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281. 늪지의 거머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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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텔에 도착한 병사들이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며 시간을 보낼 때 병사들 모르게 부대에 깜작 방문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것은 국왕의 행정관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행정관의 모습에 기사들은 당황했지만, 곧 행정관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다.
좌천되었다고 생각했던 기사들이었는데 알고 보니 좌천이 아니었던 것.
자신들이 이곳에 온 것은 좌천이 아니고 훈련하기 위해 온 것이라는 행정관의 이야기에 기사들의 기분은 좋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도착까지 훈련을 비밀로 한 것은 엄중한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 훈련이기에 도착할 때까지 숨긴 것이라고.
더군다나 훈련을 우수한 성적으로 마치면 국왕이 새로 창설하는 친위부대에 소속될 수 있다는 이야기.
친위 기사는 들어본 적 있지만 친위부대라니!
명예에 죽고 사는 기사들은 눈빛을 빛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행정관은 한 남자를 소개했다.
어깨에 올빼미 한 마리를 얹은 오리주둥이 같은 새빨간 모자와 새빨간 윗옷, 검은 바지를 입은 기괴한 모습의 남자.
“안녕하십니까? 러셀이라고 합니다.”
행정관은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는 왕족이니 훈련 동안 그의 말에 절대복종하라는 것. 만약 그에게 반항하거나 그의 말에 불복하는 자는 반역으로 다스리겠다는 섬뜩한 이야기.
기사들은 핏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새빨간 윗옷과 검은 바지. 그리고 오리주둥이 모자를 쓴 남자들은 병사들을 휘몰아쳐 네 줄로 나란히 줄을 세웠다.
브랜든과 병사들은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으나 기사들이 나타나 병사들을 같이 통제하자 일단 빨간 오리주둥이들의 말대로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줄을 서는 것이 완료되자. 빨간 남자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병사들 앞에서 큰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반갑다 제군들! 나는 제군들의 훈련을 맡은 교관, 러셀이라고 한다. 제군들의 쓰레기 같은 정신 상태와 빈약한 훈련 상태를 뜯어고치고, 제군들을 정예 병사로 만들어 줄 테니 안심해도 좋다.”
빨간 오리주둥이 우두머리의 말에 움찔하는 기사들. 모욕당했다고 생각하는지 기사들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지만, 주먹만 꼭 움켜쥘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브랜든의 눈이 기사들이 모욕을 참는 모습에 휘둥그레졌다. 생명처럼 여기는 명예가 모욕당했는데 기사들이 참다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사들의 모습.
브랜든이 기사들의 모습에 놀라고 있을 때도 오리주둥이 우두머리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앞으로 제군들을 부를 때는 올빼미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올빼미는 인간의 말을 못 하기에 제군들은 이제 ‘악’으로만 대답한다. 이렇게 말이다.”
“벨릭 교관?”
“악!”
우두머리가 다른 오리주둥이를 부르자 그는 정말로 악이라고 대답했다.
“알겠나?!”
“아…. 악?!”
몇 명이 어색하게 대답하자 들려오는 욕설.
“정신들 나겠습니까?! 귓구멍에 고블린 좆을 처박았습니까? 목소리 크게 합니다!”
벨릭 교관이라고 불렸던 털북숭이 남자는 소리를 빽빽 지르며 병사들을 다그쳤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윗옷과 신발을 벗는 것.
병사들은 오리들의 명령대로 윗옷을 벗었지만, 기사들이 문제였다. 기사들이 병사들같이 옷을 벗을 수 없다고 항의한 것 그러나 붉은 오리들의 우두머리는 아무 말 없이 손에서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그것은 국왕의 인장이 찍힌 무엇.
기사들은 인장을 보자 입을 닫고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사와 병사들이 윗옷과 신발을 벗자 다짜고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강변을 따라 맨발로 적당히 자란 풀 위를 뛰는 것. 하류를 향해 뛰고 또 뛰는 것이다.
달리기 정도야 수도에서도 가끔 하던 훈련이었고 병사들도 달리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으니 처음에는 웃으며 뛸 수 있었다.
하지만 웃으면서 시작한 그들의 달리기는 곧 울음이 되었다.
목적지도 언제까지 뛰는지도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교관들이 붙이는 이상한 구호만이 계속될 뿐이었으니 말이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달리기는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걷는 것 보다 조금 빠른 속도였지만 멈추지 않는 달리기. 쉬지 못한다는 사실과 어디까지인지를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이 기사와 병사들을 집어삼켰다. 체력은 빠르게 고갈되고 다리는 무거워졌다. 그리고 벗어젖힌 몸에서는 땀방울이 비같이 쏟아져 내렸다.
브랜든의 귀에 들려오는 것이라곤 올빼미 우두머리가 말을 타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질러대는 소리뿐이었다.
“벌써 지칩니까?! 정신 차립니다!”
