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73화 (273/352)

〈 273화 〉 270. 영업 방해 1

* * *

확실히 드워프들의 손재주는 놀라운 것이 맞는 것 같았다. 내가 대충 그린 그림으로 스나졸린이 견본도 아닌 시제품을 이틀 만에 만들어 가지고 왔으니까 말이다.

그냥 이대로 팔아도 될 것 같은 모습.

“이렇게 빨리 완성이 되었어?”

내가 놀란 표정으로 묻자. 스나졸린의 말이 나를 더 놀라게 했다.

“도, 동생들이 심심하다고 도와줘서요.”

“동생들?”

“예, 글자 새기는 게. 재, 재미있어 보인다고. 같이 좀 만들어줬거든요,”

‘아니 그 꼬맹이들이 무슨? 꼬맹이들이 활자를 팠다고?’

드워프에 대한 나의 오해가 있는 것 같았다. 드워프는 손재주가 좋은 종족 정도이고 오랜 기술 습득을 거쳐 완성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나의 착각. 드워프는 태어나는 순간 어느 정도 완성품인 모양이었다.

꼬맹이들도 나무 조각 정도는 손쉽게 한다니…

나는 놀라움을 뒤로하고 스나졸린에게 완성된 시제품을 받아 테이블 위로 올렸다. 크기는 적당하게, 처음에 설명한 대로 전생의 A4 비스름한 크기.

이쪽 책은 보통 양피지로 만들고 필사로 내용을 적기에 전부 크다. 그러나 책이 발전했던 전생을 되돌아보자면 책은 손에 들 수 있는 적당한 크기가 좋은 것. 다만 이쪽의 제지 기술이 높지 않기에 양피지로 찍을 경우를 생각해 최소한의 크기로 줄인 것이다.

테이블 위에 올린 활자 틀에 나무 활자를 채워 넣어 문장을 만들었다. 꼬맹이들이 팠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낮지 않은 활자들.

손을 움직여 활자를 배열하자 천천히 드러나는 문장들 그리고 그런 문장들이 모여 글로 완성되는 모습.

문장을 완성하는 모습에 벨이 물어왔다.

“러셀 그런데 글이 반대가 아니냐?”

벨의 귀여운 질문. 이걸 찍으면, 보이는 모습 그대로인 반대로 나온다고 생각하는 모양. 나는 웃으며 완성된 문장 위에 잉크를 찍기 시작했다.

리넨 천 한 장 안에 짐승의 고운 털들을 좀 집어넣고 솜뭉치로 만들었다. 여기에 잉크를 찍어서 활자 위에 잉크를 톡톡 두드려 바르고, 양피지 한 장을 위에 올리고 잘 두드린다. 물론 움직이면 번지니 번지지 않게 아주 조심해서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양피지를 뒤집자 보이는 선명한 글.

“오오!”

벨은 그제야 이틀 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완벽하게 이해한 모습으로 환호했다. 말로 백번 떠들어봐야 역시나 한번 보여주는 것만 못하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닌 모양.

“오오! 역시! 러셀, 너는 현자가 확실하다. 이런 대단한 선물을 주다니!”

활자가 마음에 들었는지. 은근슬쩍 선수를 쳐오는 벨.

그러나 나는 장사에서만큼은 진심인 남자. 네가 아무리 이실리엘의 친구라도 계산은 확실해야 하는 법.

나는 벨이 기뻐하며 쳐오는 개수작에, 피도 눈물도 없는 지옥에서 온 상인을 빙의시켰다.

“선물 아닌데? 팔 건데?”

“뭐! 뭐라?!”

“아니, 설마 공작가 따님께서 양심도 없이. 이런 대단한 것을 공짜로 달라는 말은 아니겠지?”

내 말에 당황해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는 벨.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정색하는 표정으로 외쳤다.

“다, 당연하지! 내가 치, 친구의 대단한 물건을 값도 치르지 않고 가져갈 사람으로 보였단 말이냐?”

말을 더듬는 순간부터 벨이 한 말의 순수성이 의심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그렇다면 얼마나?”

벨이 조심스레 가격을 물어왔다.

”벨 너는 얼마 정도 예상하는데?”

