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렘 in 여관-249화 (249/352)

〈 249화 〉 246. 다리 치료 5

* * *

평원으로 몰려간 엘프들과 마을 사람들은 이른 새벽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을 밖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다 소식이 없어 이슬을 피하려 안으로 들어온 여관 홀에는, 나를 비롯해 자기 가슴을 베고 엎드려 잠든 발레리, 플로라가 한 테이블에 모여있었다.

“너무 늦네?”

늦지 않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해 기다린 것인데 벌써 새벽. 내 물음에 시트라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네요. 하지만 그분들보다 러셀님이 주무시지 못해서 더 걱정입니다.”

하지만 시트라의 걱정 어린 목소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다른 아내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잠을 못 잔 나를 향한 것이었다.

성녀가 되어서 그런지 나와 다르게 쌩쌩한 시트라.

“잠은 좀 있다 잘게. 새벽까지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침이라도 준비해야겠다.”

“알겠습니다.”

바깥 공기를 좀 마시며 기지개라도 켤까 싶어서 문밖으로 향하자. 저 멀리 지평선에 태양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시작되는 여급들의 출근. 한나 아주머니댁에서 여급들이 하나둘 여관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좋은 아침.”

“좋은 아침입니다. 주인님.”

역시나 제일 부지런한 건 사리나. 그녀의 뒤로 토끼 수인 자매와 애니의 동생들이 뒤를 따르고. 제일 마지막으로 졸린 눈을 비비며 올빼미 녀가 여관으로 걸어오다 여관 기둥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다.

­쿵

‘쿵’하는 소리에 다들 뒤를 돌아보지만, 올빼미 녀가 쓰러진 걸 보자 다들 신경 쓰지 않고 출근.

사리나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는 재빨리 달려가 올빼미를 부축해 출근을 마무리시키자. 여급들의 대장인 한나 아주머니께서 출근하시는 것으로 여관의 모든 직원이 출근을 마쳤다.

“러셀, 오늘 아침은 무엇으로 할까?”

한나 아주머니께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모습에 무엇을 감지한 것인지. 어제 준비한 것과는 다른 음식을 하는 건 아닌가 해서 질문을 해오셨다. 역시나 눈치가 빠르신 한나 아주머니.

“오늘은 밖에서 일하고 올 엘프들과 마을 사람 전체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려고요.”

“그럼 그게 필요하겠네?”

“그렇죠.”

대화가 끝나자 한나 아주머니의 지휘로 모든 여급이 창고로 몰려갔다. 그리고 자기 가슴을 베고 잠들어 가슴이 아프다는 발레리와 플로라, 시트라 까지 가세해. 낑낑대며 예전에 목욕통으로 쓰던 거대한 솥을 꺼내 앞마당에 설치했다.

어제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아내들과 몰려가서 힘쓰고 올 사람들을 위한 수프를 끓이기 위한 것.

솥이 설치되자. 모두 달려들어 솥에 물을 길어 나르고, 땔감을 가져와 솥 밑에 파둔 구덩이에 불을 지폈다.

잠시 후 솥에 물이 충분히 차오르자 나는 줄 선 여급들을 향해 재료를 불러주기 시작했다.

“늪 돼지 두 마리, 순무 스무게, 허브 다발 양손 가득, 빻은 밀 반 포대, 버터 세 덩이, 전투식량을 만들기 위해 말려두었던 말린 채소 한 포대. 그리고 주먹만 한 토란 한 광주리. 자 앞에서부터 자기가 맡은 재료를 가져와! 시작!”

여급들이 차례대로 자신이 맡은 재료를 가져오고 지하 보관실에 있던 돼지나, 밀 포대는 다 같이 가서 거들었다.

솥 옆에 옹기종기 모여 토란을 까고 순무를 자른다. 그렇게 손질해 알맞은 크기로 자른 재료들은 곧바로 솥으로 투하.

나는 높은 의자를 하나 가지고 와 수프가 늘어 붙지 않게 긴 장대로 휘적휘적 저어주었다.

