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89화 (289/352)

〈 289화 〉 286. 늪지의 거머리들 7

* * *

원래 군대라는 게 그렇다.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나이의 피 끓는 젊은 친구들을 모아두었다는 사실과 또 군대의 특성상 여자를 거의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어우러지면, 기묘한 집단 최면 현상 같은 것이 일어나는데.

이 집단 최면 현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력을 흐리게 함은 물론 시각까지 상실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 사람이 기묘한 상태가 되는데, 이 기묘한 집단 최면의 말기 증상은 나이나 외모를 떠나 치마를 입었다는 사실, 그러니까 암컷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을 열광하게 만드는 것이다.

바로 저렇게 말이다.

“와아아아아! 여신님이셔!”

“여, 여기가 사제님들이 말씀하시는 천계인가!”

“마계를 거처 천계에 도착하는 것인가!”

연병장은 끓어오르는 냄비처럼 환호와 열기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내 아내인 이실리엘을 비롯해 로리엘이나 수호자들은 저런 환호 받아 마땅한 미모이지만 굳이 예쁜 여자들이 아니더라도 열광했을 것은 뻔한 일.

전생에 인터넷을 찾아보면 취사병과 40대인 취사장 아주머니들과의 판타지 소설들이 괜히 떠돌아다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아마 병사들의 머릿속에는 앞의 엘프 교관과의 판타지가 펼쳐지고 있을 것이다. 뭐 애는 몇 명 낳고 이름은 무엇으로 하고 뭐 그런 것 말이다.

“조용!”

“악!”

그렇기에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젊은 혈기에 혹시라도 애먼 짓 하는 놈들이 나올 수도 있으니 말이다. 젊은 혈기라는 건 가끔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니 말이다.

참고로 내가 걱정하는 건 엘프들이 아니다.

가장 걱정되는 건 엘프들이 아니라 병사들. 쓸데없는 짓을 했다가는 앞의 네 명의 엘프가 참지 않을 것이고. 그녀들이 참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폭력 사태 이상의 결과를 가져올 테니 말이다.

다른 종족이라는 것은 다른 생명체라는 사실이고 대수림의 수호자들은 적대적인 생명체의 목숨을 끊는 데는 주저함이 없으니 말이다.

“참고로 아름다운 교관을 보고 더러운 마음을 품거나 쓸데없는 짓을 할까 싶어 경고하는데, 앞에 교관님들은 너희 정도는 모두 달려들어도 단숨에 제압할 실력을 갖춘 분들이니 대하는데 한점 실례가 없도록!”

“에이…”

몇몇 병사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음성. 예쁜 엘프들이 위험하다니 나올 수 있는 반응이었다.

아마 일반적인 대부분 사람의 반응이 이럴 테니 라페스빌도 용 같은 엘프가 아닌 용이 대늪지에 산다고 발표한 것일 테니 말이다.

‘이시키들이 관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좋다! 믿지 못하겠다는 놈들은 앞으로 나서라! 앞의 교관님과 결투를 해서 이기는 놈들은 훈련이 모두 끝날 때까지 모든 훈련에서 해방 시켜주겠다!”

“우와아아아!”

내가 제안한 것이 노예 해방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병사들은 내 결투라는 말에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다투어 앞으로 나서는 병사들. 앞에 나선 병사들은 서른 명쯤 되었다.

관뚜껑을 열고 들어갈 사람을 찾는데 앞다투어 달려드는 기현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병사들의 모습.

나는 웃으며 엘프들의 향해 누가 장례지도를 할 것인지 물었다.

“누군가 나가서 수고 좀….”

“내가 간다. 러셀.”

그러나 누가 나가서 장례지도를 할 것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로리엘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허리에 찬 단검에 손을 가져가며 말이다.

아마도 하찮은 병사들에게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무척이나 분노하는 모양이었다.

“감히! 이실리엘님을 비웃다니.”

‘아, 그쪽이었나?’

다 같이 무시당해도 이실리엘에 대한 무시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는 로리엘.

일단 병사들을 죽일 수는 없었으므로 로리엘에게 단검 길이 정도의 막대기 두 개 병사들에게는 긴 봉이나 칼 길이의 막대기를 하나씩 들려주었다.

그리고 로리엘에게 물었다.

“로리엘, 어떻게 할까? 한 명씩 할까?”

그러자 인상을 확 쓰고 나를 바라보는 로리엘. 로리엘의 표정에 그녀의 감정을 읽어내고 나는 다급히 웃으며 말했다.

“하하…. 다, 당연히 한 번에 해야겠지?”

굴다리의 로리엘형님의 전설이라도 써 내려가고 싶었던지 30대 1을 원하는 로리엘.

절대 로리엘이 지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혹시 사람이 많으면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으니. 나는 로리엘에게 절대 죽거나 크게 다치게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거듭 주의를 시켜야 해야 했다.

