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87화 (287/352)

〈 287화 〉 284. 늪지의 거머리들 5

* * *

한밤중 자다 깬 것은 올빼미 레오나의 외침 때문이었다. 평화로운 시골 마을의 고요한 밤을 찢어발기듯 울려 퍼진 레오나의 날카로운 외침.

“꺄약! 주인님 병사들이 도망가요! 병사들이 도망가요! 저한테 돌도 던졌어요!”

호들갑을 떨어대며 한창 잠에 빠진 마을 사람 모두를 깨우겠다는 심산으로 소리치는 레오나. 목소리는 왜 저렇게 큰지….

레오나의 목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움켜쥐었다.

혹시라도 병사들이 도망가면 알리라고 했더니, 날아와서 창문턱에 앉아서 나를 깨우면 되는데 동네방네 소리치는 걸 택한 레오나.

창문 밖을 바라보자 마을 여기저기에서 등불이 켜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대부분 깨워버린 모양.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겠냐.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은 내 잘못이지.’

레오나의 외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자. 침대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님 무슨 일이에요?”

내 움직임에 잠에서 깬 듯 발레리가 눈을 비비며 물었다.

“병사들이 몇 명 도망치려고 했나 봐 자고 있어 잠깐 나갔다 올게.”

발레리의 대답은 없었다. 아마도 이야기를 듣다 바로 잠이든 모양.

조용히 방문을 닫고 병사들의 주둔지 쪽으로 향했다.

애초에 병사들에게 애국심도 그렇다고 군인이라는 자부심도 없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보통 평민들은 태어난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그렇기에 가업을 잇는 것이 대부분이고, 가업을 잇지 못해 다른 일을 찾는다는 건 뭔가 사고를 쳤거나 집이 가난해서 다른 일을 찾아야 할 경우.

그렇게 자기 집에서 삶에 내몰린 평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큰 농장에 막일꾼으로 들어가거나 조금 간 큰 놈들은 용병. 또는 옷과 잘 곳과 먹을 것을 해결해주는 군대.

그러니 삶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병사라는 일에 자부심이나 소명 의식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고, 조금 힘들면 탈영이라는 선택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북부의 병사들 개개인이 중앙대륙을 수호하고 가족을 지킨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는 것과는 아주 반대되는 모습.

교관으로 활동하는 에반이 병사들의 한심한 모습에 더욱 악랄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에반 입장에서는 얼마나 쓰레기로 보이겠는가 저놈들이.

병사들의 탈영 정도는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레오나를 밤중에 막사 주위에 경계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어차피 일반인이나 마찬가지인 병사들이 경계를 서는 엘프들의 눈을 피해서 도망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첫날에 탈영?

‘아니, 뭘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지도 않았는데? 대체 뭘 얼마나 했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한심해지는 놈들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데, 어깨 위로 레오나가 푸드득 거리며 내려앉으며 말했다.

“주인님, 주인님! 저놈들이 저한테 돌도 던졌어요!”

자기에게 돌을 던진 사실을 고자질하는 레오나. 나는 영혼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나의 영혼 없는 대답에도 조잘조잘 떠들어대는 레오나.

“그래 알았다.”

“주인님 무척 나쁜 놈들 같아요. 막 다른 착한 친구도 꼬여서 데려가려 했다니까요?”

“그래?”

적당히 레오나에게 맞장구를 쳐주며 병사들의 주둔지로 발걸음을 재촉하자 들려오는 물음.

“그런데 왜 도망치는 거죠? 군대는 도망치면 안 혼나나요?”

군대에 대해 잘 모르는 레오나의 물음. 여자들이 군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건 전생이나 이생이나 비슷한 것 같았다.

레오나의 물음대로 이쪽 군대는 전시가 아닌 이상 탈영해도 처벌하지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일단 병사가 도망치면 거의 잡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곳 병사들이 탈영을 쉽게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했는데 그것은 완벽한 신분 세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쪽의 아날로그 한 특성상 태어난 마을 촌장의 머릿속을 제외하고는, 인구 명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신분증도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의 존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가 서로를 보증해주는 방법뿐. 그러니 자기가 살던 곳을 조금만 벗어나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잊히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 탈영도 쉬운 것이다.

군대에서도 탈영해 조금만 멀어지면 아무도 자신을 모르니 탈영 선택이 쉽고 그러니 도망간 놈은, 거의 잡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레오나를 어깨에 얹고 주둔지 근처에 다다르자, 탈영 소식에 벨릭과 안톤, 에반, 마틴으로 이루어진 교관들이 헐레벌떡 연병장으로 달려들어 오고, 조금 뒤 엘프들에게 붙잡혀 탈영을 시도했던 일곱의 병사가 터덜터덜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탈영 소식에 주둔지의 병사들도 잠에서 깨어 막사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조교들에게 명령했다.

“전부 깨워! 집합시켜!”

내 서슬 퍼런 명령에 교관들이 막사로 뛰어들어 소리치기 시작했다.

“전부 일어나! 밖에서 줄을 선다! 일어나라!”

“밖으로 뛰어나간다!”

