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65화 (265/352)

〈 265화 〉 262. 자발적 노예 5

* * *

이실리엘의 뒤로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하시고, 혜자 같은 혜택에 미안한 마음이 든 사용자들이 요금 내기를 희망하고 있었다.

이들의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에서 아까 에밀의 집에서의 일이 떠오르고 이거 잘하면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아니, 엘프를 잡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너무 요금을 내고 싶어 안달이 난 엘프들의 모습. 성실납세자 같은 모습이었다.

‘유료 요금은 비싼데….’

“큼큼. 손님들 자꾸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근엄한 목소리로 엘프들을 꾸짖었다. 그러자 파티 리더로 보이는 엘프가 나서며 하는 소리.

“저, 저희가 빨래도 했는데 맡겨주세요!”

리더의 말에 다 같이 고개를 끄덕이는 엘프들. 아까처럼 내가 일을 시켜줄 것이라, 생각했는지. 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짓는 엘프들.

이 녀석들 내가 베풀어준 ‘은혜’를 착각하고 있었다.

저희가 여관을 일을 도와줬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산. 내가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것인데. 어리석은 녀석들.

진정한 악덕 기업은 돈을 조금 주거나 근로 시간이 긴 기업이 아니라. 우리 기업에 일하게 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 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마!

우리 기업에서 일하는 영광을 주었으니 돈 내라!

‘“돈을 내도 좋으니 제발 일하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뱉게 해주지!’

나는 엘프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아까 일을 거들어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원래 여관과 관련된 일은 여관에서 일하는 ‘엘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손님들.”

내 단호한 음성에 움츠러드는 엘프들. 엘프들의 과도한 친절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이실리엘에게 부탁했다.

“이실리엘 안쪽 테이블부터 부탁해.”

어쩔 줄 모르는 엘프들을 지나 이실리엘의 서빙이 시작되었다. 애타는 표정의 엘프들. 아직 자신들이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

‘좀 더 태워야 하나?’

엘프들을 몰아세우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내 사랑하는 아내 이실리엘을 콩쥐로 만들기로 했다.

오늘 이실리엘이 맡은 역은 구박받는 아내.

“이실리엘 음식 다 내가면 부엌에서 설거지도 좀 도와줘,”

“네 알겠어요. 러셀.”

내 말에 바쁘게 움직이는 이실리엘. 여간해서는 땀을 잘 흘리지 않는 이실리엘이지만,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땀이 나는지 이마에 땀을 한번 훔치고 다시 와서 접시를 받아 가는 모습.

시키지도 않았는데 적절한 연기. 이것이 부창부수?

이실리엘이 땀을 한번 닦아내자 파들파들 떠는 엘프들.

그리고 다른 아내인 발레리와 리젤다가 부엌일을 끝내고 이실리엘을 도우려 했지만, 부엌 입구에서 슬쩍 그녀들을 막아 세웠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까 잠깐 모른 척해줘.]

[예? 하, 하지만 이실리엘님이.]

이실리엘이 성격상 연기 같은 걸 잘할 리 없으니 귀띔해준다면 금방 들통나리라. 어쩔 수 없이 그녀 모르게 잠깐만 콩쥐 역을 맡겨야 했다.

그때 들려오는 애타는 목소리.

뒤를 돌아봤더니 도저히 참지 못하겠던지. 다섯 엘프의 사제가 리더의 앞으로 나서며 다급하게 묻고 있었다.

양손을 모으고 간절한 모습.

“어, 어떻게 하면 저희가 저분을 도울 수 있을까요?”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나는 대답을 회피했다. 여기서 즉답하는 것은, 낚시 초보들이나 하는 짓. 떡밥에 물고기들이 반응한다고 챔질해버리면 떡밥은 떨어져 나가고 물고기는 도망가는 법.

물고기가 떡밥에 반응하면 바늘을 뱃속까지 삼키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이다. 낚시는 원래 그런 것이다.

나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고 이실리엘만을 재촉했다.

“이실리엘 식사가 식는데? 빨리 좀 부탁해.”

“네, 러셀.”

그때 여관 안으로 에밀이 들어오며 나를 급하게 불렀다.

“러셀! 필요한 거 전부 확인해왔어!”

대장이라는 직책에도 열심이었던 에밀은 부족장이라는 단어에 아주 유능한 엘프가 되어있었다. 아까 나와 헤어지고 바로 엘프들이 필요한 물건을 전부 확인해온 느낌.

역시 자리가 만드는 엘프.

나는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에밀을 반갑게 불렀다. 호칭을 넣어서.

“이게 누구야. 우리 ‘부족장님’ 아니신가?”

낚시를 즐기다 보면 물고기란 놈들의 특이한 모습을 아주 많이 관찰하게 된다. 그중 대표적인 모습이 배가 불러도 옆에 다른 물고기가 있으면 일단 먹이를 삼키는 모습.

배가 고프지 않아도 옆에 다른 물고기가 있으면 경쟁심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기에 일부 미끼는 물고기의 그런 습성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역시나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에밀의 모습에 물고기 떼가 경쟁심에 요동치기 시작했다.

“부, 부족장?”

“서, 설마 높은 엘프님의?”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저희끼리 중얼거리는 물고기 떼.