결국 아침나절에 시작한 달리기는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중간중간 쉬면서 물을 먹고 교관이 나눠주는 소금을 먹은 게 전부였기에 온종일 달린 기사와 병사들은 강변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그리고 하나둘 도착하는 낙오된 병사들.
마지막 지점에 낙오되지 않고 도착한 것은 다섯의 기사와 견습 기사 열 명. 그리고 브랜든 이었다.
기사들이야 능력을 사용했다고 해도 브랜든이 끝까지 달린 것은 예외란 듯 교관은 브랜든을 칭찬하며 저녁으로 나눠준 전투식량이라는 것을 브랜든에게 하나 더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낙오된 자들에게는 두 명당 한 개의 전투식량이 전달되었다.
미칠 듯이 고소한 향기. 그리고 맛!
가죽 주머니에 뜨거운 물을 부어주기에 뭔가 했는데 죽 같은 식사는 무척이나 맛이 있었다.
온종일 했던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
밥을 먹자마자 병사와 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대로 들판의 풀 위에 벌렁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교관이 지옥의 달리기라 이름 붙인 끝도 없이 고통받는 달리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이어지는 하류를 향해 달리기만 하는 여정.
‘강을 따라가면 무엇이 나오더라?’
이곳에 오기 전 브랜든은 뭔가 강 하류에 위험한 것이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달리는 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교관이 붙이는 구호를 따라 하며 머리를 비우고 달려야 했다. 지금, 이 순간 생각은 사치. 낙오되면 저녁 식사가 줄어든다.
브랜든은 이를 악물고 달렸다. 그러나 아침 일찍 시작된 달리기는 시작과 함께 일어난 작은 사고로 잠시 멈추고 말았다.
얼마 전에 들어온 신병 호든이 강변에 풀을 밝고 미끄러져 발목이 부러진 것.
호든의 발목에 부러진 뼈가 삐죽 튀어나와 있는 모습.
그는 곧장 마차로 실려 갔다.
브랜든은 호든의 발목이 부러져 실려 간 상황에서 그에 대한 걱정보다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생각만이 아니었던지 호든을 바라보는 다른 병사들의 눈빛도 브랜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개새끼 부럽다!’
브랜든은 병사들에게 부축받아 마차로 실려 가는 호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병신이 될지도 모르는 부상과 통증이 심할 텐데도 살짝 올라간 입꼬리. 저 미소는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이리라.
호든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이제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아마 오늘도 어제처럼 진행된다면 이 달리기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끝이 날 테니 말이다.
소란이 정리되고 다시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브랜든은 달리면서 생각했다. 강변에 널린 돌덩이를 보며.
‘나도 저기에 구를까?’
그렇게 한참 돌덩이의 유혹을 참아내고 있을 때였다.
“끄아아악!”
들려오는 비명소리. 아뿔싸! 브랜든이 상상한 것을 먼저 행동으로 옮긴 병사가 있었다. 브랜든과 같은 마을에서 입대했던 빌리.
분명 넘어질 것이 아니었는데, 어색하게 구르면서 무릎을 바위에 찍은 것.
“끄아악!”
그렇게 아플 것 같지 않은데 비명을 지르며 구르는 빌리.
우두머리 교관이 멈춰선 브랜든에게 말했다.
“올빼미 저 올빼미 부축해서 마차로 데리고 갑니다.”
“악!”
브랜든은 교관의 말대로 빌리를 부축해 첫 번째 마차로 향했다. 마차의 문을 열자 들려오는 목소리.
“어머 또 환자인가요?”
마차 안에서는 아주 맑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안쪽을 바라보자 안에 타고 있는 것은 얼굴에 상처가 있는 은발의 여자.
그리고 아까 발목이 부러져 마차에 탔던 호든이 마차에서 내려서고 있었다.
“야, 너 발목이?”
브랜든이 깜짝 놀라 외쳤다. 호든의 발목을 살펴봤지만 언제 부러졌냐는 듯 멀쩡한 발목. 놀란 눈으로 호든을 바라보자 그의 눈은 이미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뭐, 뭐지 대체?’
이해 못할 모습에 멍한 표정으로 브랜든이 빌리를 부축해 마차 안에 태우자 여자는 빌리의 상처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싱긋 웃으며 신전에서나 보았던 신성력을 내뿜어 순식간에 치료하기 시작했다.
피투성이였던 무릎이 순식간에 멀쩡해지는 모습.
‘신전에서 받았던 치료도 이렇게 빠르고 완벽하지 않았는데?’
병사로 생활하다 보면 한두 번은 다치기 마련이고, 신전으로 찾아가거나 사제가 직접 와서 치료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빌리를 치료한 여자를 바라보자. 은발의 여자가 뭔가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빌리에게 말했다.
“죽지만 않으면 다 고칠 수 있으니. 다음번에는 쉬고 싶으면 일부러 다치지 말고 죽으세요. 그럼 영원히 쉴 수 있답니다?”
브랜든과 빌리는 식은땀을 흘리며 곧 마차에서 내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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