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8화 (258/352)

〈 258화 〉 255. 다리 치료 14

* * *

애니를 태운 마차가 도착한 것은 새벽이 되기 직전.

미음을 끓여 한술 뜨려고 할 때였다.

어제 이어 온종일 계속된 설사로 자다 깨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나올 게 다 나오니 새벽이 되자 몰려오는 급격한 허기감. 배가 고파서 잠을 더 잘 수가 없었기에 혼자 부엌으로 내려왔다.

배고픔에 미음이라도 끓여 먹을까 해서 부엌으로 향하자. 부엌 안에는 조금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사리나가 있었다. 암살자 출신인데 아주 부지런한 녀석.

“러셀님 아침이 되기에는 아직 이른데 부엌에는 어떻게?”

“사리나도 좀 이른 때인 것 같은데?”

“저는 돌아오실 분들이 드실 걸 데우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뭔가를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녀석은 있으면 편하다. 혼자 이인분은 너끈히 해내니…. 물론 올빼미 녀석이 마이너스 일 인분 이상이라 원점이긴 하지만.

“그래, 신경 쓰지 말고 할 일 해. 나는 배고파서 뭐 좀 먹으려고.”

미음을 준비하는데. 조금 신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리나가 음식을 데우는데. 큰 솥에 물을 끓이고, 그 위에 작은 냄비를 올려 음식을 데우고 있던 것.

‘아니, 중탕을 할 줄 안다고?’

“그건 어떻게 배운 거야?”

“무엇을? 이, 이것 말씀이십니까?”

“응”

“냄비 밑바닥을 태우지 않으려고 생각해서 해본 것인데 죄송합니다. 요령을 피워서. 다시 하겠습니다.”

사리나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저걸 혼자서 생각해냈단 말이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리나는 연쇄 살인마에 암살자 출신. 전생의 영화에서 묘사되는 연쇄살인마들은 살인을 위해서 관찰, 연구하고 집요하게 파고드는 그런 면이 있던데. 이거 잘 키우면 쓸만한 놈이 될 것 같은 느낌?

심리학 쪽에서도 범죄자를 잡는 데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전락하면 잡히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 범죄자가 되고, 재능을 승화 시키면 범죄자 잘 잡는 경찰이 된다고 했던가?

결국 재능을 찾아내 승화로 이끌어주면 유능한 놈이 될 확률 거의 백 프로. 군침이 돌았다.

“워워…. 아니야. 잘하고 있어. 알아서 해보고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것 아주 좋아.”

“그, 그렇습니까?”

내 칭찬에 무척 부끄러워하는 사리나.

“그럼, 그리고 너무 긴장하지는 마. 뭐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내 노예가 되었으니. 함부로 목숨을 끊거나 하지는 않을 테니까. 내가 로리엘에게도 말해둘 테니까 알았지? 아, 그리고 뭐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고. 나한테 말하기 힘든 건 발레리한테 말해. 필요한 건 사주라고 할 테니까.”

“예! 알겠습니다.”

확실히 사리나가 일도 잘하고 재능도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로리엘이나 시트라한테 너무 험한 꼴을 당했는지 애가 너무 바짝 긴장되어 있었다. 바짝 군기든 이등병 같아서 좋긴 한데. 너무 긴장하면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 사리나의 긴장을 조금 풀어주었다.

그렇게 사리나가 돌아올 사람들의 음식을 데우는 사이 나는 곱게 간 쌀가루로 미음을 끓이기 시작했다.

미음, 곱게 빻은 쌀가루와 물만 있으면 누구라도 끓일 수 있는 음식. 여기에 너무 미음이 맛이 없다 싶으면 견과류로 만든 기름을 살짝 떨어트리면 완벽.

소금간을 살짝 하고 미음을 그릇에 담아 여관의 홀에서 한 수저 뜨려는데, 밖에서 마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말했던가 결혼은 지옥이라고?’

그 말이 맞는다면. 나는 일곱의 아내를 선택했으니. 지옥의 칠 층이겠군. 죽 한 수저의 휴식도 허락되지 않은 나.

수저를 내려놓고 반사적으로 바로 밖으로 달려 나갔다.

문밖을 나서자 마차에서 내리고 있는 발레리와 이실리엘. 둘은 내 얼굴을 보자 ‘왜 당신이 거기에?’라는 표정을 지었다.

“러, 러셀 어, 어떻게?”

“왜? 자, 자지 않고?”

“그냥 어제 좀 잤더니 일찍 깨버렸네. 애니는?”

“마, 마차 뒤에 잠들어있어요.”

딱 봐도 데려온다는 것만 생각했지, 어떻게 나한테 알릴 거라는 건 생각도 안 해본 얼굴. 둘의 귀여운 돌발행동에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서로 막 시기, 질투하고 그러는 것보다야 좋긴 한데. 가끔 자기들끼리 아내 의회 같은 걸 몰래 열어서 이래 버릴 때는 좀 서운해지기도 한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둘을 뒤로하고 한 달 만에 얼굴 보는 애니에게 향했다.

그런데 애니를 내리기 위해 마차 뒤로 향하자. 처음 보는 엘프들이 줄줄이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용병인 듯 보이는 모습인데 뭔가 각기 다른 개성 넘치는 엘프들을 모아둔 것같은 모습. 머리 색도 다양했지만 다들 정말 개성 있는 패션이랄까? 머리를 땋거나 묶은 방식도 다 다르고 무기도 다 다르고. 머리가 짧은 엘프도 있고. 거기에 특이하게 엘프 사제가 하나 있었다.

