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265. 신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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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을 차려도 될 것같은 숙달된 드워프들의 묘기 중간, 반죽을 조금 떼어내 먹기 좋게 잘라 다들 입에 하나씩 넣어주었다.
처음 보는 음식이 입안으로 들어가자 들려오는 소리.
“이, 입속에서 붙어요!”
“이런 느낌을 뭐라고 하는 거죠?”
“쫄깃쫄깃?”
“아 맞아요! 정말 쫄깃쫄깃하네요.”
처음 먹어보는 떡의 맛에 여러 가지 소감이 들려왔다. 그리고 백설기도 완성되어 애니와 사리나의 손에 들려 나왔다. 넓게 깔린 가죽 위에서 큼지막하게 잘려서 각자의 손으로 하나씩.
“엇! 뜨거!”
“앗! 뜨거워요!”
따듯할 때 호호 불어먹는 백설기의 맛은 전생이나 이생이나 참을 수 없는 것.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백설기를 크게 잘라 한 덩어리씩 사람들 손에 들려주자 사람들이 환호했다.
눈처럼 희고 따듯하고 달고 고소한 음식은 이들에게는 생경한 경험. 즐거움으로 북적이는 것은 당연한 일.
신년 첫날 여관의 아침 식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주메뉴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백설기와 드워프들이 두드린 떡으로 만든 절편과 볶은 콩가루를 바른 인절미.
그리고 명절의 첫 음식 떡국!
드워프들이 두드려 만들어진 떡을 아내들이 동그랗게 굴려 떡국용 떡으로 만들었다. 약간 조랭이떡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것으로 떡국을 끓였다. 아무래도 신년이니 그냥 지나가긴 심심해 떡국을 한번 끓여본 것.
꿩과 비슷한 새를 푹 끓인 육수에 떡과 고명을 넣은 간편한 떡국. 원래 전생에서도 떡국에는 꿩고기와 뼈를 이용해 육수를 끓였다고 했으니 나름대로 고증을 한샘.
보통 전생의 현대에는 쇠고기로 많이 끓여 먹었지만, 그것은 구하기 쉬운 고기로 바뀐 것일 뿐. 원래는 꿩으로 끓여 먹다가 꿩고기가 귀한 고기이고 잡기 힘드니. 평민들은 닭을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고 그래서 생겨난 속담이 꿩 대신 닭. 현대화에 따라 쇠고기로 바뀌었지만, 원조만의 맛을 따라갈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꿩과의 새로 보이는 놈을 잡아서 끓인 것이다.
떡국과 떡은 입안에 붙는 느낌에 약간의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맛으로는 호평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인절미를 좋아했고.
“배가 부른데 자꾸만 먹게 돼요.”
“눈처럼 하얀 음식이라니.”
당연히 아내들도 좋아했다. 떡과 백설기는 아주 많이 만들어서 엘프들에게도 나누어주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조금씩 돌렸다.
원래 새해 음식은 또 나눠 먹는 맛 아니겠나? 그러다 보니 왠지 새해? 명절? 분위기가 났다.
내친김에 명절 기분을 더 내보려고 아침을 다 먹고는 강정까지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쓰는 김에 팍팍 쓰는 인심.
볶은 견과류에 꿀과 예전에 만들어준 물엿을 섞어 만드는 강정. 엿을 좋아했던 이실리엘과 아내들이 달려든 것은 당연한 일. 전생이나 이생이나 여자들이 단 음식을 좋아하는 것은 동일한 느낌. 오래간만에 만드는 강정에 아내들이 물었다.
“러셀, 오늘 무슨 날이에요?”
“맞아 오늘 무슨 파티하는 거 같아.”
눈치 빠른 아내들의 물음에 답해주었다. 명절이라는 걸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새해 첫날을 기념해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있었다는 정도는 알려줄 수 있으니까.
“예전에 살던 곳에서는 친척들까지 모여 새해 첫날에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곤 했거든. 오늘이 새해 첫날이라길래 예전 생각이 나서 준비해 본 거야.”
“아하! 그런 풍습이 있었군요?”
“그렇다면 저는 매일 새해 첫날이면 좋겠어요.”
견과류 강정을 입에 잔뜩 넣은 발레리가 웃으며 매일 새해 첫날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치 전생 초딩들이 명절에 하는 말을 듣는 느낌.
‘하긴 매일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좋긴 하지.’
사람들의 즐거움과 미소 그리고 가족이 있는 새해 첫날.
새해 첫날 아침은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는 즐거운 한때였다.
여관의 작은 새해 첫날 행사가 끝나고. 아침을 먹고 한숨을 돌리자 금방 점심때가 되었다. 전생에 어머님들이 아침 먹고 잠깐 지나면 점심이고 또 금방 저녁 된다고 하시던 말씀이 요즘 사무치게 느껴진다. 그나마 이쪽은 두끼여서 망정이지 세끼였으면 부엌에서 나올 시간도 없었을 듯.
아침에 다들 떡을 든든하게 먹어서 그런지 점심은 조금 한가했는데, 그런 한가함을 질투하듯 그때 그란 폴에 주문해두었던 물레와 베틀이 도착했다. 노르딕 씨의 대장간을 만들 자재들과 인부들도 함께.
블랙 와이번의 가죽을 손질하고 있는 노르딕 씨가 작업실과 대장간의 빠른 제작을 부탁했기 때문에 암살자의 위협으로 잠시 뒤로 밀렸던 대장간 제작을 서두르기로 했다.
