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85화 (285/352)

〈 285화 〉 282. 늪지의 거머리들 3

* * *

이틀 동안 달려 도착한 강변 너머에 보이는 것은 작은 시골 마을이었다. 목책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과 목책 밖으로 펼쳐진 농지들이 한적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즈넉한 마을.

마을 건너에 도착하자 들려오는 교관들의 목소리.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축하한다. 제군들!”

마을이 목적지라는 사실에 병사들은 이제 이 끝도 없는 달리기가 끝난 것에 안도하며 강변에 쓰러졌다. 그리고 강변에 널브러져 물을 들이켜고 꿀 같은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약간의 체력을 회복하자마자 들려오는 교관의 집합 명령.

“모두 모여라! 줄! 줄을 선다!”

그리고 시작된 것은 이상한 몸동작.

체조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 같은 훈련을 가장한 고문.

그중 8번째 동작은 그야말로 절망이었다. 이름 그대로 온몸이 비틀릴 것 같은 고통.

“8번째 동작 온몸 비틀기 실시!”

8번째라는 말만 나오면 다 같이 경기가 일어나게 되는 마법 같은 훈련.

그렇게 한참 동안 강변에서 훈련을 가장한 고문을 받고 체력이 바닥나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든 상태가 되었을 때, 우두머리 교관이 나서서 기사와 병사들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다.

“지금부터 차례대로 강을 건넌다!”

그냥 봐도 엄청난 물살의 강물. 빠지면 그대로 죽는 것은 확정. 흐르는 강물이 기사와 병사들에게는 죽은 자만 건넌다는 그 강물로 보였다.

“뭐?! 이 강을 건넌다고?”

“쓰, 쓸려 내려가면?”

기사와 병사들이 놀라 웅성거렸지만 되돌아온 것은 8번 동작 100회.

“누가 웅성거리라고 했습니까! 8번 동작 100회 실시합니다!”

그런데 강물의 물살을 보니 걱정이 되었던지. 혼자 훈련에서 빠져 마차를 타고 따라오던 선임 기사가 보다못해 나서며 우두머리 교관에게 물었다.

“저, 러, 러셀님. 빠, 빠지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다리가 준비되어있거든요.”

“여, 역시 깜짝 놀랐습니다. 하하”

기사와 병사들은 교관의 다리라는 말에 안도했다. 그 다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교관들을 따라 조금 더 하류로 내려가자 보인 것은 이쪽 강변과 저쪽 강변을 잊는 밧줄 하나.

“저, 러셀님 분명 다리라고?”

“앞에 다리가 안 보이십니까? 얼마나 튼튼해 보입니까? 벨릭 교관 시범을 보이도록!”

우두머리 교관의 말에 털북숭이 교관이 밧줄을 타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조금 특이한 방법으로 말이다.

보통 저런 밧줄에 매달려 건넌다면 꼬챙이에 꿰인 새 같은 모습이어야 했지만, 털북숭이 교관은 모두의 생각과는 다르게 밧줄 위에 엎드려 아주 빠르고 능숙하게 마치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강을 건넌 것이었다.

저절로 박수가 나오는 모습.

­짝짝짝짝

몇 명의 병사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며 손뼉을 쳤다.

그리고 그때 우두머리 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다들 다리를 건너서 반대편으로 넘어가면 오늘 훈련은 여기서 끝입니다. 푹 쉴 수 있고 맛있는 음식까지 기다리고 있으니 기운 내도록 합니다!”

정오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밧줄만 건네면 오늘 훈련은 끝이라는 말에 기사와 병사들이 열광했다. 서로 건너기 위해 밧줄 앞에 줄을 서는 모습.

그러나 줄을 선다고 마음대로 건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족 같은 교관은 6번째 동작 발벌려 뛰기 동작을 기다리는 모든 인원에게 시킨 것이다.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체력이 다 소모돼 건너가기 힘들도록.

그렇게 체력이 소모되기 시작하자 기사들부터 차례대로 건너기 시작한 밧줄. 꼭 교관 같은 모습이 아니더라도 기사들은 워낙 신체 능력도 좋고 권능도 있으니 비교적 쉽게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다음 차례는 열 명의 견습기사들.

그 누구도 기사나 견습기사 중에 물에 빠질 사람이 생기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기사가 되기 위해 훈련받는 견습기사가 밧줄 하나도 못 건너 떨어진다고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들 자기 훈련에만 집중하거나 이미 건넌 기사들은 강변에 널브러져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엇인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풍덩

여섯 번째로 건너던 견습 기사가 갑자기 밧줄을 놓치더니 그대로 빠른 강물 속으로 삼켜지고 만 것이었다.

물에 빠지는 소리와 함께 견습기사는 빠른 물살에 그대로 휩쓸려버렸다. 한마디 비명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빌리!”