­부글부글

아래 피어오르는 장작불과 끓어오르는 수프의 열기에 땀이 뚝뚝 떨어지니. 옆에서 사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님 제가 할 테니 잠시 쉬시지요.”

“그럴까?”

솥의 열기에 땀을 흠뻑 흘리고 여관 앞마당 의자에 늘어지자. 올빼미가 웬일로 눈치 빠르게 부엌으로 뛰어가 큰 맥주잔에 마실 물을 받아왔다.

“주, 주인님 시원하게 물 한잔 크엑!”

그러나 맥주잔을 들고 뛰어오다 넘어지며 그대로 의자에 앉은 나에게 물세례.

­철썩

“푸하!”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처음엔 저렇게 넘어지고 박고 그러는 게 쟤가 일부러 그러나 싶었는데, 물어보니 퍼밀리어 마법의 부작용이라고, 올빼미의 육체와 인간의 육체를 번갈아 가면서 지내다 보니 양쪽 육체가 전부 자연스러워지는 게 아니라. 양쪽 다 부자연스러워지는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하긴 전생에 청룡 열차나 바이킹, 흔들리는 배 같은 거 타다 내리면, 잠깐 다리가 후들 하거나 균형을 잡기 힘들거나 했는데, 올빼미로 3차원으로 이동하다 갑자기 땅에 내려 2차원으로 이동하려면 헷갈리기도 할 것 같긴 했다.

잠깐 놀이기구나 배를 타도 균형 감각이 잠깐 혼란스러운데, 육체를 완전히 갈아타는 느낌인 퍼밀리어 마법은 얼마나 부작용이 심할까 싶어,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디서 크게 다치지 않게 잘 살펴보라고 말을 해두었다.

그렇기에 요즘 올빼미가 이상한 행동을 해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편이다.

‘어휴.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됐다. 더운데 시원하게 잘됐네….”

내 물을 뒤집어쓴 모습에 플로라가 가슴을 치고. 나 대신 의자 위에 올라서 장대를 휘적거리던 사리나가 올빼미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자.

몸의 흙먼지를 털고 일어난 올빼미 녀가 사람들의 눈길이 불편했는지, 사리나에게 달라붙어 자신이 하겠다며 장대를 넘겨받았다.

“내, 내가 할게. 사리나.”

“그래? 그럼 그러던가.”

사리나는 대수롭지 않게 올빼미에게 장대를 넘겨주었다. 그렇게 장대를 넘겨받고 두세 번 휘저었을까? 갑자기 장대를 잘 휘젓던 올빼미가 큰 건더기에라도 걸린 것처럼, 장대에 뭔가에 걸린 듯한 손동작을 하더니. 마치 장대높이뛰기를 하는 것처럼 솥 바닥을 장대로 찍고 그대로 솥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어? 어! 어, 어!”

“꺄아악!”

“어, 어떡해!”

너무 황당한 모습에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의미 없는 소리. 그리고 주변에 모여있던 여급들이 비명을 질러댈 때.

“칫!”

플로라의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어떻게 한 것인지. 플로라가 공중을 날아 솥으로 처박히기 직전의 올빼미를 낚아채 솥 밖으로 내던졌다.

‘아니? 저, 저 가슴으로 나, 날아?’

새빨갛게 휘날리는 머리카락과 두 개의 살덩이. 뭔가 물리법칙에 어긋나는듯한 모습. 플로라가 날았다는 사실보다 묵직한 살덩이가 솟구치는 그 박력에 압도되어 입만 떡 벌린 채 플로라를 바라보자.

플로라는 움찔하는 모습으로 내 시선을 등지고 자기가 끌어낸 올빼미를 갈아 마실 듯 구박하기 시작했다.