‘손님,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나는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의 후손답게 상거래 멘트의 끝판왕 선 제시를 벨에게 시전 했다.

벨의 눈이 당혹감으로 물들고 있었다.

이미 시제품을 한번 본 이상 벨은 결코 이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 자기 책을 비롯해 다른 책들도 원하는 만큼 찍어서 팔거나 대여할 수 있는데 이걸 마다한다면 그건 바보인 것.

그러니 벨을 계약 테이블로 끌어들이는 것은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나 대신 벨과 계약 내용을 챙기는 발레리. 역시 지옥에서 온 상인의 아내답게 아니, 자신의 부끄러운 내용을 책에 썼다는 서운함이 아직 조금은 남아있었던지. 발레리는 가차 없는 내용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계약의 내용은 앞으로 활자로 찍어내 파는 책의 순수익의 오십 프로.

벨은 주저했지만 그녀의 손과 머리는 따로 행동하는 상태. 활자를 본 벨의 욕심은 자기가 무엇을 계약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게 만든 것 같았다.

벨의 손이 움직이며 계약서에 서명한다. 벨의 떨리는 목소리.

“서, 서명했다.”

“아이고 이제 우린 동업자네.”

“도, 동업자?”

“같은 마차를 탄. 같은 운명을 공유하는 사이라고 볼 수 있지.”

계약이 끝나고 계약서를 들고 벨이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자 발레리가 잽싸게 계약서를 낚아채 한 부는 자기가 한 부는 벨에게 넘겨주고 바로 사라졌다. 중요한 곳에 보관하기 위함인 모양.

자신에게 남겨진 계약서를 들고 잘한 계약인지 아닌지 고민하는 표정이 역력한 모습의 벨.

‘벨 이미 계약서에 서명 끝났거든? 고민은 서명하기 전에 하는 거란다.’

내가 활자를 넘기면서 벨에게 오십 프로나 되는 이익을 요구해서 내가 나쁜 놈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벨에게도 이 계약은 나쁘지 않은 계약이다.

왜냐하면 활자는 무상으로 공급해주기로 했으니까 말이다.

벨은 나에게 활자를 받아서 원하는 책을 찍어서 팔기만 하면 되는 것. 그러니 벨 입장에서도 절대 나쁘지 않은 계약인 것이다.

시제품이 있긴 하지만 문제점을 보완해서 업그레이드도 착실하게 해줄 예정이니.

계획도 세워놨다.

목재활자에서 금속활자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쇄기까지.

활자를 사용하다 보면 목재에서 금속으로 넘어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필수이다. 목재활자의 문제점은 내구성이 낮다는 것과 활자 하나를 사람이 하나하나 파야 한다는 것.

두 가지 문제점이 합쳐지면 목재활자는 계속 파서 활자를 보충해줘야 하니 사람의 손이 계속 가야 한다는 단점이 드러난다.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다.

그런데 금속활자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금속활자는 틀을 만들어 쇳물을 부어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 틀을 만들 때야 조금 고생하지만 한 번에 활자를 대량으로 제작할 수 있는 것. 쇳물만 부어주면 끝이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금속으로 만든 활자는 내구성도 뛰어나니, 거의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그리고 금속활자가 완성되면 마지막 단계는 인쇄기.

이 계획은 최종 단계는 인쇄기이다. 아마 내 기억이 맞는다면 쿠텐베르크는 포도즙 짜는 기계로 첫 인쇄기를 발명했다고 했는데, 이쪽도 포도 짜는 기계 정도는 있고, 나에게는 이제 개인 드워프가 있으니 원하는 건 다 만들 수 있기에 한번 시도해 볼 만한 것.

지금이야 노르딕 씨가 대장간 건설로 바쁘니 만들기 힘들지만, 대장간 건설이 끝나면 바로 만들어 달라고 해볼 예정이다.

그건 조금 나중 이야기지만 말이다.

일단 당장은 목재 완성품이나 금속 시제품을 빨리 뽑아내 쓸만하게 만들어, 소란스러운 벨을 빨리 되돌려 보내는 것이 목적. 에반도 벨을 볼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이니 말이다.

