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1화 〉 248. 다리 치료 7
* * *
노르딕 씨는 잠시 크게 심호흡하더니 뭔가 엄청나게 인내하는 얼굴로 말했다.
“다, 다시는 그러시면 아, 안 됩니다. 전속 드워프를 데리고 있는 분이 그러시면, 절대 안 됩니다. 절대!”
“예…”
뭔가 나도 모르게 엄청난 짓을 저지른 느낌.
그렇게 내가 노르딕 씨에게 훈계를 듣고 있을 때. 어느새 식사를 끝낸 노르딕 씨의 아내와 딸도 가죽에 달라붙어 구경을 시작했다.
“갈기늑대 성체. 털은 풍성함이 좀 죽었지만, 가죽은 잘 마르고. 지방 제거나 건조 그리고 연화 처리는 아주 잘된 것 같네요. 어머니.”
“엘프들의 방식이구나. 엘프들은 생가죽을 잘 다루지.”
그렇게 둘은 좋은 가죽이라며 기뻐하며 서로 뭘 만들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리고 노르딕 씨의 훈계가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내 앞으로 몰려와 기뻐하던 표정을 싹 바꾸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와이번 가죽은 어디에 있는 거죠. 러셀님?”
“무슨 와이번이죠?”
“얼마나 큰가요?”
더 기다리게 하면 드워프들이 애가 타 타죽을 것 같은 모습.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드워프들. 나는 토끼 자매에게 드워프 아이들을 맡긴 후 셋을 데리고 바로 와이번이 누워있는 강변으로 향했다.
내가 와이번 가죽을 어딘가에서 꺼내 올 것으로 생각했는지. 여관 위층을 바라보는 셋을 끌고 강변으로 향하자. 가죽을 보여준다면서 왜 이리로 가는지 세 드워프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어제 엘프들이 몰려 나간 게 이실리엘이 무엇을 잡았기 때문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세 드워프를 데리고 목책의 작은 문을 나서자마자 강변에 보이는 검고 큰 육체. 세 드워프는 와이번을 본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기라도 한 듯. 그대로 멈춰 섰다.
“브, 블랙 와이번!”
노르딕 씨의 입에서 감탄이 터져 나오고, 세 드워프가 홀린 듯 와이번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정신 마법이라도 걸린 듯 와이번에 달라붙어 볼을 비비는 노르딕 씨. 그의 입에서는 끊기지 않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블랙 와이번이 통으로! 그것도 성체! 이 거대한 크기!”
노르딕 씨는 부들부들 손을 떨며 기쁨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러셀님 장인들이 가장 슬플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어? 좋은 재료를 못 구했을 때?”
내가 조심스레 내 생각을 말하자 노르딕 씨는 분노와 기쁨, 아쉬움과 환희가 교차 되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뇨 아닙니다. 못 구했을 때는 그냥 못 구했으니 그러려니 하죠. 가장 슬플 때는 좋은 재료를 구했는데, 머저리 같은 용병, 모험가 놈들이 처리를 잘못해서, 재료가 가진 장점과 아름다움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할 때죠. 드워프 모험가들이 괴물을 사냥하고, 용병이 되는 것도 자신들이 직접 재료를 구하거나, 몬스터의 처리를 연습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죠.”
‘아, 그래서 뭐 만드는데 환장하는 드워프들 중에서도 모험가나 용병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 것이구나?’
노르딕 씨의 말로 이 세계 공돌이들이 작업실을 버리고 직접 필드로 나서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시나 드워프들은 뭔가를 만드는 것에 진심인 친구들이었다.
뭔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결국 마지막에 꿈꾸는 건 다들 비슷하다. 재료부터 완성까지 직접 하는 것.
비슷한 이유로 요리를 만드는 나도 텃밭을 가꾸니 당연히 드워프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재료부터 직접 구해 완성까지 하는 것은 제작의 극의니 말이다.
“특히나 고급 재료를 팔겠다고 가져온 놈 중 재료를 거의 망쳐서 가지고 오는 놈들은, 머리통을 망치고 깨부수고 싶다고 들워프들은 말하곤 하죠.”
나는 그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워프들은 뭐 하나 만들 때도 뭐랄까?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인 모습을 추구하는데, 그것은 재료가 가진 특성을 잘 살릴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그런데 원재료를 개판 쳐서 가지고 온다? 당연히 속이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
전생에 나는 평범한 남자였지만 바나나를 살 때 한가지 철칙이 있었다. 바나나를 둥그런 몸통 부분이 아래로 진열하는 집에서는 절대 바나나를 사지 않는 것.
바나나는 후숙성 과일이라 시간이 지나며 익어가게 되는데, 동시에 바나나는 말랑하게 변한다. 그런 바나나를 곡선 부분을 아래로 향하게 진열하면, 진열대에서 바나나가 익어가다가 무게에 눌려 둥그런 부분이 물러지는 것이다.
그런 바나나는 결국 몇 개는 바로 먹지 않으면 시커멓게 변해 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나나는 매달아서 진열하거나 둥그런 몸통 부분이 위로 오게 뒤집어 진열해야 하는 것.
자신이 취급하는 과일의 특성도 모르는 과일 집에서는 절대 사지 않는 것이 나의 철칙.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요리에는 진심이었기에 생긴 버릇이었다.
