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3화 (253/352)

〈 253화 〉 250. 다리 치료 9

* * *

길드의 열린 문 뒤로 비치는 태양 빛을 배경으로 나타난 엘프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신체의 모든 부위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때 묻지 않은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대하는 느낌.

반투명한 꽃잎으로 만든 옷을 입은 요정 같은 엘프가 길드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다소 어두운 길드 홀이 환한 빛으로 물들었다.

­뚜벅뚜벅

그녀가 발걸음 소리를 내며 길드 홀 중앙으로 걸어들어오자.

아름다운 엘프를 처음 보는 길드의 접수원들이 그 미모에 시선을 뺏긴 채. 들고 있던 펜을 떨구고, 자기 턱 근육의 통제를 상실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침을 흘렸다.

그리고 길드 접수처에 앉아있던 릴리아나가 엘프의 등장에 소스라치게 놀라 달려 나왔다.

애니를 부르면서 뛰어 들어온, 아름다운 엘프는 다름 아닌 이실리엘이었던 것이었다.

자기를 찾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본 애니. 자신을 부른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니고, 러셀의 첫째 아내인 이실리엘이였다는 사실에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이실리엘님?”

“애니!”

애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이실리엘이 고개를 돌려 애니를 확인하더니. 곧 눈부시게 반짝이는 미소를 지으며 날 듯이 달려와 애니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고 러셀도 아니고 이실리엘이 자신을 찾아왔단 사실에 놀라 어리둥절한 애니를 향해 반짝이는 미소로 말했다.

“데리러 왔습니다! 이제 저와 돌아가시죠!”

애니가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를 말이다.

“예?!”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 저희와 함께 러셀을 함께 돌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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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이고야…”

‘사랑에 빠진 남자는 무모해진다더니….’

어제 이 세계에서 가장 무모했던 남자가 장렬하게 침대에 쓰러져있다. 퀭하니 들어간 눈. 홀쭉한 볼, 그리고 눈 밑의 검은 그늘. 마치 며칠을 앓은 것 같은 모습. 하지만 남자는 어제까지만 해도 무척 건강했다.

남자가 이렇게 쓰러진 이유. 사랑이라는 참을 수 없는 매혹에 빠져 말도 안 되는 객기를 부린 결과였다.

남자의 객기는 전투로 이어졌다.

어제 남자가 치렀던 장렬한 전투의 이름은 식사를 가장한 ‘식 고문’. 갓 전입한 이등병에게 내려지는 산더미 같은 피엑스의 냉동식품처럼.

사랑하는 아내들이 챙겨준 와이번의 간과 염통을 너무 과식하고 밤새 폭풍 설사를 한 것.

침대에 쓰러진 남자의 모습. 어제 남자의 호기로운 외침이 다시 떠올랐다.

“다 가져와! 아주 그냥! 내가 와이번 통으로 뜯어먹어 버릴 테니까!”

“어멋! 자기 너무 멋져!”

“잘 먹으니까 너무 기분 좋아요!”

‘바보 같은 놈.’

나는 남자의 바보 같음에 한탄하고 그의 무모함을 비웃었다. 나는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무모한 남자가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어제 무모했던 자신이 미래로 떠넘긴 과식의 후유증으로 밤새 폭풍같이 설사하고 침대에 시체처럼 누웠다. 과식도 문제였지만 어제 가장 큰 문제는 간이었다.

와이번이 평소에 뭘 먹고 다녔는지는 모르겠지만 간은 정말 엄청나게 기름졌다. 생으로 자를 때도 노란 기름이 뚝뚝 떨어졌는데, 삶으니 무슨 기름이 오크통으로 하나 가득 나왔으니 말이다. 노르딕 씨가 나중에 가죽을 광날 때 쓰겠다며 따로 퍼갔을 정도.

아마 와이번은 지방간 말기였던 것 같다.

결국 과식 플러스 기름진 음식. 당연히 위에서 소화가 힘드니 폭풍 설사가 이어진 것.

