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5화 (255/352)

〈 255화 〉 252. 다리치료. 11

* * *

[야 다들 쳐다보잖아 창은 왜 놓친 거야? 얼른 주워!]

[저, 저기….]

타냐린이 나직이 소리치자. 미리에가 떨리는 손가락으로 무엇을 가리키려다가 자기 그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 양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뭐 하는 짓이야?]

[저, 정령안….]

[무슨 길드에서 정령안을?]

타냐린이 짜증 내며 말했다. 그런데 미리에의 말에 그쪽을 바라본 다른 엘프들도 다들 자신들의 손에 든 무기를 떨구거나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뭐? 뭔데, 뭔데?]

그제야 이상함을 느낀 타냐린이 정령의 기운을 끌어올려 눈에 집중했다. 정령력이 강한 엘프들은 언제라도 정령안을 유지할 수 있지만 자신은 정령력이 그리 강하지 않아 정령안을 쓰려면 정령력을 크게 끌어올려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정령력을 끌어올리자 눈을 찌르듯 쏟아지는 빛이 길드 홀 중앙에서부터 흘러나와 눈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타냐린은 눈이 아플 정도로 부셔와 손으로 눈을 급히 가리고 말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리며 손가락 사이로 그 빛이 무엇인지를 확인했다.

눈이 빛에 익숙해지자 천천히 드러나는 모습.

빛 속에 나타난 것은 눈보다 더 흰 백발을 늘어뜨리고 있는 한 명의 엘프.

­털썩

타냐린은 다른 엘프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리에서 그대로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할머니의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가 전해주었던 어머니 세계수의 첫째가지, 첫째 딸, 첫 엘프, ‘높은 엘프’가 거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높은 엘프’

분명 한 번도 본 적 없고 들은 기억도 희미했지만, 그녀는 본능처럼 알 수 있었다.

중부대륙에 흩어져 사는 거의 모든 엘프에게 희미해지거나 끊긴 어머니와의 유대감. 그 강한 연결을 소유한 전설의 높은 엘프가 길드 홀 중앙에 고고히 앉아있는 것이었다.

‘아라타 엘렌 (Arata Elen) 높은 별’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맞는다면 아마도 저분이 그분이시리라. 영혼에 새겨져 잠들었던 기억이 깨어나기라도 했을까?

어릴 때 스치듯 들었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머니 나무. 세계수가 있는 곳에 세계수를 지키는 존재들이 있고, 그 세계수를 지키는 존재들의 우두머리 높은 엘프.

모든 엘프보다 먼저 난 엘프의 첫 열매.

타냐린은 무릎으로 기어 천천히 그분에게로 향했다. 길드 안의 모든 사람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타냐린을 바라보았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릎으로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걸어 그녀의 앞에 도달하자. 그분께서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셨다.

타냐린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 아라타 엘렌이 맞으십니까?”

자신의 물음에 눈이 부셔 감히 뜨지 못할 것 같은 미소로 대답하시는 그분.

“반갑습니다. 이름이?”

“타, 타냐린입니다. 타나린 브로드 맆. (Broad Leaf) 아라타 엘렌이시여.”

“저는 이실리엘 롱 윈드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타냐린은 생각했다. ‘내가 왜 왔더라?’ 그리고 다급하게 변명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라타 엘렌이시여.”

“어? 음…. 뒤의 분들도 말인가요?”

타냐린이 높은 엘프님의 말씀에 뒤를 돌아보자 언제 따라왔는지. 자기의 파티원들이 모두 자기 뒤에서 무릎을 꿇은 채 높은 엘프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 높은 엘프님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타냐린의 파티는 그녀의 테이블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이게 꿈은 아니겠지?]

[높은 엘프라니. 할머니들의 이야기 속에만 등장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머리카락에서 빛이나!]

[저분은 어머니 나무가 있으신 곳에서 오셨겠지?]

[당연하겠지. 높은 엘프님들은 세계수를 수호한다고 들었는데…]

타냐린의 파티는 대화를 나누면서도 혹시라도 무례를 저지르는 놈은 없을까? 그녀의 주변을 확인했다.

인간들의 엘프에 대한 탐욕은 이루 말할 수 없고, 저 아름다운 분이 무슨 이유로 이 험한 길드에 오신 줄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무례한 용병들에게 험한 일이라도 당할까 해서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타냐린의 파티의 우려를 확인시키기라도 하듯.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한 용병하나가 감히 그분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며 무례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어? 이실리엘 씨 러셀 님이랑 같이 오신 겁니까?”

“아뇨, 누구를 좀 데리러요. 베런 씨도 잘 계셨나요?”

“헛! 제 이름도 기억해 주시다니. 러셀님 음식 먹으러 다음에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남자의 저열하고 더러운 욕망에 찬 눈빛에 분노로 부들부들 떨리는 다섯 엘프의 손.

‘감히 높은 엘프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고 그녀를 더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니!’

가장 성질 급한 루리나가 허리춤의 메이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태, 태워죽여야 합니다! 아니, 머리통을!]

