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0화 〉 287. 늪지의 거머리들 8
* * *
“본 교관은 너희들에게 무척이나 실망했다!”
나는 이놈들을 훈련 시키면서 프로 실망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
뭐라고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병사들의 훈련에 사용하려는 것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단궁. 고급 활을 들려주어봤자 장력 때문에 당기지도 못할 것이 뻔하니. 초보자들도 사용할 수 있는 단궁을 라페스빌의 행정관을 통해 준비한 것인데.
단궁조차 당기지 못하는 근력을 보유한 병사가 열 명 남짓. 활을 쏘아 앞으로 날려 보내지 못하는 놈들이 절반 정도.
원래 궁수라는 것이 훈련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활이라는 무기가 숙련도가 매우 필요하긴 무기이긴 한데. 그래도 보통 온종일 쏘다 보면 조금 감을 잡아 앞으로는 날리기 마련인데, 이 새끼들은 온종일 활을 쏘아도 활을 앞으로 날리지도 못하는 아주 한심한 녀석들이었다.
자기 시위에 팔목을 얻어맞고 주저앉는 놈. 손가락이나 팔목을 다치는 놈들도 많았다.
뭐 그래도 첫날이라 이정도는 예상한 바인데, 훈련 말미에는 자기 발등에 화살을 쏜 놈도 등장했다.
‘대체 발등에 활을 쏘는 건 어떻게 해야 가능한 거냐?’
자기 발등에 화살은 쏜 두 놈은 바로 시트라에게 실려 갔다.
‘대 환장 파티.’
내가 이놈들을 오늘 하루 훈련 시키며 뼈저리게 깨달은 것은 기본부족이라는 단어. 전생에 군대에서 왜 고졸 이상만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글과 숫자를 셀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깨달았다고나 할까?
글과 셈법을 모르니 설명하는데 못 알아듣는 놈도 많고 수학 아니, 셈법을 적용해서 하는 설명조차 한계에 부딪히는 상황. 아니 그냥 숫자를 못 세는 놈도 많았다.
예를 들어 뭐 이런 것이다.
“심호흡을 열 번 정도 하고 시위를 잡은 손가락을 놓는다!”
“열 번이 그러니까….”
갑자기 활을 놓고 자기 손가락을 바라보는 올빼미. 자연스레 머리를 쥐게 되는 상황.
병사들의 모습에 앞으로 훈련 이 조금 더 진행되어 전술이라든지 이런 걸 가르치려면 기초 셈법과 글 정도는 가르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심각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내 속 터지는 마음도 모르고, 내 실망했다는 소리에 ‘교관님이 왜 실망했데?’라며 수군거리는 놈들.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겠냐.’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병사들에게 해산 명령을 내렸다.
“금일 훈련 종료! 해산!”
이실리엘과 수호자들도 뭔가 답답한지 자기들끼리 엘프어로 열심히 대화를 나누기에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자, 로리엘이 짜증을 가득 담은 얼굴로 대답했다.
“러셀, 머리를 다쳤던 병사들이 많은 것 같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자연스레 알 수 있는 상황.
엘프들을 달래 퇴근시키고 빡대가리 병사들의 모습에 실망한 채 교관들의 막사로 들어서자, 그건 기사와 견습기사를 가르친 벨릭이나 에반도 다르지 않은지 두 놈이 질려버린 얼굴로 막사로 들어왔다.
“너희는 오늘 어땠냐?”
“형님 기사 중에 글을 모르는 놈이 있소! 세상에 그런 멍청한 놈이….”
벨릭은 정말 한심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기사 계급도 나름 하급 귀족인데 어떻게 글을 모를 수 있냐는 뜻인 것 같았다.
‘벨릭한테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그리고 벨릭의 한심스럽다는 얼굴 옆으로 에반도 비슷한 감상을 전했다.
