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77화 (277/352)

〈 277화 〉 274. 영업 방해 5

* * *

“러셀, 너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흑…”

내 앞에서 질질 짜는 사람은 릴리아나 누님. 아내가 늘어난 사실을 알려주지 않아 영애 앞에서 개망신당한 누님은 실신 후 영애보다 일찍 깨어나 내 앞에서 엉엉 우는 중이시다.

“아니, 암살자들도 몰려오고, 수리아는 여기 있는 게 비밀이라서 말해줄 수가 없었죠.”

“성녀님은! 저번에 통신할 때는 알려줄 수 있었잖아!”

“그것도 아직은 대외적으로 비밀이라서. 오늘 알려준 것도 누님이니까…”

“뭐가 전부 비밀이야!”

누님은 빽하고 소리를 지른 후.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나, 잘릴지도 모르겠다. 아가씨 모시고 와서 이런 꼴을 보였으니! 히끅…”

내 사정을 들은 누님은 처음에는 나에게 원망스러운 목소리를 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이해했는지 자기 신세 한탄을 이어가고 있었다.

누님이 자기 밥그릇을 걱정하는 이유는 그란 폴의 용병 모험가 길드는 수도에서 가끔 방문하는 이름만 길드 마스터인 바지사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발트가의 전 가신이나 가신의 친인척으로 채워져 있기에 영애한테 찍히면 잘릴 수도 있다는 것.

“근데 처음 봐서 잘 모르긴 하겠지만 그럴 분으로 보이지는 않은데?”

“몰라! 나쁜 놈! 흐흑… 책임져!”

책임지라는 말에 묘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누님에게 말했다.

“아니, 저번에 제가 관두고 이쪽으로 오시라니까 들은 척도 안 하시더니. 그 제안 유효하니까 잘리면 마차 타고 바로와요. 책임은 모르겠고 직원으로는 뽑아 줄 테니까.”

“저 정말? 그건 그냥 하는 말 아니었어?”

‘아니, 고급 노예가 온다는데 마다할 리가…’

이쪽에서는 글을 안다는 것과 계산할 줄 아는 것은 아주 유능한 사람이라는 증거. 그리고 그간 누님을 대하면서 느낀 건 발레리에 버금가는 인재라는 사실, 발레리랑 둘이 붙여두면 시너지가 좋을 것 같으니 누님 같은 인재가 온다면 당연히 환영인 것.

“당연하죠. 누님 같은 인재를! 그러니까 잘리면 갈 곳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언제라도 받아줄 테니까. 그리고 안 잘리게 누님이 부탁한 것도 내가 좀 심각히 고민해 볼 테니까.”

누님이 도와달라 했던 그란 폴의 문제는 내 문제이기도 하니. 뭐 고민 정도야 같이 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그렇게 누님을 안심시키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저, 정말이신가요 현자님?”

어느새 정신을 차린 영애가 계단을 내려오며 묻고 있었다.

누님에게 같이 고민해보기로 약속했지만, 일단 나도 딱히 좋은 생각이 바로 떠오르지는 않아서 관계자들을 모아두고 회의해보기로 했다.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영애와 누님 그리고 신전에 가서 큰 처형까지 모시고 와 회의를 열었다.

웜 포트, 그란 폴 긴급 대책 회의랄까?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고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대책 회의를 시작해보기로 하죠.”

“네.”

“예.”

무슨 일이든 시작하려면 원인부터 따져야 했기에, 일단 이 일이 시작된 원인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엄밀히 살펴보면 이 일이 시작된 계기는 수리아 대신 왕위에 오른 에삭스의 국왕 헥터가 암살자를 보낸 것이 발단이었다.

전개는 헥터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들이 엘프, 이종족 보호구역에 침입해 수리아를 다치게 했고, 침입했던 놈들은 모두 잡아들였지만, 남은 잔당처리는 수도가 근거지인 놈들과 가까운 아베느의 국왕 라페스빌을 압박해 처리를 종용한 것까지.

그리고 수도 암살자 잔당의 소탕을 맡겼던 아베느의 국왕 라페스빌이 암살자 잔당들은 잡아들이면서 귀족들과 관련된 자들을 건드리려 절정에 이른 것.

결국 결말은 쏟아지는 항의에 방법을 찾던 라페스빌이 성국과 상의해. 귀족들을 납득 시키기 위해서 남부 늪지대에 ‘무서운 엘프님이 있어요.’ 보다는 ‘남부 늪지대에 용이 있어요.’라는 보다 귀족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선택지를 택한 것.

나는 머릿속에 내용을 정리하고 영애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번에 국왕이 암살자들을 수도에서 잡아들일 때, 귀족들의 반발이 심했다고 하던데. 왕권이 좀 약한가 봐요?”

왕권이 강했다면 쓰레기 같은 암살자 놈들 정리한다는데 귀족들이 어느 정도 반발하더라도 왕권으로 찍어누를 수 있었을 것이고.

귀족과 관련된 자를 찾았으면 반대로 귀족을 압박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난처한 상황이 되었다는 것을 보면 아베느 왕국의 왕권이 상당히 약하다는 증거.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을 영애에게 사실 확인을 위해 물었다.

가지런히 앞으로 땋아 내린 머리를 만지작거리다 대답하는 영애.

“예, 그건 아마도 남부의 특이한 상황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국왕의 기사와 사병들이 다른 영주들의 기사나 사병들과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예? 그건 왜?”

이 세계의 기본 통치 구조는 쌍무계약으로 이루어진 봉건제. 충성을 바치는 대신 보호해주는 것을 기반으로 하는 지배 구조이다.

