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64화 (264/352)

〈 264화 〉 261. 자발적 노예 4

* * *

우리 집에 엘프 전용 와이파이가 있다는 희소식을 가지고 여관으로 향했다. 세계수님한테 받은 게 적지가 않은데 이걸 또 이렇게 챙겨주네.

즐거운 마음에 깽깽이 스탭까지 밟자. 금세 여관이 나타났다.

여관 앞의 모습은 아까와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여관 앞 빨랫줄에 수많은 시트와 수건들이 하얗게 세탁되어 널려있었고 평원에서 바람이 살살 불어올 때마다 크게 펄럭여 이색적인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양을 보아하니 오늘 밀린 빨래 전부 다 한 느낌.

­팍팍

시트를 털어대는 소리에 흰 시트를 헤치고 안쪽을 살펴보니.

이미 마른빨래를 사리나와 올빼미 토끼 자매들이 짝을 맞춰 털면서 접고 있었다. 각을 맞춰 탁탁 치면서 먼지를 털고. 만났다 떨어지면 접히는 시트. 절도 있는 모습을 보니까 군대에 있을 때 모포 털던 게 생각났다.

­팍

“아야!”

“내가 꽉 잡으라고 했잖아?”

사리나의 뾰족한 목소리.

옆을 보니 올빼미가 자기 코를 부여잡고 주저앉아 있었다. 사리나와 한 조로 시트를 털다 시트 모서리 한쪽을 놓쳐 아마 털던 시트 모서리에 코를 얻어맞은 것 같은 모습.

어딜 가나 무엇을 하나 한결같은 녀석. 사람이 저렇게 일관되기도 쉽지 않은데. 나는 시트의 바다를 헤치고 나아가 사리나를 불렀다.

“사리나?”

“예! 주, 주인님?”

내 목소리에 사리나가 올빼미를 갈구다 말고 깜짝 놀라 다가왔다.

올빼미는 더 갈굼을 당할 줄 알았는데 내 부름에 사리나가 이쪽으로 오자. 휴 하고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는 얼굴. 왠지 잘 어울리는 콤비.

“부르셨습니까? 주인님.”

“응 플로라는 어떻게 됐어?”

사리나에게 일단 플로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플로라라는 이름에 움찔하는 사리나. 옆에 올빼미는 플로라에게 몇 번이나 죽을뻔해서 그런지 플로라의 이름이 나오자 기겁하는 모습이 되었다.

“좀 전까지 울고 계셨습니다.”

“뭐? 지금까지? 아니 대체 왜?”

내 질문에 그걸 왜 자기한테 묻느냐는 듯한 표정의 사리나. 하긴 너한테 물을 건 아니긴 하지.

“이상하다 이렇게 울 일이 아닌데?”

내가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짓자 사리나가 조심스레 물었다.

“호, 혹시 무슨 말씀을 하, 하신 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사리나의 얼굴을 바라보자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애가 여태까지 우느냐는 무척이나 궁금한 표정.

그래 여자들의 의견은 어떤지 한번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게 내가 뭔가를 잘못했는지 아니면 정말 감격해서 그런 건지 같은 여자들이 들으면 확실할 테니 말이다.

“야 올빼미 아니, 레오나도 이리 와봐.”

“예, 주인님!”

사리나와 올빼미를 앞에 두고 아까 있었던 일에 대한 검증을 시작했다.

“너희들 잘 들어봐. 내가 뭐 특별한 걸 한 건 아니고. 플로라한테 그, 사랑한다고 말했거든?”

“사, 사랑한다고 말입니까?”

“예?”

사라나와 올빼미의 절대 믿지 못하겠다는 목소리. 사랑한다는 말에 지금까지 우는 게 말이 되냐는 표정. 이거 좀 답답한 상황이었다.

“사랑한다는 말만 하신 것이 확실합니까? 좀 더 자세히.”

“자세히? 그래, 자세히….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 하면 말이지…. 처음에는 목책에 핀 하얀 꽃을 꺾어서 귀에 꽂아주었어.”

마침 근처에도 하얀 꽃이 조금 피어있길래 하나 꺾어 사리나의 귀에 꽂았다.

“이렇게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한쪽 무릎을 꿇고서 이렇게 말했거든. 플로라 내가 살던 곳에는 남자가 결혼할 여자에게 이렇게 말해. 아름다운 플로라 나와 결혼해 주겠어? 그동안 마음 아프게 해서 미안해. 앞으로 평생 내가 잘할게. 부디 나와 결혼해주겠어.”

사리나를 다시 올려다보자 새빨갛게 물든 사리나의 얼굴. 옆에 레오나도 입을 벌리고 새빨개진 모습이었다.

‘야! 왜 너희가 빨개져!’

그때 들려오는 불호령. 쩌르렁 울리는 호랑이 같은 포효.

“러셀! 아니라며! 사리나 씨 임신시킨 거 아니라며!”

옆을 바라보자 애니가 빈 빨래 바구니를 들고 우리를 맹수 같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해라고 말하려다가 상황을 생각해보니. 흰 꽃을 귀에 꽂은 사리나 앞에 무릎 꿇은 나. 그리고 볼을 붉게 물들인 사리니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올빼미.

마치 내가 사리나에게 고백하고 옆에 올빼미가 놀란 듯한 연출. 영문 모르고 등장한 애니는…

‘오해할만하네?’

‘젠장…’

애니의 오해를 풀어주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노예가 새끼 친다는 말에 사리나가 임신한 것은 아니냐 오해했던 애니 앞에 그런 모습을 연출했으니.

길길이 날뛰는 건 당연한 일.

