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61화 (261/352)

〈 261화 〉 258. 자발적 노예 1

* * *

눈을 뜬 것은 점심이 조금 지났을 때. 창밖의 세 개의 태양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있었다. 몸이 피곤함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공복감이 몸을 깨워버리고 만 것이었다.

정신이 들자 얼굴에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 애니의 가슴이 부드럽게 얼굴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나는 따듯한 애니의 품 안에서 잠든 상태였던 것이었다. 내가 잠들고 애니가 뒷정리한 것같은 상황.

잠에 깨어 부스럭거리자 애니가 눈을 반짝 뜨더니 시선을 내려 내 얼굴을 바라봤다.

‘얘는 왜 잠들다 깰 때 눈을 번쩍번쩍 뜨는 거야!’

잠들기 전 일어났던 일이 떠올라 움찔하자.

애니가 사랑스러운 곰 인형을 선물 받은 여자아이처럼 귀여워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내 얼굴을 안아왔다.

부드러움에 밀착되는 얼굴. 그리고 입술 어림에 느껴지는 두 개의 위화감을 느끼게 하는 녀석들. 녀석들을 입 안에 넣고 응징해주려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

­꼬르르륵

눈치 없는 위가 분위기를 깨버렸다. 들려오는 애니의 다정한 목소리.

“어머, 주인님 배고프구나?”

“으…. 응 이틀 동안 아무것도 못 먹었거든.”

“뭐어? 왜?”

나는 애니에게 처마 밑에 비 맞는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은 후 최대한 불쌍하게 말했다.

“그게… 아파 가지고…”

“아프다고? 왜 말 안 했어! 어디가 아픈데?!”

마운트 포지션으로 내 위에 올라타 팔을 잡고 다그치는 애니.

‘애니야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남편 환자라고요. 올라타면 안 돼요.’

장모님이 말씀하신 애니의 큰 엉덩이가 복부에 느껴졌다. 말랑한 엉덩이의 부드러운 촉감. 계속 아프고 싶었다.

“이실리엘이 이야기 안 했어?”

“첫째 마님은 그냥 데리러 왔다고만 하셨는데?”

애니는 퀭한 내 눈을 그제야 눈치챘는지 식사하러 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일단 식사부터 해야겠어! 얼른 옷부터 입어!”

“네…”

옷을 입고 여관으로 가면서 그간 있었던 일을 애니에게 조심스레 이야기해주었다.

여관으로 향하며 들려주는 이야기에 애니는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수리아가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에 놀라기도 하고.

“정말? 세상에 지금은 어떠신데? 연락 못할 만도 했겠다…. 주인님 많이 놀랐었지?

불같이 분노하기도.

“그런데 그놈들을 그냥 놔뒀어?! 싹 다 잡아다가 저번에 그 여남작처럼!”

그리고 어이없어하기도.

“그걸 다 먹었다고? 병이 안 나는 게 이상해! 바보! 한심해!”

그렇게 다양한 애니의 감정을 접하며 여관 입구까지 걸어갔을 때. 어디선가 달려온 사리나.

“주인님. 마침 일어나셨군요. 바쁘지 않으시면 잠깐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어지간한 일은 혼자 처리하는 사리나인데, 왜 나를 부를까 싶어 사리나를 따라가려는데. 들려오는 애니의 뾰족한 목소리.

“누구야 이 여자는? 누군데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거지 주인님?”

뭔가 화난 목소리.

‘뭐냐? 애니! 주인님 호칭을 독점하고 싶은 것이냐? 설마?’

애니의 귀여운 질투에 가슴을 두근거리며, 나는 화급히 애니에게 설명했다.

“애니, 이쪽은 사리나, 사리나 여긴 내 아내 중 한 명인 애니. 그란 폴 길드에 있는 식당 일을 맡아서 해주다가 새벽에 돌아왔어. 사리나는 애니가 없을 때 여관에 들어온….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애니는 일반인, 살인마에 암살자 출신인 사리나에 대한 설명을 뭐라고 해야 하나 주저하자. 사리나가 바닥에 꿇어 엎드리며 애니를 향해 말했다.

“마, 마님께서 한 분 더 계셨군요. 실례했습니다. 마님, 미천한 노예. 사리나가 인사드립니다. 마음껏 부려주시길.”

“에…?”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애니의 목소리. 평민으로 이런 과도한 인사를 받아본 적 없는 애니는 화들짝 놀라 사리나를 일으켰다.

“이, 일어나세요! 옷이 더러워져요.”

“예! 알겠습니다. 마님.”

“러셀, 노, 노예를 사 왔어?”

애니는 내가 노예를 사 왔다고 착각하는 듯했다. 자발적으로 여관에 찾아와 노예를 자처할 리는 없으니 말이다.

“그게 설명하려면 긴데. 좀 있다가 밥 먹으면서 알려줄게. 아! 그리고 사리나가 요리에 소질이 있어 보이더라 애니가 아는 걸 좀 가르쳐줘. 사리나도 부엌은 한나 아주머니 다음이 애니니까 애니 말을 잘 듣고. 알았지?”

“으…. 응.”

“예!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애니 마님.”

사리나의 인사가 나쁘지 않았는지 애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모습. 애니는 처음 받아보는 마님 대접에 기분이 좋은 듯했다.

아마도 내 아내가 되었다는 사실이 사리나의 호칭을 통해 새삼스레 느껴진 것 같았다. 애니가 잡은 내 손에 꾹 하고 힘이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애니는 어디서 본 건지 귀족 마님 흉내를 내듯 사리나에게 말했다.

