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4화 (254/352)

〈 254화 〉 251. 다리 치료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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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들이 세계수를 어머니라 부르며 섬기는 이유. 그것은 그들의 시조인 고대 엘프들이 세계수에서 열매 맺듯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상이 창조되고 세계수가 자라나 첫 가지를 하늘로 뻗자 그 첫 가지에서 태어난 것이 첫 번째 높은 엘프.

그 첫 높은 엘프를 시작으로 세계수에서 여러 엘프가 태어났다.

가장 높은 가지. 바람의 기운을 머금은 롱 윈드. (Long Wind)

넓게 뻗어나간 뿌리. 땅의 기운을 머금은 루티드 어스. (Rooted Earth)

가장 깊게 내린 뿌리. 땅속 마그마의 열기를 머금은 멜팅 플레임. (Melting Flame)

가장 굵은 생명의 뿌리. 강과 바다에서 빨아올린 생명력을 머금은 어로딩 워터. (Eroding Water)

다섯의 높은 엘프를 시작으로. 세계수의 수많은 잔가지에서 많은 열매가 맺혀 엘프들이 태어났고. 이때 태어난 이들이 엘프들의 시조 고대 엘프가 되었다.

세계수에서 태어나 세계수의 은혜를 받으며 살아가는 존재 고대 엘프. 그것이 원래의 엘프. 세계수에서 태어난 고대 엘프들은 세계수 주변에 자리를 잡고 어머니인 세계수를 섬기며 번성해갔다.

그러나 세계수 주변에 엘프들이 번성하자.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고대의 엘프들이 위대한 어머니를 통해 열매 맺듯 태어나긴 했지만, 그들도 육체를 가진 존재. 고대 엘프들의 자손들은 세계수에게서가 아니라 그들의 부모인 고대 엘프의 육체에서 태어났으니. 어머니의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도 생활할 수 있는 첫 엘프들은 상관이 없었지만, 부모의 육체를 통해 태어난 엘프들은 필수적으로 음식을 먹어야 했는데. 농사를 짓지 않는 엘프들이 어머니의 숲에서 구할 수 있는 식량은 한정적이기에, 식량이 부족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엘프들이 번성하자 찾아온 피할 수 없는 식량 문제.

그런 이유로 엘프들은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했다.

식량 문제로 인해 생존하려면 필연적으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몬스터와 마물들이 판치는 세계에서 무작정 동족을 떠나보낼 수는 없었기에, 가장 숫자가 많은 엘프 혈족이 다른 숲이나 살 곳을 찾아 대륙으로 떠나게 되었고. 엘프들은 이것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르게 되었다.

혈족 단위로 생존을 위해 어머니의 나무를 떠나는 행위. 디아스포라.

그러나 엘프들의 고향은 언제나 어머니의 나무. 고향을 떠난 엘프도 살면서 한두 번쯤은 고향으로 돌아와 한동안 머물며 어머니를 느끼고 어머니의 숲에서 정령력을 키울 수 있었다.

어머니 나무를 다시 찾는 엘프들의 순례가 시작된 것이었다.

수천 년 전에는 그렇게 어머니 나무를 찾는 엘프들의 순례 행렬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인간들과 그들의 왕국이 융성함에 따라 중부대륙에는 많은 왕국이 들어서게 되었고. 엘프들의 미모에 그들을 노예로 잡거나 엘프들이 집단으로 이동하는 것을 불가 하는 나라가 많아지게 되었고. 이미 떠났던 엘프들이 어머니의 나무로 돌아오는 순례길이 어느 순간 끊겨버리고 만 것이었다.

엘프들이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어머니 나무쪽에서는 원인 모를 이유로 태어나는 엘프들이 줄어들어 디아스포라가 멈추었고.

정착하면 어머니 나무를 찾을 때 외에는 정착한 숲에서 떠나지 않았던 흩어진 엘프들은, 결국 순례를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탐욕스러운 인간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고자 자신들이 사는 곳에서 더욱 고립되어갔다.

천오백년도 더 전에 그렇게 끊겨버린 길로 남부나 중부, 동부나 서부에 남겨진 엘프들은 어머니의 기운을 받지 못해 천천히 정령력이 쇠퇴하고, 각자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루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을 대륙의 인간들은 이렇게 부르게 되었다.

남부에서 어머니를 그리며 과수원을 가꾸는 엘프들을 평원 엘프.

서부 사막의 오아시스에 자리 잡은 엘프들을 사막 엘프.

중부 숲에 자리 잡은 숲 엘프.

동부 화산지대와 산맥이 있는 고원에 자리 잡은 엘프들을 고원 엘프라고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중부에 신의 율법으로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성국이 들어서고, 엘프의 노예화를 금지하면서 땅의 길이 천천히 다시금 열렸지만, 고립되었던 엘프들이 어느 나라가 안전한지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장수하는 엘프들에게도 천오백 년이 넘는 시간은 아주 긴 시간.

고향과 어머니의 기억은 그들에게서 점점 희미해졌다.

부족의 원로들을 통해 내려오던 어머니 나무와 어머니의 숲에 관한 이야기는 시간이 흐르며 깨진 토기 조각처럼 조각나버렸고, 그들은 어머니에게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렇게 대륙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자기 부족들을 통해 내려오는 조각나버린 전설 같은 이야기를 가슴에 묻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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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냐린의 출신은 동부의 고원. 인간들이 말하는 동부의 고원 엘프.