반대편에서 견습기사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견습기사가 울부짖으며 강변을 달렸지만 그의 속도보다 훨씬 빠른 물살에 빌리라는 견습기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견습기사 하나가 사라져 버리자. 분위기는 곧 싸늘하게 바뀌었다.

강을 건너면 쉴 수 있다는 사실보다. 빠지면 진짜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가 병사들의 머릿속에 더 크게 자리 잡은 것이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니까 뒤지는 겁니다! 정신 똑바로 차립니다! 알겠습니까?!”

“아악!”

피도 눈물도 없는 교관들은 견습기사가 하나 떠내려간 사실에 눈도 끔쩍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관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아 떨어진 것이라며 병사들을 더 닦달했고 정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훈련받는 모두의 머릿속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두려움과 공포 속에 병사들의 차례가 되고, 죽지 않기 위해 악을 쓰며 밧줄을 건넜지만 열여덟 명이나 되는 병사가 밧줄에서 떨어져 물살에 휩쓸려 사라지고 말았다.

두려움이 몸을 굳게 만든 결과였다.

동료들이 떨어지는 모습에 열 명의 병사는 아예 강을 건너는 것을 포기해버리기도 했다.

“모, 못 건너겠습니다. 사, 살려주세요. 어어엉….”

모두가 강을 건너고, 강을 건넌 사실과 쉴 수 있다는 기쁨을 느껴야 했지만, 동료를 잃었다는 슬픔에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그렇게 강변에서 몸을 씻고 준비된 막사에 배치되어 기사와 병사들이 슬픔에 빠져 한참을 쉬고 있을 때였다. 놀랍게도 물에 빠져 모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병사들이 홀딱 젖은 모습으로 하나둘 막사로 들어섰다.

“너! 너희들 어떻게 된 거야!”

“비, 빌리! 사, 살아있었어?”

“어떻게 산 거야 다들?”

“여, 여신님….”

“나, 남자와 키스를… 우욱…”

“뭐?”

살아 돌아온 놈들은 살긴 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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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병사들을 인솔해 이실리엘이 돌아왔다. 멍한 얼굴의 병사들과 견습기사. 그들을 막사로 들여보내고 이실리엘에게 말했다.

“수고했어 이실리엘. 생각보다 많이 빠졌네.”

“저보다 안톤 씨가 고생했어요. 입을 맞추시느라….”

이실리엘이 어색하게 웃으며 뒤를 바라봤다. 이실리엘이 말한 입을 맞춘다는 것은 인공호흡.

이실리엘을 뒤따라오는 안톤의 얼굴을 보니 놈의 눈빛은 이미 생기를 잃은 눈빛이 되어있었다.

병사들이 강을 건너다 물에 빠지는 것은 예상했던 바였다. 그렇기에 조금 하류에 이실리엘과 안톤 그리고 몇 명을 대기시켜 떠내려오는 놈들을 이실리엘이 물의 정령으로 건지고, 혹시 숨이 멈춘 놈들이 있을까 안톤에게 인공호흡을 가르쳐 대기 시켰는데, 생각보다 물먹은 놈이 많았던 모양.

“내, 내가 남자와… 크흐흑…”

안톤은 자신이 남자와 입 맞췄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겠는지는 슬프게 울부짖었다.

‘하긴 여자를 그렇게나 좋아하는 놈인데…’

그러나 이실리엘을 따라갔던 리젤다나 다른 사람들은 싱글벙글한 모습. 안톤의 반응이 재미있는 것 같았다.

우리는 혼자 절망하는 안톤을 내버려 두고 병사들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는 곳으로 향했다.

원래는 병사들의 식사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이 이쪽 군대의 현실. 식사 시간이 되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무쇠솥에 물을 넣고 배급받은 곡식을 끓여 먹는 것이 병사들의 식사이다.

그것이 병사들의 한 끼.

처음에는 병사들의 식사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먹던 대로 먹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병사들의 식사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우선 식사에 사용하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 곡식을 타서 각자 냄비에 물을 넣고 끓여서 먹기까지 그리고 그것을 정리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되는 것이었다.

아침을 먹고 정리가 끝나면 점심때가 될 정도.

그리고 식사의 질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영양이나 칼로리 같은 것을 알지 못하는 이쪽 세계에서 식사라는 것은 일단 배만 부르면 되는 것. 그렇기에 병사들의 식사는 철저한 곡물 위주로 이루어진 곡식 배급과 가끔 나오는 염장 고기나 육포 정도가 전부였던 것.

병사들의 막사를 준비하고 보급으로 라페스빌의 행정관이 보내준 물품을 적재하면서 든 생각은 ‘이대로 먹으면 훈련을 못 버틴다’였다.

아니, 이대로 먹고 훈련하는 전부 뒤진다였다.

“아니, 이걸 먹고 어떻게 훈련하냐고?!”

산더미처럼 쌓인 귀리, 보리와 약간의 밀 포대를 본 내 생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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