“그래요. 앞으로 애니 마님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후후… 불편한 일이 있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알았죠? 주방 식구는 다 제 식구니까요.”

인사 한 번으로 애니의 호의를 사는데, 성공한 사리나. 전생에 사회생활을 했어도 잘했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렇게 기분 좋은 애니와 사리나를 따라 여관 뒤뜰로 향하자 눈에 들어온 것은….

뭔가 이상한 장면. 새벽에 손님으로 왔던 엘프 셋이 열정적으로 빨래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실리엘은 근처 의자에 앉아 어색한 웃음만 흘리고 있는 상황.

“저분들은 왜 여관 빨래를?”

“그것이…. 저랑 올빼미가 빨래하는데, 올빼미가 도움은 안 되고 자꾸 사고만 치는 바람에 이실리엘님이 도와준다고 나서셨는데, 그것을 보더니 엘프분들이 하신다면서…”

그러고 보니 한쪽 구석에서 흠뻑 젖은 채 옷을 짜내고 있는 올빼미가 보였다. 빨래를 하라고 했더니 옷을 입은 채 빤 것 같은 모습. 녀석이 나를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정말 한결같은 녀석이었다.

그리고 평소 여관에서 사용하던 큰 빨래통에는 세 명의 엘프가 다리를 걷어 올린 채 침대 시트를 열광적으로 밟아대며, 멍청한 얼굴로 이실리엘 향해 웃고 있었다.

“보세요. 저희가 빨래를 아주 잘합니다.”

“하지만 저희 여관 손님이신데 이런 일을 시킬 수는 없어요….”

“소, 손님이라뇨! 에, 엘프들은 모두 한 가족 가족의 일은 돕는 것은 당연하죠.”

난처한 얼굴의 이실리엘과 뭐가 좋은지 헤실거리는 엘프들. 사리나 애니와 함께 이실리엘 근처로 다가서자 이실리엘이 우리를 발견했는지 의자에서 일어나 곧바로 달려왔다.

“러셀, 일어나셨어요?”

안겨드는 이실리엘. 숲에서나 나는 향기가 이실리엘과 함께 밀려왔다. 이실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응, 좀 전에,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그런데?”

“손님들이 자꾸 일을 거들겠다고 하셔서요…”

난처한 얼굴로 대답하는 이실리엘.

신이 난 모습이었던 엘프들은 내 시선을 받자 곧 다들 먼 산을 바라보며 모른 척하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발.

마차에서 내릴 때부터 조금 이상하긴 했는데. 이실리엘을 뭔가 숭배하는 듯한 느낌. 이유는 모르겠다. 우리 마을 엘프들은 이렇게까지 극적인 반응은 아니니.

장난기가 동해 엘프들을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손님들이 심심하셨나 보네. 감사합니다. 일을 도와주셔서.”

“서, 서로 돕고 살아야죠. 하… 하하”

내 반응이 의외라는 듯 어색하게 웃는 세 엘프. 나는 어색하게 웃는 세 엘프를 향해 같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모처럼 손님들까지 도와주신다는데, 할 거 더 있으면. 더 가져와 사리나.”

“예?!”

내 말에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되묻는 사리나. 나는 양손을 움직여 사리나에게 어서 움직이라고 재촉했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세 엘프에게 다시 물었다.

“더 도와주실 거죠?”

“예? 그…. 그러니까….”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하지 못하는 엘프들. 나는 씩 웃으며 이실리엘을 향해 몸을 돌렸다.

“바쁘신가? 그러면 그냥 사리나랑 이실리엘이랑 둘이서 하라고 해야겠다. 이실리엘 오늘 하루 사리나좀 많이 도와줘 부탁해 알았지?”

“예, 러셀! 걱정하지 마세요!”

내 부탁에 이실리엘이 밝게 대답하자 눈알이 빨래통으로 떨어질 것같은 얼굴로 세 엘프가 황급히 대답했다.

못 들을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한 목소리와 표정.

“다, 당연히! 저희가 끄, 끝까지 도와드리겠습니다!”

“나, 날도 덥고 찬물에 발을 담그니 참. 조, 좋네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자자 어서 밀린 빨래가 있으면 다 가져오세요!”

확실히 이실리엘이 일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모습.

잠시 후 사리나와 토끼 자매가 어디선가 침대 시트와 빨래를 잔뜩 가져오기 시작했다. 쌓이는 빨래 더미를 보며 서로 어깨를 미는 엘프들.

뭔가 서로 상대 때문이라 질책하는듯한 모습.

그런 엘프들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실리엘도 잘 부탁해.”

“예, 러셀!”

“하하… 저, 저희만 믿으세요. 높은 분께서는 앉아서 쉬시면 저희가 다 알아서…”

“하지만 저도 도우라고 러셀이…”

빨래하는 아내들과 엘프들을 뒤로하고 식당 쪽으로 향하는데. 뒤통수에서 원망에 찬 엘프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원망은 자기들에게 많은 빨래를 시켰다는 사실보다 이실리엘에게 도우라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당연한 느낌.

‘잘하면 자발적 노예 몇 명 더 생기겠는데?’

식당으로 향하는 내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보며 애니가 물었다.

“주인님, 뭐가 그렇게 신나?”

“아니, 막 노예가 복사가 아니, 새끼를 치네?”

“뭐 어?! 사리나 씨 임신했어? 누구 애를? 설마!?”

애니가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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