더군다나 노예라는 신분의 여자는 주인의 다소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응해야 하는 처지. 내가 혹시 참지 못하고 노예를 건드린 건 아닌지 의심하는 애니.

“정말? 플로라님이 울고 있긴 했는데…”

“그래! 내가 플로라한테 조금 차갑게 대하긴 했잖아. 그리고 결혼 고백은 내가 살던 곳에서는 남자가 여자한테 하는 거라. 사과도 할 겸 해서 말한 건데, 그걸 듣고 지금까지 울고 있다잖아.”

다행스럽게 플로라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애니가 알고 있어서 그 사실로 애니를 납득 시킬 수 있었다. 사건의 전말을 끝까지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오해를 푸는 애니. 누구 와이프인지 엄청 꼼꼼하네?

“그런 거구나… 그래도 자세히 알려달란다고 그렇게 하고 있으면 누구라도 오해하지!”

“그, 그럼 애니는 아무 잘못 없지!”

그래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다 나의 업보, 나의 잘못이구나. 나는 애니의 오해를 풀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렇게 길길이 날뛰는 애니를 진정시키고 오해를 풀었다는 사실에 만족할 때. 애니의 날카로운 질문이 들려왔다.

마치 날카롭기가 무협지에서 검만 수십 년 수련한 고수가 뽑아내는 검기 같은 날카로움을 담은 질문.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안 해줘?”

관자놀이로 식은땀이 한방 울 흐르고 침이 꿀꺽 삼켜졌다.

­꿀꺽

알지만 되물을 수밖에 없는 질문.

“뭐, 뭘?”

떨리는 목소리가 내가 이미 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애니에게 알려주었던지. 애니는 내 질문을 확인시켜주지 않고 단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해줘.”

‘아악!’

전생의 어떤 드립이 생각나는 단어.

나는 애니를 끌고 재빨리 근처 풀밭으로 갔다. 어차피 결국은 하게 될 것. 시간을 끌어봐야 나의 멘탈과 영혼만 상처를 입는 것.

후딱 해치우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근처 풀밭에서 주황색 꽃을 한 송이 꺾어 무릎을 꿇고 애니를 향해 내밀며 말했다.

“애니, 내 사랑하는 애니. 당신같이 귀여운 아내를 맞이할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겠소?”

“꺄르륵! 네 좋아요!”

애니가 만족한 미소를 띠며 웃었다. 애니를 만족시켰다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릴 때였다. 들려오는 목소리.

“러셀 거기서 뭐 해요?”

“러셀?”

리젤다와 발레리가 빨래 걷는 것을 도와주러 나왔는지. 나를 보고 다가왔다.

‘아뿔사.’

나의 공개 수치 플레이, 공개 능욕은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던 것이었다.

“아! 마님들. 러셀의 고향에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결혼을 허락받는 문화가 있다고 해요. 저는 못 받아서 해달라고 했던 건데, 마님들은 받으셨나요?”

애니의 순진한 질문이 불러온 참극.

리젤다도 발레리도 나에게 고백받기보다는 고백은 해온 상황. 당연히 받은 사실이 없으니 애니의 말에 서운한 감이 피어오르는 것.

결국 리젤다는 강변에 데리고 나가서.

“리젤다, 나의 아름다운 리젤다. 흐르는 강물이 마를 때까지 당신을 사랑하겠어, 나와 결혼해주겠어?”

발레리는 평원 한가운데서.

“발레리 이 평원에 자라난 풀들만큼 당신을 사랑해. 영원히 함께해줘.”

라고 말한 후에야 기분이 좋아진 둘 아니 셋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집 앞에서 다 같은 모습으로 했다가 트집이 잡힐 수도 있으니. 각자 다른 멘트 각기 다른 장소까지 세심하게 선택한 결과였다.

그렇게 셋의 만족한 미소를 뒤로하고 여관으로 들어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져버린 후였다.

플로라에게 찾아가야 했지만 이미 해가 진 상황. 저녁을 먼저 준비해야 했다. 추기경 일행은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다고 신전에서 기거한다며 떠났기에 조금은 한가한 저녁. 원래 여관 식구들과 새로 온 엘프 다섯만이 손님의 전부이니 저녁 준비는 비교적 간단했다.

그런데 부엌에 와보니 이틀이나 아파 누워있었기에 준비된 재료가 한정적이었다.

장모님은 내게 배운 죽이나 스튜를 돌려가며 내고 계셨는데, 마침 준비된 메뉴는 스튜. 벨릭 녀석이 식사 메뉴에 대해서 항의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스튜를 준비했다.

녹인 버터에, 나에게는 진절머리가 나는 와이번의 고기를 볶아 육즙을 가두고. 양파와 토란, 순무 몇 가지 허브와 토마토를 넣은 러셀의 특제 스튜.

거기에 따끈한 빵과 물 탄 포도주. 신선한 샐러드 조금.

음식 준비가 끝나고 여관 홀을 확인해보니. 어느새 모든 손님과 식구들이 식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님으로 왔던 엘프 다섯은 테이블에 늘어져 있는 모습. 아마 셋만 하기에는 빨래의 양이 많아서 전부 출동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로리엘과 이야기하고 있던 이실리엘을 불렀다.

“이실리엘 준비 끝났어. 식사 내가면 될 것 같아.”

“네, 러셀.”

그런데 나의 부름에 이실리엘이 첫 식사를 받아들자. 멀리 테이블에 늘어져 있던 엘프 다섯이 총알같이 달려와 이실리엘 대신 접시를 받아들며 말했다.

“저, 저희가 하겠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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