더군다나 몬스터 마물이 있는 세계이니 보다 높은 무력을 가진 존재에게 받는 보호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이고, 그렇다 보니 자기보다 높은 위쪽의 계급의 눈치를 당연하게 볼 수밖에 없는데, 국왕의 병력이 영주들과 큰 차이가 없다면 그건 큰 문제였다.

“좀 이해가 안 가는데요? 국왕의 직할지는 그 유명한 황금의 도시 그란 올인데요?”

국왕의 병력이 대영주들과 다를 바 없다는 영애의 말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보통 봉건제 국가에서는 수많은 영주가 존재한다.

그 영주들 사이에서는 공작이라든지 백작 같은 대영주가 존재하니 이들을 압도해 다스리기 위해서는 그들보다 많은 무력이 필수. 그리고 많은 무력을 가지려면 대영주들이 가진 영지를 넘어서는 직할령이 필수이다.

전생에도 영국 노르만 왕조는 자신들의 본거지인 노르망디 지역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으로 대영주를 압도해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는데, 라페스빌 국왕이 다스리는 직할지인 그란 올은 황금의 도시라는 이명과 같이 남부 최고의 곡창지대를 낀 도시.

거기서 나오는 압도적 재화를 바탕으로 기사나 사병을 양성했다면, 대영주들과 사병의 질과 양이 비슷해질 수가 없는 것.

내 이해 안 된다는 말에 영애가 대답했다.

“아마 남부 전체가 비옥한 곡창지대이기 때문에 그럴 겁니다.”

“예?”

“그리고…….

나도 이곳 출신이다 보니 정확하게 내용을 몰랐는데, 영애의 말을 듣고 그제야 정확한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남부는 대륙 최고의 곡창지대. 그란 올 주변이 최고라고 알려진 것은 그저 여기저기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의 농간.

국왕의 영지나 대영주들의 영지나 생산량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더군다나 국왕의 영지는 곡창지대 중앙에 있는 거대도시. 다른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대영주의 영지들이 수출에도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결국 내용을 종합해보면 국왕의 직할지가 땅은 커도 영주들의 영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 더해진 영애의 설명.

“남부는 땅이 비옥하고 사철 곡식이 풍부하게 자랍니다. 유일하게 위험한 지역은 이 대늪지 인근뿐. 그리고 주변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영지들 정도 외에는 아주 평화로운 곳이죠. 솔직히 중부 다음으로 안전한 곳이 이곳입니다. 그러다 보니 실전을 겪지도 못하고 길게 이어진 평화로 국왕 직속 기사와 병사들의 훈련과 질이 무척이나 낮다는 귀족들의 평가가 일반적입니다.”

남부는 땅이 평화롭고 곡식이 풍부하게 자라니 대영주의 영지들이 급격히 발달해 건국 초기에는 수도를 넘어설 영지가 없었지만 지금은 거의 평준화가 된 상태라는 말.

더군다나 실전 없이 길게 이어진 평화에 국왕의 군대가 썩어버렸다는 말이었다.

결국 왕권이 하락했다는 소리.

‘왕권하락, 그란 폴의 위기, 대늪지, 허약한 병사들. 뭔가 엮일 것도 같고?’

뭔가 살살 촉이 왔다. 뭔가 엮어져 일이 이루어질 것 같은 그런 감이.

“뭔가 될 것도 같은데?”

내 희망 섞인 말에 반색하는 영애와 누님.

“뭐? 뭔데? 러셀 뭐가 떠올랐어?”

“바, 방법이 있는 것입니까?”

천천히 머릿속의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서 말을 꺼냈다.

“용병들이 몬스터의 숫자를 주기적으로 줄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죠?”

“저희 가문의 선대께서는 주기적으로 토벌을 해오셨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영애가 말끝을 흐리는 이유는 토벌하려면 인적, 물적 자원들이 소모될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것. 대늪지를 혼자 맡기에는 그란 폴이 그렇게 부유한 영지가 아니었다.

“주변 영지들과 연계는요?”

“불가능할 겁니다. 자기들 쪽으로 오는 몬스터나 마물들만 처리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리고 아마 이대로 방치되면 강을 따라 올라오면서, 저희 영지로 대부분 쏟아질 확률이 높습니다. 예전 기록에도 그렇게 나오니까요.”

늪지대다 보니 물과 밀접한 몬스터나 마물들이 대부분인 상황. 그런 놈들이 강을 따라 올라올 것은 뻔한 일. 결국 그란 폴이 제일 큰 타격을 입는다는 영애의 설명이었다.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생각 날 듯 말 듯 한 감각에 집중하고 있는데, 리젤다가 조용히 다가와 귓속말하며 물었다.

[러셀, 오늘은 활, 못 가르쳐 줘요?]

며칠 전 벨의 책 사건으로 리젤다가 삐진 것 때문에 틈이 날 때마다 잠깐이라도 활 쏘는 걸 봐주기로 약속했었는데, 오늘 회의가 길어지니 물어보는 것.

나는 옆에 있던 이실리엘에게 대신 부탁했다.

“이실리엘 오늘은 회의가 길어질 것 같은데 이실리엘이 리젤다 활 쏘는 것 좀 봐줄래?”

“네, 알았어요. 러셀!”

“이, 이실리엘님이 지, 직접요?”

활을 배운다면 나보다 이실리엘에게 배우고 싶을 것이지만, 이실리엘을 어려워하는 리젤다가 직접 부탁할 리 없으니 좋은 기회에 둘을 엮어준 것.

리젤다는 마치 영혼을 빼앗긴 것 같은 모습으로 이실리엘을 따라 사라졌다.

그리고 그런 리젤다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꽂히듯 영감이 찾아왔다.

‘이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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