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50화 (250/352)

〈 250화 〉 247. 다리 치료 6

* * *

용.

지능 있는 날아다니는 거대 도마뱀.

거구의 육체에서 나오는 압도적 물리력과 강인하고 단단한 육체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지워버릴 듯한 초고열의 브레스. 거기에 뛰어난 지능과 마법 능력. 이 세계의 핵미사일이며 살아 움직이는 재앙, 최종병기 정도로 지칭할 수 있는 생명체이다.

그러나 이런 밸런스 파괴 급 생명체가 흔하면 대재앙이기에, 무슨 이유에서인지 숫자도 적어서 이들이 눈에 띄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 그러니 살면서 용을 만난다는 건 정말 로또 맞을 만큼 적을 확률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만나기 어려운 용인데 또 용을 만나서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들어서, 사람들에게 용에 대해 알려진 건 극히 적다. 그나마 전래동화처럼 내려오는 이야기는 자기 자신 이외의 모든 생물은 벌레만도 못하게 취급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들 틈에서 인간의 생활을 즐기기도 한다는 것.

물론 나도 용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다만 용 비슷한 애들은 몇 번 만나본 경험이 있다.

내가 만나본 놈들은 두 가지인데 그 첫 번째가 드레이크(Drake).

용병, 모험가로 생활하면 언젠가 한 번쯤 마주칠 수 있는 드래곤과 비슷한 생물이며, 우리가 가장 용과 착각하기 쉬운 것이 드레이크이다.

용과 비슷하지만, 더 체구가 작고 마법이나 브레스를 뿜지 못하고 지능도 낮은 몬스터의 일종. 드래곤의 아종 정도로 취급한다. 이놈들은 그야말로 정말 날아다니는 성질 포악한 도마뱀이라고 보면 된다.

드레이크를 말할 때 보통 크게 뭉뚱그려 드레이크라고 칭하지만, 그 안에도 종류가 다양하다. 땅에만 사는 놈, 바다에만 사는 놈, 날개가 있는 놈 없는 놈, 크기가 큰놈 작은놈 등.

그리고 드래곤의 아종 중 또 다른 한 종류를 용병, 모험가들은 이렇게 부른다.

와이번(Wyvern).

지금 내 앞에 축 늘어져 밧줄에 묶어 마을 강가로 끌려 올라온 이것 말이다.

“이걸 어디서 잡은 거야 대체?”

“리젤다가 하늘에 날아가는 것을 발견했어요.”

“대단한데? 워낙 높이 날아다니는 놈들이라 찾기도 힘든데.”

이실리엘과 나의 칭찬에 헤실헤실 웃는 리젤다의 모습. 신이 난 리젤다를 뒤로하고 나는 리젤다의 뒤, 뭍에 끌어올려진 와이번에게 다가가 놈의 비늘을 한번 쓸어보았다. 윤기가 번들거리는 매끄러운 검은 비늘. 녀석의 비늘은 얼마나 단단하고 매끄러운지 물에서 금방 건져 올렸는데도 물 한 방울 젖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익룡과 비슷한 날개와 손이 일체화된 모습. 비늘이 검은색인 걸 보니 보통 색으로 블랙 와이번이라 부르는 녀석이었다.

드레이크가 날개가 있음에도 하루 대부분을 땅에서 보낸다면 와이번은 그 반대. 잠자는 시간이나 쉴 때를 제외하고 와이번이라는 놈들은 여간해서는 땅에 내려오는 법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잡기도 힘들고 와이번 비늘이나 가죽은 아주 가치가 높다. 하늘을 나는 생물인지라 가볍고 질기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와이번을 중심으로 한 바퀴 돌아보자. 대충 크기가 짐작되었다. 전생으로 치면 삼, 사 층 짜리 원룸 건물을 누인 것같은 크기. 십여 미터쯤 될까?

놈의 미끈하게 빠진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다시 한번 긴 목을 따라 머리 쪽으로 향하자. 머리에 난 뿔 두 개, 늘어진 혓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놈의 이마 한가운데 보이는 매끈하게 뚫린 구멍.