탈수로 인한 퀭한 눈과 다크서클은 어제 무모한 나에게 돌아온 선물 같은 것.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밤새 이어진 나의 폭풍 설사와 고통을 본 아내들이, 무조건 많이 먹인다고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사실.

한 번의 무모함과 맞바꾼 밝은 미래에 그나마 안심했다.

“러셀, 어떡하죠? 물을 더 만들어올까요?”

리젤다가 내 부탁으로 만들어왔던 소금과 꿀을 살짝 섞은 미지근한 물이 담긴 주전자를 한번 흔들어보고 빈 것을 확인하자 물었다.

탈수를 막아보려고 만들어 마셨는데 마시는 족족 흘러나오는 통에 화장실만 더 간 느낌. 그래도 얼마 전 설사가 멈춰 조금은 살만해진 상태였다.

“아니, 지금은 괜찮아. 그런데 이실리엘과 발레리가 오늘 안 보이네?”

시트라는 나를 밤새 간호하다가 좀 전에 눈을 붙이러 갔지만. 어제 저녁때 이후로 얼굴을 못 본 것같은 둘을 찾자 리젤다가 급하게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이, 이실리엘님은 사, 사냥 가셨고, 바, 발레는 그란 폴에 재료를 가져다준다고 갔어요.”

이실리엘이 사냥을 나갔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발레리가 그란 폴에 재료를 가져다주러 갔다는 말에 나는 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이실리엘 때문에 놀란 것은 혹시라도 와이번 같은 걸 한 마리 더 잡아 올까 놀란 것이고, 발레리 때문에 놀란 것은, 내가 잠시 잊고 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맞다! 애니! 연락해줘야 하는데! 추기경님 오고 시트라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까먹고 있었다!”

나는 암살자들의 난동 후. 갑자기 들이닥친 추기경 일행과 시트라 일로 잠시 잊고 있던 길드의 식당과 애니가 떠올랐다.

‘맙소사!’

암살자들에게 수리아가 목숨이 오가는 상처를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을 때. 벨릭의 애인인 애브리나를 통해 길드로 연락해 애니의 보호를 부탁하고, 애니가 필요한 재료 구매를 부탁했는데, 그 후로 한 달 가까이 연락하지 못한 것.

연락 방법이 수정구나 직접 배달하는 편지뿐인 이쪽 세계에서 한 달은 긴 시간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소식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주지 못했으니 당연히 걱정하고 있을 텐데.

이건 애니가 나를 쥐어뜯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어떡하지? 애니한테 벌써 한 달 가까이 못 가봤어! 연락도 제대로 못 하고!”

내가 침대에서 끙끙거리다 애니와의 연락을 떠올리고 벌떡 일어나자. 리젤다가 화급히 나를 침대에 다시 눕히고는 가슴을 살살 토닥거리며 말했다.

“애니가 걱정은 하겠지만, 넓은 마음과 이해심을 가진 애니이니. 건강해진 다음에 찾아가서 말하면 이해해 줄 거예요.”

“그럴까?”

“그럼요. 지금 이렇게 아픈데 어쩌려고요.”

“그럼 연락은 한숨 자고 일어나서 해야겠다.”

왠지 안 그럴 것 같지만 그렇게 해줬으면 하는 나의 바람 때문일까?

어제 한숨도 못 잔 후유증과 리젤다가 달콤하게 속삭이며 머리를 쓸어주는 부드러운 손길에 나는 그대로 천천히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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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폴의 용병 모험가 길드는 오늘 완전한 고요함에 빠져있었다. 길드 내부의 모든 테이블이 사람들로 꽉꽉 차 있지만,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상태.

그것은 모두 길드 홀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한 명의 아름다운 엘프 때문.

연락도 없이 그란 폴의 용병, 모험가 길드에 등장한 높은 엘프 이실리엘 때문이었다.