[차, 참아 그분 앞에서 피를 볼 작정이야?!]

그때 다크 엘프와 사귀었던 티티엘이 루리나를 제지하며 말했다.

[나한테 맡겨둬.]

이실리엘님과 인사를 하고 자기 동료들 사이로 돌아가려는 남자를 뒤쫓아간 티티엘은 남자를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혹시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

“어? 나?”

남자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더니 자기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되물었다.

“응, 잠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지.”

티티엘의 살짝 부끄러운 듯한 표정에 남자는 크게 반색하더니 곧바로 티티엘을 따라나섰다.

그렇게 남자가 실실 웃으며 티티엘을 따라나서자. 타냐린의 파티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조용히 모두 테이블에서 일어서 티티엘과 남자를 쫓았다.

길드 문을 나서 오른쪽의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는 티티엘 그리고 티티엘의 엉덩이를 음흉한 얼굴로 바라보며 뒤를 쫓는 용병.

어지럽게 쌓인 상자들과 낡은 오크통들로 가려진 막다른 골목 안.

보통 이곳은 길드에서 눈맞은 용병들이 급할 때 은밀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지라. 남자는 무척이나 기대하는 얼굴로 티티엘을 따라붙고 있었다.

그리고 길드 오른쪽 골목 안쪽 상자와 오크통으로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 다다르자 남자가 벽에 기대선 티티엘에게 바짝 다가서며 물었다.

“무, 무슨 이야기일까? 아름다운 엘프님이?”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말을 더듬는 남자.

그러나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자의 주변을 엘프들이 둘러쌌다. 갑자기 주변에 여러 인기척이 느껴지자. 깜짝 놀라 뒤돌아본 남자는 분노에 찬 엘프들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라며 구석으로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뭐, 뭔데! 너, 너희들 뭐야! 왜, 왜 그러는데!”

“지금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나?”

놀란 남자와 다그쳐 묻는 타냐린.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엘프들.

“아, 아무것도 안 했어! 먼저 저 엘프가 밖에서 이야기하자고 했단 말이야.”

영문 모를 물음에 무고와 결백을 주장하는 남자. 하지만 들려온 것은 비난이었다.

“너는 쓰레기다.”

“뭐?!”

“감히 그분을 욕망 어린 눈길로 바라보다니. 그리고 그분의 존귀한 성함을 입에 올리다니”

“가, 갑자기 무슨 소리야?”

남자가 영문 모를 소리에 놀라 뒷걸음질 치면서 무서움에 허리춤의 칼에 손을 대려 하자. 엘프들이 한발 물러서 벌레를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남자에게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칼에 손을 대다니. 대단한 쓰레기군.”

“칼로 위협해 저희 모두를 강간할 생각인가 보네요.”

“아, 무서워라 이제 모두 옷을 벗어야 하는 건가? 여기 칼로 여자를 위협하는 더러운 강간범이 있군요!”

남자는 칼에 손대려 한 행동으로 순식간에 강간범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무, 무슨 소리야 너, 너희들이.”

“너는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감히 이실리…. 아니, 그분께 감히 말을 걸었다. 네 쓰레기 같은 시선에 섞여 있는 추잡한 욕망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그분께 어떤 마음을 품은 거죠? 강간하고 싶었나요?”

“정말 추잡하고 더러운 시선이었죠.”

남자 때문에 그분의 고귀하고 존귀한 이름을 입에 올릴뻔한 타냐린이 화들짝 놀라며 급하게 말을 바꾸고. 티티엘이 계속 남자에게 강간을 언급하며 압박의 수위를 높였다.

“이, 이실리엘 씨 때문이야?”

“어디 감히 그분의 존귀한 이름을!”

그녀의 이름이 나오자 엘프들이 눈빛이 더욱 서슬 퍼렇게 변했다.

“아니, 그냥 아는 분이라서 이야기를…”

“당신은 아름다운 그녀에게 왜 말을 걸었을까요? 안면 때문에? 그저 인사를 위해서? 아니요. 아닙니다. 당신의 가슴속에 꿈틀거리는 추잡한 욕망. 그 욕망을 위해서 움직인 것입니다. 자! 솔직하게 말씀해보세요. 손이라도 한번 만지고 싶었나요? 아니면 가슴? 쓰레기 씨?”

“그, 그건…”

사제까지 나서 그렇게 다섯의 엘프가 남자를 둘러싸고 정신을 탈탈 털어대자 잠시 후 남자는 반쯤 정신이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털썩 주저앉은 남자의 입에서 그녀들이 원하던 항복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내가 잘못했어. 나, 난 쓰레기야.”

“맞아요. 다음에는 절대 이런 무례를 저지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셨죠?”

다섯 엘프는 매섭게 남자를 응징한 후. 재빨리 길드 안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을 차린 남자가 터덜터덜 길드 안으로 되돌아간 후. 남자는 자기의 동료를 사이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나는 쓰레기야!]

길드 홀에 조용한 침묵이 흐르고 남자의 흐느끼는 소리만이 조용히 흐르기 시작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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