결국은 바나나에 대한 나의 까다로움도 원재료에 대해 신경 쓰다 보니 생긴 것.
요리할 때 재료를 밭에서 직접 조심스레 뽑아서 싱싱하게 가져오면, 아주 기분이 좋고 재료 손질할 때도 즐거운데. 가끔 채집 중 손상되거나 밭에서 캐거나 따다가 도구에 찍힌 모습을 보면 짜증이 나곤 하니까 말이다.
찍히고 망가진 부분을 잘라내 버리는 심정은 제작자만이 느끼는 슬픔이니까. 뭔가를 만든다는 부분에서 노르딕 씨와 나의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아까 노르딕 씨가 갈기늑대를 깔개로 썼다는 말에, 나를 향해 인내하며 지은 표정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꿀꺽
나는 그것이 드워프들이 누군가의 머리통을 망치고 깨부수고 싶은 표정이라는 것을 잘 기억해두기로 했다.
무사한 머리통을 매 만지며 안심하고 있을 때. 드워프들은 그냥 기쁨에 정신을 놓아버리기로 했는지 미친것처럼 서로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갓 잡은 블랙 와이번이 그것도 통째로! 으하하하하! 높은 엘프의 전속 대장장이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군요! 우하하하하”
노르딕 씨는 미친것처럼 와이번의 가죽에 얼굴을 비비며 웃고. 그의 아내와 딸도 와이번의 꼬리나 다리에 매달려 서로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이걸 어떻게 벗긴다? 일단 가죽은 등과 배로 나누어서 벗기고. 등과 배의 경계가 만나는 부분을 따로 잘라내야겠군. 가죽인데 이음새가 안쪽에만 있는 갑옷을 만들 수도 있겠어!”
“아버지 머리와 이 뿔은 잘 살려서 투구로 만들어도 멋있겠어요.”
“오오! 그렇구나! 머리 가죽은 단단하지!”
“여보, 이 꼬리 쪽은 그대로 고기와 지방을 제거한 후에 뼈를 깎고 안에 심을 박아서 창으로 만들 수도 있겠네요.”
“그래 정만 대단한 창이 나오겠어!”
“아버지 이 발톱은 조금만 깎아도 훌륭한 단검이 되겠어요!”
“이 날개를 보거라 딸아. 이 훌륭한 비막은 그대로 말려서 망토로 사용할 수도 있게 얇단다. 얇게 두 장으로 나눠서 안감을 대도 좋을 것 같구나!”
와이번은 세 드워프에 대화 속에서 거침없이 도축되어 뭔가 다른 것으로 태어나고 있었다. 원재료를 보고 창작 의욕을 불태우는 세 드워프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이거 도축은 노르딕 씨 가족에게 맡겨도 될까요?”
“당연히! 저희가 전속 대장장이니 저희가 해야죠! 세상에 블랙 와이번을 통째로 벗기는 날이 오다니!”
“근데 덩치가 커서 도움은 필요 없으실까요?”
“걱정하지 마시고. 여관에서 쉬고 계십쇼 고기는 따로 잘라서 여관 앞으로 보낼 테니까요.”
남부 늪지대다 보니 아무래도 광석을 구하기 힘들어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앞으로 저런 재료를 적당히 구해다 주면 드워프들도 만족할 것 같은 느낌.
남부 늪지대에 블랙 와이번은 조금 희귀한 일이지만, 대늪지 안쪽에는 늪지대에서만 나는 특별한 몬스터들이 있고 그 안에 무척 희귀한 재료도 있으니 드워프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나는 와이번을 손질하려고 가져왔던 도구들을 노르딕 씨에게 전부 빌려주고 다시 여관 앞으로 향했다.
아침의 소란이 잦아들고 어제 밤을 새운 사람들이 모두 자러 들어간 마을과 여관은 오늘 하루 아주 고요했다.
평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풀들이 내는 소리만이 가득한 마을.
보통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아침 먹기 전에 논밭을 둘러보고. 아침 식사가 끝나고 해가 완전히 떠 너무 더워지기 전까지 일한다. 태양이 뜨거운 한낮에는 보통 논, 밭에서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전에 논밭을 돌보면 나머지 시간은 집 근처에서 농기구를 손보거나 소일거리를 하는 편인데.
아침 식사가 끝나 더워지기 전까지 마을 사람들이 일하러 나가야 할 때이지만, 마을 사람 대부분이 어제 극한의 노동에 투입되었으니 낮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이 없어 마을이 고요한 것.
모두 잠든 것 같은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느낌. 실제로도 대부분이 잠들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한적함 속에 나도 어제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기 위해서 아침 식사가 끝나고 잠을 청했다.
그렇게 밤을 새운 피로를 풀고 눈을 뜬 것은 점심이 조금 지났을 때. 그런데 눈을 뜨자마자 불쾌함이 몰려왔다.
열린 창문을 통해 방안으로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며 흘러들어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강한 냄새에 몸을 일으켜 창문 밖을 확인하자 놀라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온마을의 빨랫줄에 빽빽하게 걸려있는 붉은 고깃덩이들. 여관 빨랫줄까지 고기들이 잔뜩 걸려 피와 기름기를 떨어트리고 있었던 것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