막사로 뛰어들어 소리치는 서슬 퍼런 교관들의 외침에 자던 놈들까지 날벼락을 얻어맞은 모습으로 연병장으로 달려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모든 병력이 연병장에 도열하고 나는 한 번쯤은 해보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본 교관은 제군들에게 무척이나 실망했다!”

‘본 중대장은 너희들에게 실망했다’로 시작하는 중대장의 기본 멘트 말이다.

전생에는 수시로 실망하는 중대장의 멘트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실망했다는 말을 뱉고 나자 지금 이 상황에서 나는 중대장의 마음을 무척이나 공감할 수 있었다.

책임자 입장에 사병들에게 개 쌍욕을 퍼부을 수는 없으니 차선책을 선택한 것이리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욕설 섞인 협박이었으니 말이다.

‘이 씨발 새끼들 뭐? 탈영? 첫날부터 탈영? 대가리를 다 찍어서!’

최대한 분노하는 마음을 순화해서 말해야 했으니 실망 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을 것이리라.

실망했다고 말하며 병력을 훑어보자 달빛 속에서 내용을 아는 놈들은 분노의 눈빛을 모르는 놈들은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을 떠올렸다.

나는 입을 열어 천천히 병사들에게 말을 이었다.

“한밤중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났나? 자다 깨서 어리둥절한 올빼미도 있을 것이다. 여러분이 한밤중에 달콤한 잠에 깨, 보고 싶지 않은 본 교관의 얼굴을 대면 해야 하는 이유! 그것은 여러분들의 동료 올빼미가 한밤중 도망을 치려고 했기 때문이다!”

동료가 도망치려 해서 자신들이 한밤중에 깨어났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올빼미들.

“아니, 어떤 도망치려면 걸리지 말 것이지!”

“저런 병신같은 놈들!”

나는 좌중을 향해 소리쳤다.

“조용!”

그리고 남은 말을 이어서 했다.

“도망? 아직 본격적인 훈련은 시작도 안 했는데 도망? 제군들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썩었는지 아주 잘 알겠다. 본 교관이 확실히 알았으니 내일부터 오늘 도망치려고 했던 인원의 숫자만큼 모든 훈련에 일곱 횟수를 추가하도록 하겠다. 알겠나?”

“아…. 악!”

대답은 하지만 원망 가득한 눈빛의 올빼미들.

나는 그리고 바로 병사들의 도주를 방지하기 위해 내 충실한 애완 노예를 불렀다.

“실리아!”

원래 마음속으로 불러도 되지만 갑자기 나타나는 것보다야,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등장 때의 화려함을 더하는 것.

잠시 후 병사들이 도열 한 연병장에 불어오기 시작하는 바람.

­쏴아아아

풀들이 사방으로 휘날리고. 세차게 휘몰아치는 바람에 병사들이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릴 때 내 머리 위에서 실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러셀?!”

해맑기만 한 실리아의 목소리. 밤하늘에 반투명한 실리아의 몸이 나타나자 병사들이 입을 벌리고 멍하니 실리아를 바라봤다.

‘하긴 말로만 들었지, 정령을 직접 본 사람이 얼마냐 있겠냐.’

나는 실리아를 확인하자 곧바로 그녀에게 임무를 주었다. 위협이라는 임무를.

“실리아 저기에 벼락 한번 떨궈봐.”

내가 가리킨 것은 병사들의 훈련용으로 만들어 세워둔 허수아비 하나.

“저거?!”

“응 소리 그렇게 크지 않은 걸로 한방 부탁해.”

“알았어!”

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연달아 소리를 쥐어짜며 대기가 울더니. 이어지는 파괴음.

­우르릉! 콰과광!

마른 밤하늘의 대기가 짜르르 울며 떨어져 내린 벼락이, 번쩍하는 빛과 함께 허수아비를 그대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해 버렸다.

‘아니, 저건 관통이 아니라…’

약한 걸로 부탁했기에 관통한 허수아비가 벼락에 불타오를 것을 예상했으나, 그러나 벼락에 관통한 허수아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허수아비 어디 갔냐?’

불타오르는 허수아비를 보여주며 겁을 좀 주려고 했는데, 허수아비와 허수아비가 꽂혀있던 땅까지 일부 사라진 상황.

나조차 놀래 병사들을 바라보자. 벼락이 떨어지며 낸 엄청난 소리에 놀란 병사 중에 서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 주저앉거나 저희끼리 부둥켜안고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심지어 기사들도 두 눈이 휘둥그레져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 실리아, 소리 크지 않은 거라니까!]

[에? 그래서 힘 아주 조금 쓴 건데?]

[그, 그래?]

뭔가 자꾸 증가하는 것 같은 실리아의 힘.

나는 일단 속으로 실리아를 칭찬하고 재빨리 병사들을 향해 외쳤다.

“참고로 지금 올빼미들이 본 것은, ‘상급 정령’이 떨어트리는 벼락이다. 도망치고 싶은 놈들은 시도해도 좋다! 머리 위에 떨어지는 벼락이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다면 말이다! 해산!”

도망치다 걸리면 뒤질 수도 있어요. 하는 느낌을 주려고 했는데 도망치다 걸리면 흔적도 없이 갈아버린다는 경고가 되어 버린 상황.

‘뭐… 어쨌든 경고는 됐겠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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