중얼거리는 물고기 떼의 시선을 받으며, 에밀에게 이실리엘을 도와 서빙을 거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에밀, 오늘 이실리엘을 좀 도와줄래? 주방에 일이 많아서 말이지.”

“저, 정말? 이실리엘님을 도와드리라고?”

일 도와주라는 말에 기쁜 목소리를 내는 에밀. 일을 시키는데 기뻐하는 종족이 있다? 좀 웃긴 상황이었는데, 그런 에밀의 목소리가 물고기 떼에게는 자극이 되었던 듯싶었다.

부러운 눈빛으로 에밀을 바라보는 엘프들.

거기에 마무리 멘트를 추가하면 이제 낚시꾼으로 해야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남은 것은 낚시의 낭만 기다림?

“그럼 이실리엘의 일은 당연히 ‘부족원’들이 도와야지.”

“그, 그렇지!”

얼떨결에 대답하는 에밀. 주방 안쪽에 앞치마를 하나 내어달라 해서 에밀의 앞에 둘러주었다. 앞치마를 둘러주는 모습에 마치 앞치마가 무슨 월계관이라도 되는 양 다섯 엘프는 에밀의 앞치마만 바라보는 상황.

에밀도 앞치마를 수여 받자 황송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다섯의 엘프들에게 말했다.

“자자, 손님들도 자리 일단 앉으세요. 음식을 내가야 하는 데 방해가 됩니다. 이러다가 이실리엘이 음식을 쏟으면 안 되겠죠?”

자신들이 이실리엘에게 방해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엘프들은 허겁지겁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사라진 공간을 흰 앞치마를 두르고 오가며, 테이블 사이를 누비는 이실리엘과 에밀.

테이블에 앉은 엘프들의 눈빛은 부러움. 아쉬움. 간절함.

물고기들의 반응을 지켜보며, 낚시꾼에게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물어라! 어서!’

잠시 뒤 엘프들 앞에도 스튜 그릇이 놓였다. 이실리엘과 에밀이 가져다준 스튜를 받아들고는 슬픈 표정이 되는 엘프들.

슬픈 표정의 엘프들이 천천히 스튜를 한입 떠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놔버린 듯 게걸스럽게 스튜를 공격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식사도 마다하고 낚여 올라올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인 상황.

‘맛있어서 그러나?’

음식을 다 먹으면 낚여 올라오려나 해서 지그시 기다리는데, 그런데 식사가 끝나자 엘프들은 이실리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다들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엘프들의 모습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어? 뭐지? 분명 삼키기 직전이었는데?’

식사가 맛있어서 참을 수 없었다면 먹고 나서라도 찾아와서 간절하게 부탁해야 하거늘.

이상했다. 분명히 떡밥과 함께 바늘을 꿀꺽 삼키기 직전이었고, 에밀을 보자 참지 못하는 표정이 되었었는데 말이다.

“저, 저희도 되고 싶습니다. 부족원이!”

“무, 무슨 일이든 할 테니 꼭 부족원이 되고 싶습니다.”

“제발 부족원으로 받아주세요.”

정도의 반응을 기대했는데 묵묵히 밥만 먹고 방으로 올라가 버린 엘프들.

‘설마 내가 꽝 조사?’

낚시 가서 한 마리도 못 잡는 낚시꾼을, 꽝 조사라 부르는데. 내가 꽝 조사가 되어 버리려는 상황.

전생에 인터넷에 떠도는 말 중에 양치기들이 양과 염소를 섞여 키운다는 말이 있다. 양은 너무 순하기만 하니. 다소 제멋대로이긴 해도 육식동물에게서 자기를 방어할 줄 아는 염소를 같이 키우면, 늑대 같은 것이 나타났을 때 염소를 중심으로 양들이 뭉쳐 자신들을 방어한다는 것. 그래서 둘을 같이 키운다는 것인데.

우리 평원 엘프들은 너무 순하고 피해받은 충격으로 좀 위축된 모습이니. 여기에 그냥 봐도 특이해 보이는 새 노예 아니, 새 엘프들을 수혈해 같이 키우려고 한 것인데.

보기 좋게 실패해 버린 것.

평원 엘프도 케어하고 쟤들도 그렇게나 원하는 이실리엘의 부족원이 될 수 있는 서로에게 좋은 기회인데….

‘너무 속보였나?’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으나. 이실리엘이 와이파이라는 걸 알아낸 이상. 이제 피리 부는 아저씨처럼 가끔 그란 폴로 찾아가 엘프를 수확하면 되니.

쟤들은 아쉬워도 놔줘야 할 것 같았다. 낚이지 않았으니 경계심이 생겼을 것이고, 한번 낚시에 실패한 물고기는 경계심에 바로 다시 잡기 힘드니 말이다.

진짜 물고기 수준이라 금방 까먹고 다시 달려들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쟤들이 무슨 붕어 대가리도 아니고…’

낚으려고 그렇게 눈치를 줬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 당연했다. 오랜만에 낚시에 앞선 마음이 불러들인 참극. 낚시는 겸손한 마음으로 임해야 하거늘. 나의 실수였다.

초보 낚시꾼이나 저지르는 실수를 하다니!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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