무엇인가가 놈의 턱부터 이마를 관통해 뇌에 주먹만 한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면 두껍고 매끄러운 비늘을 뚫고 이걸 구멍을 낼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리고 이실리엘을 바라보자 방끗 웃는 이실리엘.

“러셀, 먹이려고 최대한 깨끗하게 잡았어요.”

주먹만 한 구멍은 뭐라고 할까? 드릴로 깔끔하게 구멍을 뚫은 것같은 모습이랄까? 그 말도 안 되는 모습에, 준비한 아침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하염없이 와이번 만 구경하고 있는데, 강가 쪽에 뚫린 작은 목책 문으로 나온 시트라가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아침이 준비되어있습니다. 다들 여관 앞으로 가시면 다들 아침을 나누어 드립니다!”

밤새 와이번을 끌어오느라 지친 사람들은 강변 풀밭에 여기저기 늘어져 있다가, 아침이라는 소리가 들리자 다들 여관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이실리엘, 리젤다 밥 먹어야지? 로리엘은 어디 있어?”

“좀 전에 벌써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내들을 데리고 일단 여관 앞으로 향했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둘에게 뭐라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여관으로 향하는 길.

내 양쪽에는 이실리엘과 리젤다가 팔짱을 끼고 어제 사냥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물론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리젤다. 리젤다는 뭐가 그렇게 신이 나는지 손짓, 발짓까지 하면서 어디서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얼굴로 소리를 치는 중이다.

“그게 뭐랄까? 마치 하늘에 선을 쭉 그은 것처럼! 그러더니 저게 땅으로 쿵 떨어져 내렸어요! 얼마나 큰소리가 났는지! 막 새들이 놀라서 도망가고, 먼지도 엄청나게 났다니까요!”

내가 보기엔 리젤다는 살림 형 와이프는 절대 아니다. 뭔가 전생으로 치면 맞벌이에 어울릴 것같은 성격. 그 성격에 부엌일 하는 것 엄청 답답할 것 같은데, 나중에 이야기를 한번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항상 이실리엘 옆에서 조용하던 그녀가 오랜만에 사냥을 한번 다녀오더니. 처음 우리 여관에 왔을 때와 같이 말괄량이로 되돌아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얌전한 리젤다도 좋지만, 북부에서 성벽 위에 물구나무를 서던 리젤다도 나의 리젤다.

모처럼 생기가 넘쳐흐르는 리젤다의 모습.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그녀가 원하는 걸 하게 해주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어디 가서 다치지 않게 교육은 필수로.

다치지 않게 하려면 어떤 교육을 해야 할까 생각하며 리젤다를 바라보니. 신나게 떠들던 그녀가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리젤다 무슨 일이야?”

“아, 아뇨 갑자기 오한이….”

‘감이 좋아진 건가?’

벨릭과 같이 훈련받던 때를 떠올린 내 생각과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리젤다가 몸을 흠칫 떨었다.

말라붙은 대지의 시든 풀처럼 기운이 빠져있다. 단비를 머금어 되살아난 풀처럼 파릇파릇해진 리젤다를 데리고, 목책의 작은 문을 지나 마을 광장을 거쳐 여관 입구로 향하자. 여관 앞에는 마을 잔치가 벌어져 있었다.

몰려든 마을 사람들과 평원 엘프, 수인, 용병들이 어울려서 수프를 먹고. 이집 저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딱딱한 빵도 수프에 넣어 먹기 좋은 크기로 잘려 사람들에게 나누어지고 있었다.

처음 보는 소시지와 햄들도 보이고, 와이번과 같이 잡아 온 것으로 보이는 사슴도 배가 갈려 솥 밑에서 긁어낸 불 위에 올려지고 있었다.

전생에 가끔 보면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 (에스키모)들이 고래 같은 거 잡으며 마을 잔치 열고 그러던데 우리가 지금 딱 그런 모습.

