여자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주 부끄러운 행동이 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것도 평민도 아니고 그란 폴 백작가의 영애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쪽 세계 기준. 나는 적극적인 여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아주 미래지향적인 남자. 아니, 이세계 지향적인 남자. 내 아내들도 대부분 적극적이었고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영애에게 말을 걸었다.

적극적이란 것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다양한 방법의 하나일 뿐이니 말이다.

“그렇게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영애”

내 말에 릴리아나 누님의 어깨에 얼굴을 처박고 있던 영애의 몸이 움찔 떨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풀숲에 대가리를 처박고 자신을 숨겼던 까투리처럼, 머리만 숨겼던 영애는 살포시 고개를 돌려 한쪽 눈으로만 나를 바라봤다.

나는 영애를 향해 부드럽고 따듯한 목소리를 유지하며 그녀를 위로했다.

“솔직히 잠시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저는 그런 모습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내 말에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없이 커지는 영애의 동공. 그녀가 말도 안 된다는 목소리로 물었다.

“에? 저, 정말로요?”

“그럼요. 솔직히 뭐랄까? 수동적인 여자들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여성들은, 운명을 자기 자기의 손으로 개척하겠다는 그런 의지가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내 말에 용기를 얻었는지 영애가 부끄럽다는 듯 몸을 꽈배기처럼 배배 꼬았다.

‘여자 몸이 저렇게도 꼬아지는구나?’

리젤다만큼 유연해 보이는 영애의 모습.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요가강사 버금가는 모습의 영애. 그녀는 내 말에 기운을 얻은 듯, 릴리아나 누님의 어깨라는 풀숲에서 대가리를 쳐들고는 놀란 까투리 같은 눈으로 조심스레 물었다.

“여, 역시 현자님… 그, 그렇군요. 적극적인 여성을 나, 나쁘지 않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럼요! 그러니 부끄러워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영애. 저도 뭐 그럴 때가 있었으니까요.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데 부끄러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기를 북돋아 주자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영애의 모습. 그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에 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한 몸 희생해 보기로 하고 영애를 향해 말했다.

“그리고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제가 이야기를 들은 이상 영애를 그냥 둘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뭐…. 어쨌든 현자. 지혜로 사람을 돕는 것이, 저의 일이니까요. 그리고 그것이 친한 사이인 영애라면 더더군다나 모른 척할 수는 없는 일인 것이죠. 몰랐으면 모르겠는데 들은 이상 제가 책임지도록 하죠.”

“저, 정말요?”

영애는 믿을 수 없다는 말투와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무척이나 감동한 모습.

뭔가 분위기가 훈훈해지려는데, 영애와 나의 모습을 보던 릴리아나 누님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야! 러셀, 대체 어떻게 하려고 해? 너! 아내들에게는 어떻게 말하려고!? 커 헉….”

쓸데없는 고민하는 누님. 누님은 쓸데없는 고민의 대가로 영애의 팔꿈치에 명치를 찍히고는 그대로 명치를 움켜쥐고 말았다.

사람이 눈치 없이 저러니 두드려맞기나 하고 노처녀가 되는 것이다.

‘맞아도 싸지. 싸! 이 누님이 사람을 바보로 아나?’

누님은 내가 바보 병신인 줄 아는 모양. 나는 누님을 향해 딱 부러지게 선을 그었다.

“누님 제가 바보입니까? 저 부끄럽긴 해도 현자라고요! 현자! 당연히 영애를 위해서 아내들에게는 비밀로 해야죠.”

“예?!”

“뭐!?”

뭔가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묻는 영애와 놀라 눈을 부릅뜨며 자신이 들은 것이 맞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누님.

나는 영애에게 안심하라는 투로 말했다.

“저만 딱 믿으시죠. 아내들이나 다른 사람들 모르게 저와 영애만의 비밀로 하면 되니까요.”