“왜요? 수프에 고기가 부족해 보였나요? 새가 한 마리 더 들어갔으면 했어요? 내가 이걸 왜 건져냈을까? 아우 정말!”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이 예뻐서 건져냈는지 아나요? 우리 자기가 만든 음식이 더럽혀질까 봐 건져낸 거예요! 아시겠나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질책은 부엉이에게 쏟아지는데, 솥 옆에 웅크린 사리나가 플로라의 말에 바들바들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놀랐나?’

그렇게 한참 올빼미의 멘탈을 가루로 만든 플로라는, 뒤돌아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기, 그러니까 그게요….”

뭔가 상당히 부끄러워하는 플로라. 나는 그녀에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 대….”

“대? 대 뭐요? 자기?”

당황하는 플로라의 양팔을 잡고 흔들어대며 물었다.

“대단해! 뭐야! 플로라 어떻게 한 거야? 무희들은 그런 거 다 할 줄 알아? 아니, 어떻게 날았지? 아니, 이 몸으로…. 아니, 이 큰…. 아니, 예쁜 몸으로 아무튼 어떻게 날아간 거지?”

무희라는 직업을 떠나서 플로라가 춤추는 게 실력 있어 보이긴 했는데, 공중으로 솟구치는 건 전혀 예상 못했던 부분이었다.

‘세상에 자기 입으로 저번에 재주가 많다더니 사실이었구나?’

마치 무희나 춤의 신이라도 있어서 능력이라도 내려받은 듯한 대단한 모습.

“누가 보면 무희의 신이나 춤의 신에게 능력이라도 받은 줄 알겠어!”

내 칭찬에 플로라가 부끄러웠는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고, 발레리와 시트라도 몰려와 플로라를 칭찬하자 플로라는 더 못 버티겠는지 자기 방으로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언니가 부끄러웠나 봐요.”

발레리가 플로라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플로라가 부끄러운 듯 여관 안으로 사라지고. 올빼미가 솥 안으로 떨어지는 모습에 놀란 사리나와 멘탈이 조각나 주저앉은 올빼미를 다독여 다시 일에 투입했다.

“사리나 놀랐지? 괜찮아. 아무도 안 다쳤으니까.”

“예, 옛 주인님 죄, 죄송합니다.”

“많이 놀랐나 보네 좀 쉴래?”

“아, 아닙니다!”

사리나가 다시 장대를 붙잡아 의자에 오르고, 올빼미는 위험한 작업에는 이제 절대 투입 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빠졌으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나는 올빼미에게 그녀가 제일 잘하는 임무를 다시 부여했다.

“너는 위험한 일 하지 말고 올빼미로 사람들 오는지나 확인해봐. 알겠지?”

“예,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올빼미를 작업에 열외 시키고 사람들이 오나 확인하라 이르자. 올빼미 녀가 앉은 자세 그대로 고개를 떨구고. 처마 밑에 만들어둔 올빼미 장에서 올빼미가 뛰어나와 하늘로 날아올랐다.

홰를 치며 공중으로 날아오른 올빼미가 저 멀리,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청명한 하늘 위로 날아오르는 새 한 마리. 그것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고 생각할 때.

무엇을 보았는지 올빼미가 다시 급하게 급강하를 시작했다.

그리고 들려오는 목소리.

“오, 옵니다. 주인님.”

사람들이 오고 있다는 올빼미의 보고에 곧장 가까운 목책으로 걸어가 발판에 올라 밖을 내다보았지만, 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까치발을 들고 고개를 돌려보아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

그때 목책 옆에 날아와 앉은 올빼미가 말했다.

“주인님 강 쪽이에요.”

올빼미의 말에 고개를 돌려 강 쪽을 바라보자. 그제야 말과 사람들이 밧줄에 묶어 뭔가를 질질 끌고 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가 얼마나 무거운지 강물에 띄워서 끌고 오는 모습.

그렇게 천천히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나타나고 그렇게 모든 사람이 시야에 들어오자. 사람들의 등 뒤로 그들이 끌고 있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그러니까… ?’

사람들이 끌고 오는 것은 검은색의 여관건물만 한 무엇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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