그렇게 벨의 고민도 해결해주고 수익사업도 하나 늘린 뿌듯함을 만끽하고 있을 때. 나의 뿌듯함과 즐거운 기분을 박살 내는 소식이 그란 폴에서부터 들려왔다.

나의 즐거운 한때를 망쳐버린 주인공은 얼마 전 자진해 노예가 된 다섯 엘프의 리더 타냐린.

타냐린과 그의 동료까지 총 다섯의 엘프는 평원 엘프 마을의 주민이 되었다. 그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말이다.

나를 족장으로 모시긴 하지만 나 개인에 대한 충성심은 의심되는 부족원들. 얘들은 이실리엘 바라기니까 말이다.

마을에 배치된 이들의 임무는 엘프들과 섞여 지내며 그란 폴로 가는 마차의 호위나 사냥. 그리고 마을 주민이 되었으니 경계 임무에도 다 같이 투입되는 중이다.

그런 연유로 어제 타냐린이 엘프 수호자를 따라 그란 폴로 보내는 식자재를 배달했는데, 돌아와서 나에게 이상한 보고를 해 온 것이다.

뭔가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보고를…

“그러니까 그란 폴에 이상한 소문이 돈다는 말이지?”

“예…”

“소문의 내용이 대 늪지에 용이 둥지를 틀었다는 말이고?”

“예, 그렇습니다.”

타냐린의 말로는 지금 그란 폴은 대늪지에 용이 둥지를 틀었다는 소식에 다소 혼란한 상태라고 했다.

손톱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용… 용이라…”

그러고 보니 며칠 전부터 뚝 끊긴 여관 손님과 사냥 가는 용병들.

대늪지 사냥철이 끝나긴 했어도 손님들이 가끔 방문하고. 경계병들도 용병들이 몇 팀 정도 지나갔다고 보고해오긴 했는데, 생각해보니 요 며칠 용병들이 늪지로 향했다는 보고가 없었던 것.

“음… 일단 알았어. 길드 쪽에 확인해봐야겠구만.”

아무래도 길드의 릴리아나 누님을 통해서 확인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았다.

“예, 그럼.”

보고를 마치고 물러가려 하는 타냐린에게 물었다.

“아, 마을에 사는 건 어때?”

“만족스러워요. 평화롭고…”

“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고.”

타냐린을 보내고 에브리나를 찾아 여관 밖으로 나섰다. 길드와 연락하려면 에브리나가 있어야 하는 것. 에브리나는 자기 객실에서 마법 책을 읽던지 벨릭의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확률이 높으니 일단 여관 밖으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에브리나를 찾아 여관 밖으로 나서자 신전 쪽에서 걸어오고 있는 시트라의 모습이 보였다. 신전에라도 다녀오는지 옆에 성기사 하나를 대동하고 여관 쪽으로 걸어오고 그녀의 모습.

“러셀!”

“시트라 신전 다녀오는 길이야?”

“예.”

나를 발견하고 달려와 안기는 시트라.

그리고 옆에 있는 성기사는 아미쉬였다. 그녀는 우리의 애정 어린 모습을 보고 헛기침을 해댔다.

“크흠 크흐음…”

‘아무튼 처녀들이란…’

아미쉬의 행동에 속으로 피식 웃자 들려오는 시트라의 질문.

“러셀, 어디 가세요?”

어딜 가냐는 시트라에 물음에 좀 전에 타냐린에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시트라에게 해주었다.

“아니, 대늪지에 용이 둥지를 틀었다는 소문이 났다고 그래서 릴리아나 누님에게 확인해보려고 말이지.”

“예? 용이요?”

용이라는 단어에 놀라는 시트라. 그리고 놀란 시트라의 목소리 너머로 아미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게 이제 소문이 나기 시작했나 보군요?”

뭔가 알고 있다는 목소리.

“처제 혹시 무슨 내용인지 알아?”

“예, 라페스빌 국왕과 성국 쪽에서 이쪽으로 유입되는 사람들을 차단하려고 용이 있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 같더라고요.”

“뭐라고?!”

‘아니, 이 양반들이 미쳤나? 남의 장사를 말아먹으려고 하네?’

나는 처제의 말에 황당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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