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2화 〉 279. 영업 방해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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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애의 입에서 나온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투에 옆자리에 앉은 릴리아가 기겁하며 대답했다.
“자, 잘 참았어 로, 로렐라인”
러셀과 있을 때와는 다르게 영애에게 반말하는 릴리아나.
둘은 릴리아나의 아버지가 기사로 성에서 근무할 때 성에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기에 이렇게 둘이 있을 때는 반말을 하곤 했다. 로렐라인의 명령으로.
하지만 그건 무늬만 반말. 둘 사이의 우위는 명확했다.
“근데 언니, 나 언니 때문에 개망신당한 거 알지? 하….”
“미, 미안 로렐라인. 그사이에 넷이나 늘어날 줄은 몰랐어…. 그게… 말이 안 되잖아?”
릴리아나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몇 달 사이에 하나 나 둘도 아니고 넷이 늘어난다니…
러셀의 기행을 떠나서 그런 관계를 용납하는 여자들도 이해가 안 되는 둘이었다.
“하긴, 누가 몇 달 사이에 부인이 넷이나 늘어났다고 상상이나 했겠어?”
릴리아나에게 짜증을 내긴 했지만, 결코 일반적인 상황으로는 볼 수 없는 일에 로렐라인도 릴리아나의 말에 수긍하듯 말했다.
“그래도 잘됐잖아? 영주님도 이제는 억지를 쓰지 않으실 테니?”
“억지… 억지라…”
로렐라인은 앞으로 땋아 내린 자기 머리끝은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수도에서 마법을 공부하던 로렐라인이 급하게 영지로 되돌아온 것은 도움을 청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
한밤중 전령이 가지고 온 편지의 내용은 영지의 운명이 경각에 달했으니, 무조건 돌아와 가문을 도우라는 것.
이미 무슨 일인지는 알고 있었고, 몬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데는 아직 일이 년의 여유가 있는데, 왜 벌써 이렇게 성화인지 이해할 수 없는 로렐라인은 일단 아버지에 부름에 학업을 잠시 멈추고 영지로 향하기로 했다.
금 등급 마법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이라 이대로 그만두기는 너무 아쉬웠기에, 일단 영지에 방문해 아버지를 설득하고 되돌아오려 한 것이었다.
그렇게 열이 뻗쳐 고향에 도착한 로렐라인을 기다린 것은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명령이었다. 로렐라인에게 떨어진 아버지의 명령은 한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이 되라는 것.
“무조건 그의 아내가 되어라! 되기만 하면 우리 영지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용 같은 높은 엘프라 했으니 대늪지를 막아내는 것도 불가능은 아닐 터. 그러자면 무조건 그 남자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귀족가의 영애이고 로렐라인에게는 남자 형제가 없으니, 아버지가 새 첩이나 새 여자를 들여 후계자를 만들 것 또는 데릴사위 정도는 예상하였는데.
뭐? 공백지 마을의 여관주인?
공백지 마을이라면 도망 농노들이 사는 마을. 거기 여관주인인데, 심지어 15년이나 용병 질을 한 은퇴 용병에 다리를 절기까지 한다고?
처음에는 아버지가 자기 몰래 후계자를 만들고 자신을 내치기 위해 말도 안 되는 혼인을 종용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설명 끝에 나온 단어는 ‘현자’.
현자?
30대 초반이라는데 현자?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마지막 현자 칭호를 받은 사람은 500년 전쯤 호수의 현자라 불리던, 지금도 가끔 음유시인의 노래에 등장하는, 용에게 술을 대접해 용의 분노를 잠재웠다는 이야기의 주인공.
실존했는지도 확인이 안 되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꿈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살아 활동하는 현자라는 것은 뭔가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그것도 15년이나 용병 질을 한 30대의 남자가 현자?
오크 마법사? 고블린 성기사? 뭐 그런 느낌의 조합이었던 것이었다.
근육질의 상처투성이, 거친 말투의 용병이 현자?
용병을 비하하거나 거친 말투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용병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가 그랬다.
그런 이유로 현자라는 단어의 등장에, 로렐라인은 아마도 용 같은 무력을 가진 엘프를 아내로 맞이한 행운아에게 북부 다섯 왕국에서 예의상 내린 칭호겠지 정도로 결론 내렸다.
아버지도 그 생각은 자신과 비슷한지 그의 지혜를 빌리기보다는 그의 아내가 되라고 하셨으니 말이다.
그렇게 그의 지혜를 구하는 척하면서 그와 친해지라는 이유로 남부 늪지대 웜 포트라는 마을로 로렐라인의 방문이 결정되었다.
자기를 수행할 사람은 늪지대의 현자와 친한 사이라는 길드의 접수원 릴리아나.
어릴 적 친하게(?) 지냈던 릴리아나.
말 등에 거꾸로 태워 달리기도 하고. 마법을 연습한다고 하다가 머리카락에 불을 붙이기도 하고 그녀와는 좋은(?) 추억이 많았다.
릴리아나는 자신을 보자 딸꾹질을 해왔다. 어릴 때의 추억이 떠오른 듯한 모습.
“히끅! 로, 로렐라인님!”
“언니 왜 그래 우리 둘만인데? 짜증 나서 욕해주고 싶게? 씨발. 그렇지 않아도 기분 별로니까 자꾸 말하게 하지 말자? 우리끼리 있을 때는 반말 하기로 했잖아?”