내 말에 영애는 기뻐하는 표정에서 갑자기 아주 비장한 표정이 되었다. 유부남이 아내들에게까지 비밀로 한다는 말에 감격한 듯한 모습.

아내들에게까지 비밀로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것 같았다. 그것은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 말이다.

“러셀님, 저. 부, 부끄럽지만 제가 이번에 그란 폴의 후,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오…. 후계자! 그럼 여 백작 탄생인 건가?’

나는 영애의 말에 일단 축하를 전하고 그녀의 쓸데없는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서 말했다.

아무래도 더하려 했던 말은 이제 후계자라는 위치니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알려지지 않게 보안을 강화해 달라는 당부일 테니 말이다.

“일단 축하드립니다. 영애께서 앞으로 여 백작이 되실지도 모르겠군요.”

“예, 그러니 다른 분들께…”

“그럼요! 절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게 저희 둘만의 영원한 비밀로 해드리겠습니다. 영애의 명예를 위해서도 결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조심하도록 하죠. 릴리아나 누님까지 셋만 아는 비밀 어떻습니까?”

내 제안에 영애는 심각하게 고민을 시작했고 누님은 나를 바라보며 자기는 빼달라며 고개를 좌우로 휘저었다.

‘사람이 신의 없게!’

누님은 아까 영애에게 맞은 명치가 덜 아팠던 모양이었다. 보니까 언니라며 잘 따르는 것 같은데 동생이 이런 중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쏙 빠지려고 하다니.

누님을 비난의 눈빛을 담아 한번 쏘아준 후. 영애를 확인하자 영애는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온다는 말을 모르는지 장고하는 상황.

‘아니, 이걸 왜 고민하지.’

나는 고민하는 영애의 모습에서 내가 아무래도 남자이고 전문가로 보이지 않아서 그럴까 싶어 내 경력을 조금 털어놓기로 했다.

“뭐 의심이 간다거나 믿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될 수도 있으실 테지만, 이미 저는 한 명에게 은밀한 도움을 주는 사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는 이미 로리엘에게 연애 상담해주는 경력자. 뭐 잘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경력이라는 게 다 그런 것이니 그것을 영애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했다.

그런데 내 경력 어필에 먼저 반응한 것은 릴리아나 누님. 누님은 표정이 뭐랄까? 설마 네가 그럴지 몰랐다는 그런 얼굴로 물었다.

“뭐!? 진짜 러셀?!”

‘아니, 이 사람이 내가 얼마나 연애 상담을 잘해주는데, 내가 전생에 교회 다닐 때 사랑의 작대기의 은사가 있다는 소리도 들어봤는데!’

나는 누님의 의심 가득한 물음에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이름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누나도 알잖아 로리엘. 어디 가서 절대 말하면 안 된다. 알았지? 영애도 제가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한쪽을 소홀히 하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시죠.”

고객이 늘어난다고 어느 한쪽을 소홀하게 할 수는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 안심시키자 그제야 영애는 뭔가 각오한 얼굴로 아랫입술을 꼭 물며 말했다.

“역시, 제가 준비할 수 있는 것들로는 부족했나 보군요. 계속 욕심을 부리면 추한 모습만 보이겠죠? 그럼…. 이정도에서 만족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저는 러셀님만 믿겠습니다.”

‘준비? 욕심? 로리엘을 빼고 자기만 상담해달라는 건가?’

영애의 마지막 말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뭐 귀족이니 주치의 같은 개념으로 자기만 돌봐 주는 서비스를 원한 것 같은데, 로리엘은 소중한 친구인데 그렇다고 버릴 수 있나.

아무튼 영애가 욕심을 버리고 결심했다니. 나는 이제 나의 연애 상담 고객이 되신 영애를 위해 본격적인 카운슬링을 하기로 마음먹고 그녀의 목표가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래서, 마음에 드신 남성분은 누구시죠? 이 현자 러셀이 선진 문물인 밀당이라는 것을 영애님께 전수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릴리아나 누님과 영애가 나를 동내 바보형을 바라보는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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