그런데 고래 잡아서 잔치하는데 고래가 빠질 수가 있나.

이실리엘과 리젤다에게 수프를 먹고 있으라고 이야기를 한 후. 부엌에서 고기를 손질할 때 쓰는 칼들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내가 처음 들른 곳은 노르딕 씨의 집.

­쿵쿵

“노르딕 씨!”

“러셀님?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잠꾸러기 드워프 가족들은 막 깨어 일어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노르딕 씨의 가족은 너무 오랜 기간 동굴에서만 생활했기에, 아직 햇빛 속에서 생활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수면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어제는 저녁을 먹고 졸린 눈으로 바로 집으로 가더니 여태 자다 일어난 모양. 눈을 비비며 문을 열고 나온 노르딕 씨에게 물었다.

“노르딕 씨 혹시 가죽도 잘 다루시나요?”

“러셀님 드워프에게 가죽을 잘 다루냐고 물으시다니! 아침부터 실례입니다! 하하”

눈을 비비다 말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되묻는 노르딕 씨. 엘프들에게 목재를 잘 다루냐고 묻는 느낌일까?

“오! 역시. 그럼 와이번 가죽도 잘 다루시겠네요?”

“뭐? 무, 무슨 가죽이요?”

“와이번?”

“어, 어떤?”

“좀 크고 검은 와이번?”

­쾅

갑자기 문이 쾅 닫히더니. 다시 문이 열렸을 때는 노르딕 씨의 일할 줄 아는 드워프 셋이 작업복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나타났다. 그리고 뒤를 따르는 꼬맹이 둘.

“어, 어딥니까! 어, 얼마나 있습니까?”

“일단 여관에 가서 식사부터?”

“이, 일단 가죽부터 보죠.”

좋은 재료만 보면 환장한다는 드워프의 종족 특성이 발현되기라도 한 것인지. 식사 먼저 권하는 내게 노르딕 가죽 먼저를 주장하는 노르닉 씨.

하지만 나는 와이번을 보기 전에 노르딕 씨 가족을 먼저 여관으로 데리고 와야 했다. 먼저 보여줄 것도 있고 애들 밥도 먹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드워프들이 와이번 가죽이라는 소리에 꼬맹이 식사도 잊은 채 흥분해있었기에 나라도 아이들을 챙겨야 했다. 어차피 다 내 드워프 들이니까.

“수프라도 드시면서 잠시만 기다리세요.”

여급들에게 노르딕 씨 가족의 식사를 챙겨주라 말한 뒤 내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방과 이실리엘, 리젤다 방에 깔린 깔개를 끌어냈다.

이 깔개는 북부 리젤다의 집을 방문할 때 생겼던 갈기늑대의 가죽. 북부에서는 이걸로 갑옷을 만든다고 했으나 딱히 만들 방법도 이유도 없어서 바닥 깔개로 쓰고 있었는데, 혹시 괜찮을까 싶어서 먼저 노르딕 씨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

먼지 나는 깔개를 잘 말아서 여관 홀로 내려오자 노르딕 씨 가족 다섯은 수프와 빵을 먹고 있었다.

먼지가 날 것 같아 가죽을 한쪽 벽에 세워둔 후. 드워프들의 식사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려 했지만, 노르딕 씨는 얼굴이 새빨개지게 뜨거운 수프를 원샷으로 들이키더니 나에게 헐레벌떡 달려와 가죽을 펼쳤다.

­펄럭

여관 홀 내부에 먼지가 조금 날렸지만 드워프들은 익숙한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

“오오! 가, 갈기늑대 가죽! 상당한 상품이군요? 근데 털이 좀 죽었군요.”

“아, 그게 깔개로 써서….”

“예?! 뭐로 써요?”

“까, 깔개….”

내 깔개라는 말에 노르딕 씨의 눈이 경악의 빛으로 물들고. 식사하던 노르딕 씨의 딸이 수저를 툭 떨어트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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