길드의 문이 열리자마자 들이닥쳐 길드 홀의 중앙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부 길드장 영감과 수석 접수원 릴리아나의 접대를 거절하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모의 엘프.

처음에는 범접할 수 없는 엘프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녀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정도로 이렇게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용병 모험가 중에 섞여 있던 그녀와 같은 종족인 다른 엘프들이 주도적으로 분위기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남부를 떠들썩하게 했던 엘프 실종 사건으로 남부 대부분 도시나 마을에서는 엘프들이 한동안 자취를 감췄었다.

엘프 실종사건은 인간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엘프들에게는 달랐다. 엘프들 사이에서는 원인 모를 이유로 남부 최남단 쪽에서 엘프가 조금씩 사라진다는 소문이 돌았건 것.

부족이 달라도 서로를 한 핏줄로 여기는 엘프들이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경고하며 소문을 퍼트리고 위험을 알리니. 전부 최남단 지역에서 빠져나간 것이었다.

엘프들의 숫자가 많지는 않아도 큰 도시에서는 그래도 제법 흔하게 볼 수 있는 편이었는데, 남부에 그래도 많은 숫자가 사는 평원 엘프들마저 싹 빠져나가 버려 한동안 엘프들을 보기가 힘들었던 것.

하지만 엘프 실종 사건의 내막이 정신 나간 남작의 소행임이 밝혀진 후. 엘프들이 천천히 되돌아오기 시작했고. 한때 그란 폴에서 활동하던 용병, 모험가 엘프들도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었기에, 최근에는 길드에 하루에 대여섯의 엘프들이 상주하곤 했다.

그런데 그 되돌아온 도도한 엘프들이 도도한 모습으로 길드에 들어섰다가 중앙 테이블을 차지한 미모의 엘프만 발견하면, 인간 평민이 길바닥에서 왕이라도 만난 것처럼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테이블 앞으로 찾아가 한쪽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는 것.

엘프들의 문화중 보통 인간들이 많이 알고 있는 것은 엘프들에게는 귀족도 왕족도 없다는 것.

그렇기에 엘프들 사이에는 지위고하가 없고, 많은 부족으로 이루어진 엘프들이지만, 부족이 달라도 엘프들은 다들 서로를 자매나 형제라고 칭하는 것이라 알고 있었는데.

저런 엘프들의 모습이 인간들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길드 홀의 테이블을 꽉꽉 채운 사람 중에는, 대늪지 사냥철이 끝나고 러셀의 여관에서 묵거나 풍유의 축제를 통해 이실리엘을 만나본 사람들이 존재해 엘프들의 그런 반응을 더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실리엘은 예쁘긴 하지만 여관 여급(?) 엘프니까 말이다.

그래도 한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이렇게 고요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이렇게 변한 그 사건.

대늪지 사냥철이 끝나고 러셀의 여관에서 제법 오래 묵어 이실리엘과 안면이 있던 용병 중 하나가, 영문도 모르고 길드에 들어섰다가 이실리엘을 발견하고 호기롭게 말을 걸었다.

“어? 이실리엘 씨 러셀 님이랑 같이 오신 겁니까?”

“아뇨, 누구를 좀 데리러요. 베런 씨도 잘 계셨나요?”

“헛! 제 이름도 기억해 주시다니. 러셀님 음식 먹으러 다음에 한 번 찾아가겠습니다.”

그렇게 이실리엘과 인사가 끝난 후 동료들에게 향하던 그는 이실리엘의 주변에 자리를 잡고 긴장한 얼굴로 앉아있던 다른 엘프들에게 조용히 끌려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되돌아왔을 때.

남자는 테이블의 자기의 동료들 사이에 앉아 숨죽여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나, 나 같은 건 죽어야 해! 나는 쓰레기야!]

평화를 사랑하는 엘프들인지라. 육체적 충돌은 없었던 것 같은데. 거친 용병의 입에서 자책과 울음을 터트리게 하다니.

테이블에 앉은 용병들은 다들 긴장하며 조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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