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81화 (281/352)

〈 281화 〉 278. 영업 방해 9

* * *

‘아내가 예쁘면 처가 말뚝을 보고도 절한다고 했다던가?’

나는 예쁜 아내가 더블이니 그랜절도 박을 수 있는 법.

장인어른은 현재 서부에 있는 재산을 정리한다며, 얼마 전 마법 문으로 급하게 서부로 돌아가신 상태. 재산 정리가 끝나면 비교적 살기 좋은 남부에서 손주 태어나는 거나 보면서 조용히 은퇴하고 싶다는 생각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이 말뿐이라는 사실은 나도 발레리도 장인어른도 알고 있다.

장인어른같이 평생 일만 하신 분들은 은퇴하고 쉬면 좀이 쑤셔서 못 견딜 확률이 백 프로. 은퇴 후에도 뒤에서 나와 발레리가 하는 일을 돕고 싶다고 하셨으니. 아마 확실할 것이다.

나보고도 하고 싶은 건 다 지원해줄 테니 생각만 해두라고 말씀하셨기도 하니 말이다.

아마 발레리에게 상단을 넘겨주려고 하셨는데, 발레리가 덜컥 결혼해버리니 은퇴 생각을 하신 것 같은데. 그런데 왕실 직할 상단 자리가 나온다? 은퇴를 번복하실 것은 뻔한 것이다.

나는 일단 라페스빌의 행정관에게 장인어른 상단의 이점을 설명했다.

뭐 꼭 장인어른 상단이 이라서가 아니라 왕실 상단에도 딱 어울리는 상단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서부에서 사치품 거래를 위주로 삼사십 년 활동한 상단이니, 궁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하는데 좋으실 겁니다. 뭐 곡식이야 물건만 있다면 파는 것은 문제가 아닐 테니까요. 상단 주가 남부로 이주를 계획 중이라서, 아마 얼마 후면 도착할 텐데 만남을 주선해 드릴까요?”

“혹시 어떻게 아는 상단이신지?”

행정관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루테니아 상단과 나와 관계가 궁금한지 말이다.

처음에는 별생각 없이 장인어른 상단이니 추천했는데, 관계를 물어오자 마음속에 솟아오르는 부끄러움. 그리고 화끈해져 오는 얼굴. 혈연, 지연, 학연 추천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소시민이 높은 분들 하는걸 흉내 내려 해서 그런지 왠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전생에 자기 친인척들 요직에 앉힌 사람들은 대체 얼마나 철 가면이지?’

나는 화끈거리는 얼굴로 대답했다.

“그것이… 제 아내 중 하나의 아버지. 그러니까 장인께서 하는 상단인데… 하하… 조, 좀 부끄럽군요.”

“자, 장인이시라고요?”

“예, 하하… 그저 인재가 없다고 하시니 지나가듯 말씀드린 것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내 입으로 친인척이라는 이야기를 하니 왠지 더욱 부끄러운 마음에 신경 쓰지 말라 말했지만, 친인척이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수정구 너머에서 들려오는 늙은 행정관의 목소리는 왠지 아주 기쁜 목소리로 변해있었다.

“아! 아닙니다! 현자님의 장인어른이 하시는 상단이라니 아주 믿음이 갑니다! 제가 직접 웜 포트로 찾아뵙겠습니다!”

내 장인이라니 더욱 믿음이 간다는 행정관의 소리.

어떤 의미로 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맘에 든다면야.

행정관과 대화가 끝나고 잠시 후 대화를 넘겨받은 라페스빌과 군사훈련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냥 엘프도 아니고 높은 엘프가, 그 대단한 용 같은 엘프가 활을 가르쳐 준다는데 마다할 바보는 없는 것이 당연한 것.

이실리엘이야 뭐 가끔 소일거리로 한두 번 나와서 얼굴만 비춰주면 되고 실질적인 훈련은 나나 로리엘, 수호자들이 하겠지만, 원래 학원이라는 게 누구 이름을 거는지가 중요한 것.

전생에도 유명 강사가 자신들이 운영하는 학원이라고 광고하는 것은 많았지만, 실제로 광고에 나오는 강사들의 강의는 아주 고액의 일부만 누릴 수 있는 혜택.

그것이 세상의 룰인 것이다.

서로 간의 만족한 결과를 받아들고 싱글벙글 웃으면서 통신이 끝났다.

통신이 끊어지자마자 여관 홀에서 울려퍼지는 기쁨에 찬 두 여자의 함성.

“꺄야아아아악! 러셀님 최고야!”

“여, 역시 현자님!”

아내들의 준엄한 응징에 러셀에서 러셀님으로 호칭 변경된 릴리아나 누님. 누님과 영애는 둘이 부둥켜안고 신나게 소리를 질러댔다.

신이 나서 나에게도 달려들려 했다가 시트라의 손길에 스윽 밀려나기도 하며 말이다.

그렇게 광란하는 둘의 환호가 끝나고, 둘이 진정되자 우리끼리의 대화를 시작했다.

“자자, 일단 진정들 하시고 두 분 앉으시지요. 저희끼리 이야기가 남았으니까요.”

“그, 그렇지. 자자 로렐라인님 앉으시지요.”

“예, 기, 기쁜 나머지 현자님 앞에서 이런 추태를, 죄, 죄송합니다.”