테크를 올려야 하는데 암살자 놈들 때문에, 좀 늦어진 감이 있기에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으니 최대한 빠르게 준비해달라고 했는데, 말한 지 사흘 만에 도착한 자재와 인원.
물론 부탁한 사람은 릴리아나 누님. 에브리나를 통한 수정구 통신으로 말이다.
원래는 직접 갈 생각을 했었다. 아무래도 계약 같은 거나 자재는 직접 보고 계약해야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간 김에 이실리엘도 동행시켜 엘프 전용 와이파이 효과도 확인해보려 했었다.
그런 이유로 릴리아나 누님에게 방문 전 사전 알림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누님이 아주 난처해하셨다.
“누님 나 이실리엘이랑 그란 폴 좀 가도 돼요?”
“왜? 왜 또? 무슨 일인데?”
기겁하는 목소리. 얼마 전 이실리엘의 방문 이후 첫 연락이라 그런지 한껏 긴장한 목소리가 느껴졌다.
저번에도 별일은 없었다지만 원래 높은 분이 방문하시면 아랫사람들이 곤란해지는 건 어디를 가나 비슷하니. 실무자인 누님의 일이 가중되니 곤란해하는 느낌.
“아니, 마을에 대장간 좀 만들려고 자재랑 사람을 계약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내, 내가 다 해서 보내줄 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그냥 앞으로 필요한 거, 나한테 말만 해. 계산만 확실히 해주면, 내가 다 보내 줄게 알았지?”
‘아니, 대신해준다고? 개꿀.’
알아서 배달 대행 서비스를 진행해주겠다는 릴리아나 누님의 제안에 속으로 개꿀을 외쳤지만, 그래도 엘프 전용 와이파이 확인 및 홍보하려면 몇 번은 가야 했는데, 아예 못 오게 하면 곤란했기에 다시 물었다.
“그래도 이실리엘이랑 몇 번 가긴 해야 하는데?”
“며, 몇 번이나? 아니, 이실리엘님이 오는 건 문제가 아닌데, 오신다면 왕실에 보고도 해야 하고, 사람들도 좀 치워야 하니까. 우리 최대한 좀 줄여보자. 응?”
간절한 릴리아나 누님의 목소리. 결국 선심 쓰는 척 대장간 제작에 필요한 자재와 인부 그리고 베틀과 물레를 부탁한 것이다.
마차에서 엘프들을 위한 물레와 베틀이 내려지고 있었다. 주문한 것은 각 3대씩. 원래 엘프들의 물레나 베틀은 그들만의 양식으로 되어있다는데, 그건 구할 수가 없었고, 인간의 것도 사용할 수 있다는 에밀의 말에 급하게 인간들이 사용하는 물레와 베틀을 구매한 것이다.
노르딕 씨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노르딕 씨는 지금 블랙 와이번 삼매경에 빠진 상황. 결국 구매 결정.
평원 엘프들은 물레와 베틀이 온다는 소식에 며칠 전부터 평원과 늪지 근처를 쏘다니며 풀을 베어오고 삶아서 말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요 며칠 베어, 나른 것이 아마나 황마 같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엘프들만의 실과 천을 만드는 식물이 따로 있는 느낌이었다.
물론 직접 천이나 옷을 구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에밀의 물레와 베틀을 사달라는 제안을 허락한 것은, 마을의 평원 엘프 일부는 모험가 출신이지만 대부분은 평범한 마을 주민 출신.
천을 만들어 파는 것도 돈이 되는 편이고 가죽이나 직물은 엘프들의 물건이 제법 고가에 거래되기에 평원 엘프 마을의 수입원으로 만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수익이 늘어날수록 삶이 윤택해질 테니까.
마차에서 내려진 물레와 베틀에 엘프들이 달라붙었다. 여럿이 힘을 모아 평원 엘프 구역으로 날라지는 물레와 베틀. 물레와 베틀을 옮기고 엘프들이 나와 이실리엘에게 감사 인사를 해왔다.
“고마워요. 러셀님, 이실리엘님”
“저희가 좋은 천을 만들어서 선물해드릴게요.”
그리고 엘프들의 감사 인사를 비집고 신이 난 노르딕 씨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러셀님 저번에 봐둔 그 자리 괜찮겠죠?”
예전에 한번 노르딕 씨와 대장간 자리를 잡기 위해 마을을 둘러본 적이 있다. 물을 사용할 수 있는 강변 방앗간에서 좀 떨어진 자리. 그때 그곳을 마음에 들어 했는데 아마도 거기에 자리를 잡겠다고 하는 모양.
노르딕 씨의 목소리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져보는 자신만의 대장간. 설레는 것도 이해가 된다.
자기만의 대장간이라…. 나도 나만의 부엌이 생길 때 그런 기분이었지. 제작자의 동질감에 가슴이 울었다.
“예 원하는데 자리 잡으시면 될 것 같아요. 촌장님에게는 다 이야기해두었으니까요.”
노르딕 씨는 내 대답을 듣자마자. 도착한 인부와 마차를 몰아 해당 장소로 빠르게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노르딕 씨의 호통치는 소리와 인부들의 목소리가 고즈넉한 시골 마을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폭풍 같은 일들이 연달아 지나가고 고즈넉한 시골 마을은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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