“로리엘 절대 죽이면 안 된다. 눈 같은데 다치지 않게 하고. 알았지?”

“칫… 알았다.”

향내가 진하게 피어오르는 느낌의 말투.

‘뭐야? 설마 죽이려고 한 거냐?’

로리엘의 말에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아내고 연병장 중앙을 비웠다. 그리고 중앙에 로리엘과 병사들이 마주 보고 도열 했다.

병사들과 로리엘을 향해 말했다.

“넘어지거나 항복하거나 하면 그 사람은 결투에서 진 걸로 하겠다. 절대 상대방을 크게 다치지 않게 조심하도록!”

“알았다.”

“교관님 저희가 설마 여자를 심하게 다루겠습니까? 엘프에 더군다나 여자인데? 크흐흐”

병사들도 평균적으로 엘프들의 근력이 약하다는 사실을 아는지. 한 놈이 음흉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다 같이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시 한번 꿈틀거리는 로리엘의 눈썹.

연병장에 자욱하게 깔리는 살기. 바보 같은 놈들은 살기를 느낄 재주도 없기에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낄낄대기만 하는 모습.

지금 저 눈썹 꿈틀거림 한 번에 자기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병사들은 신이 난 상태였다.

그렇게 로리엘과 일반 사병들과의 30대 1 전투가 시작되었다.

“시작!”

내 신호가 떨어진 것과 함께 시작된 결투.

먼저 움직인 것은 로리엘이었다. 그러나 로리엘의 움직임을 본 것은 연단 위의 우리뿐. 병사들은 갑자기 사라진 로리엘의 모습에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로리엘을 찾았다.

그러자 들려오는 소리.

­퍼억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한 명이 땅바닥에 납작하게 달라붙었다.

“크허억”

목덜미를 맞았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병사.

­탁탁

­샤샤샥

그리고 발걸음 소리 풀 밟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비명이 하나둘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공포영화를 찍는 것 같은 모습.

로리엘이 나의 경고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지금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으니. 나야 어느 정도 그녀의 모습이 보이고 이실리엘이나 다른 수호자들은 그녀가 움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하지만 병사들은 지금 발소리가 들릴 때마다 하나씩 쓰러지는 상황이니.

공포영화의 피해자가 된 느낌이리라.

“크윽”

“크에엑”

“끄어억”

다양한 병사들의 비명. 풀밭 위를 나뒹구는 육체. 다들 목덜미나 발목을 부여잡고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진 상황.

“무, 뭉치자!”

누군가의 제안으로 병사들도 좃 된 걸 깨달았는지 급하게 등을 마주 대고 서로의 뒤를 방어했다.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로리엘은 암살자 성향의 전사. 보통 민첩한 속도로 움직여 등 뒤를 잡아 공격하는 것이, 그녀의 패턴이니 말이다.

그러나 잘 알려진 엘프들 대한 상식은 근력이 약하다는 것과 뛰어난 민첩성으로 인한 가벼운 몸놀림.

로리엘은 병사들의 대응을 보더니 피식 웃으며, 체조선수처럼 풀쩍 뛰어올라 병사들 가운데로 쏙 들어가더니, 병사들의 목을 차례대로 빨래판을 긁듯이 ‘다다다다닥’ 후려쳤다. 그러자 병사들이 마치 꽃처럼 활짝 피어나듯 쓰러졌다.

병사들의 둔중한 육체 하나하나가 꽃잎 한 장, 한 장이 되어 연병장의 풀밭 위에 피어났다.

그리고 가운데 수술. 아니, 암술인가? 암술처럼 피어난 로리엘.

로리엘이 손을 들어 머리를 살짝 쓸어 넘기자 들려오는 병사들의 목소리.

“오우!”

“우와우!”

그런데 연병장을 확인해보니 저 멀리 한 놈이 덜덜 떨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한 놈이 남은 상황인 것.

로리엘도 흥분한 상태라 아직 하나가 더 남았다는 사실을 몰랐던 듯했다.

“로리엘, 아직 하나 남았는데?”

내가 아직 한 명이 남았다는 것을 지적하자.

­휙

로리엘이 슬쩍 미소를 짓더니 자기 손에 든 막대기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병사에게 던졌다.

­빡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간 막대기가 병사의 이마를 정확하게 가격하자 들려오는 박 터지는 소리.

그리고 뒤로 벌렁 까지는 놈.

생각해보니 대련 전에 가장 깐죽거렸던 놈이었다.

“교관님 저희가 설마 여자를 심하게 다루겠습니까? 엘프에 더군다나 여자인데? 크흐흐”

라고 깐죽거렸던 놈. 전부 로리엘의 큰 그림인 듯했다.

놈은 로리엘의 막대기에 이마 한가운데 주먹만 한 혹이 생겨나 시트라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로리엘의 활약이 끝나자 병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이실리엘이 좋아하는 고분고분한 한 마리 순한 양들이 되어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