“평화에 찌든 게 아니라. 남부 기사는 머리에 좀 문제가 있는 자들만 뽑아둔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설명을 이해를 못 하니…”
“그 정도라고?”
병사와 하나 다를 바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인 상황.
병사들의 훈련만큼이나 기사들의 훈련이 중요한 게 아무리 강한 병사들을 훈련해주면 뭐 하나? 정작 지휘해야 할 기사가 병신이면, 활 한 발 쏴보지도 못하고 떼 몰살 망할 수밖에 없는 것.
사병은 실수는 개인의 죽음으로 이어지지만, 지휘관의 실수는 부대 전멸로 이어지는 것이다.
아무 대책 없이 궁수를 돌격하는 기마에 전면 배치하거나, 저지대에서 고지대에서 돌격해오는 기마부대를 저지하게 시키거나, 지휘관들이 할 수 있는 병신 짓들은 아주 다양하니 병사들의 훈련만큼이나 지휘할 기사들의 훈련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싹수부터 노랗다는 에반의 보고.
“아니, 선임 기사 그 양반은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던데?”
나이 많은 선임 기사는 말이 그래도 제법 통하고 병력 생각도 좀 하는 편이었기에 다들 그 정도는 되나 싶었는데, 그가 특별한 것 같았다.
‘하긴 그러니 선임 기사 해 먹겠지.’
“제가 보기에는 무력만 좀 더 강한 병사들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사들의 전술이나 진형 기마 돌격 같은 것도 제대로 이해를 못 하고 있더군요.”
“후….”
‘천하수안(?下??) 망전필위(忘戰必?), 천하가 아무리 태평해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기가 온다 했거늘….’
나는 중국 고사에 나오는 말을 곱씹으며, 한숨을 푹 쉰 다음 에반을 포함한 교관들에게 말했다.
“내가 아는 한 국가에서는 군인을 훈련 시킬 때 자주 쓰는 말이 있어…”
“예? 무슨?”
나는 벨릭과 에반향해 비장한 눈빛을 내비치며 말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내일부터 좀 더 혹독하게 다룬다! 몸을 두드리면 머리가 열리게 되어있어!”
나는 우리의 뚜껑이 먼저 열리기 전에 병사들의 뚜껑을 열어 버리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우리의 혹독한 조교가 시작되었다.
“순서를 기억하지 못하겠다고? 그것은 정신을 차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박고 그대로 달린다!”
“뭐라고? 동작을 아직도 숙지하지 못했다고? 강물에 머리를 처박는다! 실시!”
“옆 전우가 아직도 동작을 숙지하지 못했는데 올빼미는 뭐 했나? 같이 박는다! 실시!”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이 ‘설마 이게 되겠어?’ 하는 혹독한 훈련(?)도 머리가 나쁘니 몸이라도 튼튼 하라는 신들의 배려인지는 몰라도, 이 새끼들은 엄살은 심해도 어떻게든 버텨냈다.
풀밭에 머리를 박고 달린다든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달리게 한다든지. 강물에 머리를 박고 숨 참기라든지. 너무 잘 버텨 실제로 ‘별거 아닌 거 아냐?’라면서 벨릭이 머리를 박고 달려보다 머리털이 한 움큼 빠지기까지.
‘그래 머리가 부족하면 몸이라도 튼튼해야지.’
우리의 혹독한 갈굼. 아니, 훈련 속에서 병사들은 어떻게든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렇게 오 일째 훈련이 끝났다.
오 일째의 훈련이 끝나는 저녁은 병사들이 훈련을 쉬는 날이다. 훈련을 끝내고 에반 벨릭과 회의 다음 훈련에 대해 회의하고 여관에 들어서자 내일 쉰다는 소식에 여관 앞마당까지 차지한 병사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와하하! 술이 이렇게 달다니!”
“여관 음식은 왜 이렇게 맛있냐?”
여기저기 이미 거나하게 취한 병사들이 맥주와 고기를 뜯으며 신이나 떠들다. 내가 여관 앞에 보이자 흠칫하는 모습을 보이다 말을 걸어왔다.