본인들의 추태를 알아차리고 얼굴을 붉히며 자리에 앉는 둘.

우리끼리 할 이야기는 별건 없다. 다소 한산해질 용병, 모험가 길드의 접수원들과 정보를 지원받는 일이 우리가 나눌 일이니까 말이다.

이건 이미 우리가 사전에 한 번 언급했던 내용.

원래 그란 폴의 통치자들은 대 늪지의 생태계를 면밀히 살피고 몬스터나 마물들의 동향과 개체수를 적절하게 살펴왔다. 그리고 갑자기 늘어나거나 문제가 생길 것같은 몬스터 마물들을 대상으로 의뢰를 내려 적절한 비용을 주고 처리하며 조절을 한 것.

이제 용병, 모험가들이 줄어든 자리를 라페스빌의 병사들이 채울 것이니, 사냥 정보를 우리에게 제공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앞에서 내가 다해주는데 뒤에 앉아서 꿀만 빨게 둔다고?’

그건 절대 안 될 말.

그리고 본인들이 어차피 하던 일이니, 부담은 없을 것이다. 늪지대에 주기적으로 정찰을 내보내고 동향을 파악해서 내부 회의를 거쳐 계산한 내용을 취합하는 본인들이 지금까지 하는 일이니, 말이다.

“사전에 말씀드린 대로 접수원의 절반 정도가 상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래도 정보 취합은 이곳에서 이루어져서 바로바로 전달되면 좋으니까요.”

아주 적극적인 영애. 영애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뭐든 다 해줄 것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예, 제가 아버지께 말씀드려서 이쪽에 모험가 길드를 작게 내도록 하죠.”

어차피 대 늪지 관련된 일이 줄어들면 길드의 규모도 조금 축소될 테니. 절반 정도 인원을 우리 쪽에 파견해주기로 한 것. 대늪지 내부 소문을 밖으로 퍼트리지 않을 발트가에 비교적 충성도 높은 사람들로 채우기로 했다.

“현자님, 정말 정말 그란 폴이 아주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뭐 일단은 국왕의 병사들로 막아내긴 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다른 방법도 생각해 두셔야 합니다. 그리고 정찰이나 정보 취합 같은 일은, 부담이 줄었다고 절대 숫자를 줄이거나 없애면 절대 안 됩니다. 자기 안전은 본래 자신이 지키는 것. 왕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 말이죠.”

국왕이 병사를 보내 문제를 해결해줬다고 해도 그것은 타 세력에 의한 문제해결.

그란 폴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말이다.

보통 이렇게 다른 세력에 의해 안전을 확보받은 통치자들이 저지르는 실수가 있다.

전생의 역사를 통해 나는 알고 있는 사실. 타국의 도움으로 안전을 확보받았다고 자기들의 병력을 축소하는 바보짓 말이다.

지금 당장 안전해졌다고 지금까지 늪지대를 정찰하던 전문가들과 늪지 생태계의 정보를 취합해, 어떤 몬스터를 얼마 정도 잡을지 계산하던 전문 인력을 없애 버리면, 그것은 나중에 반드시 그란 폴에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단순하게 국왕이 그만하겠다고 병력을 빼버리는 것만으로도 낙동강 오리알 되어 버리는 건 정작 그란 폴이니 말이다.

그러니 영애에게 경고를 해준 것.

“예, 명심하겠습니다. 현자님.”

영애는 잘 알아들었는지. 눈빛을 빛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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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태양이 모두 떠오른 완연한 아침, 웜 포트의 목책 문이 삐그덕 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리더니, 안에서 고급스러운 마차 한 대와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들이 밖으로 빠져나왔다.

시골 마을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스러운 마차와 마차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호위하는 기사들은, 곧 드넓은 평원에 펼쳐진 물결치는 풀들의 바다로 뛰어들어 그란폴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마차와 기사들의 정체는 발트가의 영애인 로렐라인을 태운 마차와 그 호위 기사들.

일을 마치고 이제 로렐라인의 일행이 그란 폴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현자의 도움을 받기 위해 늪지를 찾은 목적을 이뤘으니 이제 돌아가야 하는 것.

아버지의 명령으로 늪으로 향할 때만 해도 로렐라인은 솔직히 별다른 기대를 하진 않았다. 북부 다섯 왕국에서 현자의 칭호를 받았다느니. 용도 잡을 수 있는 엘프의 귀족이라는 말이 솔직히 믿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젊은 남자가 현자라는 것도 그녀의 기대감은 낮추는 원인중 하나였다.

음유시인의 노래 속의 현자라면 뭔가 늙고 나이 든 그런 느낌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냥 높은 엘프라는 엘프 귀족을 운 좋게 만나 출세한, 아내를 잘 만나 출세한 남자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만난 남자는 정말 현자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남자였다.

현자라는 호칭답게 여관주인 남자가 신묘한 지혜를 발휘해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했으니 말이다.

거기에 지혜 담긴 경고까지.

그녀의 온몸이 전율할 정도의 지혜였다.

오렌지색 머리를 앞으로 땋아 내리고, 다소곳하게 앉아 천천히 멀어지는 웜 포트를 마차의 열린 창 너머로 바라보던 로렐라인이, 현자의 지혜에 느꼈던 전율을 떠올리며 다시금 고양감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어 말했다.

“하, 답답해 뒤지는 줄 알았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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