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7화 (257/352)

〈 257화 〉 254. 다리 치료 13

* * *

­쿵쿵쿵! 쿵쿵쿵쿵!

“형님! 형님!”

다시금 아침까지 폭풍 같은 설사를 하고 잠이든 내 방문을 두드리며 나를 찾는 소리. 벨릭의 목소리였다. 뭐가 그리 급한지 아주 다급한 목소리.

“리젤다! 형님 좀 빨리 깨워줘!”

“무슨 일인데?”

“아니, 빨리 좀!”

­달칵

밖의 소란에 눈을 비비고 일어서자 벨릭이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외쳤다.

“형님, 지금 길드에서 연락이 왔는데 급하다던데요?”

“길드?”

‘애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나는 급하게 벨릭을 따라나섰다. 그런데 벨릭을 따라 방을 나서려 하자 나를 붙잡는 리젤다.

“러, 러셀, 아프시다면서요. 어딜 가세요? 좀 누워서 쉬시는 게 기, 길드에서는 나중에 또 연락이 오겠죠.”

말을 더듬는 리젤다. 뭔가 촉이 살살 움직이기 시작했다.

리젤다가 나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

길드에서 연락이 왔다.

발레리가 길드로 갔다.

이실리엘이 사냥을 나가서 보이지 않는다.

냄새가 난다.

“리젤다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

“예? 아, 아뇨!”

내 물음에 펄쩍 뛰는 리젤다.

“형님 저거 거짓말입니다. 리젤다 형수는 거짓말할 때 항상 저랬거든요,”

매서운 눈으로 벨릭을 바라보는 리젤다. 그리고 갑자기 리젤다가 벨릭의 정강이를 향해 기습적으로 발길질을 날렸지만, 요즘 훈련으로 실력이 부쩍 는 벨릭은 리젤다의 발길질을 손쉽게 피해버렸다. 그리고 재빨리 도망치며 뒤를 향해 외쳤다.

“형님, 빨리 오세요. 제방에서 수정구 잡고 애브리나가 기다려요!”

벨릭이 쿵쾅거리며 계단 아래로 사라지고. 벨릭을 따라나서려 하자 등 뒤에 느껴지는 말랑한 감촉. 리젤다의 가슴이었다. 리젤다가 나를 가지 못하게 하려고 뒤에서 안아버린 것.

등에 느껴지는 감촉에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마음.

‘그래, 그냥 길드와 연락은 나중에 할까?’

하지만 여기서 정신을 놓아버릴 수는 없는 일.

­츄릅 츕

나는 잽싸게 뒤돌아 리젤다의 입에 키스하며 침대에 그녀를 몰아가 그대로 눕혔다. 그리고 원피스 앞으로 묶은 리본을 스르륵 당기자. 몽롱해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리젤다.

“아, 안 되는데…”

리젤다가 부끄럽게 말했다.

“그래? 그럼 나중에.”

나는 리젤다에게서 잽싸게 물러난 후 악동같이 웃으며 그녀를 향해 말했다.

“안되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재빠르게 도망쳤다. 며칠 치료받지 않았는데 다리는 달리는 것을 약간이나마 허락하고 있었다. 완전히 떨어져 나간 인대가 어느 정도 붙어있는 느낌.

성녀의 치료는 대단했다.

리젤다를 뒤로하고 급하게 방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자 아래서 올라오고 있는 플로라. 플로라와 계단 중간에서 마주쳤을 때 위쪽에서 리젤다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러셀을 잡아요! 플로라!”

“네?”

리젤다의 목소리에 영문 모를 표정을 짓던 플로라는 앞에서부터 나를 확 끌어안았다.

“커흡….”

느껴지는 압도적 부드러움과 풍만감. 후면 공격에 이은 정면 공격. 아직 후면 공격의 데미지가 남았는데 이건 압도적 반칙.

이 상태 이대로 이 부드러움에 얼굴을 처박고 사로잡히고 싶어지는 마음. 그런 마음이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잡힐 수는 없었다. 숨기는 게 무엇인지 너무 궁금했기에. 나는 플로라에게 다소 거친 수를 쓰기로 했다.

러셀식 전투의 법칙 1장. 적의 무기를 파괴하라. 자기의 최대 무기를 제일 잘 사용하는 플로라. 하지만 나는 이제부터 그녀의 무기를 공략할 것이다.

“꺅…!”

내 손길에 새빨개진 얼굴로 뒤로 물러나는 플로라. 플로라는 자기의 가슴을 양손으로 꼭 안아 든 모습. 처녀가 아무리 대담해도 처녀는 처녀.

플로라가 아무리 도발적이라도 처음 느껴보는 손길에 그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

“미안, 그래도 여기서 잡힐 수는 없거든!”

나는 그대로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여관 홀에 도착하자 아침까지 나를 돌보다 자러 들어갔던 시트라가 늦은 식사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트라에게 인사할 틈도 없이 그대로 달려서 문밖으로 나가려는데, 들려오는 두 아내의 성난 목소리.

“잡아요. 시트라! 러셀을 막아요!”

“자기! 이번 손길은 조금 대담했어요!”

시트라는 죽을 먹다 말고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내 앞에 나타나 내 앞을 양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입안에 죽을 잔뜩 머금은 채.

뒤에서 부끄러움과 분노로 볼을 붉힌 두 아내가 쫓아오는 상황.

나는 시트라에게 달려들어 그대로 그녀를 끌어안은 후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부릅떠지는 시트라의 두 눈망울.

입술을 꼭 다물고 저항하지만, 내 손이 그녀의 원피스 등 뒤로 묶은 끈 사이로 파고들자 시트라는 놀라 입을 벌리고 말았다.