토끼같이 귀여운 릴리아나 언니는 입을 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릴리아나는 자신의 본모습을 아는 얼마 안 되는 인물. 자기를 보고 파들파들 떠는 모습에 괴롭혀주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참으며, 로렐라인은 궁금한 것을 물었다.
자신이 결혼해야 할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용병이 욕을 안 한다고?”
“응, 하, 한 번도 들은 적 없어…”
“신기하네… 욕을 안 하는 용병이라니…”
그러나 릴리아나가 이야기를 들려줄 때마다 얻어지는 정보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무언가 다른 내용들.
“늪지대의 몬스터들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다고?!”
“러셀은 뭔가 다르게 부르던데 먹이사슬? 먹고 먹히는 관계가 사슬처럼 이어져 있다고 표현하더라고…”
뭔가를 다른 것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 확실히 똑똑한 남자인 것은 맞는 것 같았다.
“언니, 언니만 알고 있어. 알았지?”
“뭐, 뭔데?”
제발 말하지 말라는 얼굴로 물어오는 릴리아나.
“그런데 우리 늙은이가 나보고 그 남자에게 시집을 가라고 하거든? 이미 아내가 셋이나 있는데 가능할까?”
경악하는 표정이었다가 자기가 인상을 한번 쓰자 급하게 대답하는 릴리아나.
“너, 너를 마다할 사람이 누, 누가 있겠어… 이, 입만 벌리지…”
“응?”
“아, 아니야…”
“제기랄, 솔직히 결혼은 별로 관심도 없는데… 정말 현자라서 마법같이 해결해줬으면 좋겠다.”
그저 아쉬운 마음에 한 말이었는데, 순진한 릴리아나는 그가 마치 해결해 줄 것이 당연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아마 러셀이 마음만 먹으면 늪지 문제를 해결해 주, 줄 테니까.”
그렇게 찾은 대늪지의 현자.
로렐라인은 대늪지의 현자를 만나서 세 번 놀라고 말았다.
첫 번째는 그의 아내가 셋이 아니라 일곱이라는 점.
두 번째는 그 아내 중 높은 엘프, 성녀, 북부 다섯 왕국의 유일한 혈통이 끼어있다는 것.
세 번째는 그가 정말로 그란 폴의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다는 점.
그는 대책 회의를 하겠다며 사람을 몇 명 모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보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내고.
라페스빌에게 연락을 넣더니 엄청난 화술과 언변으로 왕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대 늪지로 병력을 보내게 만든 것이었다.
더 대단한 것은 단순히 병력을 보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그는 이득까지 얻어냈다. 아무도 손해를 보지 않는 다들 만족하는 방법으로 말이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왕의 불편한 가시도 해결해주는 뛰어난 지혜. 로렐라인은 며칠간 그의 여관에서 묵으며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꿈 같았다.
아마 모든 것이 완벽히 해결되었다는 이 소식을 가지고 가면 그의 아버지인 영주도 더는 그와의 결혼을 종용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했다.
릴리아나 말대로 그와 결혼하라는 억지는 더는 부리지 않겠지?
“억지… 억지라…”
릴리아나의 억지라는 말을 곱씹다가 로렐라인이 릴리아나에게 물었다.
“언니, 늙은이 억지 한번 들어줄까?”
“응? 늙은이? 억지?”
그게 무슨 말이냐며 눈을 크게 뜨고 묻는 릴리아나. 로렐라인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현자님한테 그냥 여덟 번째 시켜달라고 해볼까?”
“뭐 어?! 너, 너 싫다며?”
현자의 여덟 번째 아내는 어떠냐는 물음에, 포식자를 만난 사슴 같은 눈망울로 놀라 소리치는 릴리아나의 모습.
“별로 생각 없었는데, 가지고 싶어졌어.”
“대체 왜?!”
이해 못하겠다는 얼굴로 릴리아나가 물었다.
“언니는 귀족 아니니까 몰라. 아내나 첩을 많이 둔 귀족의 아내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
귀족 아내들의 신경전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모른다. 신분 고하에 따른 무시와 고급스러운 말로 상대방의 가슴을 쑤시는 공격. 목숨까지 위협하는 견제. 고위 귀족 본인은 몰라도 그 아래 아내들은 피 말리는 전쟁 속에 사는 것이다.
자기의 자식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서 또는 남편의 눈에 띄게 하려고.
얼마 전 수도에서 활동하다 쓸려나간 암살자 길드들의 주된 고객이 귀족 집안의 아내들이라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니 말이다.
“그, 글쎄 서로 질투가 심하나?”
“후훗… 그래 질투긴 질투지. 상대를 죽일 만큼 질투해서 그렇지…”
“히익…!”
로렐라인이 고개를 들어 웜 포트 쪽을 다시 한번 돌아보더니 여운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떻게 일곱인데 다들 그렇게 사이좋게 지낼까? 심지어 다들 만족스러운 표정이라는 게 더 놀라워.”
“그건 나도 신기하긴 했어… 혹시…”
로렐라인의 말에 수긍한 릴리아나가 조심스럽게 자기의 의견을 말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대, 대단한(?) 점이 있는 건 아닐까?”
“대단한 점?”
“그 외 있잖아… 그… 이렇게…”
손으로 뭔가 기둥 같은 것을 표현하는 릴리아나.
처음에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는지 몰라 눈을 깜빡거리던 로렐라인은 그것이 무엇을 표현하는지를 깨닫고 놀라 릴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어, 언니 씨발 미, 미쳤어? 나이 먹더니 사람이!”
어릴 때 자기 괴롭힘에 눈물 흘리던 귀여운 언니는 이제 더 이상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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