“엇? 교, 교관님?”
“어, 그래. 술 한잔하고 있나?”
“악!”
“훈련하는 중이 아닐 때는 편하게 대답해도 된다.”
“우하하하!”
어리바리한 병사들의 모습에 다 같이 웃는 올빼미들.
“교관님도 술 한잔하러 오셨습니까?”
내가 여관 앞에 보인 이유가 궁금했는지 병사들이 이곳에 나타난 연유를 물어왔다.
병사들은 한 달 정도는 쉬는 날을 제외하고는 저녁에 막사를 벗어나지 못하게 할 예정이었기에 오늘은 그들의 첫 여관 방문.
내가 여관주인인지 모르는 병사들은 내가 왜 여관에 나타났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 우리 집이 여기야.”
“예? 여관에서 주무십니까? 여관에서 주무시면 돈이 아깝지 않나요?”
막사에서 자는 것은 공짜인데, 굳이 비싼 돈 주고 여관에서 잘 이유가 있냐는 물음.
내가 여관이 진짜 우리 집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 하는데 안에서 이실리엘이 뛰어나오며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러셀, 다녀오셨어요.”
“응, 아이고 힘들다.”
“들어와서 씻고 쉬세요.”
이실리엘이 낮의 훈련에 내 어깨에 쌓인 먼지를 털며 팔짱을 끼고 여관 안으로 나를 이끌자. 뒤에서 뭔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의 병사의 물음이 들려왔다.
“교, 교관님?”
“응? 왜?”
“호, 혹시 이실리엘 교관님과 사이가? 설마 두 분 사귀시는?”
아마 이실리엘과 내가 다정한 모습을 보이자 우리 관계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하긴, 저 나이 때 제일 궁금한 게 남겨 관계긴 하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병사의 물음에 대답했다.
“아, 내 아내다.”
“““예에?!”””
병사들은 다 같이 놀라 소리치더니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포칼립스가 도래하기라도 한 듯. 여관 앞은 병사들의 비명으로 아비규환이 되었다.
“끄아아아악! 거짓말! 거짓말이라고 해줘 마커스!”
“흑흑흑… 우리 여신님이….”
“마, 맙소사 마족 교관과 우리 여신님이!”
그리고 비명을 지르던 놈들은 나와 이실리엘을 둘러싸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이실리엘에게 물었다.
“이실리엘 교관님 혹시 협박이나….”
“마족 교관님 솔직히 말씀하십쇼!”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이실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며 나를 바라보고. 이 새끼들이 나를 무슨 납치범, 강간마나 협박범 정도로 생각하는 모습에 내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을 때, 갑자기 여관 입구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죠?!”
화가 난 시트라의 목소리.
시트라의 분노한 목소리에 나와 시트라 사이에 있던 병사들이 마치 홍해가 갈라지듯 반으로 갈라졌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병사들의 놀란 목소리.
“성녀님이다!”
“성녀님이시다!”
“시트라!”
“어? 러셀님! 언제 오셨어요?”
시트라의 등장으로 병사들이 진정된 것 같기에 그녀를 반갑게 부르자 시트라가 냉큼 달려와 내 반대쪽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시트라를 시작으로 여관 안쪽에서 내가 왔다는 소식에 아내들이 하나씩 나와 나에게 달려왔다.
“러셀!”
“자기!”
“러셀 오셨어요?”
그렇게 아내들의 행렬이 끝나자. 우리 주변을 둘러싼 병사들이 갑자기 단체로 머리를 부여잡고 울기 시작했다.
“엉엉…. 씨발 이건 말도 안 돼!”
“나, 그냥 오늘 밤 도망칠래…”
“그냥 오늘 벼락 맞아 죽자! 살고 싶지 않다…”
나로 인해 세상이 불공평한 걸 뼈저리게 알아버린 병사들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