­꿀꺽

놀라 바들바들 떠는 시트라. 자기가 먹던 음식이 나에게 넘어오자 그녀는 활화산처럼 타오르다 장렬히 새하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늘어진 그녀를 기둥에 기대 앉히고 재빨리 달렸다. 죽은 아주 고소했다.

“러셀! 러셀!”

“시, 시트라 괜찮아요? 맙소사. 뜨, 뜨겁네요.”

“자기, 이따가 돌아올 때 봐요?!”

원성에 찬 아내들의 목소리와 시트라를 깨우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바로 한나 아주머니 댁으로 내달렸다.

그곳에 비밀이 기다리고 있기에…

‘아내들이 숨기는 비밀이 무엇인지 어디 한번 확인해볼까?’

콧노래를 부르며 벨릭과 에브리나 묵고 있는 방으로 들어서자. 테이블에 수정구를 올리고 흘러나오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에브리나와 어느새 도착해 에브리나의 다리를 베고 누운 벨릭.

“나한테 연락이 왔다고?”

에브리나에게 묻자 에브리나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릴리아나 씨 러셀님 왔네요. 이제 이야기 나누시면 될 것 같아요.”

“야! 러셀, 너 이럴 거야 진짜?!”

금방 원성에 찬 아내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왔는데. 도착하니 여기도 원성에 찬 목소리.

“누님, 오랜만입니다.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 귀여운 동생과 오랜만에 연락하는데?”

능글맞게 수정구 너머의 릴리아나 누님께 애교를 부리자 누님의 성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야! 이실리엘님을 그란 폴에 보낼 거면, 미리 연락을 해줘야 할 것 아냐!”

“이실리엘이 어딜 갔다고요?”

“뭐야? 너도 모르는 일이야?”

“이실리엘이 거기에 갔다고요?”

‘아내들이 숨긴 게 이거였나? 답답했나? 말도 안 하고 거긴 왜 갔을까?’

릴리아나 누님이 좀 놀래긴 했겠네. 그래도 국왕과 체결한 조약에는 그란 폴까지는 연락 없이 가도 무방하게 되어있으니 조약 위반 같은 건 아니다.

그란 폴은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지역이라 안내해줄 아내 중 한 명이나 내가 따라가면, 언제라도 갈 수 있게 해두었기 때문.

“누님, 이실리엘이 거기 가는 건, 큰 문제는 없잖아요? 예전에도 한번 가봤고?”

“너, 여기서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긴 해?”

날카로운 릴리아나 누님의 짜증 난 목소리.

“예?! 왜요? 누가 이실리엘한테 껄떡거리다 죽었나? 죽였어요?!”

엘프 플러스 여자 거기에 미녀라는 조합에 정신 나간 놈이 하나 걸려들어 녹아버렸나 싶어 물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닌 듯했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침부터 찾아와서 길드 홀 중앙에 혼자 자리 잡고 앉아서, 위층에 편한 의자에 쉬라고 하셔도 거절하시고 미동도 없이 계속 계시니. 오늘 온종일 길드 분위기가… 하아….”

‘길드 홀 중앙에 혼자?’

테이블 중앙에 자리 잡은 건 구석지고 어두운 자리를 싫어하는 엘프들의 성향과 높은 엘프이니 언제나 주목받는 자리에 있던 영향인 듯한데.

상상해보았다. 이실리엘이 도도하고 고고한 모습으로 길드 홀 중앙에 홀로 앉아서 미동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는 모습.

나야 내 아내라 별생각 없지만 이실리엘의 모습은 뭐랄까. 혼자 스포트라이트 켜고 돌아다니는 느낌이랄까? 멀리서 봐도 그냥 시선이 집중되는 모습인데 길드 홀 중앙에 홀로 있었다니.

전생에 너무 아름다워 온마을에 질투받는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녀가 광장 한편 식당 의자에 앉자 모여드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녀가 담배를 입에 물자 수많은 남자가 담배에 대신 불을 붙여주려는 모습이다. 아마 그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지 않았을까 싶다.

수많은 모험가의 시선이 모여들고 눈치만 보는 남자들. 하지만 말을 걸거나 접근하지는 못했을 듯싶다. 영화의 주인공이 아름답긴 했지만 그건 인간 한정. 이실리엘은 그걸 압도하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기에 선뜻 말조차 건네기 힘드니 말이다.

상상만 해도 재미있어 혼자 웃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이어지는 릴리아나 누님의 투정.

“엘프들도 몰려들어서 이실리엘님 주변에서 괜히 이상한 분위기 조성하고. 하… 아무튼 오늘 온종일 끔찍했다. 아무튼 이실리엘님이 애니 데려갔는데, 길드 식당에 문제는 없는 거지?”

“예? 누굴 데려가요?”

“뭐야? 너 아는 게 뭐야 대체?”

릴리아나 누님의 타박. 그러니 내용은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애니가 돌아온다는 사실만이 머릿속에 꽉 차오른 것. 아마 아내들이 나 몰래 진행한 것이 이것인 것 같았다. 애니의 복귀.

‘왜지? 나 몰래 왜 애니를? 애니가 불쌍했나?’

발레리가 따라갔다고 들었으니 무모한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어떤 대비가 되어있을 것이 분명해 릴리아나 누님을 안심시키고 일단 수정구 통신은 끊었다.

지금 길드 식당이 문제겠나. 애니가 돌아온다는데? 애니가 돌아온다는 사실에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한 달 가까이 연락도 못 했는데 애니가 용서해 주려나?’

­꾸르륵

걱정 때문인지 애니가 돌아온다는 소리에 다시 요동치는 배.

나는 재빠르게 화장실로 뛰었다.

애니와 만났을 때 무슨 말을 할지 조금 생각이라도 해둬야 했는데, 아픈 배 속은 다른 것을 생각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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