대륙에 흩어져 자리 잡은 모든 엘프의 공통점. 어떤 엘프들이라도 적당한 숲에 자리 잡고 사는 것을 선호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특이하게 엘프인데도 방랑벽이 있는 엘프.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모험하는 것이 그녀의 취미였다.

그러나 엘프가 혼자 여행하는 것은 노예를 희망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이 세계에서 여행하려면 동료는 필수. 여행하며 만난 믿을 수 있는 동족들만 모으다 보니. 어느새 그녀의 파티는 괴짜 엘프들만 모은 파티가 되어있었다.

아니, 괴짜라기보다는 정상이 아닌 엘프들만 모아두었다고 할까?

평안한 숲을 떠나서 떠돌이 용병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이미 그 엘프는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엘프들은 보통 모험가나 용병이 되어도 자기가 사는 근처에서만 활동하는 게 보통이니까.

타냐린은 자기 동료들의 화려한 면모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정신 나간 엘프인 자신과 다크 엘프와 사귀었었다는 티티엘, 엘프인데 활이 없는 사막 엘프 출신인 미리에, 은퇴하면 농부를 하고 싶다는 평원 엘프 수리엘, 그리고 엘프인데 세계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사랑과 생명 교단의 사제가 된 루리나.

어딜 봐도 정상이라고 하기 힘든 엘프들의 향연.

다크 엘프랑 사귈 때 무엇이 좋았냐고 묻자 혐오스러운 다크엘프 아래 깔렸다는 사실에 가장 흥분되었다는 티티엘.

활이 왜 없냐니까 머리를 짧게 자르고 싶어서 머리를 잘랐더니 집에서 쫓겨났다는 미리에.

엘프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데 왜 하필 농부가 되고 싶냐고 하니. 못하게 하니 더 하고 싶다는 수리엘.

루리나는 이미 어머니를 버렸다는 부분에서 정상에서는 한참 벗어난 엘프. 어쩌면 제일 심각할지도 몰랐다. 일종의 패륜아였으니까.

그렇게 특이한 자기의 파티원들을 데리고 타냐린은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길드로 향했다.

그녀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부에서 제법 돈도 잘 벌고 잘나가는 은 등급 파티였지만, 근처에서 계속 사라지는 엘프의 소식과 동족들의 경고에 사제 루리나의 도움을 받아 성국으로 피신했었다.

그리고 얼마 전 그녀들을 피신하게 한, 엘프 실종의 원인이 한 정신 나간 남부의 남작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고. 그가 무엇인가에 저주받아 죽었다는 소식을 루리나를 통해 확인하게 되자. 짭짤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남부를 다시 찾게 된 것이다.

남부 평야 지대와 늪지의 경계는 엘프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었기 때문이었다. 탁 트인 시야가 멀리 있는 적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며, 숨을 곳도 없는 사냥감 들은 발견되면 잡힐 수밖에 없는 것.

굳이 무리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한 곳이 남부 늪지였다.

이 년 넘는 피신 생활로 가진 돈을 거의 다 써버린 타냐린의 파티의 목적지가 대늪지가 된 것은 그러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남부의 가장 큰 도시 그란 폴에 도착해 길드에 다시 활동 재개를 등록하고도. 타냐린의 파티는 늪지대 안으로 며칠째 들어가질 못했다.

남부의 왕이 늪지대를 엘프와 이종족 보호구역으로 선포하고 통행증이 없으면 출입을 금지 시킨 것. 그렇기에 남부 늪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통행증이 필요했는데, 얼마 전에 무슨 큰일이 있었다며 통행증 발급이 매우 까다로워진 상태.

어제도 접수원과 한바탕 입씨름을 했었다.

“아니, 엘프 보호구역인데 엘프가 못 들어가는 게 말이 됩니까?”

“그 점을 참작해서 다른 분들보다 통행증이 빨리 나올 테니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며칠 동안 같은 말만 반복했던 접수원이 어제 어떻게든 결재를 올려보겠다고 했으니 믿고 다시 길드를 찾는 것이었다.

물론 아침도 먹고.

여행하면서 먹은 음식 중에 요 며칠 길드에서 먹은 음식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음식이었으니 말이다.

오늘 식사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군침을 다시자. 다들 비슷한 생각인지 활 없는 엘프 미리에도 군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오늘 주인님 스튜 나왔으면 좋겠다.”

“주인님 스튜가 뭔데?”

주인님 스튜라는 말에 다들 미리에를 바라보며 묻자 사교성 좋은 미리에가 웃으며 말했다.

“그거 내가 요리하는 여자에게 물어봤는데 그 스튜 이름이 주인님 스튜라더라고?”

“스튜의 주인 격인 스튜라는 뜻일까?”

“뭐 아무렴 어때. 맛만 좋으면 되지.”

“그건 그래.”

다섯이 그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길드에 도착해 길드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주방에서 풍기는 향기에 엘프들이 기뻐하며 말했다.

“오오! 주인님 스튜 냄새!”

“난 오늘 두 번 먹어야지!”

그때였다.

­텅

활 없는 엘프 미리에의 창이 길드 바닥에 떨어지며 큰 소리를 낸 것은. 그리고 그 큰 소리에 오늘따라 고요한 길드 안의 모든 사람이 타냐린의 파티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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