‘아니, 엘프들은 다 어머니 나무를 신앙하는 것 아니었나?’

어머니 나무인 세계수를 버린 엘프를 뭐라고 해야 하나? 머리가 좀 어지러운 조합에 이실리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실리엘 이분들은?”

“아, 여관 손님이에요!”

애니를 데려오면서 손님들을 태우고 온 모양.

“어서 오세요. 엘프의 눈물여관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여관주인 러셀, 제 아내 이실리엘과 발레리 그리고 애니는 보셨죠?”

“예!? 두 아니 세, 세 분의 남편이 되신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다섯의 엘프. 그리고 그중에 사제 엘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그럼 이, 이실…. 아니, 높은 분께서는 몇 번째 아내이신 거죠?”

“이실리엘님은 첫째 아내세요.”

나 대신 발레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하자. 엘프들은 ‘휴’하고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뭐지?’

왠지 첫째 아내가 아니었으면 실망했을 것같은 모습.

기묘한 엘프들의 행동을 뒤로하고.

마차 위로 기어 올라갔다. 어두운 마차 안을 살펴보니. 마차 앞쪽 구석에 모포를 뒤집어쓰고 곯아떨어진 애니. 일이 힘들었던지 피부가 아주 반질반질했다.

부엌에서 계속 땀 흘리며 일하면 피부가 건조할 틈이 없다. 항상 땀에 촉촉하게 젖게 되는 것. 그러니 주방에서 일하는 친구들은 대체로 얼굴 피부가 촉촉하고 발그레하다. 손은 계속 물에 담가야 하니 거칠고 건조해지고 말이다.

잠든 애니의 손을 만져보니 상당히 거칠어진 모습. 원래도 여급으로 일하느라 거칠었는데, 식당 운영이 조금 고되었던 것 같았다.

씁쓸한 얼굴로 마차 구석에서 잠이든 애니를 안아 들었다.

“애니는 내가 안아서 옮길 게 안에 들어가면 사리나가 먹을 걸 준비해 줄 거야. 양이 부족하면 빵이나 간단한 죽 같은 거 더 준비해달라고 하고.”

“알았어요. 러셀.”

“엿차! 애니… 무거워졌구나…”

내가 애니를 안아 들고 한나 아주머니댁으로 향하자 등 뒤로 이실리엘과 발레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 그, 말도 안 하고. 애니를 데려와서 죄송해요.”

“죄송해요. 러셀.”

“아냐. 잘했어. 어차피 데리고 오려 했고. 식사하고 나서 여급들 일어나면, 목욕하고 쉬어.”

두 아내를 뒤로하고 한나 아주머니 댁의 애니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나를 맞는 토끼 자매.

“어머! 애니님?”

내가 애니를 안고 들어가자 조금 놀란 얼굴이었으나. 토끼 자매는 눈치 있게 바로 앞서가 애니의 방문을 열었다. 방문을 열자 들려오는 목소리.

“나나? 왜?”

“애니님이 오셨습니다.”

“언니가?”

애니의 동생 앤이 출근하려고 일어나 있었던 듯했다. 애니를 안고 안으로 들어가자 깜짝 놀라는 앤.

“어? 러셀 삼촌?”

앤이 애니를 안고 있는 나를 확인하고는 예상 못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앤은 세안을 끝낸 지 얼마 안 된 건지 머리끝이 살짝 젖어있는 모습. 하지만 옷은 이미 다 챙겨입고 허리에 리본을 조이고 있었다.

나는 앤을 향해 어색하게 웃었다.

“응, 처제 그렇게 됐어. 이제 형부라고 부르면 될 것 같아. 장모님에게는 조금 있다 말씀드리려고.”

“네? 지, 진짜요?”

애니에게 매번 형부라고 부르라고 정신 교육을 당했지만, 항상 애니가 없는 곳에서는 삼촌을 고집하던 앤은 깜짝 놀란 얼굴.

앤은 애니의 얼굴을 한번 보더니 나직이 말했다.

“와… 언니 진짜 대단해.”

앤이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토끼 수인 나나의 얼굴을 바라보자 나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사이 애니를 그녀의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사, 삼촌 아니, 혀, 형부 막 협박당하고 그런 건 아니죠?”

앤의 물음은 뭔가 대충 알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나는 곰곰이 과거를 떠올려보았다. 하긴 그간 수많은 협박을 당하긴 했지. 마지막도 울기 전에는 반쯤 협박이었으니.

“최근에는 당한 적 없네. 한 달 전쯤이 마지막 협박이었으니까…”

“헐…”

“괘, 괜찮겠어요?”

내 대답을 들은 앤의 걱정 어린 얼굴. 하지만 어쩌겠나 안 괜찮으면. 무를 수도 없는 것을.

나는 득도, 해탈한 얼굴로 앤에게 말했다.

”그럼, 여섯에서 고작 하나 늘어서 일곱 되는 것뿐이니까.“

앤과 나나는 내 말을 듣고 서로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더니. 여관의 아침에 늦겠다며 나를 두고 사라져버렸다. 도망치듯 사라지는 둘은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는 표정이었다.

애니의 방안에 단둘만 남겨진 나와 애니. 나는 애니의 베게와 이불을 편안하게 해주고.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번쩍 떠지는 애니의 눈.

“까, 깜짝이야!”

침대에 누운 애니가 매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애, 애니 깼구나. 보, 보고 싶었네. 우리 애니.”

어색하게 웃으며 애니를 안으려 하자 애니가 내 품을 뿌리치며 말했다. 화난 목소리로 말이다.

“주인님, 나한테 잘못한 거 없어요?”

‘많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